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절에 버리러 트리플 17
이서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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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만나는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하는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의 열일곱 번째 작품은 황산벌청년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작가 이서수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엄마를 절에 버리러>는 서로를 부양하고 부양되는 세 모녀에 대한 소설 세 편과 작가 이서수의 '딸 같은 엄마'에 대한 에세이 한 편을 담고 있다. 출가를 결심한 엄마와 절에 가는 모녀의 여정을 담은 '엄마를 절에 버리러', 화가 나면 늑대로 변하는 여자에 대한 소설을 쓰는 엄마의 이야기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 자가 격리를 위해 엄마와 딸 단둘이 모텔로 떠나는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세 편의 소설은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노동과 돌봄의 차원에서 가감 없지만 무겁지 않게 그려낸다.

'엄마를 절에 버리러'는 궁핍한 가정 환경으로 인해서 고생하게 될 딸의 미래를 염려하며 출가를 결심한 엄마가 딸의 여정을 담아내어 인상적이다. 특히 절을 향해 가는 엄마와 딸이 바닷가에서 폭죽을 터뜨리는 장면은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엄마는 내가 건넨 30연발짜리 폭죽을 손에 들고 하늘을 향해 곧게 쏘아 올렸다. 그것은 힘차게 솟아 올라 허공에서 팡 터졌다가 빛나는 튀밥처럼 빛을 뿌리며 검은 파도 위로 추락했다. 기대했던 선명한 아름다움과 찰나의 폭발력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엄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고, 나도 싱겁게 웃었다.

우리에겐 아직 폭죽이 많이 남아 있었다. 팡 터뜨리고, 감탄하고, 피시식 사라질 폭죽이 100발 넘게 남아 있었다. 엄마의 손에 불붙은 폭죽을 건네주며 나는 이 순간을 엄마가 영원히 기억하길 바랐다. 우리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그날에도. 찬란하게 떠올라 이내 어두운 바다 속으로 녹아 사라지더라도.

피융! 파앙! 피시시이익.

피융! 파앙! 피시시이익.

지나가던 사람들이 엄마가 쏘아 올린 폭죽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엄마는 그들을 잠깐 돌아보더니, 당찬 소녀 같ㅇ느 얼굴로 폭죽을 높게 쏘아 올렸다."

"소원아, 인생은 플레이리스트 같다. 듣기 싫은 음악을 참고 들으면 언젠가 좋은 음악이 나오잖아. 그러니까 좋은 음악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 우리."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은 소설을 쓰는 딸 정하연에게 자신이 쓴 소설을 보여주는 엄마의 이야기를 담아내어 흥미롭다. 딸 하연이 엄마가 쓴 소설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을 읽으며 은빛 털을 휘날리는 암 늑대로 변한 엄마를 상상하고 그 등에 올라타 털을 꼭 쥐고 있는 어린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엄마가 쓴 사랑의 세계가 펼쳐진 장면들을 만나는 모습들이 눈길을 끈다.

"반인반수. 화가 나면 짐승으로 변하는 여자의 이야기야.

짐승?

손등에 털이 나고, 눈이 파래지고, 등이 굽는 거야. 늑대처럼. 한번 읽어보고 돈이 될지 어떨지 말해줘. 너는 작가니까 알 거 아니야.

엄마는 안방에서 노트북을 가져왔다. 화면에 한글문서 창이 띄워져 있었다. 내가 쓴 소설을 다 읽었다는 건 알았지만 엄마가 소설을 쓸 줄은 몰랐다. 나는 배움에 대한 엄마의 인내심과 성실함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엄마는 쪽파 한 단을 신문지로 싸서 품에 안아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곧바로 엄마가 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침묵 속에 전달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연아, 내 인생은 이대로 끝나는 걸까. 이렇게 못 배우고, 경험 적고, 만나본 남자도 덜떨어진 너희 아버지 한 명밖에 없는 채로 끝나는 걸까. 나는 그게 좀 억울해. 내가 해본 게 너무 없는데 환갑이 된 게 억울해. 나는 네가 부러워.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 네가 환갑이되면 나랑 얼마나 다른 모습이겠니. 인생에 끼어들어 간섭하는 인간들이 없으니 너는 얼마나 너답게 늙겠니. 많은 것을 하겠지. 나는내 인생에 끼어들어 이래라저래라 간섭했던 인간들 때문에 내 뜻대로 살 수가 없었는데, 지금 그 인간들 코빼기도 안 보여. 어디 갔니. 다들 어디 간 거야. 집은 있는 거야. 나만 집이 없는 거야. 내 오빠들은 집이 다 있는데 나는 집이 없어. 그래서 화가 나서 연락도 안 해. 내가 이 나이에도 자존심이 세서 오빠들한테 굽힐 줄을 몰라. 근데 그 자존심의 원천이 바로 너야. 내 딸, 정하연. 연애보다 일을 우선시하는내 딸 정하연은 절대로 내 꼴은 안 날 거야."

