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라이즌>은 전미 도서상 수상 작가 배리 로페즈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역작이다. 뿐만 아니라 <호라이즌>은 배리 로페즈가 자신의 여행 경험을 집대성한 책으로, 그가 선보인 글 중 가장 방대하면서도 장소와 사유를 옹골차게 엮은 논픽션이다. 북극, 남극, 북태평양, 남태평양, 아프리카, 호주 등 여섯 지역을 갈무리해, 하나의 교향곡처럼 아름답고 치밀하게 재구성해냈다. 로페즈는 이들 장소를 배경으로, 북극권 지역으로 용감하게 파고든 선사시대 사람들, 아프리카를 침략한 식민주의자들, 태평양을 항해한 계몽주의 시대의 유럽인들, 외교의 문을 걸어 잠근 아시아로 건너간 미국인들 등을 엮어 탐험과 여행을 둘러싼 인류의 오랜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한편, 인류의 기원, 땅의 역사, 생물들의 뒤섞임, 탐험과 식민주의, 기후변화에 대한 윤리적 과학적 성찰 등 다양한 영역의 주제들을 탐색해나간다.

이 책의 키워드가 되는 '여행'은 로페즈에게 지혜를 모으는 활동, 자신을 바꾸는 행동이다. 그는 익숙한 것의 경계를 넘어가 미지의 세계로 향하기 위해 끊임없이 길을 떠났고, 눈앞의 풍경을 보면서 기꺼이 경이로움에 사로잡혔으며, 길 위에서 만나는 낯선 것들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더불어 각각의 장소를 거쳐 간 인물들을 호명하고 서로를 탁월하게 연결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인간이 노정하는 모순을 외면하지도 경멸하지도 않고 기꺼기 끌어안으며 끝내 초월한다.

저자는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주장했을 때, 그리고 다윈과 월리스가 인간은 우주 최상의 피조물이 아니라고 선언했을 때, 이어서 융과 프로이트가 합리적인 정신이 호모 사피엔스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밝혀냈을 때, 신학은 그에 적응하거나 최소한 반응이라고 해야 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오늘날 여러 선진국에서 인간이 처한 실제 환경이 삼차림 단종 재배 '숲'과 오일샌드 석유, 목축으로 거덜 난 초원, 한때 물고기가 번성했던 바다에 스모그처럼 떠나니는 미세 플라스틱 구름이라면, 인류의 문화는 상실에 대한 감상성과 생존의 긴급성을 구별한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국민국가의 경쟁적 정치보다는 더 의의 있는 정치를 확립하고, 영리가 아니라 보존에 기초한 경제를 세워야 한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저자는 다양성은 단순히 생명의 한 특징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말한다 다양성은 전반적으로 생명에 활력과 지속 가능성을 부여하는 생물학적 긴장을 조성한다. 저자는 영속성을 보장하는 것은 바로 다양성이라고 이야기한다. 다양성을 잃으버리면 모든 생명은 별종의 위험에 놓인다는 저자의 글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생태계의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기 위한 전략을 아는 것은 오랫동안 인류의 모든 공동체에서 지혜를 전수하는 이들의 핵심적 책무였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경제'라 불리는 저 압도적 괴물에게 인류가 저항할 방법은 그 괴물을 움직이는 본질적 연료인, 생명에 대한 무관심을 떨쳐내는 것이다. 개벌은 건강한 경제가 아닌 생명에 대한 무관심의 외적 신호다. 그리고 벌목이 끝난 뒤 새로 들어와 일부 토착종을 대체하며 '잡초 종'이라고 멸시당하는 종들 역시 더 하찮은 생명이 아니라, 멸종 위험에 대항하는 생명의 근본적 저항을 보여주는 신호일 뿐이다."

저자는 토착민들은 역동적인 사건 안에 자신들을 집어넣었고, 또한 그 사건에서 즉각적으로 의미를 해석해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들의 접근법은 그 사건이 계속 전개되도록 둔 채 모든 것을 알아차리면서, 거기 있는 의미가 무엇이든 알맞은 때에 그 의미가 드러나도록 두는 것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경험에서 얻은 교훈은, 만약 내가 사건을 더욱 깊이 이해하기 바란다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자세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뿐 아니라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관찰하는 동안 정의하거나 요약하려는 충동에 저항하고 머리로 분석하는 일을 유예하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미를 파악하려는 익숙한 충동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나아가 나는 토착민들이 관찰하는 방식의 핵심적 특징도 흡수해야 했다. 그들은 개별적인 대상들보다 자신이 만난 것에 내재한 패턴들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

저자는 교도소는 갱도 안의 사나리아와 같다고 말한다. 자유로운 사회에 사는 우리는 정확히 어떤 이들이 교도소에 있어야 할 사람인지 항상 질문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교도소는 심지어 자유로운 사회에서도 자행되는 악의적인 불관용을, 예를 들어 재판관들과 그 외 재량권을 지닌 다른 사람들이 타인에게 감정이입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더 나은 사회질서를 만들려면 교도소가 인간 본성의 전체 스펙트럼에 관해 폭로하는 바를 받아들여야 하고, 수감자들이 사회의 안정을 크게 위협하는 존재라는 순진한 믿음도 버려야 한다. 내가 보기에 난민의 이산과 야생동물의 개체군 감소, 신경증적 소비주의의 원인들을 오로지 자신의 재정적 안녕을 확보가히 위해 부인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더 큰 위험이다."

