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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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통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태도를 배울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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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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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물었다>는 완화의료 전문가인 저자 아나 아란치스가 죽음을 곁에 둔 환자들과, 그들을 돌보는 보호자들을 지켜보며 느낀 성찰을 다룬 책이다. 아나 아란치스는 20여 년이 넘도록 삶과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봐우며, 2013년에 오래도록 금기시돼왔던 '죽음'이라는 주제를 의료 전문가의 시선으로 풀어낸 TEDx 강연이 큰 호응을 얻으며 이름을 알렸다. 이 책은 누군가의 마지막 시간을 돌보는 의사로서 저자가 경험한 삶과 죽음의 모습, 그리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완화의료의 현실에 대해 객관적이면서도 다정한 시선으로 전한다.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아무도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 죽음의 순간을 통해, 저자는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독자들에게 다시금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처럼 사는 삶을 택하지만 모두가 살아 있는 상태도 죽을 권리를 갖고 있다." 저자는 오늘의 삶이 어떻게 죽음의 모습으로 투영되는지 알려주면서, 남은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기회를 선사한다.

"이 책이 독자 여러분과 나를 만나게 해주었으며, 나는 의사로서 날마다 일터에서 배운 것들, 그리고 치열하게 존재하는 다른 인간들을 돌보는 인간으로서 깨달은 것들을 독자들과 모두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처음부터 꼭 하고 싶은 말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 인생의 일부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지 않아도 그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삶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 존재하며, 단지 육체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으로, 행위로도 존재한다. 그리고 오로지 그 존재 안에서만 죽음은 끝이 아닐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죽음은 삶으로 이어지는 다리이다.

우리는 다수가 믿고 있는 '정상적인 것'을 뒤집어야만 한다."



저자는 임박한 죽음이 삶의 의미와의 만남을 앞당겨주기도 하지만, 그 만남을 체험할 시간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괴로움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저자는 완화의료는 헛된 치료의 중단 가능성을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환자의 신체적 고통, 진행되는 증상, 그리고 심각한 불치병을 통제하기 위한 공격적 치료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의료진이 제공하는 확대된 돌봄이라는 실체적 현실도 포함한다. 저자는 환자가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으면서 겪는 정신적 고통은 매우 극심하며, 죽음에 대한 인식은 삶이 지닌 의미를 찾고 싶게 만든다고 말한다.

"나는 늘 의학이 심리학이라는 복잡한 영역에 비하면 쉽고, 심지어 지나치게 단순하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신체 검진을 통해 환자의 거의 모든 장기들을 평가할 수 있다. 몇 가지 검사실 검사와 영상 검사만 있으면 환자의 생명 유지 과정이 얼마나 잘 기능하는지 매우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환자들을 아무리 관찰해도 그들이 어디에서 평화를 발견하는지, 얼마나 많은 죄책감이 혈관에서 콜레스테롤과 함께 흐르는지, 얼마나 큰 공포를 마음에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외로움과 방치로 마음이 병들어 있어도 알 수가 없다."

"나는 재앙이나 비상 상황에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병이 하루하루 진행되고 있는 환자들을 한 사람씩 관찰한다. 나는 노인의학 전문의이기에 환자들이 처음 노화의 여정에 들어설 때부터 돌봄을 시작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는데, 그건 엄청난 특권이다. 나는 유일한 방식으로 고통을 겪는 인간존재인 그들을 오랜 시간 지켜보며 돌봄에 필요한 준비를 갖추고, 늘 준비가 되어 있도록 노력한다. 지속적인 기술적, 과학적 배움과 인도적인 태도,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돌봄이 모두 완벽한 균형을 이루어야만 한다. 그러한 균형 없이는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없다."

