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중력 - 생의 1/4 승강장에 도착한 어린 어른을 위한 심리학
사티아 도일 바이오크 지음, 임슬애 옮김 / 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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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중력>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어른의 무게를 처음 마주한 2030대의 이야기를 한다. 안개처럼 흐릿하지만 무거운 중력, 어린 시절 무한한 가능성은 현실에 맞게 작아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시기, 하지만 동시에 내가 잘하는 게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한 작은 희망, 그리고 용기 없는 나에게 누군가 나타나 이 세계에서 나의 가능성을 길어 올려주길 바라는 그 마음들. 방황하는 그 마음을 위한 책이다.

청소년기를 통과했지만 아직도 방황과 고민으로 가득한 성인들의 마음을 놀랍도록 잘 담아낸 이 책은 이 시기에 겪게 되는 보편적인 방황과 고민에 대해 따뜻안 분석을 건넨다.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알아서 잘하라며 사회는 등을 떠밀지만, 20대, 30대를 맞은 당사자들의 마음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막막한 괴로움과 서툰 방황으로 가득하다. 이는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다.

융 심리학에 영향을 받은 심리학자인 저자 사티아 도일 바이오크는 가장 먼저 그들의 '심리학적'인 이름을 되찾는 일부터 시작한다.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생의 1/4 지점, '쿼터라이프'라는 생애 주기를 지정하고, 이 시기를 변하지 않는 심리적 단계로 구분하여, 그들의 방황과 고민을 위한 정확한 지도를 전달한다. 심리학을 넘어 이 세대의 문제에 접근하는 저자의 통찰력 있는 시각, 흡입력 있는 필치가 책의 깊이를 더한다. 상담심리학자인 저자는 실제 상담에서 접한 수많은 젊은이들의 사례 중에서도 가장 생생하면서도 핵심적이고 보편적인 부분을 효과적으로 재구성해 마치 캐릭처럼 보여주며, 그들이 온전히 나를 찾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드러낸다. 너무나 내 마음 같은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독자는 이들 깊은 내면에 자리한 장애물에 대한 탐색과 해결 과정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는 '안정형'과 '의미형'이 각각 고민하고 분투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더욱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치 '영혼의 지도'를 따라 찾아가는 듯한 이 온전한 스토리텔링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온전한 자기 이해와 삶 속으로 함께 걸어 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방황하는 이 시대의 2030에게 이 책은 현대적 융 심리학이 제시할 수 있는 어쩌면 가장 온전하고 안전한 지도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상황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절박한 피곤하고 두려우며 우울하고 불안한, 어쩌면 자신에게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열여섯 살에서 서른여섯 살의 모든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 인생의 1/4 지점에서, 보이지 않는 거대한 중력처럼 눈앞에 닥친 세계가 무겁게 느껴지고, 그 거대한 무게와 하찮은 나의 고민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책은 끝없는 절망과 떨칠 수 없는 불안에서 벗어나 명확성과 방향성의 기쁨이 가득한 성인기를 구축하려고 애쓰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고통받는 지구에서 자기만의 길을 찾기 위해 애쓰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과거의 쿼터라이프를 돌아보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쿼터라이퍼의 부모, 치료사, 교육자 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행위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없이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자기만의 삶과 목표를 찾고 만들어내는 것이다."



저자는 융의 <영혼 돌보기>라는 책을 읽고 융이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은 자신의 삶 속의 경험과 깊이 공명했다고 말한다. 융이 자기만의 삶을 찾아내고 살아내야 할 필요성에 관해서 쓴 대목을 읽었을 때, 저자는 내 끝없는 질문과 더 나은 삶을 향한 탐색이 옮다고 인정받은 기분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융이 완벽과 성취가 아닌 온전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을 때는 그 기분이 더 강렬해졌고, 오랜돗안 느끼지 못한 깊고 지속적인 평온을 느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쿼터라이프를 지칭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연장된 청소년기, 어린 성인기, 이른 성인기, 성장하는 성인기 등의 용어의 공통점은 이 시기를 일종의 중간다리로 간주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 시기의 발달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또 다른 원인은 어느 시기든 특정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가 유행을 타면 다들 그 단어에만 결착하는 풍조라고 비판한다. 매일 더 많은 Z세대가 쿼터라이프에 진입하고 있으나 대다수는 청소년기와 아동기에 머물러 있다. 세대와 생애 주기는 같은 것이 아니며, 같은 나이대에 속한 사람들이 전부 똑같은 것도 아니다.

"인생의 20년 남짓한 기간이 '진정한' 생애 주기 사이에 낀 전환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태도, 무언가 중요한 일이 일어날 때까지 앉아 기다리는 로비 격이라는 듯한 태도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경제력과 인간관계 면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마련해야 진정한 성인기가 도래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기반을 마련하면 고통의 로비에 있던 사람이 마법처럼 '진정한 인생'이라는 웅장한 복도로 입장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릴케가 쓴 문장 "친애하는 카푸스 씨.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당신 앞에서 슬픔이 자라나고 있다면, 그 어느 때보다 큰 슬픔이라면, 빛이나 구름의 그림자처럼 불안이 당신의 손과 모든 몸짓 위로 드리운다면, 깨달아야 합니다. 당신에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 삶이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것, 품 안에 당신을 안고 추락하지 않도록 지켜주리라는 것을."이 10대 후반에 처음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함없이 위안을 주었다고 말하는 글귀에 깊이 공감한다.

