결정적 그림 - 영원한 예술로 남은 화가의 순간들
이원율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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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원율 작가의 '사적이고 지적인 미술관'을 읽었네요, 이번에 <결정적 그림> 신작이 나와서 읽게 되었네요. 헤럴드경제 인기 칼럼 '후암동 미술관'이 엄선한 거장 22인의 삶과 명화 탄생의 비밀 재밌었어요!

요즘 제가 전시회 다니면서 봤던 작품과 작가들의 이야기들이 많이 보여서 더 재밌게, 작품에 대한 이해가 더 잘 되더라구요.

미켈란젤로, 젠틸레스키, 고갱, 아브라모비치, 라파엘로, 발라스케스, 알폰스 무하, 제임스 휘슬러, 드가, 에곤 실레, 르네 마그리트, 르누아르, 모딜리아니, 샤갈, 이중섭, 렘브란트, 코야, 김정희, 카미유, 뭉크, 툴루즈, 프리다 칼로 총 22인의 거장들이 나와요.

그중에서 살짝 소개 해볼께요.

<서양미술 800년展>에서 젠틸레스키의 작품 '막달라 마리아' 관람하면서 잠깐 여성 화가인 젠틸레스키에 대한 소개를 들었거든요.

이번 책을 읽으면서 자세하게 알게 되었어요!!!

┌ 타시의 목을 쥔 그림, 그놈 목을 베는 그림, 그 자식의 피가 사방에 튀는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젠틸레스키는 타시의 목을 베는 심정으로 붓질을 했다. 절규하는 타시의 머리통을 들고 있는 마음으로 색칠했다. 젠틸레스키가 유디트를 소재로 둔 작품은 최소 6점이다. 젠틸레스가 그린 유디트는 근육질의 여성이다. 힘 좋은 대장장이마냥 두 팔을 힘껏 걷어올렸다. 왼손으로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쥐어뜯듯 잡고 있다. 오른손에 쥔 칼을 깊숙하게 찔러넣고 있다. 홀로페르네스는 무력하게 죽어간다. 젠틸레스키는 유디트의 심정으로 타시를 죽이도 또 죽였다. ┘

젠틸레스키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이 작품들을 보세요.

어떤가요? 젠틸레스키가 유디트의 심정으로 타시를 죽이고 또 죽이는 것 같죠~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든 유디트



체코의 대표 화가죠. 알폰스 무하의 포스터 그림을 많이 보셨을텐데...

체코의 대표적 민족주의자 알폰스 무하의 <슬라브 찬가, 인류를 위한 슬라브인>을 아시나요?

그런데 무하는 왜 숙명적으로 슬라브족의 역사를 그렸을까?

┌1899년, 무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서신을 받았다. 내년 파리 세계박람회에 선보일 실내 장식을 준비하를 의뢰였다. 사실상 강요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위해 일해야 할 처지. 이 제국의 통치 아래 고통받는 조국과 슬라브족... 무하는 작업 내내 괴로웠다. 그런 무하는 훗날 슬라브인의 한을 담은 대작을 그리기로 다짐했다. 참회하는 마음에서였다.┘

이런 이야기를 알고 나니 무하의 슬라브 서사시가 훨씬 이해가 잘 되네요.

알폰스 무하 미디어아트 전시에 갔다가 슬라브 대서사시 작품 보고 엄청 놀랐었거든요.

슬라브 찬가, 인류를 위한 슬라브인



나도 사실 드가를 오해하고 있었네요.

드가의 작품을 보면 꼭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거든요. 그런데 하층민 소녀들의 그 시절의 비애, 서러움이 기록하고 있었네요.

- 음침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벽에 기댄 남성, 옷이 반쯤 벗겨진 채 웅크린 여성은 대치하고 있다. 여성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듯한다. 이 그림은 곧 <실내>가 아닌 또 다른 제목이 붙었다. <강간>이었다.