저자는 산업혁명으로 인간의 환경에 일어난 급격한 변화들이 우리를 그토록 불안하게 하는 이유는, 그 변화들로 우리가 좋은 미래를 맞이할 거라는 예상을 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그보다는 오히려 호모 사피엔스가 처한 물리적 환경의 대대적 변화들이 과학자들이 보기에 전례 없는 속도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기술 혁신이 세상 상당 부분의 문화를 동질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호기심 많고 주의 깊은 떠돌이 여행자에게 여행은 세상 어디에도 완전히 똑같은 장소는 없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게 해준다고 말한다. 여행은 과거부터 이어진 상식을 수정하고 선입관을 떨려버리도록 자극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우리의 정신이 맥락을 고려하도록 유도하고, 인류에 대한 절대적 진실의 독재에서 정신을 해방한다고 이야기한다. 여행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길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해주고, 사람은 똑같은 길보다는 자신만의 길을 가고 싶어한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저자는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관점 하나는 그들이 위기에 처한 환경에도 아랑곳없이 특정한 정통적 신념을 고수하느라 스스로 함정을 팠다는 생각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문화는 진보한다는 신념 또는 사회적 동물이 개인의 물질적 부를 추구하는 일은 정당하다는 신념이 그들을 함정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함정을 내파하고 해체하려면 인류는 오랫동안 신념으로 품어왔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셈법을 사용해 항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함정에 대처할 유망한 첫걸음은 전 세계 다양한 전통에서 내려오는 지혜를 한데 모으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존을 위한 그들의 철학은 다윈이 모든 생물학적 현상에 내재해 있다고 암시했던 바로 그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소산이다. 그러한 오래된 지혜를 이어가는 사람들은 어느 세기 어떤 격변에도 잘 대응하여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인류의 가장 급박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기술혁신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해결책은 인간이 가장 큰 가치를 두는 것을 심층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있다."

저자는 풍경을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리기를 원하고, 해충들을 제거해 풍경을 개선하기 원하며, 환경과 함께 진화하지 않은 탓에 환경을 황폐하게 만들 수 있는 특별한 힘을 지닌 식물들과 동물들을 제거하려는 현대의 충동은 생물학적으로도 윤리적으로 실질적으로도 충족시키기에는 너무 까다로운 욕망이라고 말한다. 생물학적으로도, 어떤 풍경오 고스란히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한다.

"한 장소에 식물들과 동물들을 다시 들여놓는 행위는, 인간이 이런저런 조작으로 한 장소를 파괴하기는 했지만 인간의 조작으로 원래로 되돌릴 수 있다는, 대범하지만 잘못된 관념을 품고 있다. 진화의 방향은 뒤집을 수 없으며, 코가 풀린 스웨터를 수선하듯 풍경을 다시 수선할 수는 없다. 복원은 다른 동식물을 제치고 특정 동식물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일이므로, 사회공학 프로젝트나 한 국가의 인종 및 민족 차별 정책에서 맞닥뜨리는 것과 똑같은 윤리적 문제를 일으킨다."

<호라이즌>의 저자 배리 로페즈는 남극 대륙에 있을 때는 거의 매일 무언가에서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말한다. 빙관에서 소행성의 조각을 집어드는 일, 남극 뮤온 및 중성미자 감지 간섭계 프로젝트의 일부가 진행되고 있는 남극점의 블루 라이트 터널을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지나가본 일, 크로지어곶의 거대한 펭귄 서식지, 미라가 된 물범의 이마에 손을 대어본 일, 이런 일들은 저자가 다른 곳에서 목격했거나 알고 있는 끔찍한 일들에 대한 위안이 되어주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경험을 존중하고 흡수하고 싶었고, 누구든 그 경험이 필요할 사람에게 나눠주고 싶었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 한 법의학자가 수천의 인생을 마주하며 깨달은 삶의 철학
이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문난 독서가이자 매일 죽음을 만나는 사람, 그러나 누구보다 유쾌한 법의학자 이호 교수가 들려주는 '어떤 죽음의 이야기들' 속에서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본다. <그것이 알고싶다>의 자문 법의학자이자 <알쓸인잡>, <유퀴즈>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도 익숙한 이호 교수가 "잘 살고 싶다면 죽음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며, 그의 첫 책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을 출간했다. 지금까지 30여 년간 약 4천 여 구의 변사 시신을 부검해온 그는 이 책에서 그동안 마주한 여러 죽음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들려준다.

"법의학자로서의 세월은 죽음보다 주검을 마주해온 시간이었다. 주검을 마주하기 전 고인의 삶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먼저 검토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느낀 단상들을 글로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애써 기억해야만 하는 죽음, 반드시 전해야 하는 메시지를 남기고 간 죽음, 조금만 주의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죽음, 남은 사람들의 죄책감을 덜어주어야 하는 죽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운명처럼 만난 몽테뉴의 <수상록>에는 "내가 책의 저자라면, 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죽음을 기록하고 또 논쟁할 것이다. 죽음을 가르치는 사람은 동시에 삶도 가르쳐야 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 문장이야말로 내가 이 글을 쓰게 한 힘이었다."

이 책은 '1장 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 2장 삶은 죽음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는가, 3장 나의 죽음, 너의 죽음, 그리고 우리의 죽음'이라는 3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죽은 자는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경위로 부검이라는 자리에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의 애달픈 사연을 굽이굽이 알 수는 없지만, 저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가 자신의 몸을 통해 전하는 마지막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연 없는 시신은 없다. 이번 부검은 30분 정도로 비교적 빠르게 끝이 났지만, 시신의 손상 정도에 따라 길게는 한 시간 반 가까이 걸릴 때도 있다. 고인이 살아온 수십 년의 세월을 짐작하기에는 그것도 짧다.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한 사람, 병 들어 홀로 죽음을 맞이한 불법체류자, 남편과 부부 싸움 끝에 살해당한 부인, 법의학자는 부검을 통해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듣게 된다. 고인이 미처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이야기를 듣고, 떠나는 삶이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그를 대신해 변호를 해주기도 한다."

저자는 자신이 그랬듯 모든 법의학자는 직업 선택의 십계를 따른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법의학자는 월급이 적은 곳,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고, 오히려 사람이 거의 없는 황무지 같은 곳, 부모나 아내가 결사반대하는 곳으로 기꺼이 걸러온 사람들이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이는 자신이 원하는 곳이 아니라 자신이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한 법의학자들의 숭고한 사명감을 이해할 수 있는 글이다.

