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된 고통 - 현대 의학의 그릇에 담기지 않는 고유하고 다양한 아픈 몸들의 인류학
이기병 지음 / 아몬드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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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 의사 이기병은 공중보건의 시절, 3년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하 외노의원)에서 근무했다. 전문의 수련을 막 마치고 나온 의사로서 그는 그곳에서 다양하고 고유한 아픈 몸들을 만나며 언어의 장벽, 문화의 장벽을 실감한다. 그때의 그 고단함과 좌충우돌했던 분투를 그저 '미숙'의 결과로만 생각하기엔 갑갑함이 남아 있었다. 무언가 더 나은 진료와 돌봄을 제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고민을 안고 있던 그는 마침내, 인류학이라는 새로운 길을 만난다.

<연결된 고통>은 현직 내과 전문의이자 의료인류학 연구자 이기병이 외노의원에서 만났던 환자들과 씨름하며 겪었던 희로애락을 담은 책이다. 건강과 불건강, 몸과 마음, 삶과 죽음, 나와 너로 구분되는 이분법의 시대에 이 책은 의학이라는 단일의 카테고리에 포섭될 수 없는 아픈 몸들을 인류학적 시각에서 해석하고 복원한다. 외노의원이 이제 폐원(2004-2007)하여 역사로만 남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외노의원과 그곳에 다녀간 이국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최초의, 유일한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1장 갑상선 호르몽의 진실 : 재현의 목적은 본질의 장악에 있다, 2장 술과 심부전 : 돌아올 수 없는 강은 한 번에 건너는 것이 아니다, 3장 어느 HIV 청년과 약혼자 : 낙인이 치료에 미치는 영향, 4장 옴과 헤테로토피아 : 그들에게 쉼터는 장소 바깥에 있는 장소였다, 5장 요통, 변비 그리고 실신 : 좋은 의료란 무엇인가, 6장 질병이나 죽음은 형벌인까 :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유일한 진실, 고통에 관하여, 7장 고통의 이분법 : 몸과 마음 사이의 간극과 관계에 대하여'라는 7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외노의원에서 만났던 50대 초반의 몽골계 중국인 환자와의 기억을 소환하며, 자신이 진료실에서 간과했던 환자의 이야기에 대해 고백한다. 저자는 과거 어머니와 환자의 오랜 유대 속에서 형성된 질환 서사 중에서도 고되고 힘든 기억으로 점철된 그 몸의 감각이 결국 환자를 구했고, 이제 그것은 그 자신의 이야기가 되었다고 전한다. 뿐만 아니라 의학이 환자의 질환 서사를 제외한 채 깔끔하게 통제되고 압축된 정보로 재단된 몸만을 다룬하면 그것은 인간의 삶 전체에서 상당한 부분을 스스로 소외시키는 것이며, 그것은 의학의 무능을 스스로 입증하는 셈이라고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이밖에도 저자는 환자가 몸의 증상이나 감정을 통해 무엇인가를 고통스럽게 재현해내고 있다면, 그것이 그 고통의 본질을 관통하고자 하는 몸의 의도가 아닌지를, 또 그 의도를 둘러싼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이 치료자가 제일 먼저 할 일이라고 말한다. 질환 서사는 현대 의학의 거대한 패러다임과 코드화된 카테고리 속에 갇혀버린 몸의 목소리를 환자에게 되돌려주는 '재현'과 같다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진단 및 치료의 알고리즘은 의학이 발전할수록 점점 더 세분화되고 복잡해졌다. 물론 알고리즘이 정교할수록 진단 및 치료의 정확도가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확도나 속도, 효과와 효율이 강조될수록 인간의 삶이 '질병 코드'로 암호화되면서 고통이나 증상을 통해 아픈 몸이 말하고자 했던 목소리가 검열, 절삭되어 결국 일개 디지털 부호로 납작해진다는 사실은 은폐된다. 이렇게 현대 의학의 그릇에 다 담기지 않는 아픈 몸의 이야기, 즉 질환 서사 속에는 가난, 노동, 성차별, 구조적 폭력이나 사회적 고통 등의 문제가 거의 언제나 상존한다."