'있잖아요 비밀이에요'에서 코로나에 확진될 가능성이 있는 남편 차기훈으로 인해서 서한지가 자가격리를 하기 위해 엄마와 함께 모텔에서 함께 지내는 장면들이 눈길을 끈다. 특히 남편의 외도와 생활고로 고통을 받다가 자신을 벌레처럼 혐오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우울증과 공황증으로 신경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는 엄마 김월희에게 딸 서한지가 전하고 싶은 위로의 글이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서한지는 김월희가 다시 일을 시작하기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일을 하려면 김월희는 자신이 왜 아픈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결국 자신에게 벌주려는 걸 말이다. 서한지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엄마, 대단한 인생을 살 필요는 없어. 엄마가 좋아하는 알밤, 그걸 떠올려봐. 벌레 먹은 밤을 집어 들면 에잇 속았다, 그런 표정으로 웃잖아. 인생도 그런 마음으로 살면 돼. 자꾸 벌레 먹은 밤만 집어 들어서 속상해도 웃어넘기고 마는 것처럼, 그냥 그런 마음으로 살면 돼. 대단해지려고 하지 마. 남들하고 비교하느라 엄마가 그렇게 속이 아픈 거야. 엄마는 엄마의 길을 묵묵히 가면 돼. 그것이 지극히 초라한 길이어도."

"김월희는 곧 월세방으로 이사할 것이고, 서한지는 이오선을 골탕 먹일 궁리를 하다가 제풀에 지쳐 포기할 것이고, 차기훈은 여전히 얼굴을 모르는 민해연에게 업무 지시를 내릴 것이다. 그러고 나면 다시 주말, 확진자 폭증, 날씨는 점점 따뜻해지다가 더워지고, 그들은 한여금에 미지근한 소주를 마시면서 소주가 언제 이렇게 독해졌지, 하고 말하며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러 가자고 할 것이다. 그러면 된 것일까. 서한지는 그렇게 생각하며 김월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금도 벌레 같지 않고, 아무리 봐도 사람 같은 엄마의 얼굴을."

이 책의 가장 마지막에는 이서수 작가의 에세이 '무지개떡처럼'이 실려있어 인상적이다. 이서수 작가는 자주 자신의 딸 같고, 가끔 자신의 엄마 같은 엄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서수 작가는 2021년 여름부터 2022년 여름까지 '엄마'라는 테마로 세 편의 단편 소설을 썼고, 그 기간 동안 엄마와 몇 달간 함께 살았으며, 엄마가 이사 간 뒤엔 엄마 집을 오가며 밥을 먹기도 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이서수 작가는 엄마에 대한 깊은 통찰이 찾아오는 드문 날이면, 엄마가 그 모든 고난을 뚫고 여기까지 와서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한다. 온갖 맘고생을 했음에도 젊은 남자 배우를 보며 무지개떡을 떠올리고 얼굴을 붉히는 게 기적 같고, 엄마의 마음에 아직 사랑이 남아 있다는 게 눈물겹게 기쁘다는 이서수 작가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엄마와 가까이 사는 동안 나는 엄마의 고민과 꿈, 상념과 집념을 곁에서 목도했다. 그러나 만일 엄마가 이 책을 읽는다면, 자기 모습이 어디에 나오는지 몰라서 의아해할 것이다. 엄마의 일부분이 여기저기에 조금씩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내 눈엔 그것이 잘 보이지만 엄마의 눈엔 조각난 1000피스짜리 그림 퍼즐처럼 보일 것이다. 일부러 그렇게 썼다. 누군가의 삶을 고스란히 소설로 옮기는 것은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내가 아는 엄마의 모습에 대해서만 쓸 수 있고, 어쩌면 그건 반쪽짜리 진싱이 되기도 어려울지 모른다.