저자는 쿼터라이프 여정의 목표는 단순히 파트너를 구하거나 경력을 쌓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만의 개인적이고 진실한 삶 말이다. 저자는 쿼터라이프 발달기의 궁극적인 목표는 온전한 자신을, 내면과 외면이 일치하는 삶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여정의 목표는 지금과 다른 무언가, 지금 이상의 무언가를 향한 가슴 저릿한 갈망이 멈추는 것이다. 쿼터라이퍼는 삶의 기반, 안전함, 사회적 안정을 원하기도 하고, 모험, 경험, 자기만의 의미를 원하기도 한다. 저자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굳건한 세계를 구축해야 하지만, 삶에 온기와 동기를 부여하는 수수께끼, 친밀감, 심지어 불안 같은 것도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쿼터라이프 심리학을 논할 때, 이런 모순을 '안정과 의미를 향한 혼란스러운 갈망'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안정과 의미, 두 가지 목표는 언제나 쿼터라이프에 속했다고 말한다. 쿼터라이프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만의 독립적이고 고유한 삶을 구축하는 것, 안정적이고 의이 있는 삶이 정확히 어떤 삶인지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밝혀내는 것이다. 저자는 쿼터라이프를 잘 살아낸다는 것은 '정상적'이거나 '훌륭'하거나 '성공적'인 것과는 관련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안정과 의미 둘 다 적절하고 건강한 지향점이라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이 받아들일수록, 성인기를 '승자'와 '패자'로 가르는 경향도 줄어들 것이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두 가지 유형의 쿼터라이퍼, 즉 의미형과 안정형을 이해하는 일은 쿼터라이프의 심리를 이해하는 첫 번째 단계라고 말한다. 자신이 의미와 안전 스펙트럼에서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 가려내면 더 강력한 동기와 열의를 갖춘 채 쿼터라이프의 온갖 과제를 해결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의미형은 감정을 조절하고 생활력을 기르며 세상을 살아갈 자신은 없을지라도, 마음속에서 자신이 생물학적 나이보다 성숙하고 지혜롭다고 느낄 수 있다. 굉장한 소질과 재능으로 반짝반짝 빛나면서도 현대인의 삶에 필요한 일상적인 과제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돈이나 직선적인 시간관념에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는 그들의 사회 참여를 방해한다. 의미형은 돈을 역겹고 위험하고 사악하고 더러운 것으로, 고통의 근원으로 인식한다. 직선적 시간을 '감옥', '사회적 구조물', '사람들을 자본주의에 묶어놓는 족쇄'로 바라본다. 이런 관점 때문에 그들은 자기 내면에 있는 또 다른 욕망, 풍요롭고 안정적이며 탄탄한 기반을 갖춘 삶을 향한 욕망과 무의식적인 갈등 관계를 형성한다."

"반면 문화가 정해놓은 '어른의 삶'을 보다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살아내는 사람들도 줄곧 있었다. 더 성공적이고 건실하며, 더 '체계적'인 쿼터라이프들, 나는 이들을 '안정형'이라고 부른다. 의미형이 한마디로 '예술가', 철학자나 음악가인 것과 달리, 안정형은 한마디로 '변호사', 이를테면 금융에 종사하거나 사업을 운영하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좋은 성적, 탄탄한 과외 활동, 장기적인 계획, 가정 꾸리기, 안정적인 직장 생활, 승진, 저축 등 한때 성인기의 근본적인 과제라고 간주했던 목표들을 우선시한다. 강력한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갖고 있을 수도 있는데, 자신의 믿음에 회의를 품고나 내적인 갈등을 경험할 기회가 아직 많이 않았을 것이다. 갈등이나 회의를 느끼고 있다면, 분명 그런 감정을 억압하는 데 능숙하다. 안정형은 자신에게 사회 규범에 순응하는 능력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천성이 그렇거나, 따돌림당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의미형에는 적응하겠다는, 따돌림당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결심이 있다."

"안정형은 인생의 발전에 필요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의지력이 높지만,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지 못하거나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 앞에서 막막함을 느낄 수 있다. 사회에서 유지하던 외양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사회가 정해준 과제를 하나하나 수행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바로 이때부터 외부의 기대에 의문을 제기하고 삶의 더 큰 의미를 탐색하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중년의 위기'의 기원이다. 중년의 위기란 안정형의 위기인 것이다. 이성애 중심적인 엄격한 성역할에 맞춰 살았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자신의 타고난 편향성과 삶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다양한 이유로 안정형이 사회의 기대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는 시점도 앞당겨졌다. 과거의 안정형이 중년에 집인한 후에야 기존의 믿음을 상실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쿼터라이프에 진입하면서 상실을 경험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저자는 쿼터라이프 발달에 관한 사회적, 심리학적 담론이 대학, 직업, 결혼, 자가, 양육, 경제력 같은 외적인 성취만을 강조하고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근본적인 과정을 무시한다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고 강조한다. 삶은 성취의 행복과 실패의 불행으로 축소될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탐색하는 여정은 더 복잡하고 특별한다. 우리에겐 그 여정을 향한 강력한 본능이 있다.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알아내고 싶은 충동, 자기 자신으로서 세상에 나서고 싶은 충동이 있다.

"쿼터라이프는 안정적인 관계와 경제적 조건을 마련하는 과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의미를 향한 개인적인 여정이다. 진정한 성인기는 심리적인 것이다. 안정을 획득하거나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출산이나 주택 담보 대출과도 거리가 멀다. 생활력 기르기를 거부하면서 자기만의 사상과 의미에만 몰두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심리적 의미에서 진정한 성인기란 균형을 추구하는 성숙한 탐색의 과정, 공동체의 일원이자 의식 있는 개인으로서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안정과 의미를 모두 추구하는 여정이다. 질서와 혼란, 문명과 자연, 인간성과 신성을 결합하는 시기다. 두 특성이 각각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는 공생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마치 파도를 타기 위한 서프보드, 불을 피우기 위한 난로, 포도주를 담기 위한 술잔과 같다."