- 눈처럼 새하얀 발레리나가 공연 중 절정에서 환호받는 듯하다. 하지만 드가는 굳이 그녀 목에 검은색 초크를 넣었다. 굳이 그녀 뒤에 정장 차림의 남성을 표현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이 남성의 통제를 받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 발레리나들이 수업 중 다양한 포즈를 취한다. 한가운데에는 당시 유명 안무가였던 흰 머리의 쥘 페로가 막대기를 짚고 있다. 드가는 굳이 또 오른쪽 맨 뒤에 발레복을 입지 않은 여성들을 넣었다. 발레리나들의 엄마였다. 이들은 귀족에게 자기 딸을 소개하는 등 역할을 자처했다. 이 작품 또한 당시 발레의 이면을 들추고 있다.

실내 스타 발레수업



빛의시어터 서울, 네덜란드 거장전에서 렘브란트 작품 보고 감동받고 왔거든요. 감동이 가시기도 전에 책을 읽게 되어 더 재밌게 읽었어요.

훗날 렘브란트의 가장 위대한 그림, 무대적 장치를 화폭에 끌어들인 전대미문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야경>.

하지만 이는 후세의 시선이었다. 이 그림이 렘브란트의 몰락의 도화선이었다.

야경



<야경>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었지만 렘브란트의 자화상도 빼놓을 수 없네요.

┌렘브란트는 허름한 집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다. 그의 유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렘브란트는 그렇게 역사에서 무하게 지워졌다.┘

쌍커플이 짙은 두 눈은 당당하고, 옅은 미소, 환한 혈식에서 여유가 느껴지는 1632년 자화상이랑 제욱시스로 분장한 자화상 비교해보세요. 얼마나 노년이 힘들었었는지 보이는 것 같아요.

1632 자화상 1662-1668 제욱시스로 분장한 자화상



뭉크전 저도 보고 왔거든요. 그래서 뭉크 이야기도 재밌게 읽었어요.

이렇게 뭉크는 실패한 사랑 속 여자들을 이렇게 작품으로 남겼어요.

- 20대 초반의 풋내기 뭉크는 크로아티아 사교계 유명인사인 헤이베르그 부인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촌스러운 -뭉크만을 불장난 상대로 두기에는 너무나 자유로웠다. 그녀는 결국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났다. 뭉크는 실의를 빠졌다. 쿵크가 이 기억을 안고 그린게 문제작 <사랑과 고통>이었다.

- 뭉크는 베를린에서 또다시 사랑에 빠졌다. 소꼽친구였던 당뉘 유엘이었다. 행복은 잠시였다. 유엘은 뭉크보다 그의 동료 화가 스타니스와프 프시비솁스키를 더 사랑했다. 끝내 그녀는 떠나갔다. 뭉크는 이 남녀의 결혼 소식까지 듣고 만다. 그는 술잔을 바닥에 내던지고 엉엉 울었다. 이때 <마돈나>를 그렸다.

- 뭉크와의 결혼을 바랬던 라르센. 그래서 자살소동을 벌이지만 결국 라르센의 권총 속 총알이 뭉크의 손가락을 관통했다. 뭉크는 그 일 이후에 여자 자체를 경멸했다. 그에게 여자는 흡혈귀였다. 이쯤 그가 그린 그림이 <마라의 죽음>이었다.

사랑과 고통(흡혈귀) 마돈나 마라의 죽음



<결정적 그림>은 약 440페이지 정도거든요. 그런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거장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그런지 재밌게 읽혀요. 22인의 거장과 130여점의 명화를 만날 수 있어요.

제가 소개못한 거장들의 이야기도 하나같이 흥미롭게 재밌어요. 이 이야기를 읽고나면 조금 더 이 거장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진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요. ㅎ

그리고 요즘 좋은 전시 많이 하잖아요. <결정적 그림>과 함께 전시 속 거장들의 작품 만나보면 더 좋을꺼 같네요.








미술관에는 그림이 없다! 눈부신 생의 순간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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