어쨌든 나는 엄마의 삶을 모티프로 삼아 세 명의 육십대 여성을 만들었다. 그녀들의 공통점은 세 가지이다. 가난과 노동 그리고 딸."

"후회해도 된다.

엄마처럼 아주 많이 후회해도 된다. 완벽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자책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는 걸 깨달을 때까진. 그걸 깨닫고 나면 후회가 아무런 소용 없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아니다. 완벽한 삶이란 원래부터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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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은 어떻게 뇌를 망가뜨리는가 - 최신 신경과학이 밝히는 괴롭힘의 상처를 치유하는 법
제니퍼 프레이저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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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을 통해 괴롭힘의 상처를 치유하는 법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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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은 어떻게 뇌를 망가뜨리는가 - 최신 신경과학이 밝히는 괴롭힘의 상처를 치유하는 법
제니퍼 프레이저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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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 및 학대 치유 전문가인 제니퍼 프레이저는 <괴롭힘은 어떻게 뇌를 망가뜨리는가>에서 괴롭힘 피해 당사자이자 학대 피해자의 부모, 교육자로서 솔직하고 용기 있게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며, 괴롭힘과 학대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 사회적, 개인적 측면에서 생생하게 전달한다. 신경가소성 연구의 대가이자 신경과학계 최고 권위자인 마이클 메르체니치의 감수를 받은 이 책은 최신 신경과학, 심리학, 신경생물학, 의학 연구를 토대로 상처받은 뇌를 치유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들을 제안한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괴롭힘과 학대 피해 사례가 터져 나오고 있지만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대는 자주 은폐되며, 예외적으로 언론에 노출되면 잠시 주목을 받지만, 곧 다시 잠잠해진다. 저자는 신경과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이 패턴을 깨부수자고 말한다. "뇌는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는 이 책은 수많은 사람이 품고 있을 학대와 괴롭힘을 효과적으로 해독하는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학대와 괴롭힘 피해자와 당사자뿐 아니라, 자신이 안고 있는 상처에서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추천한다.

"가해자들이 판을 칠 수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침묵하기 때문이고,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데 두려움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집단 내에서 추방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런 곤란한 문제를 사람들 앞에서 들추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책의 목표는 이런 역학을 바꿔 새로운 사고방식과 새로운 언어로 성인 괴롭힘과 학대에 관한 논의를 밀실에서 우리가 제대로 조사하고 의문을 표하고 삶에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공공의 장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새로운 사고방식과 언어는 신경과학자의 실험실에서 옮겨져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을 회복하고자 하는 우리의 바람에 적용될 것이다."



이 책은 "신경가소성"이라는 개념 자제는 뇌가 작동하는 근본적인 이해를 획기적으로 바꿔주었으며, 뇌는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고 바뀔 수 있다로 말한다. 비록 트라우마로 뇌의 기능이 저하되었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자신의 뇌를 바꾸고 강화할 내적인 힘을 보유하고 있다. 저자는 학대의 학순환, 괴롭힘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신경 과학 정보로 무장한 새로운 틀, 뇌를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앞세우는 틀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눈에 보이는 것을 토대로 외집단이 구축되는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뇌는 무시되고 심지어 거부된다. 저자는 우리는 뇌에 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모든 뇌를 존중하고 자신의 뇌를 괴롭힘과 학대에서 보호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마치 차에서 안전벨트를 매거나 자전거를 탈 때 헬맷을 쓰거나 화재에 대비해서 비상구의 위치를 파악하는 일과 같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신경가소성으로 무장한 우리는 무기력하지 않으며, 오히려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뇌를 회복하려면 우리 자신이 회복의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 나는 괜찮고, 괴롭힘의 학대가 나를 강하게 단련시켰으며, 상처를 준 사람들은 다 '나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믿음을 버리지 못하면 회복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일이 어려울 수도 있다. 괴롭힘과 학대를 통해 생긴 상처와 이를 치유하는 방법을 살펴보다 보면, 확실히 건강흔 마음-뇌-몸이 하나로 통합된 자아의식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괴롭힘과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다면, 타고난 마음-뇌-몸의 관계가 잘 정렬되는 대신 분열되어 이들 자아의 요소들이 서로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