저자는 쿼터라이프는 자기 몸을 의식하고 사랑하면서 몸과 관계를 다져나가는 시기라고 말한다. '결점'이 있거나 정확한 기능과 보호에 '실패'한 몸을 용서하는 시기이디고 하다. 저자는 몸의 크기나 형태, 색깔이 이상하다면서, 장애가 있고 완전하지 않다면서 조금씩 유해한 가르침을 주입해온 가부장제와 백인 우월주의적 가치관을 차단해내야 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기 몸에 결점이 있다는 생각은 셀 수 없이 많은 심리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지극히 소수의 인간이 만들어냈음에도 영구히 지속해온 유독한 가치 체계 때문이다. 저자는 의미형이 안정을 쌓아가는 과정은 '몸으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고 말한다. 소처럼 내키지 않는데고 시간과 시대에 질질 끌려다니는 기분으로 사는 대신, 삶에 참여하겠다는 의식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스스로 몸 안에서 살아있기로 결심해야만 하는 것이다. 온전한 삶을 이뤄내래면 자신의 두 발로 삶에 오롯이 뛰어들어야 한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내가 제시하는 목표는 자신이 태어난 세상에, 시대에, 삶에 참여하는 것이다. 삶의 힘겨움을 전부 겪어내고 살아내겠다는 결심 없이는 다른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내면의 성장 스위치가 켜지지 않는다.

몸으로서 살겠다는 결심, 실체가 있는 몸 안에서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면 의미형은 자신에게 부족했던 의지와 헌신을 발휘하고 진정한 삶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살겠다고 선택함으로써, 지금이라는 역사 속 특정한 순간을, 자신이 부여받은 특정한 몸과 가족 등 다양한 조건을 전부 받아들일 수가 있다. 이러한 특정한 조건들에, 지금 이 삶을 사는 일에 헌신하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 때가 많다. 의미형은 생각도 거대하고 감정도 거대해서, 무한한 우주의 일부가 되기를 꿈꾸거나 역사 속 다른 시대에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상상하기도 한다. 그러면 지금 이곳에 속하는 몸속으로서의 삶은 답답하고, 재현적이고, 고통으로 가득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네 명의 사례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 계발 작업이 각 유형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파고든다. 네 사람은 분리, 경청, 구축, 통합으로 이루어진 '네 개의 성장 기둥'이라는 작업에 집중하게 된다. 저자는 과거의 성별 고정관념이 녹아있는 조지프 캠벨의 '영웅의 여정' 이론과 세계 곳곳의 성인식에서 나타나는 발달 단계를 수정하고 현대화해서 네 개의 성장 기둥을 고안했다. 융 심리학에서 '개성화'라고 정의했던 의식 발달과 자기 탐색 작업, 역사적으로는 중년의 전유물로 인식되었던 작업을 이해하는 틀이기도 하다. 네 개의 발달 기둥은 계단을 올라가는 것, 할 일 목록을 만들어 하나씩 완수하고 잊어버리는 것과는 다르다. 네 기둥은 거미줄의 꼭짓점처럼 방향과 체계의 기준을 제공한다. 저자는 한 사람이 경험과 노력을 통해 자기 삶을 직조하면서, 이 꼭짓점으로 돌아오고 또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현대 쿼러라이프의 첫 번째 물리적 분리는 외압에 의한 것이든, 선택에 의한 것이든, 자기만의 길을 찾고자 하는 타오르는 충동과 갈망이 있다고 말한다. 분리 본능으로 인해 가족을, 어쩌면 교회, 공동체, 친구들, 당시의 연인을 두고 떠나, 넓은 세상에서 더 높은 차원의 독립과 자기 계발을 추구하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물리적 분리를 이뤄낼 수 있도록 사회에서 확실하게 생활과 경제적 차원의 지원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쿼터라이프는 분리를 미룰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분리 본능을 무시하면 막대한 좌절감에, 갇혀 버렸다는 기분에 휩싸일 수 있다.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삶을 시작하고 싶은 내적 욕구가 있다. 내면의 목소리는 '논리적인 결정'이 무엇인지, 생활에 어떤 제약이 생길지 신경 쓰지 말고 그저 나아가라고, 탐험하고 호기심을 충족하라고 외친다. 그것은 정확히 명명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욕구이자 갈망이다. 어린 시절의 집과 관계에서 분리되고 싶은 욕구, 채워지지 않은 허기와도 같은 욕구를 묵살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다."