"질환을 가진 삶은 분명 고통스러운 면이 있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게 되는 가족도 마찬가지로 고통을 겪는다. 환자는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누리던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며 결코 원하지 않던 무엇인가를 떠안는다. 그러나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그 교환의 관계가 지속되며 그는 질병이나 아픔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어쩌면 이런 방식이 삶에 주어진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또 그것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외노의원에서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심부전이라는 질환을 앓고 있는 네팔인 남성의 이야기를 전한다. 저자는 '외국인노동자'인 네팔 남성에게 주어진 진단명인 '알코올중독'을 듣는 순간, 모종의 경계와 위협, 나태한 일상, 사회적 비용이나 잠재적 폭력 등을 상상했다면 의료화된 질병에 붙여진 은유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한다. 저자는 그것이 그를 집단 치료인 알코올 자조 모임에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든 보이지 않은 배제의 힘이고, 동시에 그를 해고한 고용주가 느꼈을 불안의 명확치 않은 근원이며, 그가 의학적 위기의 순간에도 입원 치료를 선택하지 못하게 만드는 고용 불안의 동력이자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더더욱 고립된 그가 금단 증상과 불안, 고통 속에서 음주의 유혹에 다시 굴복하게 만드는 최후의 타격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힘든 인생 여정에서 벗어나 가까스로 안식의 길에 접더든 그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혼자서 한 번에 건넌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은 그 누구도 섬이 아니기 때문에 혼자서만 감당해야 하는 선택이란 사실상 허구이며, 다른 환경이었다면, 그 어떤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면, 조건이 달랐다면 당연히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의료화는 일상을 건강과 불건강의 의료적 언어로 재편하는 사회, 문화적 제도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코드화된 질병과, 개별 사회의 고유한 문화 속에서 형성된 상징과 은유가 유착된다. '의료화' 시대에는 서로 밀착되어 있는 '은유'와 '질병'을 서로에게서 떼어내는 작업이 한층 더 어렵고 요원해진다. 예전에는 단순히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을 의미했을 '과체중'이 건강에 유의해야할 잠재적 지표 정도로써의 의미를 넘어 운동 부족, 게으름, 자기 관리 실패 등의 은유와 유착되며 운동이나 식단으로 치료해야 할 질병이 되어 버린 것이 비근한 예다."

"그의 알코올중독, 그리고 그를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을 심부전을 일으킨 '선택'은 오롯이 그의 몫이었을가. 그가 외국인 이주 노동자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가족에게조차 힘들다는 말을 제대로 못하도록 만든 성장 배경은 그의 잘못이 아니지 않는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삶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네팔인 직장 동료들과의 민족적 알력과 수적 열세, 하급 카스트가 만드는 보이지 않는 차별과 구조적 고통은 과연 그에게 어떤 '책임'을 요구할 수 있을까."

저자는 외국인노동자 쉼터에서 옴이 퍼져나간 사건 후 쉼터에 남고자 하려는 조선족 동포들의 이야기를 건넨다. 저자는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가 그의 책 <비장소>에서 정체성과 관련되지 않고 관계적이지도 않으며 역사적인 것으로 정의될 수 없는 공간을 "비장소"라고 일컬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미셸 푸코가 장소에 관한 기존의 논의가 '안'의 장소성에만 집중해온 것과 다르게 '바깥'에도 장소성을 부여하면서 안과 밖을 아우르는 새롭고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관계'에 주목했고, 그 다양한 배치를 일으키는 안과 밖의 관계들 중 특수한 몇 가지 장소 유형 중 하나인 '헤테로토피'에 관해 이야기한 내용을 소개한다. '헤테로토피아'라고 호명한 공간은 "실제로 위치를 한정할 수 있지만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장소"다. 저자는 그들에게 쉼터는 '다른 장소 밖에 존재하는 장소', 즉 헤테로포피아라고 말한다.

"나는 쉼터에 남고자 결정했던 일곱 명의 조선족 동포들이 쉼터에서 일종의 '헤테로토피아'를 경험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물리적으로 대한민국 서울의 가리봉동 이주 노동자 쉼터와 중국 연길의 서시상 노점은 같은 시공간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겪은 20분간의 이질감은 그것이 마법처럼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전통적인 시간은 대한민국 이주 노동자의 현실에서 흐른다. 그들은 이주 노동자로서 차가운 일터이자 때로는 적대적이고 이질적인 외부 환경인 대한민국에서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의 쉼터에서는 시간이 바깥과는 전혀 다르게 작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기억을 공유하며 함께 울고 웃으며, 쉼터에 처음 입소할 때 교육받은 규율과 부자유의 초기 외압을 극복한 뒤에는 더 이상 적응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시공간은 외부와의 일시적 단절을 통해 기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쉼터는 주변의 다른 '장소'들로부터 '비장소'로 고립되어 있기도 하고 옴이 유행하면서 감염 지역으로 한 번 더 고립되었다. 그러면서도 그 고강은 폐쇄의 위협 속에서도 입소하거나 체류하고자 하는 구성원들에 의해 열림의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쉼터는 다른 장소 안으로 포섭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장소로써 저 바깥에 있지 않다."