저자는 모욕부터 성희롱까지 모든 형태의 학대는 스트레스 수준을 높여 학습과 성공을 방해한다고 말한다. 만성 스트레스는 뇌를 공격해 뇌 구조에 손상을 입히기 때문이다. 경미한 스트레스가 만성이 되면 코르티솔이 걷잡을 수 없이 분비되면서, 시냅스 연결이 끊기고 가지돌기가 위축되면서 세포가 사멸하는 유전 활동이 촉발된다. 결국 해마가 물리적으로 건포도처럼 쭈그러진다. 배우고 생각하고 추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을 할 때, 이 활동의 목표는 뇌 속의 시냅스를 연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성 스트레스를 겪으면 이 시냅스의 연결이 끊기게 된다. 해결 방법은 가지돌기를 키워서 확장하는 것, 즉 신경망에서 가지를 더욱 뻗쳐내는 일인데, 뇌세포의 전송 라인, 즉 축삭돌리를 미엘린으로 감싸서 절연시키면 활동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저자는 가지돌기의 확장과 축삭돌기의 미엘린화는 연습과 리허설이 추구하는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미엘린화가 일어나지 않아 뇌 속의 기억 중추가 쭈구러드는 것은 물론, 뇌세포가 무럭무럭 자라지 못하고 사멸하고 만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학대 행위는 '심리전 교육 방식', '지속적인 괴롭힘 및 학대 작전'으로 표현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자기 뇌를 마치 기계처럼보지만,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자기 뇌를 자라나는 나무로 이해한다고 말한다. 고정형 사고방식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성장형 사고방식은 뇌의 성능을 최적화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성장형 사고방식을 갖기 위해서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꼬리표를 모두 떼어버리는 일이 중요하다. 역경이 다치더라도 성장형 사고방식을 유지해서 고통을 일종의 도가니, 즉 호된 시련의 장소로 볼 수 있도록 하고, 열심히 노력해 교휸을 얻고 능력을 향한다면 PTSD가 외상 후 성장으로 바뀔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뇌를 이끌고 스스로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안내할 필요가 있다. 낯선 것을 친숙하게 만들려면 매일 연습을 통해 그 일에 매진해야 한다. 주사 한 방에 될 일이 아니다. 빠른 처방은 없다. 어쩌면 우리 뇌가 많은 고통을 느끼면서 스트레스와 불안, 통증 완화를 위해 불법 약물이나 알코올 등 친숙한 방식의 자체 처방에 의존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파괴적인 행동의 사이클을 깰 수 없다는 잘못된 믿음이 생긴다. 생각하면 부아가 치미는 일이다. 그때 기억해야 할 사실은 자신의 마음-뇌-몸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세 요소가 같이 협력하면 그 어느 것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 사실 뇌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러 번 반복해서 그 고통을 인정하고 뇌를 진정시켜야 한다. 일난 뇌가 진정되고 안전하다고 느끼면 뇌 훈련이라는 어렵지만 보람찬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저자는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을 회복해서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괴롭힘의 패러다임에서 나온 신화를 묵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신화는 가혹함이나 몰인정한 행동이 강함과 그릿, 회복탄력성을 키운다고 맗나다. 하지만 과학 연구는이것이 진실과 정반대라는 증거를 제시한다. 저자는 괴롭힘의 패러다임을 믿는 신봉자들이 과학, 특히 신경과학을 언급하지 않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직장에서 자신의 신경망과 건강을 해치는 유독한 환경에 노출되었다면, 괴롭힘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회복 기능을 갖춘 좀 더 건강한 환경을 다시 만들면 된다고 말한다.

"괴롭힘의 패러다임이 불안정하고, 공포를 유발하고, 예측 불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 상황에서 학습 능력이 있는, 건강한 뇌 신경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안전을 기본으로 확보해야 한다. 따라서 지속적이고 평화로운 안전한 환경 구축이 새롭고 강한 신경망을 놓기 위한 기본 단계임을 거듭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런 안전한 환경에서 성장형 사고방식이 자라는데, 그 이유는 이 사고방식이 '실수를 통한 배움', 즉 '실수의 반복'으로 뇌가 성장하면서 상당한 능력과 힘, 독창성을 발견한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신경과학적인 접근 방식을 이용해 자신의 뇌 신경망을 다시 연결하려면, 과거를 기억하고 고쳐 말하고 반복하고 되풀이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말한다. 대신 우리는 새로운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저자는 기본 설정 또는 일반적 패턴에 따라 자신에게 벌어졌던 지긋지긋한 기록이 재생될 때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쓰고 신경망을 다시 연결하고 케케묵은 괴롭힘과 학대의 줄거리를 깜짝 놀랄 정도의 변화를 창출하는 혁신적인 새로운 내러티브로 바꿀 힘은 전적으로 우리 뇌 안에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괴롭힘당하거나 학대받은 기억을 약하고 무른 기억으로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역경이나 고통을 상기시키는 신경망이나 통로를 사용하지 않는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뇌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신경가소성이 있다는 것이고 이는 곧 우리에게 주도권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선택, 결정, 행동이 과거에 경험한 일부다 뇌를 형성하는 데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는 뇌의 부정적인 신경망을 없애고 이들을 긍정적인 신경망으로 복구할 역량이 있다."