저자는 한 사람의 생애의 마지막은 죽음이며, 우리가 누구와 누구의 혼인으로 출생되었다는 사실을 기록하듯이,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앎으로써 인생이 이루어나가듯이, 죽음에도 앎의 완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죽게 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망자를 대신하여, 살아남은 우리가 죽음의 육하원칙을 완성해야 한다. 그것은 떠나간 사람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또 그들을 밀어낸 이 세상을 살아갈 우리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저자는 법의학자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자신이 무상과 허무를 많이 느낄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오히려 생에 대한 강한 의지가 생긴다고 말한다. 마치 나무의 맨 끝이 곧 맨 앞인 것처럼, 타인의 생의 끝에서 느낀 메시지를 품고 돌아서서 다시 삶을 향해 샐운 시작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자주 느낀다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정상에서 굴러떨어진 바위를 끊임없이 다시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부검을 하면서 언제나 결과에 대한 처벌과 책임에만 몰두하는 게 답답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 전에 먼저 파악하고 제거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나', '어디선가는 여전히 삐걱대는 시스템 속에서 누군가가 또 죽음의 위험 앞에 노출되어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예방법의학을 만들자고 주장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전북대학교로 오자마자 병원장을 설득했다. 임상의학도 예방법의학의 차원에서 다룰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무적으로는 쉽지 않았다. 예방법의학을 담당할 부서가 없었고, 의료 분쟁에 대해서 행정적 직원 한 명이 사건을 모두 처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법의료실을 만들어 시범적으로 운영해보기로 했다. 이 일은 법의학자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과감히 밀어붙였다. 인력을 충원하고, 시스템을 만드는 일부터 전반을 직접 주도했다. 그렇게 일 년을 해보며 팀을 꾸릴 수 있게 되었고, 공식적으로 법의료실이 만들어지며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저자는 유족들과 대화하거나 합의할 때는 마음을 담는다는 중요한 원칙을 지키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먼저 그 마음을 보아야 유족들도 그런 자신의 마음을 받아준다고 이야기한다. 환자나 가족들의 말과 행동만 볼 게 아니라, 그 이면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자신이 일을 오래 해온 덕분에 때로는 슬픔과 서운함이 분노로 표출되기도 한다는 걸 잘 알고, 시간이 시가면 유가족의 성난 마음이 가라앉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법의학자로서 첫 번째 사건으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겪고, 연이어 경기여자기술학원 화제 사건,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 침몰 사고 등 대형 사고들을 수습하다 보니 지금까지도 자신이 가장 신경 쓰는 주력 분야는 대형 참사와 안전 문제가 되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한 사람의 생명은 행성의 무게보다도 무겁다고 이야기한다. 하나의 죽음보다 다수의 죽음이 더 무겁다고는 할 수 없지만, 죽음은 그렇게 숫자로 따질 수 없는 것이지만, 수백 명이 사망한 현장에 있도라면, 그 거대한 슬픔과 분노가 살아 있는 인간을 압도한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내가 삼풍백화점 붕괴 속보를 듣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하듯이, 사람들은 각자 대구 지하철 화재 속보를 보았을 때, 혹은 세월호 침몰 뉴스를 보던 때 자신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선명히 기억할 것이다. 대형 참사는 어느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트라우마가 되기 때문이다. 치유가 동반되지 않는 한 우리는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치유는 잊고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직시하는 데서 시작된다."

"안타깝게 사고의 희생자가 된 분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사고의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두 번 다시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 그리고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그들의 죽음을 잊지 않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개별적인 실수 하나하나를 탓하고 몰아세우는 일은 때로는 참사를 예방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실수의 연쇄를 끊는 것이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하나의 작은 실수가 발생했을 때, 이를 감추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와 이미 벌어진 실수를 통해 오류를 분석하고 예방책을 빠르게 세울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약병 라벨을 혼동할 수 있고, 아무리 타인의 실수를 일깨워주어도 도무지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개인의 주의 집중만으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인간에게 잘못을 묻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다. 책임자의 처벌은 그 다음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실수가 인간의 본성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저자는 법의학을 하면서 수사에 도움이 되도록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이 자신의 업무라고 말한다. 법의학자는 굳이 유족을 만나지 않고 사건을 의뢰한 담당 경찰하고만 소통해도 된다. 그러나 저자는 사법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의사로서 법의학을 선택했기에, 부검한 후에는 반드시 유족들과 만나 대화를 나눈다고 이야기한다. 그제야 비로소 의사로서 소임을 완수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글이 깊은 울림을 남긴다.

"나는 의사인 동시에 법의학자이니 누구보다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다. 가족의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라 풀어주어서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으로 나만의 애도를 한다. 그건 의사라는 소명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저자는 죽음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시신을 많이 보면서 느낀 생각을 독자에게 전하는 글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시신을 본다는 건 죽음의 원인과 이유를 밝히는 일이므로 죽음과 연결되어 있는 삶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죽음을 통해 그의 삶과 그가 맺고 있는 관계들을 마주하게 되며, 죽은 이와 연간된 사람을 만날 일도 많아지고 희생자와 범죄자, 그리고 그 가족들의 삶도 들여다보게 된다는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잘 살아온 사람이 잘 죽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사람을 통해 그의 삶과 그 너머의 것들을 보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죽음을 접하며 우리 사회의 여러 단면을 마주하게 된다. 지금 우리 삶이 얼마나 각박한지, 가족 관계가 얼마나 무너졌는지, 불신으로 가득한 사회가 서로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좀 더 자주,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게 된다고 할까."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돈이 많고 적고는 별로 의미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단한 관계다. 주변인과의 유대 관계가 튼튼한 것이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걸 수많은 죽음을 만난 후에 알게 되었다. 아무리 부자여도, 사회적 명성이 화려해도 의미 있는 관계가 없는 이들의 죽음은 초라하다.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좋은 관계는 우리를 지켜주는 방패와도 같다."