저자는 사람들이 죽음에 가까워져 자신의 유한성에 대한 고통을 느끼면서 진실을 감지하는 진정한 안테나를 갖게 되는 것을 놀라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마치 신탁을 전하는 사람들 같다.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명쾌하게 안다. 자신의 본질에 직접적으로 닿게 되면서 주위 사람들의 본질을 보는 능력을 얻는다. 저자는 우리는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존엄을 존중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진정한 영웅은 죽음과의 만남을 피하려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심오한 지혜로 죽음을 인정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많은 이들이 완화의료가 안락사나 죽음의 촉진을 지지한다고 여기지만 그건 엄청난 착각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안락사를 제공하지 않으며, 제대로 된 완화의료 수련을 받은 의사라면 안락사를 권고하거나 실행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환자에게 신체적, 정서적, 가족적, 사회적, 영적 안락에서 오는 웰빙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 건강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과 조치를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사람들은 결국 살아온 대로 죽고,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했다면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가질 가망도 없다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모든 면에서 존엄과 의미와 가치를 지닌 삶을 살아왔다면 죽음을 생애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나는 죽음이 적당한 때에 찾아올 수 있다고 믿으며, 그것이 바로 자연스러운 죽음이다. 하지만 나는 이보다 큰 야심을 갖고 완화의료를 수행한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넘어 아름다운 죽음을 유도하고 보조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저자는 완화의료가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 그들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맗나다. 누군가가 고통받으며 죽어갈 때 그 사람 곁에 있는 이에게 요구되는 것은 공감이라고 불리는 재능이다. 저자는 공감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될 수 있는 기술로, 이는 완화의료를 하고자 하는 의료 전문가에게 가장 중요한 기술이 될 수 있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전문가가 완화의료를 제공할 수 없도록 만드는 가장 큰 위험요인이 되기도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맹목적 공감의 위험은 당신이 타인의 입장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자신이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지녔는지 모른다면, 타인의 입장이 되었다가 자신의 입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위험을 안게 된다고 말한다. 연민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꿔놓을 수 있게 해주며, 그래서 공감을 넘어서 환자에게는 고통을 이해해 주고, 의미 있는 무언가로 바꿀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공감은 위험을 지니고 있지만 연민은 그렇지 않다. 연민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오염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연민은 타인의 고통에 오염될 위험을 막아준다. 공감은 소진될 수 있지만 연민은 무궁무진하다. 공감은 이따금 맹목적이 되어 우리를 타인의 고통으로 인도하면서 스스로를 망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연민의 경우 타인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저자는 우리 문화에는 성숙함과 진실성,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말한다. 시간은 다해가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깨닫지 못한다. 저자는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보며 날이 저물기를 기다린다면 실상 그것은 시간이 더 빨리 가도록, 그리하여 죽음이 더 빨리 찾아오도록 재촉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가 그 속도를 높이고 싶어 하든 낮추고 싶어 하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한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는 시간이 가로놓여 있다. 삶은 우리가 그 시간 동안 행하는 것이며, 우리의 체험이다. 날이 저물기를, 주말을, 휴일을, 은퇴를 기다리며 삶을 보낸다면 죽음의 날이 더 빨리 오기를 열망하는 것이다. 진정한 삶은 일이 끝난 후에 시작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을 사는 것'은 특정 순간이나 삶의 즐거움에 맞추어 켜고 끌 수 있는 스위치가 아니다. 즐겁든 그렇지 못하든 우리는 100퍼센트의 시간을 산다. 시간은 일정한 속도로 지나간다. 삶을 날마다 일어나는데, 사람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저자는 존재적 좀비와 같은 인간들을 비판한다. 폭력과 편견을 공유하고 고집하는 사회 안에서 내면의 불행을 외면한 채 어리석게도 외적 행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죽음을 앞당기는 것이다. 저자는 그들 모두는 벌거벗은 채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 어리석은 존재들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사회에 최악의 모습을 노출시키면서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에서 부재하며, 아마도 그것이 죽음의 순간에 스스로 가장 후회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문제는 우리가 자신의 삶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환상을 품고 무책임하게 살아간다. 진실함이나 선함, 아름다움을 위해 헌신하지 않고 자신의 본질과 동떨어진 삶을 산다. 죽음에 대해 말하거나 생각하기를 피하는 사람들은 가구 없는 방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과 같다. 그들은 손으로 자기 눈을 가리고는 아무도 자신을 보지 못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순진하게도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죽음을 보지 않으면, 죽음도 나를 보지 않을 거야. 내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사람들은 삶 자체에 대해서도 그런 잔꾀를 부린다. 그들은 쓰레기 같은 관계, 쓰레기 같은 직업, 쓰레기 같은 삶을 기어코 유지하면서 자신만 속이면 아무 문제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쓰레기는 실체를 드러낸다. 악취를 풍기고, 불편을 초래하고, 병을 유발한다."