"자신의 뇌가 역경이나 고통의 길로 들어서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내면의 반역자를 깨울 필요가 있다. 게릴라 군대를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켜라. 이 부분에서 우리 마음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 마음은 반역의 선봉자다. 뇌가 끊임없이 괴롭힘당하고 학대받은 과거의 순간을 헤매면서 또 상처받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동안, 마음은 그 일은 과거에 일어났다고 확실히 못 박을 수 있다. 그 일은 오래전에, 아니면 한 시간 전에 끝난 일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그것은 끝난 일이고 우리 마음은 다시 운전석에 앉아 있다. 마음은 의식적으로 친절하게 (트라우마 회상에서 중요한 정보가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 약간의 호기심은 간직한 채) 우리를 다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

저자는 트라우마를 겪은 뇌는 지지와 유혹, 보살핌과 잔인함, 동기부여와 조작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10대의 뇌는 부모와 살던 '동굴'을 떠나 바깥세상에서 새로운 '종족'을 찾을 수 있도록 급격한 변화를 겪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모욕에도 상당히 민감하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기숙학교에 보내지거나 야생으로 현장학습을 떠난 아니는 부모와 멀리 떨어져 있거나 연락이 닿지 않고, 따라서 살아남기 위해 가해자와 동조해야 하기 때문에 애착 분열을 겪는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그들의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학교, 학원, 스포츠계, 종교계, 예술계에서 자기들을 포로로 삼고 학대하는 사람에게 애착과 충성심을 느끼고 이들에게 헌신하는 것이다.

"교사는 현재와 미래에 우리의 가치를 매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힘이 있다. 이들은 우리가 얼마나 똑똑한지, 잠재력은 어느 정도인지, 인성은 어떠한지, 어떤 문이 열릴 수 있고 어떤 문은 닫힐지 평가한다. 코치 역시 동일한 권력으로 운동선수를 평가해서 경기할 기회를 주거나 박탈하며, 공개적으로 선수가 받은 상을 칭찬하거나 숨기고, 추천서를 제대로 써주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성의 없는 칭찬으로 일관하고, 장학금 신청을 도와주거나 매 단계마다 이를 방해하고, 스카우터를 초빙하거나 선수의 경기를 일부러 보여주지 않기도 한다. 학대하는 자들은 아이들이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것에 엄청난 위력을 행사한다. 이들은 뭔가에 열정을 갖는 것과 학대받는 경험에 대해 아이에게 혼동을 일으키면서 점점 그 위력을 키운다. 좋아하는지, 염증을 느끼는지 혼동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모든 아이는 유치원이나 아니 그보다 더 일찍 그루밍 성범죄, 유혹 성추행, 성폭행에 관해 자세히 교육받아야 하고, 그런 일이 일어날 경우 누구에게 신고해야 할지, 일어난 상황을 어떤 용어를 사용하여 정확하게 진술할지, 신고받은 어른이 믿지 않거나 가해자의 명성을 우려하거나 혹시 거짓말하는 것 아니냐고 하며 의심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지침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아이는 언어적, 심리적, 정서적 학대와 정서적 방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온갖 형태의 공격, 신체적 학대, 신체적 방치와 마찬가지로 이런 피해를 입은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아이들은 가스라이팅과 학대가 얼마나 사람을 조종하는지 알아야 하며, 이런 시직은 수학이나 과학, 음악이나 언어 과목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괴롭힘의 패러다임이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두 가지는 투명성과 책임 소재라고 말한다. 누가 가해자인지 확인하는 것은 가해자와 동조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마음속 가해자를 뇌 밖으로 추방하고 공감 코치를 생성할 문을 활짝 열어놓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을 도와주기로 한 힘 있는 사람에게서 학대를 받았다면 도움을 구하는 일에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때문에 우리를 학대한 사람들은 우리와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인물이고, 사실상 우리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가해자의 이름을 용기 있게 부르면 가해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물릴 수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 괴롭힘의 패러다임이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리지 못하는 것은 비극적인 일ㄹ이다. 이로 인해 도움을 구하는 일이 저지당하고, 뇌 재활의 길이 막히며, 종종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오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괴롭힘의 패러다임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은 자신을 학대한 사람들과 이들이 한 짓에 대해 함구하기를 거부하겠다는 뜻이다. 학대를 가한 사람에게 정정당당하게 책임을 물리고 그들의 학대 행위를 더 이상 비밀에 부치지 않겠다는 뜻이다."