"나는 푸코가 말한 대로 헤테로토피아가 쉼터가 나머지 모든 장소들에 제기하는 '이의'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장소는 안과 밖을, 성원권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를 나누는 개념이다. 쉼터는 기존의 장소 개념에 이렇게 도전한다.

곡 나눠야 하는 것이냐고. 같이 들어가 함께 둘러앉으면 안 되는 것이냐고.

우리는 장소로 나타나는 성원권을 통해 '환대'를 선택할 수도, 그 반대편을 선택할 수도 있다. 헤테로토피아로써 쉼터는 우리에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울러 낯선 이들을 '낯설지 않게' 보고자 함께 둘러앉다 보면 우리에게 익숙했던 장소와 그 경계가 오히려 다소 '낯설게' 보이는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개닫지 못했던 사이 우리의 공간에 침투해 있는 '헤테로토피아'를 불현듯 마주하게 되는 그런 신비한 경험의 순간들 말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40대 후반의 태국인 중년 남성이 요통과 변비, 그리고 실신을 경험했던 이야기를 독자에게 건네어 눈길을 끈다. 저자는 파편화된 질병의 단면이 아니라 다중적인 욕구와 고통을 지닌 환자 그 자체를 '돌보려고' 하는 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좋은 의료란 결국 다름 아님 '돌봄'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오늘날 환자들이 자본과 결합한 의료 시장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 의료를 누리고 살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선택이 신중하게 조율된 전문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환자와의 교감이나 심층적인 이해 없이 파편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혜택이 아니라 재앙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심장병은 달리 바꿀 수 없는 생물학적인 요인이라고 해도 실신과 급사의 위험을 증가시킨 요소는 다분히 사회, 문화적인 것이다. 그의 변비는 타국으로 이주해 그동안 먹은 적 없던 그 나라의 음식을 먹어야만 하는 데서 기인했다. 그가 발살바 기법을 자주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외국인노동자로서 무거운 이삿짐을 나르다 허리를 다쳤기 때문이었다. 소변을 참기 위한 탈수가 자주 일어나는 직업적 고초를 포함해서 그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 하나하나 수집하듯 위험 요소를 자신의 삶에 배치하는 행위를 하게 되었던 셈이다."

"지속가능한 돌봄 의료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사이에 신뢰가 전제되어야 하고, 동시에 보건 의료 정책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 사회 전반에서 돌봄을 주제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하고 신체와 질병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저자는 우리 삶과 질병을 재단해온 '이분법'이 고통을 줄이는지 아니면 되레 부추기는지는 끈질기게 응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고통은 겹겹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몸과 마음, 삶과 죽음, 자아와 타자, 개인과 사회의 고통이 모두 그러하다고 이야기한다. 누군가에 의해 함부로 재단되어 목소리를 잃은 고통이 언젠가 나와 당신의 것일 수 있다는 저자의 글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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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블레이크, 마음을 말하면 세상이 나에게 온다 - 윌리엄 블레이크 시와 아포리즘 마음으로 읽는 클래식 시리즈 1
윌리엄 블레이크 지음, 김천봉 편역 / 아이콤마(주)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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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블레이크의 다양한 시를 만나볼 수 있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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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블레이크, 마음을 말하면 세상이 나에게 온다 - 윌리엄 블레이크 시와 아포리즘 마음으로 읽는 클래식 시리즈 1
윌리엄 블레이크 지음, 김천봉 편역 / 아이콤마(주)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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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블레이크, 마음을 말하면 세상이 나에게 온다>는 영국 최고의 시인 중 하나로 꼽히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대표적인 저작과 습작 시들을 엄선한 후 충실하게 옮긴 작품집이다. 아쉽게도 그의 시와 사상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어도 어려운 해석과 더불어 문학 작품, 성경 구절 등의 배경지식을 요구하는 탓에 접근이 어려웠다면 이 책은 원전을 바탕으로 더 직관적인 구성으로 새롭게 편집했고, 원문에 가장 충실한 번역과 상세한 해설을 덧붙였다. 이 책은 오랜 세월 전 세계 독자들과 호흡하며 위대한 예술가, 사업가, 과학자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불어넣어 준 그의 핵심 철학들을 시를 통해 오롯이 즐기고 오래도록 소장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선택이 될 것이다.