"진정한 분리란 관계 속의 경제적, 정서적, 심리적 의존을 천천히 바꿔나가면서 자기 자신고 바꿔나가는 긴 과정이다. 건강한 분리 작업에는 새로이 관계의 선을 긋고, 의사소통 능력을 개선하고, 부모와 형제자매가 (그리고 수많은 타인이) 자신의 자아 인식에 미치는 오묘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자세히 살펴보는 활동이 포함된다. 목표는 자신에 대해 알아내는 것, 자신을 사랑하는 것, 자신을 신뢰하는 것, 독립하는 것, 그렇게 타인과의 친밀감을 높이는 것이다. 이루기 힘들 때도 있다. 그리고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감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저자는 부모의 기대는 쿼터라이프 시기에 해결해야 할 문제 중 가장 어려운 축에 속하며, 이는 부모의 헌신에 직접적인 의문을 제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모 공경은 사회적으로, 지적으로 '선'하고 '도덕'적인 일로 수회된다. 많은 문화권와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이다. 하지만 저자는 쿼터라이프에게는 뿌리로부터 진화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본능은 작은 속삭임과 회의감을 심어줄 때도 있도 요란한 비명을 외칠 때도 있다. 부모에게 의존하고 영향받는 삶과 분리되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삶에 익숙한 상태인 데다가 부모의 믿음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허용하는 사회적 기반이 거의 없다 보니, 부모의 관점이 나 자신의 본능보다 중요해진다. 저자는 어린 시절의 충심을 너무 오래 간직하면 심리에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부모님의 복제품이나 후계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깊이 탐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저자는 쿼터라이프의 두 번째 성장 기둥은 '경청'이라고 말한다. 더는 유익하지 않은 관계와 관점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도록 용기와 능력을 길러야 한다. 저자는 이에 더해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내면에서 들리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경청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직감, 느낌, 신체 감각, 우연, 침묵, 꿈을 비롯한 온갖 비언어적 정보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는 물질적 성공과 세상에 순응하는 삶에 보상을 제공한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성숙해지려면 타고난 개성을 발달시켜야 한다. 모순적일지도 모르겠지만, 개성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적절히 경청할 줄 아는 능력을 통해 연마되는 것이다."

"경청은 그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닌 분별력을 요구한다. 분별력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 혹은 '어떤 것의 특성을 옳게 판단하고 그런 판단력을 보여줄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분별력은 자기 자신을 든든한 거름망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때로는 반문화적 신념과 실천에 전념하는 집단이나 운동도 지배 문화만큼이나 자기 내면을 경청하는 작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경처으로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는 결정 과정을 단순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종종 쿼터라이프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 모르기에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얼어버리고 만다. 심리적 성숙의 바탕, 그리고 성숙한 사람으로 이루어진 건강한 사회의 바탕에는 자기 자신을 위해 생각하는 능력, 주변 사람의 관점과 거리를 둔 채 스스로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분별하는 능력이 있다. 이것은 자신을 신뢰하는 능력이다. 끊임없는 도전과 실수를 통해 안감힘을 쓰거나 지나치게 고민하는 일 없이 내면의 신호를 알아채는 법을 깨우쳤다면, 최종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을 지탱해준 회복력을 쿼터라이프에 쇠약해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본능적인 방어력이 힘을 잃으면서 과거에 묻어두었던 온갖 증상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저자는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트라우마 역사가 있는 경우, 쿼터라이프 초 반의 몇 년은 거셉 급류에 뛰어들어 헤엄을 치려고 애쓰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많은 쿼터라이퍼는 '경직 상태'에서 영웅적인 회복력을 유지하지만, 끊임없이 흐르는 삶 속에서 점차 지키고 만다. 회복력이 바닥나고, 그 밑에 있는 겹겹의 절망과 공포가 드러난다. 저자는 대단하든 미미하든 트라우마 역사가 남아 있다면, 자기 내면을 경청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트라우마 치유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해묵은 트라우마와 해로운 패턴의 목소리가 본능과 욕구가 내는 믿음직한 목소리와 싸우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트라우마는 지상의 지옥처럼 느껴지고는 하지만, 해소한 트라우마는 신의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피터 레빈의 문장을 소개한다. 저자는 트라우마 중심의 심리 치료를 초함해 일반적인 심리 치료 역시 상처로부터 온전히 벗어나서 현실 세계에서 자유와 독립성을, 무엇보다 기쁨을 체험하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의미형에게 이는 현실 세계가 자신을 품어줄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하다는 믿음을 다지는 과정이다.

저자는 쿼터라이트에서 경청이라는 행위는 삶의 중심을 목표 중심에서 호기심 탐구로 옮기는 것을 뜻한다고 이야기한다. 자기만의 특성에 관한 정보를 모으는 행위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쿼터라이퍼는 오직 시도와 실수를 통해서 자기 삶을 정확히 정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주어지 상황에서 신체와 감정이 보이는 반응에 집중하면, 아주 미묘한 반응이라도 정보가 될 수 있다. 저자는 내담자에게 권장하는 것은 저항, 두려움, 갈망, 즐거움, 피로, 호기심, 부끄러움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낄 때 자신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경청해보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그런 반응의 의미를 질문하기 전에 그저 귀 기울려보고 자신의 경험에 관찰자적 태도를 취할 것을 권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성장의 세 번재 기둥은 '구축'이라고 소개한다. 삶을 구축하는 행위는 자기 자신이 되는 행위이다. 경정에 열린 마음이 필요했던 것처럼, 구축에는 노력, 일관성, 의지가 필요하다. 저자는 오래전부터 쿼터라이프 시기에는 열심히 일하기를 장려했지만, 이런 관점은 보편적인 발달 목표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사회 조직의 일원으로 경제체계에 보탬이 되는 데 집중할 뿐, 자기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삶을 사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저자는 한 사람의 삶을 구축한다는 것은 노력과 사랑과 헌신을 통해 의식적으로 존재를 가꾸어간다는 뜻이라고 이야기한다. 자기만의 삶이라는 작품을 창조하려면 크고 작은 노력이, 체계와 질서가 필요하고 떄로는 막대한 신념과 신뢰도 필요하다.

"자기가 원하는 삶을 구축하려면 일관성과 집중력이 필요하고, 피로가 쌓이거나 내적 한계에 부딪혀도 밀고 나가야 한다. 때로는 자기 자신을 향한 불신과 더 나은 삶을 가능하지 않다는 회의감을 상쇄하기 위해 장기적인 과제에 매달려야 하고,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해야 한다. 삶과 미래 구축을 위한 작업은 단조롭고 어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작업은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고 한 사람을 새로이 거듭하게 해줄 수 있다."