저자는 마음 챙김은 뇌에 긍정적인 신경가소성 변화를 일으켜 행동과 정서를 조절하는 능력을 향상하는 것은 물론 건강, 수면의 질, 기억력, 집중력을 높이고 기분을 좋게 한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괴롭힘과 학대가 가하는 세뇌와 가스라이팅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좀 더 통찰력 있는 건강한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마음 챙김 훈련은 우리의 부교감신경계를 깨우는데, 이는 스트레스 반응과는 정반대의 반응이다. 부교감신경계는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하고 혈압을 낮추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대신 신경 전달물질인 도파인과 세로토닌을 분비한다. 또한 뇌와 몸을 편안하게 이완시켜 재충전하고 균형감을 잃지 않고 치유를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학습된 무기력이 아닌 평정심을 되찾게 된다. 마음 챙김 훈련은 우리를 편안하게 이끌어 남에게 버럭 화를 내지 않게 한다. 상황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대응하게 해주는 것이다. 또한 회복탄력성을 개발하도록 도와주어 창의력과 집중력을 향상한다. 참 놀라운 혜택이다. 마음 챙김은 게임 체인저다. 마치 행복처럼 우리에게 경쟁 우위를 안겨준다. 긍정 심리학자 숀 아처는 연구에서 명상을 통해 행복감과 관련된 뇌 부위인 왼쪽 전전두엽 피질이 자란 것을 보여준다. 아처는 매일 호흡을 느리게 하고 의식적으로 집중하는 연습을 하면 "행복 수준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낮추며 면역 기능이 향상되도록 뇌신경이 영구적으로 다시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상처받은 뇌를 가진 사람은 불행이라는 열세에 놓일 수 있다. 마음 챙김은 아처가 말한 행복 혜택을 얻을 수 있도록 신경망을 다시 연결하는 방법이다."

저자는 남을 괴롭히거나 학대하는 사람에게 피해자를 공감과 연민으로 대하는 상상을 하게 하여 뇌 신경망을 의식적으로 다시 연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가해자에게 동조하여 마음속 가해자를 만들어낸 사람 역시 의식적으로 괴롭히고 학대하는 메시지나 행동을 공감 코치의 메시지나 행동으로 바꿀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입은 피해를 복구하고 고장난 부분을 고치면서 다시 전체가 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여전히 우리 뇌에 상주할지 모르는 괴롭힘의 패턴을 잊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패턴을 잊는 한 가지 방법은 이 패턴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저자는 운동은 신체건강(우리 몸)과 지적 능력(우리 뇌)을 향상할 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줄여주며, 덕분에 우리의 총체적인 마음-뇌-몸이 건강해지고 상처에서 회복된다고 말한다. 규치적인 유산소 활동은 뇌를 운동시켜 수투레스에 잘 대처하게 한다. 저자는 운동은 적당한 스트레스를 반복적으로 가하면서 근육의 회복탄력성을 높일 뿐 아니라 뇌의 기반 구조와 뉴런(즉 뇌세포)에도 동일한 혜택을 준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연에서 운동을 할 때, 우리는 진화적 설계대로 몸과 뇌를 같이 움직이며 이에 따라 몸과 뇌가 모두 민첩해진다고 말한다. 실제 바위투성이 지형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온갖 난관과 도전을 겪기만 해도, 몸의 모든 근육과 신경을 쓰는 활동에 참여한 것이 된다. 저자는 육체적, 정신적 도전을 마주해 이를 극복하는 경험은 기쁨 또는 행복으로 바뀌고, 이런 감정이 생기면 자연적인 항우울제인 도파민이 뇌에서 분비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진화적으로 우리는 행복을 위한 대책이 있지만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괴롭힘과 학대는 피해자에게 자신이 느끼는 자기혐오 또는 수치심, 공포를 투영하는 반면, 공감은 상대가 경험하고 느끼고 보고 생각하고 의도하는 것을 경청한다고 말한다. 괴롭힘은 자신이 겪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덜기 위해 피해자에게 자신의 과거를 투영하는 반면, 공감은 상대의 지난날을 듣고, 그것이 이들의 현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상상한다. 저자는 공감은 기억, 논리, 유추, 추론을 사용해 상대의 경험을 해석하기 때문에 인지능력으로 볼 수도 있고, 상대의 신체적, 정서적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인지하고 해석하기 때문에 정서적인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신경 영상 연구에 따르면 뇌에서 사고 및 감정에 관여하는 부분은 공감 반응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공감은 총체적 반응인 것이다. 반대로 괴롭힘과 학대는 타인에 대한 공감 결여로 생기는데, 타인을 괴롭히거나 학대하는 사람은 피해자가 경험하는 고통과 모욕을 상상하거나 이를 자신의 일로 결부시키거나 대응하지 못한다."