영국의 시인, 화가이자 판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런던의 소호에서 양말을 파는 가난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겨우 읽고 쓰는 법을 터득한 블레이크는 어려서부터 환영을 보고 미래를 예언하는 비상한 아이로, 열 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즈음부터 미술 공부를 시작한 블레이크는 열네 살에 한 판화가의 도제로 들어가 7년간의 수련 끝에 전문 판화가로 성장하였고, 스물한 살에 왕립미술원에 입학하여 미켈란젤로나 라파엘 풍의 고전적인 정밀성을 추구하며 그만의 독특하고 환상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결혼 후에 블레이크는 도제 생활을 함께했던 동료와 판화 가게를 열었으나 얼마 못 가서 실패하고, 그 후부터 다른 저자들의 책이나 잡지의 삽화를 제작하며 궁핍하게 살았다. 이 시기에 블레이크가 제작한 밀턴의 <실낙원>, 성서의 <욥기>, 단테의 <신곡>(미완성) 삽화들은 섬세하고 우아한 선과 장식, 특유의 환상성과 장식성이 돋보인다. 블레이크 자신이 쓴 <순수의 노래>, <천국과 지옥의 결혼>, <순수와 경험의 노래>, <밀턴>, <예루살렘> 등의 시화집 역시 대부분 동판에 글자와 그림을 하나하나 새겨 넣고 채색한 판들을 번갈아 가며 여러 번 겹쳐 찍는 방식으로 제작한 매우 진귀한 예술품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억제와 질서가 미덕으로 여겨졌던 이성의 시대였던 만큼, 독특한 상상의 세계를 자유분방하게 표현했던 블레이크의 그림과 시는 당대에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훗날 19세기 후반의 라파엘전파 화가들과 시인들이 블레이크의 천재성에 처음으로 주목하고, 20세기 비평가들이 그의 시를 재평가하면서, 윌리엄 블레이크는 초기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화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 책에서 윌리엄 블레이크의 '웃는 노래'라는 제목의 시가 인상적이다. 자연을 인간처럼 감정을 지닌 존재로 표현하며, 태초의 자연과 어우러진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노래하는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가 돋보인다.

"푸른 숲이 기쁜 목소리로 웃고

잔물결 이는 냇물이 웃으며 흘러갈 때

하늘이 우리의 명랑한 재치에 웃고

푸른 언덕이 저만의 소시로 웃을 때

초원이 싱그러운 녹색으로 웃음 짓고

여치가 그 즐거운 정경에서 웃을 때

메리와 수잔과 에밀리가

예쁜 둥근 입슬로 하, 하, 히 노래할 때!"

이 책에서 윌리엄 블레이크의 '순수의 전조'라는 제목의 시가 눈길을 끈다. "모래 한 말에서 세상을 보고 / 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보려면, / 그대의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 / 한 시간 속에 영원을 담아라./"는 시구를 시작으로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는 시어들이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기쁨과 슬픔은 섬세하게 짜여있는 / 신성한 영혼의 옷과 같다. / 모든 고통과 갈망 속에 / 기쁨이 비단처럼 누벼져 있다."라는 시구는 인간의 순수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어 깊은여운을 전한다.

"작은 굴뚝새에게 상처를 주는 자는

절대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다.

황소를 흥분시켜 성나게 만든 자는

절대로 여자의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다.

파리를 죽이는 개구쟁이 소년은

거미의 적개심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풍뎅이의 영혼을 괴롭히는 자는

끝없는 밤에 은신처를 짓는다."

이 책에서 순수한 자연과 목가적인 조화로움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적 세계관이 잘 표현되어 있으면서도 일견 취약한 상태에 놓이기 쉬운 현실의 위험성을 미묘하게 드러내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가 인상적이다. 특히 '어린 흑인 소년'이라는 제목의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는 검은 피부를 지닌 어린 흑인 소년의 이야기를 표현하여 눈길을 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그리고 우리는 대지에 잠시 머룰 뿐이기에 / 그 사랑의 광선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단다. / 그러면 이 까만 몸과 이 볕에-탄 얼굴도 / 구름 같고, 그늘진 숲 같은 것에 부로가하단다."라는 시구로 어린 흑인 소년에게 엄마의 말을 건네는 글이 섬세하게 독자의 감정을 건드린다.

"우리 엄마가 남쪽의 야생에서 나를 낳았어.

그래서 난 까매. 하지만 오, 나의 영혼은 하얘.

영국 아이는 천사처럼 하얗지

하지만 나는 마치 빛을 잃어버린 듯이 까맣지.

우리 엄마가 나무 아래서 나를 가르쳤어.

한낮의 무더위를 앞에 두고 앉아

엄마가 나를 자기 무릎에 앉히고 나에게 키스했지

그리고 동쪽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어.

"떠오르는 해를 보렴. 저곳에서 하나님이 살면서

그분의 빛을 주시고, 그분의 열기를 보내주신단다.