저자는 잘 사는 웰빙도, 잘 죽는 웰다잉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더해 '웰빈'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잘 비우는 삶'을 말한다. 저자는 삶을 길게 바라보면 자신이 가진 어떤 것도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영원히 움켜질 수 있을 것만 같은 돈도, 자동차도, 집도, 죽는 순간에는 아무것도 아닌 한갓 사물에 불과하다. 그저 이 세상을 잠시 살아가는 동안 빌려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저자는 영원히 내 것이란 없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죽음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나의 죽음, 너의 죽음, 그들의 죽음'이다. 저자는 나의 죽음은 경험할 수 없고, 너의 죽음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라 상실과 애도가 있으며, 그들의 죽음은 나하고 상관없는 죽음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저자는 조금 생각을 바꿔서 '나의 죽음, 너의 죽음, 우리의 죽음'이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들의 죽음이 아닌 우리의 죽음, 그들로 대상화하는 게 아니라 우리로 포용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글이 죽음에 대한 다채로운 질문을 던진다.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의 저자인 이호 교수는 어떤 태도로 사느냐에 따라 죽음의 모습이 달라지고, 얼마나 좋은 죽음을 만느냐에 따라 좋은 삶이 결정된다고 말한다. 행복하게 사는 것 못지않게 죽음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조금은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문화, 고독한 이의 죽음을 함께 나누는 문화, 삶만큼이나 죽음도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문화가 확산되면 좋겠다는 이호 교수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 - 대낮의 인간은 잘 모르는 한밤의 생태학
팀 블랙번 지음, 한시아 옮김 / 김영사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방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생태학자 팀 블랙번이 작은 나방으로 거대한 자연의 퍼즐을 맞추어나간다. 어둠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나방의 탄생과 죽음을 생생히 관찰하는 동시에, 그들의 삶에 깃든 생존의 번식, 자원과 경쟁, 피식과 포식, 군집과 이주의 규칙을 하나의 지도로 연결한다. 혼돈과 질서가 뒤얽힌 이 지도는 법칙이 있는 듯하면서도 없고, 자주 우연에 좌우되며, 인간의 방정식으로는 전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경이롭다. 책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는 멸종이 가속화되고 있는 시대에 시적인 문체로 '다양성'의 감각을 길러주는 생태학 입문서다.

이 책은 '1장 창문을 탈출한 에벌레: 번식의 힘, 2장 먹이로 그리는 지도: 한정된 자원의 결과, 3장 붉은 이빨, 붉은 발톱: 소비자도 소비된다, 4장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짧고 굵게 또는 길게 오래, 5장 모자이크라는 환상: 종의 공동체, 6장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이동한다: 이주의 힘, 7장 분화와 멸종 사이의 춤: 다양성이 이끄는 곳, 8장 종을 잃다: 인류는 어떻게 생태계를 대변하게 되었나, 9장 연약한 실: 긴 반전의 역사'라는 9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내 나방 덫에 나타나는 나방의 종류와 수는 내 이웃 주민이 지난주에 무엇을 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영겁의 시간과 대륙의 작용이 얽혔을 수도 있다. 자연의 일부에 울타리를 쳐놓고 번성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아니, 그 조각이 생존하기를 바라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저자는 나방에 관한 책을 쓰기보다는 나방과 나방에 대한 사랑을 자연의 작동 방식을 드러내는 도구로 활용하고 싶다고 말하여 눈길을 끈다. 저자는 우리가 나방이라는 작은 생명에게 주의를 기울일 때 그들의 상호관계, 더 넓은 생명 그물과의 연결 고리 그리고 생명에 관한 더 큰 진실이 우리 앞에 조금씩 드러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완전한 환경의 서사를 고려하지 않고는 나방 덫의 내용물을 이해할 수 없다. 작은 상자 하나에 담긴 내용물은 자연의 작용에 달려 있으며, 동시에 그 자연의 작용 방식을 비추는 빛이다."

저자는 모든 유기체는 탄생과 죽음으로 그 시작과 끝을 맺지만 그사이에 무엇을 하는지가 그들 종의 정체성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성장과 생존, 번식을 위해 이러한 필수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삶의 역사를, 즉 빠르게 삶을 살아내고 일찍 죽음을 맞을지, 아니면 노년을 경험하는 삶이 될 수 있을지를 결정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주제에 대한 그들의 선택은 그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과 시기를 결정하고, 나방 덫을 통해 드러나는 형태의 다양성도 결정하며, 나방의 삶에 왜 정답이 없는지 설명해준다고 말한다.

저자는 나방은 어떤 점에서는 포유류와 유사하고, 또 어떤 점에서는 차이를 보이는 이유로 양육 방식의 차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나방은 양육을 위한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나방은 알에 영양소를 공급하는 것과 알을 낳을 좋은 장소를 물색하는 것 말고는 양육을 위한 다른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 자손을 약육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경우, 자손을 돌보기 위해 그 수를 조절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는 번식의 관점에서는 손해가 전혀 없는 선택인 것이다.

저자는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은 모든 생명이 지속되는 데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움직일 수 없다면 개체는 새로운 자원을 이용할 수 없을 것이며, 개체군은 성장할 수 없고, 군집은 다양화할 수 없다. 이동은 개인의 일상적 이동부터 대륙이나 해양 사이를 오가는 개체균의 밀물과 썰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연속적인 과정이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이동은 모든 수준에서 생태학적 복합성에 작용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며, 우리는 편의를 위해 이를 무시하곤 한다. 하지만 생물체의 이동이 없다면 내 나방 덫은 그저 조명 달린 빈 상자에 불과할 것이다."