"모험과 위험 감수는 쿼터라이프의 핵심적인 부분이지만, 삶을 구축하기 위한 내적, 외적 작업은 전형적인 모험 이야기보다는 반복적인 과제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구축하기 위해 세심하게 공들이고, 피로해도 한 걸음씩 나아감으로써 쿼터라이퍼는 새로운 한계를 설정하고, 새로운 능력을 배우고, 그 과정에서 회복력을 얻는다. 그 모든 것을 통해 한 사람의 정체성과 성격이 빚어지고 형성되며, 자긍심이 깊이 뿌리내리게 된다."

저자는 분리, 경청, 구축, 이 세 가지 작업이 '통합'되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통합의 경험은 놀랍고 실질적인 '성취'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직업적 성공이라든지, 예술 작품을 완성한다든지, 전에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연애 관계를 맺게 되는 식이다. 많은 사람에게 통합의 경험은 마치 마법이 일어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크고 작은 순간이 쌓여 자신의 영혼과 자아가 공생하고 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는 한 사람의 내면세계와 외면세계가 합일을 이루는 경험이라고 이야기한다. 마침내 안정과 의미 자아는 더 이상 반목하지 않고 끈끈히 연결되어 삶과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분리하고, 경청하고, 구축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후에 그 모든 결과를 통합할 수 있다면, 그것은 마치 축복과도 같다. 이런 경험을 통해 쿼터라이퍼는 자신이 지켜보기만 할 뿐 실제도 행동하지 못하는 방관자가 아니라 세상의 일부로서 세상의 형성에 일조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지금껏 견뎌야 했던 방황과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굉장한 것이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쿼터라이퍼에게, 나는 자기 삶을 사랑할 수 있다고, 기쁨을 즐기고 선한 것을 믿는 능력을 과거의 치열한 노력만큼이나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통합을 향해 나아가는 행위는 취약함과 친밀함, 창의력, 성공이 두려워질 때 그 두려움을 직면하는 행위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와 다른 존재로 거듭날 용기, 마음이 동하는 새로운 길을 믿어볼 용기,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선택할 용기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힘들어하는 쿼터라이퍼에게 진정한 안내와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는 사회를 꿈꾼다고 말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몸이 있다는 뜻이며, 몸이 있다는 것은 분투하고 성장하고 분투하고 성장하기를 반복하는 뜻이다. 이런 본질적인 반복은 인간이 생득권이다. 우리의 소명은 변화하며 살아가는 법,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서 창조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저자의 글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어른의 중력>은 쿼터라이프라는 심오하고 심리적인 여정을 얻는 데 필요한 기반을 얻어 자기만의 고유한 삶과 자기만의 진실을 생생하게 체험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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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철학, 생각의 깊이를 더한다는 것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박제이 옮김 / 독개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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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철학자들의 책을 소개하며 철학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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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철학, 생각의 깊이를 더한다는 것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박제이 옮김 / 독개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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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철학, 생각의 깊이를 더한다는 것>은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르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공동 환상론'을 바탕으로 대화, 생각, 일, 믿음에 대한 철학자들의 생각을 들여다본 인문 도서이다. 소크라테스, 데카르트, 아렌트, 요시모토는 하나같이 시대와 깊게 뒤섞여 살았다. 책상 앞에만 죽치고 앉아있기보다는 행동했다. 그것을 통해 다른 이들과 깊이 교류했다. 때로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면서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낸,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사상가다. 시대와 정면으로 맞서며 살아낸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철학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물음은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이끌어준다. 이 책을 통해 철학자가 도달한 곳이 아니라 그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는 생각의 여정을 만나볼 수 있다.



저자는 소크라테스는 말을 잘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런 소크라테스가 '진실'된 말은 '무작위'로 하는 말이라고 했다. 지극히 평범한 단어로 이루어진 말이라는 소리다. 보통 우리는 무엇을 말할지 생각한 다음에 어떻게 말할지를 생각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어떻게'는 '무엇을'보다 못하지 않다고 확신했다. '무엇을'은 요약할 수 있지만, '어떻게'는 요악할 수 없고 치환 불가능하다. 요약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것 중에서 '진실'된 것을 발견해나가는 일이 중요하며, 바로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생각이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미사여구'로 장식된 말은 누군가의 모방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나로 살면서 터득한 말로 이야기하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무작위'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 말고 방법은 없다. 그것이 소크라테스가 서 있는 위치였다. 곧 '무엇을 말할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다. 오히려 '어떻게'가 정해지면 '무엇을'은 자연히 정해진다."

저자는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상태야말로 인간이 가장 지혜로 충만한 상태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무지의 지'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식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모르는 자신을 산다는 것은 조금 다른 영역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무지의 지'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인간성'은 완전하다. 왜냐하면 인간성은 누구나 대등하게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모두의 인간성 '상태'는 불완전하다. 누구나 발전하는 중인 불완전한 상태이기에 비로소 인간성을 기름으로써 인생의 깊이를 더하 수 있다. 그리고 불완전하다고 스스로 아는 것은 자신이 완전히 지혜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저자는 빨리 이해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현대인에게 데카르트의 <병법서설>에서 "어떤 사람은 타인이 20년이나 걸려서 생각한 모든 것을 고작 두어 마디 말을 듣고서는 하루 만에 다 알 수 있다고 믿는다. 머리가 좋으면 좋을수록 쉽게 틀릴 수 있고 진리를 파악하는 힘도 약해질 수 있다. 그들이 나의 원리라고 믿는 것을 토대로 삼아 터무니없는 철학을 만들어내는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며, 또한 그 잘못을 내 탓으로 돌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라는 문장을 거듭 읽어보라고 권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배워야 할 점은 '빨리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생각하는 것'이다. 저자는 빨리 이해하려는 것은 예지에 대한 모독이라고까지 데카르트는 느낀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더욱 위험한 것은 잘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것이며, 나아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에는 의미가 없다고 단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인에게는 수많은 것을 빨리 알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빨리 아는 것'보다는 '확실히 아는 것', '깊이 아는 것'이다. 곧 알아야 할 것을 알아야 할 때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데카르트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배우는 일'과 무언가를 '사는 일'은 다르다고 말한다고 전한다. 나아가 무언가를 '배우는 일'과 '사는 일' 양쪽의 길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어느 한쪽이 아니라 양쪽을 동시에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데카르트로부터 밝혀낸 것이다.