그래서 꽃과 나무와 짐승들과 사람들이

아침에 위로받고 한낮에 기쁨을 누린단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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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하는 나날들 - 조현병에 맞서 마음의 현을 맞추는 어느 소설가의 기록
에즈메이 웨이준 왕 지음, 이유진 옮김 / 북트리거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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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이라는 질환에 대한 개인의 내밀한 서사와 삶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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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하는 나날들 - 조현병에 맞서 마음의 현을 맞추는 어느 소설가의 기록
에즈메이 웨이준 왕 지음, 이유진 옮김 / 북트리거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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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하는 나날들>은 한 소설가가 조현병이라는 파멸적인 정신질환으로 고군분투하는 세계로 친절히 이끄는 책이다. '타임', 'NPR', '시카고 트리뷴' 등 20여 개 주요 매체에서 2019냔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조율하는 나날들>은 정신질환으로 아스러진 일상의 조각들을 그러모아 꿰매고 엮은 나날들을 이야기한다. 저자 에즈메이 웨이준 왕은 예일대에 입학했으나 정신병동에 입원했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한다. 이후 스탠퍼드대를 들어가 졸업 후 스탠퍼드대 뇌 영상 연구원으로 일했고, 2016년에는 <천국의 국경>으로 소설가로 데뷔해 문학잡지 '그랜타'에서 선정한 '40세 미만 미국 최고의 젊은 소설가 21인'에 뽑혔다.

이 책에는 양극성장애를 진단받고 8년 만에 조현정동장애라는 새로운 진단을 받기까지의 여정, 정신질환자로서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에 대한 서글픈 고뇌, 병에 따라 계급이 결정되는 정신병동의 현실 등 정신질환이 저자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생생한 고통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또한 개인적 서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정신질환자에 대한 비자발적 치료 논쟁, 조현병과 범죄 사건, 정신질환을 겪는 학생을 위한 대학 시스템 부재, 정신의학의 바이블 DSM에 따른 진단과 그 한계 등 정신질환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이슈와 지식을 본인이 직접 경험한 맥락에서 부드럽게 녹여 내고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숱하게 배제되고 소외된 정신질환자의 목소리를 크고 또렷하게 들려줌으로써 정신지로한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 준다. 내면의 고통이나 삶의 장애물로 신음하는 사람들이라면 정신질환에 맞서는 저자의 단단하고 의연한 태도를 목격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고 포용하는 법을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처음 환각을 경험하고 머리가 이상해졌다는 의심을 한 지 8년 만에 공식적으로 조현정동장애 양극형 진단을 받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2001년에 양극성장애 진단을 받았고, 20대 초반이던 2005년에 처음으로 환청(목소리)를 경험했다고 이야기한다. 조현병은 1893년 독일의 정신의학자 에밀 크레펠린이 조발성 치매라고 부르면서 그 실체가 최초로 드러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현병'이라는 지금의 병명은 1908년에 스위스 정신의학자 오이겐 블로일러가 만들었다. 블로일어는 이 장애에서 흔히 나타나는 '연상이완'을 설명하기 위해 그리스어 schizo(분열)과 phrene(정신)에서 용어를 도출했다. 저자는 이로서 분열된 정신이라는 단순한 접근으로 비장애중심적이고 부정확한 용서가 탄생한 것이라고 말한다.

"조현병은 무섭다. 조현병은 전형적인 광기의 병이다. 광기가 무서운 이유는 인간이 체계화하고 분별하려고 애쓰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끝없이 이어진 날들을 연, 월, 일로 구분하며, 불행, 질병, 불편, 죽음을 막고 통제할 방법을 찾으려 한다(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결과일 뿐인데도). 하지만 그러한 예측불허와의 싸움도 고유의 내적 논리로 현실을 축소하는 조현병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저자는 비자발적 치료에 따라오는 자율성의 상실을, 더불어 자신의 병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평가에 따라오는 지위의 상실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2002년, 2003년, 2011년에 정신병동에 입원해야 했고, 처음으로 비자발적 입원을 할 때의 기록을 보면 "병식이 좋지 않다"라고 적혀 있다고 이야기한다.

"비자발적으로 갇히는 공포는 도저히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우선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좁은 공간에 강제로 밀어 넣어지는 것은 끔찍한 경험이다. 내가 이곳에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알려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 누구도 내가 이곳에 얼마나 오래 있을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먹을 것을 선택할 수도 없는데, 제한된 선택지 내에서 그마저도 역겨운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자라고 하면 자야 하고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나야 한다. 침실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면, 반사회적인 사람으로 평가된다. 공용 공간에 앉아 있으면서 다른 환자들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으면, 우울하거나 지나치게 내향적이거나 긴장증적인 사람이 된다. 인간은 본래 서로에게 암호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지만,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뇌 때문에 특히나 더 불투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을 포함해 모든 면에서 신뢰받을 수 없는 존재다."