저자는 전 세계 자연 개체군에서 광범위한 감소세가 발생하는 이유는 인간이 죽음을 더하고 출생을 억제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종이 인간의 행동이 야기한 죽음 때문에 쇠퇴하고 있고, 인간은 의도적으로 곤충을 죽인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인간은 서식지를 소비함으로써 많은 종의 사망률을 높였다고 이야기한다. 포식자로서 인간은 소실과 멸종에 관한 가장 상징적인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살충제는 물론 농업을 방해하는 해충을 목표로 살포하지만, 화학 물질이 목표한 자리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공기에 날린 미세한 입자로도 나방과 다른 곤충이 죽을 수 있다. 다양한 물질이 액체 형태로 뿌려지며, 이 물방울은 바람을 타고 주변 서식지로 날아간다. 이렇게 표류한 화학물질은 해충을 죽이기 위해 권장되는 농도보다 훨씬 낮은 농도로 주변에 뿌려지지만, 매우 낮은 농도로도 나방과 다른 공충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저자는 인류는 끝없는 놀라움과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자연을 갉아먹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큰 패배를 겪게 되는 것은 인간일 것이라는 저자의 경고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방 덫은 내게는 기쁨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환경의 표본을 채집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나방의 숨겨진 세계를 그려낸 작은 조각들을 한데 모아 이 세계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완성해나가는 이 그림은 사진이 아니라 영상이다. 한 장면 한 장면 지나갈 때마다 그림은 바뀌어간다. 아무리 오랜 삶을 살아낸 사람일지라도 그림의 극히 일부만을 경험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장면들에게 배우가 변화하고 이야기가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오래 지켜보지 않아도, 장면 속 배우들이 행복한 결말을 맞지 못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저자는 나방의 삶은 규칙이 산물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출생률과 사망률, 경쟁과 포식의 역할, 성장, 생존, 번식 간 자원 분배, 안정화와 평등화, 서식지화의 주체와 소실 위기 개체군 구조자로서의 이주, 시간, 공간, 에너지가 다양화에 미치는 영향 등이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져 종의 풍부도와 공존을 촉진하고, 종의 서식지와 그 수를 결정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이것이 생태학의 기존이자, 나방 덫이 제기하는 질문에 대한 답의 핵심이라는 말한다. 하지만 삶이 규칙에 의해 형성되지는 않고, 자신에게 진정으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우연의 역할이라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번식의 힘, 이주로 인해 선물처럼 주어지는 구조의 기회, 자연선택의 독창성은 분명 대단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보는 모든 생물이 지금 그곳에 존재하는 이유는 그 조상이 계속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부분의 종이 실패한 곳에서 살아남아 번식했다. 소행성 충돌과 혹독한 빙하기와 온실기후에서 살아남았으며, 수백만 종을 멸종시킨 해양 산성화와 산소 결핍 또한 견뎌냈다.

그들은 극심한 더위와 추위를 이겨냈고, 폭풍과 가뭄을 피했으며, 포식자를 피했고, 전염병에서 살아남아 새로운 자원을 찾았으며, 개체 수 감소도 회복해냈다. 그들은 기회의 창밖으로 뛰어들었으며, 런던의 따스한 밤 속으로 날아올랐고, 눈부신 형광등 불빛이 그들을 환하게 비추었다. 규칙은 삶의 양상을 정의하지만, 그것에 색을 입힌 것은 바로 운이다."

저자는 자연의 작은 구석이 파괴될 때마다 자연계 전체가 결국 패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작은 손실은 우리 모두가 함께 탄 배에 조금씩 구멍을 뚫는다. 저자는 자연은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를 지탱해주지만, 우리를 한꺼번에 침몰시킬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방 덫을 운용하며 우리가 얻는 가장 큰 깨달음은 바로 자연이 얼마나 연약한 실에 함께 매달려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게 해주는 것이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나방 덫에는 때로 수많은 나방이 들어 있기도 하고, 비어 있기도 한다. 우리는 어떤 규칙이 이 수에 영향을 주는지 알고 있으며, 또 우연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안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이 생명을 연결하는 실을 잘라내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안다. 우리는 자연 대부분의 운명을 손에 쥐고 있다. 그 운명은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나방을 빛을 쫓지 않는다>의 저자는 인간은 자연이 없다면 살 수 없으며, 자연은 우리 삶에 가치를 더해준다고 말한다. 나방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아직 조용히 존재한다. 저자는 나방 덫이 있다면 그러한 존재를 빛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그들의 존재는 자연의 규칙과 냉혹한 우연의 산물이며, 이러한 압력으로 빚어진 보석과도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 밖에도 나방 덫은 진정으로 어둠 속에 빛을 밝히고, 그것은 우리에게 깨어나라고 말하는 경고의 빛이라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현재 자연의 상태는심각하다. 영국의 나방 덫에 잡히는 나방의 수는 수십 년간 꾸준히 감소해왔다. 나방만 감소하는 게 아니다. 세계적으로 야생동물 개체군의 대다수가 가차 없이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한편에서 우리는 무자비하게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나방 덫을 운용한다면 누구라도 이 사실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균류는 자신의 먹이가 되는 조류를 보호하고, 지의류는 데번의 나방 덫 주변 나무를 푸르게 장식한다. 나방은 잎과 꿀을 단지 소비하지만은 않는다. 그들은 수분 매개자가 되어 자신들의 의존하는 식물의 번식을 돕는다. 우리가 나방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건강한 환경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소비와 파괴의 순환, 그리고 현재 인류 생태계에 내재하는 모든 부당한 것이 불가피하지 않다는 점 또한 인지해야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속 작은 집 마리의 부엌
김랑 지음 / 달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년 전, 어딘지 모르게 답답했던 도시생활을 뒤로하고 지리산 산청에 터를 잡았다. 그곳에서 저자 김랑은 오래되었지만 아름다운 집과 함께 여러 인연을 쌓아간다. 정성껏 밥을 짓고, 아낌없이 마음을 내어주며, 민박집 손님들에게 소소한 행복을 선물한다. 그들에게 전해진 선의와 온기는 또다른 사람에게 가닿을 테니.

가끔 지칠 때면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느긋함을 즐기는 저자답게 여행지에서도 자신만의 속도를 만끽하며, 보고 먹고 걷는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한두 마디 나누며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기도 한다. 그렇게 저자의 날들을 짙게 칠해준 인연들이 모여 책 <숲속 작은 집 마리의 부엌>이 되었다.

저자는 갑자기 시작된 시골살이 일은 순조롭게만 흘러가지 않았고 마음고생도 톡톡히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먹고사는 일로 여기서도 골머리를 앓았지만 도시에서 살던 과거와 달리 마음만은 자유로웠다고 이야기한다. 세 식구만큼의 고생과 시련이었기에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우리 부부는 남들처럼 열심히 생계를 살아냈지만 도시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항상 이방인 같았다. 밥 먹어먹는 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어도, 기어코 모든 시간을 생계에만 집중할 수는 없는 사람들이었달까. 주말마다 집에 있으면 당장 목숨줄을 내놓아야 하는 것처럼 쏘다녔다. 매주 도시락이나 주먹밥 또는 누룽지를 싸들고 아이와 들로 산으로 나가야 숨이 트였다. 각지를 다니면서 나물도 캐고 조개도 줍고 꽃도 땄다. 발이 닿지 않는 맡바닥으로 삶이 한없이 내려가면서도, 우리 가족 셋이 있을 때만큼은 그 어떤 시간보다 행복하게 보냈다."