"공부는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공부해도 우리는 그것에서 다른 사람이 가르쳐준 것 외에는 배울 수가 없다.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은, 결국 제 손으로 찾아야 한다. 데카르트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진정한 배움이란 공부 바깥에서 자신이 만나야 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데카르트는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일은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리라. 가령 지금부터 내가 '사랑이란 이러한 것이다'라는 강의를 한다고 치자. 이때 내가 사랑이라는 문제에 대해 동서고금의 명저가 말하는 것을 소개하면 여러분은 그것에 관해 '배우는 일'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진정한 사랑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설명으로 '사랑'에 관해 이해했다고 생각한다면 진정한 배움이라 할 수 없다."

저자는 데카르트는 인간이 타인에게 영향을 주려 할 때, 그것에 무척 어리석은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타인에게 영향을 준다. 하지만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것만 생각하다 보면 막상 자신이 보이지 않게 되어 '말'에서 멀어지고 만다. 저자는 우리는 자신의 언행이 진정 자신의 '영혼'을 갈고 닦기 위해 좋은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한 것은 세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뀌는 것이다. 자신을 바꾸라는 것 뿐이므로 누군가를 흉내 내기를 바라지 않으며, 이것을 하나의 계기로 자신과 대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은 자기 자신을 다시 바라봄으로써 자신 안에 또 하나의 대화 주체를 발견하기 위한 책이다. 자기 자신을 다시 바라보고, 자신을 바꿔나가기 위한 책이다.(...)

자신 안에서 진정 우수한 타자를 얼마나 발견할 수 있을가. 데카르트는 자신과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과 깊은 대화를 펼쳐나갔다. 데카르트는 이것을 책상 위에서 고찰하지 않았다. 마흔한 살까지 책상에서 떨어져 직업이 다양하고 신분이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하여 <방법서설>이라는 책을 탄생시켰다."

저자는 철학자들의 생각을 뜻하는 '철학'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철학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 개개인을 의미한다. 누군가의 생각, 누군가의 언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대화하면서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철학을 구축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철학은 철학자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대전제를 세우고 20세기를 대표하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통해 '일'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제공한다. 저자는 인간은 누구나 방황할 때 재빨리 답을 찾고 싶지만, 그러면 인간은 그 답에 다소 속이 있어도 그것을 들이키고 만다고 말한다. 저자는 철학적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목이 마르다고 해서 독을 마셔서는 안 되며, 그 목마름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어떤 문제를 진정으로 생각하려 한다면, 어느 특정한 사람의 이론을 궁극의 해답처럼 생각하는 것이나 그렇게 생각하도록 재촉하는 것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그것이 철학의 전제라고 아렌트는 말한다.

이때 아렌트는 단순히 해답처럼 보이는 것을 의심하라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이 절대적인 말을 할 수는 없다는 전제에서 개개인이 각자 사고의 깊이를 더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저자가 노동과 일의 근원적인 차이를 말하는 아렌트의 글을 소개하여 인상적이다. 아렌트는 "노동이란 인간 육체의 생물학적 과정에 대응하는 활동력이다. 인간 육체는 자연스레 성장하여 신진대사를 한다. 그리고 결국 썩게 되는 이 과정은 노동에 의해 생명 과정에서 태어나 소비되는 생활의 필요물로 구석된다. 이때 노동의 인간적 조건은 생명 그 자체다. 일이란 인간 존재의 비자연성에 대응하는 활동력이다. 인간 존재는 종의 영원한 생명 순환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며, 인간이 죽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은 종의 생명 순환이 영원하다는 사실로 위안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은 모든 자연환경과 지극히 다른 '인공적' 세계를 만들어낸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아렌트는 노동은 생명 활동과 깊이 맺어진 행위라고 생각했고, 아렌트가 말하는 '노동'이라는 말에는 인간의 근원적인 존엄과 같은 것이 담겨 있다고 말한 이 책의 글귀에 깊이 공감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살아 있는 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만인이 항상 '삶'이라는 노동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곳에서 흔들리지 않는 의미를 찾아내는 데서 아렌트의 철학은 출발한다고 이야기한다.

"현대에는 아렌트가 말하는 노동의 의미가 퇴색된 채 '일'하기를 강요받는다. 그가 말하는 '노동'을 잊은 채로 일의 평가에 따라 인간의 삶이나 존재를 판단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자. 일 없는 노동은 성립하지만 노동 없는 일은 성립하지 않는다. 일 위에 노동이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과 직결된 노동 위에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일'이 꽃피우는 것이다.