저자는 정신병원의 계급은 누가 고기능인지, '재능을 타고났는지'에 따라 판가름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조현병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것들이 연상되므로, 자신이 고기능이라는 개념에 집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조현병과 그 비슷한 종류의 병들이 무서운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고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병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극도로 소외된 집단에는 남들보다 사회적으로 좀 더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있고, 따라서 이들은 이른바 부적합한 사람들과 스스로 거리를 둔다. 남들에게 성공할 수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면, 그 소외된 집단 내에서 그나마 자신보다 더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이들과 거리를 두고 싶은 욕망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정신증처럼 의학적으로 실제로 미치는 병에 걸리는 게 아닐지라도, 조현병 환자들은 사회에서 가장 역기능적인 구성원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노숙자, 이해 불가능한 족속, 살인자로 여겨진다. 내가 뉴스에서 조현병을 접하는 맥락은 오로지 폭력성과 관련된 것뿐이다."

"내가 어떤 정보를 말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생겨난다. 어떤 차이는 미세하다. 그런가 하면 어떤 차이는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이 기울어질 정도로 크다. 나는 부모님이 대만 출신 이민자라서 중서부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에서 자랐고, 예일대와 스탠퍼드대에 다녔으며, 지금은 작가로 살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대화가 내 병에 관한 내용으로 흐르면, 나는 내 정상성을 강조한다. 내 평범한, 아니 남 부럽지 않은 삶이 보이지 않는가! 내가 명료하고 조리 있는 의사를 전달한다는 사실을 직접 맛보라. 우리가 주고받은 대화를 곱씹어보고 어느 측면에서건 균열된 틈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 기억을 더듬어서 내가 스스로 밝힌 내 병이 그럼직하다고 느껴지는 어떤 정신이상의 기미를 찾을 수 있는지 살펴보라."

저자는 그 어느 곳에서도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없다면, 만약 이렇게 어지러운 상태가 나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저자는 실제로 조현병은 저자 자신이 삶을 경험하는 방식을 뒤바꾸어 놓았다고 말한다.

"나는 아직도 '괜찮다'는 것이 무엇인지, 특히 이 병을 가진 이상 과연 정상적인 상태가 가능한지를 부단히 고심하고 있다. 암에 걸린 사람은 본래 건강한 사람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암이 '침입'한 것이기 때문에 암 환자는 암과 '싸울' 수 있다고 말한다. 아무도 그 사람 '자체'가 암이라거나 그 사람이 암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신질환이 누군가를 덮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이 조울증이라거나 노현병이라고 말한다. 동료 교육 과정에서 나는 스스로를 '조현정동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말하라고 배웠다. 인간 중심 용어는 망상과 횡설수설, 긴장증이 존재하지 않는 어딘가에 그 사람이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둔다."

저자는 2003년 초 예일대를 영원히 떠났다고 말한다. 저자는 정신병원에 두 번째로 입원했고 이것이 학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휴학하라는 통지를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결국 예일대는 자신을 외면했고, 어떠한 설명조차도 없었다고 말한다. 저자가 '정신병자'로 판명된 이상, 구태여 예일대는 저자를 받아 주지 않았다.

저자는 엄마란 으레 그릇된 행동을 하기 마련이며, 조현정동장애를 가졌든 아니든, 양육의 문제라고 말한다. 저자는 조증, 우울증, 정신증과는 관계없이 잘못된 양육으로 자신의 미래를 아이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정신질환 또는 다른 심각한 장애가 있는 아이를 계속 돌봐야한다는 자신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이유가 어쩌면 자신의 마음을 바꾸게 한 궁극적인 요인이었다고 말한다.

"내 엄마가 품은 후회와 죄책감과 비슷하게, 나도 마음속으로 엄마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까? 내가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만들기도 했지만, 수년에 걸쳐 망가지는 내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런 자랑스러움을 뛰어넘는 고통이 아닐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엄마가 내 유전자를 선택할 수 있었더라면, 아마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났을 텐데."

저자는 정신병원에서 지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가장 잘 보여 주는 특징은 아무도 환자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는, 사람들이 당신에 관해 전혀 사실이 아닌 것들을 사실로 믿는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의사에게 내가 작가이고 예일대와 스탠퍼드대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마치 내가 우주 비행사이고 러시아 대사와 일란성 쌍둥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졌다."