"자신의 삶에서의 부재는 변명이 불가능하다. 자신과 타인, 자연, 주위 세상, 그리고 각자가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존재의 상태여야 한다. 자신의 삶에서 살아 있지 않은 사람들과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여지가 없다. 잠시 환기하자면, 나는 진짜 죽은 자와의 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시체, 죽음에 대해 용감하게 생각해보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 이미 인간성의 모든 면에서 스스로를 매장하고 목적 없이 떠도는 존재적 좀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건 육체적인 죽음뿐이다."

저자는 평생 일에만 매어 살게 되면 죽음을 앞두고 후회로 남는다고 말한다. 사람들을 인생을 성취의 집함체로 생각하고, 그들에게 삶은 소유를 의미한다. 소유하고 축적하기 위해 미친 듯 일하며, 물질적인 것들만 모으는 게 아니라 상처와 위기까지 모은다. 그리하여 문제들을 포함한 많은 것들을 소유한다. 저자는 일에서 얻는 에어지도 삶에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면 나쁜 에너지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삶에서 얻어낸 것들을 온전히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잃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모든 존재적 상실, 그것이 하나의 관계든, 직업이든, 확신이든 모든 상징적 죽음에는 최소한 다음 세 가지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첫째, 자신과 타인에 대한 용서가 필요하고, 둘째, 그 상황에서 발생하는 좋은 점도 간과해선 안 되며, 셋째, 이제 끝나버린 그 시간에 당신이 의미 있는 영향을 미쳤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저자는 상실의 수용은 계속되는 삶에서 필수적인 기능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애도자에게 고인이 의미로 충만한 삶을 남기고 떠났음을 깨닫게 해준다고 말한다. 고인에게 배운 것들, 고인과 나눈 추억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저자는 애도자는 추억과 감정들까지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것은 죽지만 오직 사랑만이 우리 안에서 불멸의 가치를 지닌다는 저자의 글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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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프다고 생각했습니다 - 현대 의학이 놓친 마음의 증상을 읽어낸 정신과 의사 이야기
앨러스테어 샌트하우스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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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의학이 놓친 마음의 증상을 들여다보는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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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프다고 생각했습니다 - 현대 의학이 놓친 마음의 증상을 읽어낸 정신과 의사 이야기
앨러스테어 샌트하우스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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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고, 의사가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고 진단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만성피로증후군, 신경성 두통, 불쑥 찾아오는 어지럼증, 매일 끊이지 않는 흉통 등 현대 의학으로도 그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는 증상들이 있다. 이로 인해 환자의 불편한 심리 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몸에 나타나는 고통도 심화된다.

<몸이 아프다고 생각했습니다>는 런던 종합병원의 정신과 의사로 20년 넘게 환자들을 치료한 앨러스테어 샌트하우스가 원인 불명의 증상으로 고통 받는, 현대 의학의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의 마음의 증상을 읽어낸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다. 저자는 이 책에서 환자들의 마음속에 숨은 아픔을 치료하는 과정을 통해 마음의 고통이 어떻게 몸으로 이어지는지, 무엇이 그 고통을 더욱 깊게 하는지,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의학적인 시선으로 예리하게 살핀다. 우리의 성격과 정신 건강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지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게 도와주는 이 책은 현대 의학의 기계적 진료에 지친 사람들에게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이야깃거리를 던진다.