저자는 공감을 다정 또는 친절과 혼동하지 말라고 말한다. 공감은 이보다 더 복합적이다. 또한 저자는 공감을 동정과 혼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동정은 단절을 유발할 수 있다. 공감은 치유력이 있지만 동정은 수치심을 유발하기 쉽다. 또한 저자는 우리는 원래 공감에 대한 신경망이 연결된 뇌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살다가 공감이 결여되면, 자신의 뇌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되돌아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공감 반응은 누군가 고통당하는 것을 볼 때 울게 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 정신, 영혼의 소리를 듣게 해서 인간으로서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고 싶게 만들고, 누군가 가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저항하게 한다. 이런 공감이 수치의 문화에 갇혀 있다. 개개인이 수치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때, 우리는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신경과학을 아는 새로운 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

저자는 만약 힘이 있고 타인을 외집단으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은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힘의 불균형을 없애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저자는 힘의 불균형은 성인과 아이 사이에서 가장 크지만, 괴롭힘의 패러다임에서는 어른이 아이에게 행사하는 힘이 과도하기 때문에 공감이 없어지지 않도록 감시하는 견제와 균형이 충분히 가해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아이들에게서 괴롭힘과 학대 신고를 들은 어른이라면, 적어도 성인 가해자에게 보여주는 공감을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발휘하여 이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공감 렌즈를 통한 조망 수용은 괴롭힘과 학대 행위 자체에도 적용할 수 있다로 말한다. 저자는 이들이 또다시 학대를 저지를 수 있는 지위를 유지하게 해서는 안 되며, 재활 이우에는 이들을 감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괴롭히고 학대하는 구조를 무너뜨리고 이를 새로운 신경 패러다임으로 바꾸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괴롭히고 학대하는 사람에게 재활 훈련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행위를 빨리 저지할수록 이들의 신경망을 다시 연결하는 것이 수월해지며, 피해자는 피해를 덜 입고 학대의 악순환은 더 빨리 종식된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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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임 머신 - 수치심이 탄생시킨 혐오 시대, 그 이면의 거대 산업 생태계
캐시 오닐 지음, 김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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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이 탄생시킨 혐오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여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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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임 머신 - 수치심이 탄생시킨 혐오 시대, 그 이면의 거대 산업 생태계
캐시 오닐 지음, 김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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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월스트리트와 IT업계에서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빅데이터를 연구한 수학자 캐시 오닐은 [대량살상수학무기]를 통해 공정하고 객관적이라고 알려진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사실은 편향적이며 취약계층에 불이익을 준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녀는 이제 한발 더 나아가 책 <셰임 머신>에서 플랫폼과 알고리즘을 통해 외모, 가난, 젠더, 피부색, 정치적 입장 등 다방면에 걸쳐 왜곡된 수치심이 구조하되고 이를 정치적,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시스템, 수치심 머신을 고발한다. 그리고 수치심 머신을 역이용해 혐오와 불신으로 분열된 사회를 치유할 해법을 제시한다.