저자는 심각한 정신질환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이들에게, 세상은 언제라도 우리를 가두어 놓을 수 있는 새장으로 가득한 곳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세 번의 비자발적 입원은 전부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정신병동에 갇혀 있었던 경험이 무서운 트라우마로 남았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정신증이 시작되려 하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 감각은 저자 자신 안에서 변이되는 그로테스크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곳곳으로 뻗어 나간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일은 왜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지, 자신이 어떻게 하면 나아질지 의문을 품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하지만 그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일상을 어떻게든 관통해야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늘, 벽, 나무, 반려견, 창문, 커튼, 바닥처럼 일상의 사소한 부분이지만 자신의 시선을 잡아끄는 추상적이면서도 실재적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정신증이 나타날 때의 느낌을 알아채지 못했다. 정신이상 상태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붕괴되는 양상에 치닫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내 정신 중 삽화에 선행하는 징후를 알고 있다. 다른 경로로 가거나, 걷지 않고 날아 다니는 사람들까지 대변할 수는 없지만, 내 정신이 급속도로 균열 상태에 접어드는 느낌은 꽤나 익숙해졌기 때문에 잘 묘사할 수 있다."

"세상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응집성이 더는 존재하지 않음을, 혹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음을 여실히 깨닫는다. 세상이 산산이 흩어지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응집되어 있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내 정신이 더는 온전히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혹은 이 모든 경우가 한데 뒤섞여 있기 때문에. 가령 하늘과 커튼은 둘 다 하나의 세상에 속해 있지만 나는 한 번에 하나씩만 이해하 수 있고, 방안에 개가 들어오면 그 개는 내가 다루어 내야 하는 완전히 새로운 대상으로서 내 시선을 끈다. 사람들은 발달장애인들이 세상 복잡한 일을 모르고 사니 평온하 것이라고 쉽게 말하고, 미친 사람은 생각이 없을 테니 안락할 것이라고 무신경하게 말하지만, 소위 미친 사람인 나도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리미널 스페이스에서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인지한다."

"뭔가가 완전히 잘못되어 간다. 그러다 '완전히' 잘못되어 버린다. 전구기가 지나면 나는 거의 참을 수 없는 상태에 돌입한다. 하나의 단계에서 또 다른 단계로 옮겨 가는 순간은 보통 급격하고 뚜렷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일순간에 내 동료들이 모두 그들과 똑같이 생긴 로봇으로 대체되었다고 생각한다. 혹은 내 재봉틀을 흘끗 보다가 내가 죽었다는 생각에 잠긴다. 이런 식으로 나는 몇 달에 한 번씩 망상에 빠진 채 지내게 되는데, 마치 얇은 장벽을 뚫고 이리 저리 마구 흔들리는 세계로 들어간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약을 삼켜도, 혹은 아무리 되돌아가려고 몸부림쳐도 다시는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아는 것이 사실이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뇔 줄 아는데도, 내가 믿는 것이 그 무엇이건 진실이 된다. 현실의 원리를 차분히 되풀이하다 보면 무언가를 '믿는다'는 개념은 공허해진다. 환각을 경험할 때, 무언가를 '본다'거나 '듣는다'는 개념도 마찬가지로 신뢰할 수 없다. 나는 몸을 휙 수그리거나 뛰어올라서 피할 수 있을 정도로 '그것'을 잘 본다. 하지만 나는 으스스한 악마가 갑자기 나타나는 비밀의 문 따위는 없다는 진실을 잘 알고 있다."

저자는 트라우마와 조현정동장애가 결합되면 강력한 신경학적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2014년 봄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발병했으며, 고등학교때 사귀던 사람이 자신을 학대하고 강간했다고 고백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자신이 이미 죽었다고 믿는 망상을 뜻하는 코타르 증후군으로 알려진 정신증의 한 유형을 경험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데메테르는 1년에 한 번 죽음의 땅으로부터 페르세포네를 불러들인다. 내가 데메테르의 그 창백한 딸이라고 상상하면, 죽은 자들 사이에서 사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으로 오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타르 증후군은 기척도 없이 어느샌가 물러간다. 내가 부활했음을 깨닫는 순간도, 지옥에서 솟아났다는 환희의 순간도 없이 사라진다. 이제 나는 식별 가능한 다른 육체적 질병으로 신음하는 환자가 된다. 신경 검사와 암 확인을 위한 MRI와 CT 촬영을 하고 걱정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지옥의 형벌 속에서는 죽음이라는 희망조차 없으며 지독한 고통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상실, 상처, 비탄은 그 나름대로 끔찍한 것들이지만, 지옥의 형벌을 받는 죽은 여자에게는 무척이나 인간다우며 살아 있고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저자는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일을 잘해 온 증거로서 자신의 첫 번째 소설을 꼽을 때가 많지만, 이는 저자 자신에게 위안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소설을 쓸 땅시 우울증에 빠져 있었고, 종종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불안했으며, 주기적으로 정신증을 겪었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까 <천국의 국경>을 쓴 저자는 상당히 건강한 여자였던 셈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오래 지속되는 만성 질병은 급성 질병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에 병합된다고 말한다. 만약 질병이 있으면, 병이 급격이 악화하지 않는 한 삶은 질병을 끌어안은 채 초연하게 이어질 뿐이다. 저자는 그대에는 1초에서 다음 1초까지 생존하자는 것이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가장 대단한 야망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수술과 입원을 하는 동안에는 하고 싶은 일들과 이루고 싶은 꿈들을 나중으로 미룰 수 있지만, 만성 질병을 앓고 있는 동안에는 그런 것 자체가 없어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최악의 정신증 삽화를 겪는 동안 사진 찍기는 자신의 아픈 자아가 존재하는 것들을 믿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라고 말한다. 저자는 사진은 자신의 건강한 자아가 상실을 재경험하는 도구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사진은 자아와 다른 이들 사이를 이어 주는 다리, 호은 미스바(먼 거리나 죽음으로 인해 갈라진 사람들 사이의 정서적 유대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단어)이다. 건강한 사람은 아픈 사람이 증거로 남기고 떠난 사진을 해석해야 한다."