저자는 의학계는 자꾸 질병의 과학적 측면에만 집중하고 질병의 사회적 증상을 외면하거나 치료를 거부하지, 병에서 낫기 위해 생활 방식을 바꿀지, 가족의 지지를 받을지, 우울증에 걸려 자살할지, 그 자신도 몰랐던 회복력을 발견하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질병의 과학적 측면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환자가 얼마나 잘 치료될지 알아내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의료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불필요한 검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검사 결과 특별한 문제가 나타나지 않으면 증상이 환자의 상상으로 치부되기 쉽다고 이야기한다. 때로는 혈액 검사나 정밀 검사에서 원래 조사하려는 증상과 전혀 상관없는 소위 '부수적 발견'이 발생하고, 그러면 다시 과잉 검사와 과잉 치료가 이어진다.

저자는 전문화로 관점이 편협해지면서 의학계는 많은 지혜를 상실했다고 말한다. 의료 행위가 협소하고 기술적으로 변하면서, 환자의 성격이나 정신 건강처럼 외적 증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타 요인들을 고려하지 못하게 되었다. 바로 이 때문에 의학에 대한 기술적 접근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질병과 무관한 증상을 겪는 환자들은 결국 여러 차례 검사를 받고서도 병인을 알아내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의사가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실패해서다. 그들에게 왜 이런저런 증상이 나타나는지, 그들이 왜 의사를 만나러 오는지, 사람들이 의료진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건강이란 복잡한 문제이며, 의사가 환자를 효과적으로 치료하려면 인체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불확실성을 인지해야 한다. 유연해지고 모호함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인체는 무수한 방식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지만, 인생과 경험과 성격과 정신 건강이 신체 건강과 상화작용하여 나타날 수 있는 증상 또한 무수히 많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신체를 기계로 보는 모델이 유지되는 것은 위험을 회피하려는 의학계이 문화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위험 회피란 무엇보다도 의사가 과잉 검사의 해로움보다 오진을 더 두려워한다는 의미다. 저자는 오진은 의료 과시이라는 악몽을 환기하는 반면, 과잉 검사는 소심하게 보일지언정 성실한 의료 수행으로 여겨진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수년간 만나온 수많은 환자들이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당혹스러운, 그리고 그들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 병 앞에서 보여준 존엄 때문이 정신과 의사라는 일을 계속 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단 한번도 그들의 증상이나 심각한 고통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이 진료소에 오는 것은 자신의 병에 관한 관념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낫기 위해서다.

저자는 사람은 죽고 싶은 동시에 살고 싶을 수 있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우연한 사건 하나로 자살 직전에 생각을 바꾸거나 오히려 죽겠다는 결심을 굳히기도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람들은 대체로 죽기보다 살기를 원하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고 싶어 한다고 이야기한다. 현재의 삶에서 겪는 감정적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이다. 자살을 기도하는 것은 그러면 뭔가 달라질 거라는, 단 한 번의 도약만으로 마음속 번뇌에서 풀려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이다. 그래서 자살 기도를 흔히 '구조 신호'라고 말하기도 한다.

