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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섬
쥴퓌 리바넬리 지음, 오진혁 옮김 / 호밀밭 / 2022년 11월
평점 :
소설 <마지막 섬>은 터키를 대표하는 지식인인 쥴퓌 리바넬리의 정치적 성향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이 책은 터키에서 총 40만 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이며 연극으로 만들어져 무대 위에 올라가기도 했다.
잣나무로 가득한 숲, 천연 수족관 같은 새파랗고 투명한 바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협만, 그리고 순백의 유령처럼 쉬지 않고 날아다니는 갈매기들. 그곳은 사계절 내내 온화하고, 밤이 되면 사람의 넋을 빼놓는 재스민 향기에 뒤덮이는 외딴섬이었다. 숲속에 자리한 낡고 오래된 집과 함께 세월에 내맡겨진, 자급자족이 가능한 독립된 세상이었다. 그곳은 마지막 섬이자 마지막 은신처, 마지막 남은 인간적인 자투리땅이었다.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평화로운 섬에 탐욕스러운 외부인이 들어온다. 그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었다. 그는 대통령 시절 공식 연설마다, 국론분열과 벼랑 끝까지 내몰린 국내 상황을 외부세력과 적성 국가의 공작 탓으로 돌리곤 했다. 그는 이를 통해 자신이 일으킨 쿠데타가 국민의 단합과 단결을 확보하고, 국가를 통합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주장을 펼치곤 했다. 그는 장기집권을 마친 후 어쩔 수 없이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남은 노후를 보내기 위해 섬에 정착한 것이다.
전 대통령이 섬에 정착한 후, 여러 사건이 발생하며 섬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우선 섬 주민들에게 시원한 그늘막을 만들어주던 커다란 나무들이 잘려 나간다. 무질서와 혼돈, 혼란에서 벗어나 문명 생활을 지향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무가 사라진 후 전 대통령의 손녀는 과자를 먹다가 갈매기의 공격을 받고 팔을 크게 다친다. 이후 전 대통령은 갈매기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많은 주민이 그의 계획에 적극 동조한다. 그렇게 평화로웠던 마을은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전 대통령이 갈매기와 전쟁을 벌인다는 이야기는 권위주의가 공동체 내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민주주의라는 가면 뒤에 숨은 독재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마지막 섬>은 반독재, 반전, 친환경, 여성 등 약자와 소수의 권익을 대변해온 터키 작가 쥴퓌 리바넬리가 터키와 전 세계에 관해 생각했던 것들을 외딴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갈매기 그리고 독재자라는 세 가지 축으로 이야기하여 눈길을 끈다.
"우리는 그 당시 섬에서 소문을 내고 싶지 않았기에, 섬에 관한 이야기는 일체 비밀로 하고 있었다. 그런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세상이 갈수록 미쳐 돌아가고 있었으니 우리에게도 좋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우연히 섬을 찾게 된 40가구가 섬 주민 전부였다. 섬은 평화로웠고, 섬 주민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내가 섬으로 왔을 땐 수많은 상처와 실망 그리고 큰 아픔을 경험한 뒤였다. 섬에서 너무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나는 그곳을 '마지막 섬'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렇다. 마지막 섬, 마지막 은신처, 마지막 남은 인간적인 자투리땅이 바로 그 섬이었다. 우리에게 단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이런 평화가 깨지지 않는 것이었다."
섬의 사람들은 매 순간 진실을 말하고, 닥쳐올 위험을 경고한 소설가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섬의 이웃들은 전 대통령의 말을 믿고 야만이 아닌 문명을 이유로 들어 나무를 잘라 섬을 훼손하고 손녀를 다치게 했다는 이유로 갈매기를 총살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전 대통령의 말을 따른다. 그리고 주인공은 섬의 아름다움이 두려움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목격하고 무력감을 느낀다.
"소설가는 내가 너무 순진하다고 했다. 나는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들이 너무 과장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항상 주장했듯이 '나라를 내전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정권을 잡은 대통령과 그의 동료들'의 의도는 좋았던 것이라 믿고 싶었다. 섬의 평화가 깨질 것에 대해 두려워했지만, 대부분 주민은 나처럼 생각했고, 전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고통스러운 삶을 목격한 것에 관한 자네의 글과 번뜩이는 자네의 생각들을 읽다 보니 가슴이 미어졌어. 자네는 매 순간 진실을 말하고, 닥쳐올 위험을 경고하는 게 의무라고 생각했지. 홀로 남게 될 것을 각오하면서도 구원자가 아니라, 명예롭고 선한 행동을 선택한 작가의 삶을 살겠다는 자네의 의지에 고마움을 느꼈어."
섬을 죽음의 장소로 변하게 만든 전 대통령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 그를 들이받은 인물은 바로 구멍가게의 장애아였다. 이 책에서 구멍가게의 말 못하는 아들이 마치 제 몸처럼 공격하던 갈매기처럼 달려들어 분노와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고, 사람으로도 대접받지도 못했던 아이, 그 아이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던 우리는 장애아의 목소리를 그렇게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그 괴성을 들으면서 사람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건 분노와 저항이 담긴 비명이었다. 세상의 모든 부당함과 억압에 맞서는 거대한 비명."
이 책은 주인공의 목소리를 빌려 마지막 섬을 어떻게 잃게 되었는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인간은 저항한다는 정의를 망각한 것, 이기주의, 예측 부재, 외면, 독재에 굴복, 작은 것에 대한 탐닉과 같은 죄의 대가를 지르고 있다는 주인공의 글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갈매기들은 우리 모두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머리 위에서 날아다녔다. 불에 타 황폐해진 시커먼 섬과 이젠 몸을 기댈 집도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 갈매기가 공격해 왔다면,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도 당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갈매기들은 어떤 공격적인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갈매기들은 옛날처럼 번식하고, 먹이를 사냥하고, 마음 놓고 알을 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즉, 갈매기가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었다."
"우리는 굴복해서 패배했다. 점사 수위를 높여가던 권력의 폭압이 얼마나 더 극에 달할 수 있는지 예상하지 못했기에 패배했다. 그 나무들이 잘려 나갔을 때, 그리고 구멍가게 아들이 얻어맞았을 때,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저항했어야 했다.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전 대통력이 시도했던 모든 것들을 너무나 순진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갈매기들은 저항했고, 타협하지 않았기에 승리했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