저자는 자신에게 진정 어려운 것은, 약이든 술이든 혹은 끈질기게 치유를 추구하는 것이든 고통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찾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고통 한가운데에서, 항상 밖으로 나갈 길을 찾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비교적 최근에 발병한 다른 병들은 잘못된 사건으로 여겨지며 도대체 자신이란 사람이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증상을 경험할 수 있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과 달리, 조현병은 너무도 오랫동안 자신의 일부였기데 삶에서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한다.

저자는 정신증을 겪는 동안 크게 고통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기데 암울하고 거친 광기의 폭풍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데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고 말한다. 저자가 리미널에 대해 배우려는 것은, 자신의 정신증적 경험을 연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함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그릇에 담아 하나씩 차근차근 파헤치고 싶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은유로 가득한 사후 세계에는 은유로 가득한 리미널 공간이 수반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리미널 경험은 반드시 특이한 것이거나 특별한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리미널 경험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무엇이 진짜인지, 허상인지, 혹은 정신병인지를 탐구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광기과 신비주의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도 뚜렷하지 않다. 영적 개념으로서의 리미널은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구멍이 많음을 의미한다. "경계 지대"와 "중간 지대"는 대개 같은 의미로 사용되며, 현실 세계와 사후 세계 사이의 회색 구역을 가리킨다. '경계 너머로' 수업에서 브리는 사후 세계를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땅 위의 영역", "땅 아래의 영역", "중간 지대". "요정의 세상", "상상의 영역"이라고 표현한다. 죽음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후 세계의 유일한 징후이며, 탄생과 죽음은 리미널의 명백한 징후이다. 범위를 좀 더 좁혀서, 나는 커다란 질병, 트라우마, 결혼을 통해서 사후 세계를 엿보았다. 이들은 리미널이면서 죽음과는 달리, 내 인생의 연대표를 채우고 생채기를 남긴 사건들이다."

저자는 우리의 세계는 이성적인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한편, 비이성적인 것을 꺼린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아침 버스에서 난리 치는 노숙자, <로앤오더>에 나오는 망상적인 살인마 "사이코들"처럼 말이다. 저자는 비이성적인 것을 이해하려면 표면 너머를 볼 줄 알아야 하고, 이는 신비의 영역이라고 이야기한다. 책 <조율하는 나날들>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저자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수년간 환각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이며, 심각한 망상적 사고의 삽화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것은 4년 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정신증의 발생을 막거나 완화해 주는 삽화들이 있고, 바로 자신이 있는 곳을 지키며 조심조심 걷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기도를 한다는 것은, 양초를 태우고 의식을 행하고 소금이나 꿀단지를 만드는 등 어떤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을 뜻하며, 정신증이 자신의 마음을 두렵게 했기 때문에 브리를 찾아가서 배운 것은 신성한 기술의 신념보다도, 그 기술의 행위를 통해 위안을 받았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전한다.

"어떤 초자연적인 이탈이 발생할 때, 나는 내 리본을 찾아 손목에 묶는다. 망상이 찾아오거나 환각이 내 감각을 다시 어지럽히면, 그 무감각의 혼란 속에서 감각을 도로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이라 되뇌어 본다. 이렇게 스르르 빠져나가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만 한다면, 나는 그것을 붙들어 둘 수 있는 방법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스스로에게 되뇐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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