저자는 민박집 단골손님이 은주와 후회하는 것, 그럼에도 잘한 것, 이제 와 하고픈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덕분에 많은 것이 정리되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늘 운명을 저 건너에 두고 살았던 자신이 남편을 만난 것이 잘한 일이고, 지금 하고 싶은 것은 가족과 여행을 자주 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지금 하고 싶은 것은, 기회만 된다면 가족과 여행을 자주 가는 것이다. 누군가 한 사람이 우리 곁에 없어도 같이 보낸 시간의 힘으로 일어서도 계속 살아갈 수 있게, 우리만의 시간을 모아두고 싶다. 그리움이 아픔 없이 담백하게, 내 어린 날처럼 아프지 않게, 그리움이 그리움만으로만 남도록. 정신없이 살다보니 하루하루 의미가 있었든 없었든 모든 게 쏜살같이 사라져서, 나는 여기쯤 와 있고 어느새 아이는 훌쩍 자라 우리 품을 떠날 나이가 되어버렸다. 아직도 함께 하고팠던게 엮어둔 굴비처럼 줄줄이 있는데, 이제는 할 수가 없네. 앞으로의 시간을 잘 나누는 수밖에 없겠지."

저자는 민박집에 등장하는 마리는 자신의 별명으로, 인터넷을 시작할 때부터 사용해온 초창기 아이디 '꽃마리'에서 따온 것이라고 말한다. 아주 작은 청보라색 야생화인 꽃마리는 땅으로 자세를 한껏 낮추어야지만 자세히 볼 수 있다. 저자는 아주 낮은 꽃,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부르기 쉽게 마리라고 하기 시작한 것이 별명으로 굳어졌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민박을 시작하며 남편과 함께 우리가 꿈꾸는 민박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놀러오시는 분보다 쉬러 오시는 분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항상 이야기의 맺음말이었다고 하는 글이 인상적이다.

"참고로 방에는 TV나 별다른 전자제품이 없다. 자연 속으로 찾아들어오신 분들인 만큼 도시로부터 벗어나서 충분히 쉬다 가시게 하자는 우리만의 목표였다. 티가 덜 나더라도 우리가 여행자일 때 제일 힘들었던 부분을 정성스럽게 챙기고, 규정은 좀 구체적으로 까다롭게 잡았다. 그래서 일단 오시면 잘 쉬다 가실 수 있기를 바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기, 멍 때리며 지내기, 책 읽기, 마당에서 음악 듣기, 우리가 이곳에서 만끽해온 이 느긋한 즐거움을 손님들도 느끼기를 바라며 시작한 민박이다."

"아직은 미래의 일이지만,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면 손님 수를 줄여서 그때부터는 우리에게 더 집중하자고, 쉬는 날을 늘여서 여유를 가져보자 했다. 나는 밥 짓는 일이 무엇보다도 좋다. 남편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마리의 부엌'은 우리 부부가 선택한, 우리에게 제일 잘 맞는 '일'이다. 그러니 이 일을 지치지 않고 오래하고 싶다. 오시는 분들에게 안식처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우리가 행복하고 여유로워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저자는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홀로 청아했던 엄마가 어느 날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 자신이 무섭거나 두렵지 않게 마중나올 것이라는 것을 안다고 말한다. 엄마가 자신의 손을 잡아줄 그때까지 지금을 살겠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한다.

"그 어떤 조건도 이유도 상황도 설명도 필요 없이 딸이라는 이유 하나로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유일한 내 편이, 이제는 없다. 예전에는 나의 오만함으로 내가 우리 가족의 모탕인 듯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내며 살아가고 있다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엄마가 우리의 모탕이었다. 그렇게 내 편은 가고 나는 살아남아 숨을 쉬고 밥을 먹고 걷는다. 나는 엄마 당신 때문이라도 함부로 살지 않을 것이고, 쉽게 살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떠올리면 말보다 눈물이 먼저 흐르지만 예전처럼 가슴이 뜨겁게 아프지는 않는다."

저자는 지리산 자신의 집은 처마마다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다 다르기 때문에 비가 오는 날은 음악을 따로 들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들고 지붕에 내리는 비의 연주곡을 제대로 감상할 준비만 하면 된다는 저자의 글은 자연과 함께 만족하며 살아가는 감사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다.

"자연에서 살면 다들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바람이 쓰다듬으며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고, 해도 드러누워 편안해지는 오후에는 낯익은 햇살과 이야기하고 하늘을 볼 때마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구름도 붙잡아 놀고 싶다. 여름밤에는 밖에 앉아 있기를 즐긴다. 뜰에 나와 앉아 있으면 골바람은 어느새 어깨부터 발목까지 조물조물 한여름의 열기를 시원하게 풀어준다. 덥고 고단한 오늘을 어루만지면서 수고했다고 애썼다고, 다 알고 있다고 나를 위로해준다."

"삶의 만족도가 백 프로인 사람이 흔하겠냐만은 누가 뭐래도 나는 지금의 이 삶에 만족한다. 그러기 위해 내가 제일 아끼고 늘 잊지 않으려고 되뇌는 말이 있다. 오유지족. 내 안에 들어 있는 것에 만족하며, 남과 비교하는 대신 내가 가진 것을 즐기고 감사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 알아가기. 사람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다."