일의 현장에서는 노동력이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그러나 이 말이야말로 아렌트가 말하는 '노동'에서 가장 동떨어져 있다. 그가 말하는 노동은 그 사람만 행할 수 있다는 고유한 의미를 지닌 생명의 행위를 가리킨다. 그런데고 노동력이라는 말은 노동을 대체 가능한 양적인 것으로 치환해버린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요시모토 다키아키의 <공동 환상론>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이 책을 소크라테스부터 시작하여 요시모토 다카아키로 끝내려 한 것은 그가 누구를 대하든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강속구로 날리는 사람으로, 자신이 살아낸 모습과 실로 가깝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요시모토 다키아키는 개인의 내면에 깃든 인간을 신뢰하는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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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한 불복종자 - 관계를 지키면서 원하는 것을 얻는 설득의 심리학
토드 카시단 지음, 이시은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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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을 위해 반대할 수 있는 용기와 가치의 힘을 배울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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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한 불복종자 - 관계를 지키면서 원하는 것을 얻는 설득의 심리학
토드 카시단 지음, 이시은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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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복종이라는 용어는 매우 오랫동안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춰졌다. 하지만 아이디어가 진화하고 사회가 발전하려면 통념에 도전하고 경직된 생각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의 안락함에 기댄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변화는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사회에 반해 파괴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는 다른 불복종자와 달리 사회와 인류의 이익을 위해 안전한 다수 세력에서 벗어나 불편한 길로 자처해 나아가는 '원칙적인 불복종자'는 권위에 맞서 성공 가능성과 기회를 잡으면서도 반발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려 애쓴다. 지금까지 대부분 진보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사회 규범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기존 통설이 어떤 부분에서 옳지 않고 머물러 있으며 심지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반대 주장을 제기했으며, 그에 반대하는 수많은 사람을 뛰어넘었다. 이견은 진보로 이어진다. 반대 의견을 금지하면 문명의 진화 속도는 느려진다. 이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만 다수 의견에 반하는 목소리를 낼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은 드물다.

최근 수십 년간 연구자들은 감정, 자기 조절, 창의성, 설득, 소수 영향, 집단 간 갈등, 정치심리학, 집단 역학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면서 ‘남들과 다른 의견’을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지 밝혔다. 이와 함께 다수의 사람이 익숙한 생각을 벗어나 반대 의견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과학적 발견들이 알려지면서 불복종자들의 값지고 체제 전복적인 의견이 수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원칙적인 불복종자들이 대중을 설득하려면 정서적인 저항을 극복하는 소통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온화한 불복자들>은 일상생활을 개선하는 실용적인 방법들을 과학에서 찾아내 대중에게 알리는 심리학자이자 웰빙과 회복력, 심리적 유연성, 삶의 의미와 목적, 호기심, 사회적 불안 관리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인 저자 토드 캐시던이 10년간의 연구를 종합해 찰스 다윈, 넬슨 만델라, 레오나르도 다 빈치, 마틴 루서 킹, 니콜라 테슬라, 스티브 잡스 증 관습적인 사고를 거부하고 진보를 추구한 불복종자들의 예시와 심리학 이론을 들어 반대 의견을 좀더 효과적으로 피력하는 실용적인 방법을 익히게 함으로써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을 극복하고 일반적인 통념을 창조적이고 개방적인 생각으로 대체해 개인, 조직, 사회의 생활이 원활해지고 발전하도록 안내하고, 나아가 이로써 세상에 정의, 창의성, 용기가 더욱 가득하기를 희망하는 책으로 흥미롭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사람을 위해 쓰였다. 적어도 일부 통념과 관행이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 이 세상에 정의, 자유, 경제적 안정, 대의, 공동체, 인간다움이 늘어나기를 염원하는 사람. 비순응의 가치를 이해하고 쓸모없는 규범을 폐지해 진보를 이루려는 자유사상가들이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사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때로는 웃고 욕하고 즐기면서 세상을 바꿔도 좋다고 믿는 모든 사람."



저자는 원칙적인 불복종은 2차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사회를 개선시키려는 의도의 반항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원칙적인 불복종자들은 가치 있고 중요한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추진력을 얻고자 한다. 어느 순간 그들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의 이익을 위해 안전한 다수 세력에서 벗어나 불편한 첫걸을 떼기로 결심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사회를 개선하려면 원칙적인 반항이 필요적이며, 반항은 당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더욱 충요롭고 재미있고 충만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대다수 사람들이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는 익숙한 현재 상황에 안도하고, 체제의 위협을 느끼면 하나로 뭉치고, 현재 상태에 의존한다고 느끼며, 앞으로 더 나아지리라 희망을 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오랫동안 널리 받아들여진 관습과 신념에 따르는 것은 인간 본성이며, 미래의 불복종자는 이런 편양을 인정해야만 그에 대처하고 궁극적으로 넘어설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원칙적인 불복종은 우리의 인지 편향을 무력화하고, 창의성을 북돋우며, 더 많은 불복종을 부추긴다고 말한다. 저자는 집단에 반대자가 1명이라도 있으면 사안을 신중하게 고려하면서 반대자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충분한 근거를 검토하려는 동기가 생기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개방적인 태도를 취해서 좀더 반항적으로 행동하고, 다르게 생각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을 취하기를 바라며, 주변에서 만나는 반항자들을 좀더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특히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때도 그러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반대자의 입장을 접하면 우리는 상반된 입장을 지지하는 근거를 검토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실을 점검하는 데 마음을 열고 자신의 입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동기 부여된 추론과 확신에 계속 얽매이기보다 더 비판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게 된다. 편파적으로 생각하는 성향이 줄어들고 사심 없이 진실을 추구하는 과학자처럼 생각하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집단 안에 반대자가 있으면 구성원들은 노력이 덜 드는 정신적 지름길을 포기하고 좀더 정교하고 깊이 있게 정보를 처리하는 태도로 전환된다."