저자는 심리적 문제의 이해가 비만 치료의 핵심이며, 때로는 의사가 문제 인식에 직접 개입해야 할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폭식과 비만을 유발하는 원인은 대중의 일반적인 인식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하다. 심리적 요인은 애초에 비만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르는 패배감과 절망감을 부채질한다. 저자는 심리적 요인을 이해하지 않고 어떻게 그것이 반영된 신체 질환을 이해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 어떻게 그 문제를 치유하려고 시도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체중으로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무엇보다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먼저 살피는 지혜로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애도와 같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인간적인 경험도 어느새 병이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환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도 점점 늘고 있는 자페스펙트럼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진단의 종류는 계속 늘어나는 중이며, 질환의 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정상임에도 질환으로 진단받을 수 있는 감정이나 증상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증상과 감정에 진단이 내려지게 되면, 사람들의 자립심이 줄어들고 개인의 건강과 행동에 대한 책임이 외부로 돌려진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런 현상에 기꺼이 가담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정상' 범위에 있을 때도 그 행동을 설명하고 합리화해줄 진단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듯하다. 이런 경우 의료 진단은 정말로 해로울 수 있다. 이런 식의 진단은 사람들을 쓸데없이 의사와 접촉하게 하고 불필요한 의학적 간섭의 수동적인 수용자로 만든다. 환자는 자신에게 나타난 어떤 증상도 자기 잘못은 아니라고 느낀다. 이것은 매우 불건전한 상황이다. 의학계가 모든 감정을 진단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개인의 욕구를 부추기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대중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뿐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어느 쪽이든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저자는 인위장애는 의료 분야의 방대한 회식지대라고 말한다. 저자는 인위장애 환자는 자신의 증상이 의도적으로 꾸며낸 것임을 알지만, 자신이 아픈 척하는 이유를 분명히 아는 꾀병 환자와는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꾀병 환자는 질병 수당이나 보험 사기처럼 확실한 이익을 얻어내려는 것이며 그 자신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인위장애 환자도 증상을 가짜로 꾸며내긴 하지만 꾀병 환자와 달리 그들의 동기는 의사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수수께끼다. 저잔ㄴ 이는 대체로 '병자 역할'을 하고 싶다는 욕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의사는 의학이 과학이라고 믿는다. 환자가 병원에 찾아오는 건 의사가 병리학과 망가진 신체 부위, 질병의 숨겨진 원인을 밝혀내어 치료해주기를 원해서라고 생각한다. 의사는 의학이 병에 냉정하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임을 철석같이 믿는다.

그러다 보니 환자가 의사를 찾아오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으며 그중 상당수가 건강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잊게 되었다. 환자인 척 하는 사람들 중에는 회복엔 전혀 관심이 없는 경우도 많다. 회복이란 증상이 사라진다는 것인데, 그들이 의료진을 찾아올 수 있는 건 바로 증상이 있기 때문이니까. 사실 그들은 자상한 의료진의 품속에 머물기를 원하며 그런 상태를 목표로 삼는다. 그들을 회복시키려면 증상을 몇 번씩 검사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적 고통을 인식하고 치유해야 한다. 인위장애가 의사들에게 잘 인식되지 않는 사실이야말로 그들이 교육 과정에서 어떻게 생각하도록 훈련받고 있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여성 거식증 환자들이 공유하며 사회 전반의 관점을 반영하는 중요한 가치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바로 마른 것이 미덕이라는 문화의 신념이다. 저자는 애초에 마른 것이 아름다움이고 활력이며 성적 매력이자 성공이라는 괴이한 신념이 없었다면 거식증이라는 병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이상적 체형' 혹은 '완벽한 몸매를 신봉해왔다. 일반 대중이 굶주렸던 먼 옛날에 과체중은 부와 번영의 상징이었지만, 대량 생산 가공식품과 저렴한 고칼로리 패스트푸드가 넘쳐나는 현대에는 날씬하고 미끈한 몸이야말로 부와 성공을 상징하게 되었다. 저자는 사회에서 주입된 미의 잣대가 거식증 환자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몸을 해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칼 로저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과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한다. 어떤 성취를 거두었는지, 얼마나 가치 있는 인물로 평가되는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로저스는 이를 '무조건적 긍적적 관심'이라고 불렀으며, 의사나 심리 치료사는 어떤 상황에서든 마음을 열고 내담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칼 로서스의 주장에 가장 공감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누구나 본질적으로 존중받고 인정받길 바라며, 자신이 직업이나 옷차림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중요한 존재임을 느끼기를 원한다.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외모, 차, 머리카락, 돈 같은 피상적 조건들로 평가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정신과 진료소에 오면 그 결과를 뚜렷이 목도하게 된다. 불안하고 불행한 사람들,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끼며 내면의 불안을 외모에 투사하는 이들 말이다. 그들 상당수는 자신의 '결함'을 바로잡기 위해 이런저런 병원을 찾아다닌다. 외모를 고민하는 환자들이 성형외과, 피부과, 정신과 중 어디를 찾든 간에, 그들이 외모를 개선하려고 의료에서 도움을 구한다는 것 자체가 이 사회의 근본적 문제를 보여준다."