저자는 여행을 다니면서 가끔 멍해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 시간은 자신에게 온전히 빠지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조지아 여행이 바로 그러기에 충분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트레킹할 때에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고, 회귀점도 생각해두지 않고 걷다가 누구 하나라도 지치면 쉬거나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고 말한다. 우리가 떠나온 이유가 그저 걷기 위해서였기에 그럴 수 있었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사유가 필요할 때, 마음이 어지로울 때, 분노가 일어날 때, 가슴이 답답할 때, 간결해지고 싶을 때, 명쾌한 답이 필요할 때 나는 걷는다. 무작정 걷다보면 모든 것이 풀어지고 명료해질 때가 많다."

저자가 고대도시 유적지인 에페수스로 유명한 셀추크를 여행하면서 느꼈던 추억을 이야기하는 글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자신에게 여행은 늘 '사람'이라고 말한다. 조금은 부족하고 조금은 덜 보고 서툴러도, 사람이 좋으면 다 만족스러운 여행이 되고 만다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아무리 풍경이 좋고 아름다워도 사람과의 이야기가 없다면 그 순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색과 향이 옅어지지만 그 풍경 안에 사람이 있다면 순간은 영원이 된다는 저자의 글은 우리는 결국 사람으로 인해서 온기를 느끼고 다양한 추억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전한다.

"얼마쯤 지나야 그의 빨간 코와 웃음기 있는 굵은 목소리가 잊힐까. 사람에게 정을 주면 떠나기가 싶지 않다. 아 이곳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정한지. 그분들과 1층 펍에서 만나 맥주 한 병으로 시간을 흘러보냈던 그 순간 덕분에 오늘 본 하늘과 어제 본 하늘이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떠나는 순간에는 모든 장면이 소중하니 이곳의 어떤 것들이 추억으로 남을지 알 수 없다. 훗날 다시금 돌이켜보면 그제야 이 풍경이 마음에 오래 남아 있음을 알게 되겠지."

저자는 흙을 만지며 농작물을 거두고, 나무와 꽃을 가꾸는 사람들은 이들이 주는 위안과 치유의 힘을 알 것이라고 말한다. 고운 빛깔의 감은 저자 자신에게 묵상이며, 시골생활의 순간순간을 넘기면 참 아름다운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곶감이 우리에게 꿈이라면 감말랭이는 묵상이다. 껍질을 깍고 반으로 가르고 씨앗을 들어낸다. 채반에 눕힌 후 이틀에 한 번, 날이 흐르면 하루에 한 번 감들을 뒤집어줘야 한다. 이 광합성 과정은 우리집 뜰에서 진행된다. 남편이 틀어놓은 음악이 가득 흐르는 뜰에서 나는 햇살을 등에 업고 뒷덜미가 뜨겁도록 감을 뒤집는다. 고된 작업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무아지경에 빠져 모든 잡생각을 비우고 그저 감을 뒤집는 일은 제법 즐겁다. 누군가 전화나 문자로 나를 끄집어내지 않으면 몇 시간이고 그대로 있을 정도로 온전히 나에게 빠지는 시간은 흔치 않다. 이렇게 느린 작업들이 좋다."

작은 마당에는 춤추듯 향유하는 꽃들이 피고 지고, 시간과 계절을 달리하며 새들과 벌레들이 울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저자는 이 충만함이 벅차 가끔은 마당에서 기쁘게 울 때가 있다고 말한다. <숲속 작은 집 마리의 부엌>은 지리산 작은 집에서 민박을 운영하면서 자연과 함께 하며, 편리함보다는 고단함이 주는 생의 아름다움과 사람들과의 따뜻한 우정을 느끼는 저자의 삶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픈 포커스 라이프 - 삶의 질을 높이는 오픈 포커스 실생활 가이드북
레스 페미.수잔 쇼어 페미.마크 보레가드 지음, 김정은 옮김 / 샨티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지금 어떻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지 알아차려 이완과 집중, 몰입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는 상대, 바로 이 오픈 포커스 상태가 되면 우리의 뇌파는 알파파로 변하고 중추신경계는 안정되며 자신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삶을 경험하는 방식에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오픈 포커스로 가는 핵심은 바로 몸 안팎의 공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책 <오픈 포커스 라이프>에서는 공간을 알아차린다는 게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하며 그럴 때 어떻게 애쓰지 않고도 최상의 나를 경험하게 되는지, 어떤 방식으로 일과 인간 관계, 삶의 문제들이 해결되는지 내담자들의 생생한 사례를 통해 들려준다.

이 책은 '1장 주의 기울리기, 2장 사라진 공간을 찾아서, 3장 스트레스 해소, 4장 통증 해소하기, 5장 감정적 고통 해소하기, 6장 일상 생활, 7장 일과 퍼포먼스, 8장 가족과 커뮤니티, 9장 다채롭게 빛나는 사랑의 광휘'라는 9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주의 기울이기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공간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공간'은 자기 주변의 물리적 공간, 상상으로 떠올리는 우리 몸속 공간,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 속에 스며들어 있는 공간을 가리킨다. 저자는 오픈 포커스 연습을 마음 챙김과도, 명상과도, 인지 행동 치료와도 구별되게 만드는 독특한 지점이 바로 지금껏 무시되어 온 이 공간이라는 차원이라고 이야기한다. 오픈 포커스는 우리를 물리적 공간에 더욱 가까이 연결시킴으로써 온전한 경험을 가로막던 그 분리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는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스트레스와 불안, 혼란스러움 같은 부정적 감정에 자기 의도와는 상관없이 습관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자질의 무정적인 측면에 발목 잡힐 수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생각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든 우리는 여전히 공간 안에 몸을 가지고 존재하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우리가 실제로 차지하고 있는 공간으로 주의를 보내 그 공간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주의력을 통제하는 열쇠라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몸이 차지하고 있는 물리적 공간에 연결되는 것은 여유로움과 차분함을 되찾고 신체의 여러 시스템들을 동조화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이다. 이렇게 주의를 확장하는 것은 우리 뇌가 바라는 주의 기울이는 법과 정확히 일치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렇게 주의를 기울이도록 진화해 왔다."