저자는 당신이 원칙적인 불복종자라면 친근한 태도와 회유적인 접근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상 유지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망신 주거나 비난하거나 폄하하지 말고, 기존 통념의 옹호자들을 앞으로 당신의 협력자가 될 사람들로 여겨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원칙적인 불복종자로서 처음부터 호감을 얻으리라 기대하지 말고, 혁명이 아니라 진화를 목표로 삼으며, 변화의 주체가 되는 것은 반항자인 당신의 소명이자 특권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반항에 따르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며, 고통을 의연하게 견디려면 새로운 비장의 무기인 '심리적 유연성'을 개발하라고 말한다. 심리적으로 유연한 사람들은 생각, 감정, 행동을 주어진 상황에 적절히 맞추면서도 반드시 자신에게 중요한 일에 중점을 두고 행동하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사명과 도덕적 근거가 명확하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견뎌내며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이 이루려는 목표를 확실히 알면 다른 사람들의 혹독한 비난에 개의치 않고 자기가 가려는 길을 자신 있게 걸어갈 수 있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불복종자가 일단 성공해 권력을 얻으면 기존의 가치를 내팽개치고 자신이 약속했던 대의를 이루는 데 실패해 기대에 못 미치는 행보를 보이는 것에 대한 경고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저자는 인간이 천성적으로 얼마나 부족 중심적이며 특히 권력이 교체되는 시점에 그렇다는 점을 알면 한때 우리를 의심하거나 박해했던 사람들을 악마로 몰아가고픈 충동을 자제하고 좀더 사려 깊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권력에 의해 자기 인식이 어떻게 흐려지는 지를 계속 주시하고, 자신의 확립된 가치관을 자주 상기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승리한 반항자들은 비판적인 사고방식을 키워서 누가 제기하든 선의의 회의론을 환영하며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통설을 수정하고 개선하는 회의론의 힘을 인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리는 같은 집단 구성원들에게 공감하고 자부심과 기쁨을 나누며 그들의 요구에 응하지만 외부인에게는 그렇게 행동하지 못한다. 우리는 같은 집단 구성원들이 '타자'에 대해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며 착취적으로 행동할 때는 못 본 척하고, 외부인을 공공의 적으로 지목해 그들의 반대편으로서 우리 집단을 규정한다. 힘든 상황에서는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이나 대상을 비난하는 편이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역학관계로 인해 성공한 불복종자들이 기존 다수파 구성원들을 모질게 탄압하고 불필요한 고통을 초래하는 일이 매우 자주 반복된다. 또 불복종자들은 이 몰락한 다수파의 잠재적으로 유용한 의견을 묵살해 향후 분쟁이 발생할 빌미를 제공한다."

"역사적으로 혜택받지 못하던 소수자들이 권력을 잡게 되면 반드시 자제력을 발휘하도록 힘써야 한다. 그들과 똑같이 바라보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고용하거나 존중하거나 경청하기보다 다양한 차이를 존중하고 모든 사람을 환영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그들이 중시하는 일반적인 이데올로기 검사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해도 말이다. 권력의 영향력은 피부색, 성벽, 사회 경제적 배경, 섹슈얼리티, 그 밖의 차이점이 아니라 우리의 지성과 지혜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활발한 토론 문화를 장려해 모든 사람의 아이디어가 그 가치에 따라 평가받고 모든 종류의 회의론과 불복종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저자는 불복종자들과 더 생산적으로 교류하기 위해 자기 거리두리를 연습하라고 말한다. 자기 거리두기가 가능한 사람들은 감정이 격해지는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잘 유지할 수 있다. 자기 거리두기를 연습하면 당신과 반대되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에 노출되어도 방어적으로 반응하는 일이 줄어든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호기심을 키워, 생소하거나 반대되는 관점을 마주했을 때 당신의 신념을 건전하게 회의하는 데서 시작하라고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이 제시하는 의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저자는 비순응적인 아이디어를 더 잘 순응하기 위해 '의도적인 겸손'을 실천하라고 말한다. 자신이 잘못 알고 있을 가능성을 스스로 인정할 때 원칙적인 불복종의 가치에 더 감사하게 되고 반항자들을 더 존중하게 된다. 저자는 그래야 무조건 외면하거나 침묵 속에 움츠러드는 대신 약자를 위해 더 기꺼이 싸울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원칙적인 반항자들을 키우려면 아이들이 스스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과거의 모험이나 미래의 계획을 이야기할 때는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아이들에게 원래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도전할 때는 불안한 생각과 감정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원칙적인 불복종은 자유롭게 정보를 수집해 헛소리에서 유용한 정보를 걸러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의견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저자는 아이들은 자유롭게 질문하며 양질의 정보와 질 낮은 정보를 구분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야 하며, 섣부른 판단이나 성급한 분석을 자제하고 비판적인 분석 과정을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형태의 용기를 알려줘 자신의 용기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제공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세상에는 여전히 많은 불필요한 고통과 부당함, 불평등, 비효율성, 명백한 오해가 존재한다. <온화한 불복종자는>는 원칙적인 불복종자가 되기 위해 독자에게 오늘 무엇을 바꿀것인가에 대해 질문하고 세상을 바꿀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용기를 북돋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인간종이 존속하려면 우리 모두 다음 세대가 우리보다 비순응주의자들에게 잘 적응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원칙적인 반항자들을 육성함으로써 자신의 의견이 있고 그것을 표현할 용기가 있는 후손의 손에 우리의 미래를 맡겨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불복종자들을 처벌하거나 내쫓기보다 반항심이 그들 세대의 슈퍼 파워, 즉 성공의 열쇠임을 인정하고 그 힘을 해방시킬 것이다. 결국 용기 있게 질문하고 도전하고 해체해 기존의 역기능적인 체제를 더 나은 체제로 대체할 것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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