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사진은 힘이 세다
--김장섭 사진이 보여주는 전통과 현대의 신중한 대면
김장섭은 좀 특별한 경력을 지닌 작가다. 그는 1970년대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개념적 전열을 이끌었던 아방가르드로서,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의미 있는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런 그가 1980년대 이후부터 조선시대 문인화의 전통을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는 가히 독보적인 경지의 사진들을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국내 사진가들이 사진의 ‘내용’에 관심을 갖는 것과 달리, 김장섭 은 사진의 ‘형식’ 문제에 천착해 왔다. 김장섭 사진의 힘은 바로 이 독특한 형식 탐구로부터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두 개의 프레임이 어긋나게 겹쳐 뿌연 중간지대를 남기는 초기 짝틀사진들(<대지로부터>)과, 아름다운 산수풍경을 단호하게 절단하는 상하짝틀사진들(<풍경을 넘어>)을 생산한 바 있다. 몇 분간의 미묘한 풍경 변화를 담담하게 병치시킨 최근의 좌우짝틀사진들(<풍경으로부터>)은 그가 도착한 ‘탐구’의 한 정점을 보여준다.

지난 삼십여 년간의 형식 탐구 과정에서 김장섭이 견지해 온 예술적 입장 을 범박하게 요약하면 ‘전통과 현대의 간극에 대해 생각하기’라 할 수 있겠다. 더 범박하게 요약하면 ‘한 장의 예쁜 사진에 대해 회의하기’라고도 할 수 있다. ‘한 장의 예쁜 사진’은 사진기를 쥔 모든 현대인이 갈망하는 것이며, 한국에서는 예술사진의 변함없는 ‘상식’이기도 하다. 그는 이 상식에 도전해 왔다.
김장섭의 아방가르드적 도전의 핵심은 ‘특별히 신중한 뉘앙스’에 있다. 김장섭이 풍경-사진의 성취를 끝없이 지연시키며 풍경-사진의 빈자리를 감싸는 긴장을 끌어가는 것은, 풍경-사진의 성취가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며 불가능해야 한다’는 것을 감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장섭의 이 같은 신중함은 조선시대 문인화가들이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심미적 윤리성에 그 기원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문인화가들은 사물의 겉모습을 묘사하는 형사(形似) 즉 그림의 성취를 경계하고, 사물의 총체적 관계성을 암시하는 신사(神似) 즉 그림의 지연을 의도하였다.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 불과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땅에서 그림 그리고 시 쓰며 살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거의 언제나 잊는다. 그리고 산수화적 경관이나 문인화적 소재를 예쁘게 성취한 이국풍의 감상적 사진들을 전통과 예술의 이름 아래 소비한다... ‘불가능하며 불가능해야 하는 풍경-사진’의 공백을 응시하면서, 전통과 현대의 간극, 그 심연을 견디는 김장섭의 신중한 어법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다.
전시장에서 당신은, 표면의 감각을 지연시키는 동시에 초과하는 매우 특별한 사진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 사진들 앞에서 조금만 신중해진다면, 한낱 사진의 표면들이 삶의 심미적 윤리성을 사색하는 장(場)으로 변화하는 ‘힘 센’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김장섭 개인전 <풍경으로부터>가 종로구 인사동 나우갤러리에서 9월1일부터 14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