저자는 초점을 핸드폰 LCD 화면에 나타나는 이미지나 정보 콘텐츠로 매우 협소하게 좁히면 우리의 알아차림은 핸드폰 속으로 사라지고, 그렇게 계속해서 좁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스트레스 수치가 올라간다고 말한다. 저자는 핸드폰을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물리적 공간의 일부임을 상기하면서 사용한다면, 핸드폰으로 받은 문자가 아무리 열받게 하는 내용이더라도 그 메시지의 중요성은 줄어들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다음번에 문자 알림음이 울리고 화면이 켜지면 이렇게 해보라. 화면에 뜬 문자 메시지를 읽되 그와 동시에 손과 핸드폰을 둘러싼 주변 공간을 알아차려 보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자신을 둘러싼 공간을, 그 다음에는 자신이 있는 방을, 더 나아가서 집 밖을, 인도를, 사람들을, 자동차를 알아차려 본다."

저자는 유연하게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순간순간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감정도 받아들이고 자신의 기억과 감정, 판타지도 모두 자신의 물리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의 일부라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즉 유연하게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자신이 관찰하고 있거나 직접 참여하는 활동에 자신의 감정을 떨어뜨려놓지 않고 통합한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만성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생각과 감정과 기억이 지금껏 내려놓지 못한 경험이나 미래에 대한 희망 또는 두려움의 흔적인 것도 맞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들이 우리 몸과 환경을 구성하는 물리적 요소들이기도 하다는 점은 사람들이 간과한다고 말한다.

"자신만큼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그러한 물리적 과정을 자각할 수 있다. 내 생각과 감정은 부피가 있고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생각과 감정은 내 몸을 구성하는 물리적 요소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느낌의 물리적 속성을 상기할 때 우리는 놀라우리만치 차분해질 수 있다."

저자는 눈을 감고 지금 떠오르는 생각이 이 광대무변한 공간의 작디작은 일부임을 떠올려보라고 말한다. 공간의 작디작은 한 조각, 그것이 생각의 본모습이고 우리의 본모습이라는 저자는 우리 몸속과 주변의 모든 것이 물리적 공간임을 알아차리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몸을 통과해 지나가는 생각들은 이 공간의 일부이다. 생각이 몸이라는 공간의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있는가? 몸보다 훨씬 큰 이 방의 공간과 비교한다면 생각은 얼마나 더 작을까? 방 밖의 주변 공간과 비교한다면 얼마나 더 작을까? 우리 생각이 우리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광대한 물리적 세상의 아주 작은 일부임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저자는 통증에 대한 우리의 경험에는 몸의 생리적 과정과 과거의 경험 모두가 포함된다고 말한다. 통증을 어떻게 떠올리는지, 통증에 어떻게 주의를 기울이는지에 따라 그 순간 통증에 대한 경험이 달라지고 통증을 해석하는 뇌의 신경 경로도 바뀐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스트레스가 통증과 고통을 유발하는 이유는 스트레스의 진짜 원인이 우리가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느냐'가 아니라 그것에 '어떻게 주의를 기울이느냐'에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운 사진이라 하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대상화하여 초점을 좁힌 비상 모드로 주의를 기울인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안 좋은 뉴스라도 열려 있는 유연한 모드로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면 평정을 유지하며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저자는 만성 통증은 주의 방식을 전환하고 공간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면 확연히 해소될 수 있다고 말한다. 비결은 우리의 정신과 감정이 몸과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공간 속에서 통증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것이다. 저자는 통증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충분히 의도적으로 경험하면, 그리고 우리 몸과 주변 공간에 넓게 주의를 기울이면, 통증은 가라앉는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 중 하나는 무의식적으로 주의를 보내던 평소 습관에서 벗어나 좀 더 의식적으로 주의 방식을 선택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우리가 감정이나 대상, 사람 또는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은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고 주변 환경과 자신의 감정을 더 잘 알아차릴 수 있는 방식으로 의도를 갖고 주의를 기울인다고 하는 말과 같다. 저자는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되고, 자유자재로 주의를 기울이는 습관이 들며, 상황에 적합한 주의 방식을 선택할 줄 알게 되면, 만족감과 행복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하고 있다면 공간을 인식하고, '어떻게 주의를 기울일 것인지 의식적으로 선택'해 보라. 경험이 달라질 것이다. 이것이 운수 나쁜 날을 운수 좋은 날로 바꿔주는 마법의 공식은 아니지만, 운수 나쁜 날을 좀 더 감당하기 쉬운 날로, 기분이 나락으로 빠지지 않는 날로, 혈압이나 심박수, 장기적인 건강을 악화시키지는 않는 날로 바꿔주기는 할 것이다."

저자는 주의가 확장되어 일상적으로 알아차리는 신체 감각이 더 많아지면 자신의 감정 변화에 대응하는 것도 달라지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주변 공간에 대한 알아차림이 깊어질수록 자기 감정에 대한 알아차림 역시 커지는데, 이는 감정이 내가 있는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신체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주변 공간과 내면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또는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감정이든,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는 뜻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시험을 치르는 것은 충분히 잘하거나 잘하지 못하는 것을 경험하는 게 아니라, 질문에 답을 하는 경험일 뿐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두려움이 올라올 때 그 두려움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려 하거나 다른 사람을 탓하는 대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지금 순간'에 존재하려면 '반드시' 공간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공간과 연결된다는 것은 실제로는 '시'공간과 연결되는 것이며, 따라서 이 책에 나오는 '공간'이라는 단어는 모두 '시공간'으로 바꿔도 무방하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상대적으로 추상적인 시간이라는 개념보다는 감각 기관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물리적 현실이 우리가 상상하고 또 연결되기가 훨씬 쉬우며, 공간과 연결되면 자연히 지금 순간에도 연결된다고 말한다.

이 책은 물리적 환경에 주의를 기울여 그 공간과 연결되는 것은 우리의 알아차림 감각을 자기 의식, 즉 내가 생각하는 '나'와 통합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것임을 일깨운다. '공간의 힘'이나 '공간과의 연결'이란 말은 결국 '나'와 내가 기울이는 주의, 그리고 내가 놓여 있는 환경을 하나로 통합하는 이런 특성을 가르키는 말이다. 이러한 통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을 복잡적이고 역동적으로, 또 유연하게 알아차리고 경험할 수 있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