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속을 걷다 - 이동진의 영화풍경
이동진 지음 / 예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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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된다. 물론.. 나에게 그렇단 이야기다.

덕분에 난 영화 루트를 유럽 가이드북 속에 넣자고 극구 주장했고 그걸 맡았다. 나 혼자 보며 혼자 대견해 하는 원고이긴 하지만 쓰면서 신나게 썼고 기분 좋게 사진을 골랐다. 그리고 내 사이트에도 짧게나마 영화와 여행을 연결지어 글을 쓰고 있다.

어쩌면 내가 쓰고 싶어하는 또 하나의 책이 이런 종류일지도 모른다. 물론 난 이 책의 저자인 이동진 기자처럼 영화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추지도 못하고 그저 내 끌리는 대로만 써내려 갈 것이고, 아마도 그 지역은 유럽에만 한정될 테지만...  

머물렀던 기간이 짧았다고 해도 떠난 사람의 흔적은 도처에 남는다는 것.
남겨진 사람들은 그 흔적과 마주치며 온기를 얻는다는 것.

- 27p 

영화 <러브레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 인연에 대한 이야기... 

'한때 가장 높았던 빌딩'은
'현재 가장 높은 빌딩'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척도로나 사용될 뿐이다.
'한때 그토록 아름다웠던 사랑'은,
'현재이기에 가장 생생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사랑' 앞에서
감상적인 원경으로만 희미하게 흔적을 남긴다.

- 50p 

ditto!!! 

회전문 하나로 출입이 통제되는 바람에 들어오거나 나가는 사람들은
가끔씩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아무리 화려하고 섬세한 사랑도 입구와 출구는 종종 너무 비좁다.
어떤 이들에게는 한순간에 사랑에 빠지는 것도 어렵지만,
권태롭고 상처 많은 사랑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

- 63p

그래서 사랑을 결정할 땐 신중해야 한다. 

건물 전면 벽에 부착된 거울 유리창에 비친 구름들이
푸른 하늘에서보다 훨씬 더 빠르게 흘러갔다.
실제 겪어낼 때는 느리기만 한 사랑의 고통이라는 것도,
시간이 흘러 마음의 거울에 되비쳐낼 때는 까마득하고 멀기만 하다.

- 46p 

머... 다 그때에만 죽을거 같지.. 지나고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렇게 무뎌지고 잊어가며 사는거지...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우리가 도망쳐왔던 그 모든 과거에 바치는,
돌아서서 뒤늦게 흘리는 눈물 같은 영화.

- 179p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대한 저자의 평... 이 영화 보고 싶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함께 이 책에서 소개한 영화들 중 보고싶어진 영화... 

계곡에는 영화 속에서 나왔던 화덕이 남아 있었고,
천혜의 자연으로도 모자라 기어이 새로 만들어놓은 인공 바위 덩어리까지 있었다.
앞면만 접하면 감탄스러울 정도로 정교했지만,
인공 바위의 뒷면은 대충 얼기설기 얽어놓은 나무판자와 스티로폼 덩어리였을 뿐이었다.
영화에서 화면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 부분이니까.
판타지의 다른 한쪽은 그렇게 허망했다.

- 191p
 

머.. 그런거지. ^^  

우리 돈 350원 정도에 해당하는 1주오티를 지불하고 빵을 하나 집어 들었다.
부엉빵 반 개만한 그 누룩 없는 빵에서는 소금 맛만 진하게 났다.
우울한 여정의 초입에서, 그것은 흡사 폴란드의 눈물을 맛보는 기분이었다.

- 225p
 

여행지에서 그 곳의 음식을 - 관광객들을 위해 정형화된 식당이 아닌 정말 주민들이 들어가서 식사를 하는 곳에서 - 먹다보면 이 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어떤 삶들을 살고 있는지 느껴질 때가 있다. 아주~ 드물지만 말이다.  

"이곳에서 느끼고 체험한 것을 세상에 알리는 게 우리의 도덕적 의무겠지요.
영원한 곳에서 우리의 기도가 여러분과 함께하길 기도합니다
." 
삶에는 살아야 할 때와 증언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했던 것은 알베르 카뮈였던가.
오슈비엥침을 방문하는 사람은 누구나 증언해야 하는 순간을 사명처럼 맞게 된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상념을 적어두려 필기구를 꺼냈지만 추위 때문에 글씨가 나오지 않았다.
오슈비엥침의 느낌은 수첩에 적는 게 아니라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 241p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 글로 표현하고 사진으로 남기고 싶으나 가끔 마음대로 돼지 않을 때 느끼는 한계란... 불행히도 어떤 방식으로던 표현해야 하는 사람으로써 미치기 직전까지도 간다. 애니웨이... 크라쿠프와 오슈비엥침을 다녀와야 할 것 같다. 내가 싸랑하는 베를린에서 가기 좋드만....  

슬픈 말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
입 밖으로 내뱉은 슬픔은 부메랑이 되어 더 큰 슬픔을 몰고 귀환한다.
요동치는 역사에서 안온한 현재로 돌아오는 길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 242p
 

...... 

소위 '선진국'이 아닌 나라에서 사람의 힘을 동력으로 삼는 탈것에 오를 때면
늘 관광객으로서의 신기함과 인간적인 미안함이 교차한다.

- 250p
 

그렇게해서라도 그들이 살아갈 수 있다면...... 

어느 보행자가 위험하게 길을 건너자 자전거 택시 운전사가 거칠게 욕설을 내뱉는 것을 보면서
"아니, 티베트에서도!"라며 놀라다가 그렇게 느끼는 스스로에 뒤이어 더 놀랐다.
도대체 티베트 사람들에 대해 나는 어떤 환상을 덧쒸워왔던 걸까.
티베트에 대해 느끼고 싶었던 것에 대해 티베트에 도착하기 오래전부터
이미 밑그림을 그려왔던 게 아닐까.

- 250p 

...머 이렇다면 전세게 가톨릭의 중심지인 이탈리아에 대해서는 어떤 환상을 가져야 할까? 교황께서 사시고 지나다니는 신부 수녀가 일상적인, 한블록 건너 하나씩 성당이 있는 그 곳에 대해서는...? 비교하지 말라고? ^^

여행지에 대한 환상은 이렇게 사람을 실망시키기도 하고 놀라키기도 한다. 간혹 정신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많은 일본인들이 빠리에 실망해 겪는 것처럼. 

고단한 육체를 기름진 영혼에 기꺼이 복속시키는 티베트에 왔기 때문일까.
관광객들이 차를 타고 쉽게 들어가는 뒤쪽 길 대신에
현지인들이 힘들게 올라가는 앞쪽 길을 택했다.
말 통하는 사람 하나 없는 상태에서 숨 쉴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만이
내 현존을 확인시키는 고행 같은 여행길에서,
몸이 아프자 오히려 더욱 스스로를 밀어붙이고 싶은 기이한 욕망이 솟았다.
어쩌면 이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몰랐다.

- 254p
 

까미노를 걷게 되면 이런 마음이 들까...?  

간신히 적응된 순간 나는 티베트를 떠나야 했다.
어쩌면 사람살이의 모든 일이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 262p
 

여행이 그렇지. 늘... 적응될만 하면 떠나고 만나고 헤어지고....

살짝은 실망하기도, 살짝은 가슴 저미기도, 살짝은 눈가를 뜨끈하게 만들던 책... 드라이 하면서도 어딘가 젖어있는 듯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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