저자는 우울증 환자는 통증을 포함한 신체 증상을 비환자보다 더 많이 경험한다고 말한다. 우울증에서 신체 증상은 예외적이라기보다 보편적이다. 인생에 대한 동기 부여나 추진력, 열정이 결핍된 우울증 환자는 본인이 느끼는 통증을 너무 깊이 염려한 나머지 필연적으로 통증이 악화되기 쉽다. 저자는 우울하고 낙담하고 기죽은 사람에게는 통증이 더욱 성가시고 골치 아프게 느껴지기 마련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현상은 역방향으로도 일어난다. 지속적인 통증의 경험은 사기를 떨으뜨리고 우울증을 악화시키며, 그리하여 통증은 점점 더 심해지고 우울증과 고통의 악순환도 계속된다.

저자는 병원에서 임종에 관해 대화하는 일은 드물려,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해 사실상 거의 모든 의료 전문가가 살날이 얼마 안 남은 환자를 상대로 삶과 죽음이라는 중대사를 이야기하길 꺼린다고 말한다. 그런 상태의 환자에게는 무척 중요한 일일데도 말이다. 의료인들은 자기에겐 환자의 질문에 답할 요령도 시간도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의료인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되어서 불편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의료진은 이런 문제보다 기술적 의료 서비스에 집중하는 편이 쉽다고 여기는 듯하다고 이야기한다. 누군가의 두려움을 달래주는 것보다는 치료 절차에 집중하는 것이 편안하고 익숙하여 훨씬 용이라기 때문이다. 저자는 점점 더 기술 관료화되는 의료 체계 속에서 일하는 그들에게 환자의 죽음은 생애 주기의 일부가 아니라 의료의 실패로 여겨져, 죽음은 피해야 할 주제라고 말한다.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주로 비인간적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 살아 있는데도 더 이상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생각만 해도 참혹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주 작은 배려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내 생각에는 환자가 마실 음료를 내밀어주거나, 그들이 읽는 책을 놓고 유쾌한 토론을 하거나,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묻거나, 침대 옆 탁자에 놓인 가족사진을 주제로 대화하는 일이 그 어떤 처방약보다도 유익하다. 이처럼 사소한 행동이 환자의 자기 인식을 변화시키고 인생 막바지의 분위기와 기분을 바꿔놓을 수 있다."

저자는 진정한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눈앞의 환자를 탐구하려는 자세는 습득하기 어렵지만, 이런 자세 없이는 그 어떤 의사도 뛰어난 임상의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환자의 삶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증상의 의미나 환자가 그 증상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환자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모르면 그가 약을 먹지 않으려거나 의사가 권한 치료를 받지 않으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이 책에서 증상을 느끼고 지역병원에 찾아가는 사람들 상당수는 증상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개인의 정신 건강과 성격이 평생에 걸쳐 증상의 경험 뿐만 아니라 신체 질환의 경과를 좌우한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의사는 의학의 예술적 측면과 과학적 측면을 결합시켜 한층 더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사람들이 마음 속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게 도와야 하며, 무엇보다도 몸과 마음의 상호 작용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수많은 환자와의 만남을 통해 깨달았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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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진리가 당신에게 닿기를 - 전 세계를 울린 영혼의 치유자가 전하는 다섯 가지 삶의 지혜
돈 미겔 루이스.돈 호세 루이스.재닛 밀스 지음, 노윤기 옮김 / 페이지2(page2)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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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치를 꿰뚫는 진리를 만나볼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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