이 책은 '1부 수치심은 돈이 된다, 2부 혐오는 어디서 시작되고 확산되는가, 3부 정의감은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라는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수치심은 본질적으로 우리 내면에 품고 다니는 것이다. 이는 신체, 건강, 습관, 도덕 등 관련 규범에서 파생하는 감정이다. 내가 기준에 못 미친다고 자각할 때, 또는 같은 반 친구나 동료, 슈퍼볼 광고가 기준에서 지나치게 벗어났다고 생각할 때, 수치심이 우리를 덮친다. 어떤 때는 그저 기분이 나쁜 정도겠지만 수치심으로 깊은 상처를 받으면 자아가 공허해지고, 인간 존엄성을 부정당한 기분이 들며, 내 존재가치를 의심하게 된다. 수치심이 날리는 잔인한 펀치다."



<셰임 머신>의 저자 캐시 오닐은 어린 시절부터 뚱뚱함이 콤플렉스였으며, 날씬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과 그러지 못한 스스로의 간극에 의한 수치심을 오랫동안 체험해왔다. 체중 감량 실패를 수없이 반복하며 다이어트 업계가 사람들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고 자각했다. 이후 알고리즘의 차별 문제를 탐구하며 비만뿐만 아니라 빈곤, 중독자 등 취약계층의 삶이 어떻게 플랫촘을 통해 조직적으로 소비되고 조롱당하는지 목격했다. 그 미난이 자신의 비만을 대하는 시선과 놀랍게도 흡사하며, 그들 도한 암울한 삶의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 그녀는 사회 균열의 근원에 왜곡된 수치심이 있고 이를 알고리즘이 극대화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사회를 계급화하고 통제하는 도구로써 수치심과 디지털 플랫폼, 알고리즘의 상관관계를 파헤친다.

저자는 약물 중독 문제의 경우, 사회는 피해자를 비난하고 이들을 타인으로 밀어내는 쪽을 훨씬 편하게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은 가치관이 독특해서 어리석고 끔찍한 선택을 하는 자들로 분류했다. 저자는 이는 중독자를 '타자화'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피해자를 낙오자로 취급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가족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낙인은 수치심을 낳는다. 낙인은 가치 있는 자와 아닌 자를 알려주는 사회적 신호이기 때문이다. 각종 기관과 정부가 낙인찍는 역할을 자처할 때, 한 사람의 가치를 예단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온 세상이 내게 쓸모없다고 말하면, 나 자신도 거기에 동조해버린다."

"약물 중독에는 깊은 수치심이 따라오므로 중독자는 도움을 선뜻 요청하지 못한다. 피해자의 일탈행위에 집착하는 사회는 치료법이든 대체 약물이든 보통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는다. 대신 그들을 감옥으로 보낸다. 대형 제약회사부터 민간 교도소까지 상장 회사들을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피해자가 수치심 때문에 거부하지 못하는 제안을 하는 식으로, 암울한 현실에서 이윤을 취하고 자신들의 제국을 영원히 번성시킨다. 사이비 재활시설은 이른바 노동 치료를 통해 비극적 현실을 잔인한 희극으로 바꾸는데, 어떤 시설은 기간제 노역과 비슷하게 운영된다. 모든 것이 수치심의 악순환을 불러오고, 업체들의 배를 불린다. 표적 고객의 수치심이 커질수록 업체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진다."

저자는 미국에서 빈곤층은 가장 힘이 약하다고 말한다. 제도적 수치힘에 빠진 이들을 실패를 거듭한다. 또 이들은 신세를 망친 것도 너고 비참한 선택을 한 것도 너라는 이야기를 지겹도록 듣는다. 저자는 정부 지원금을 받을 자격이 있어도 신청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까다로운 신청 절차를 거치다 보면 인간적인 모욕을 느끼기 때문이다. 낮은 자산 상태, 급료, 실패 경험, 낙담, 굴욕을 문서화하여 낱낱이 입증해야 한다. 저자는 체중과 중독의 대한 조롱처럼, 가난에 대한 조롱도 해로운 악순환을 낳는다고 말한다. 가난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문제를 숨기거나,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수치심 때문에 생기며, 상황을 악화하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가난이라는 수치심을 없애려면 사회는 빈곤층을 아무 조건 없이 도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많은 이들에게 가난이라는 수치심은 물질적 고통보다 더 끔찍할 수 있다. 그러나 예산이나 엑셀 스프레드시트에 달러는 기록할 수 있어도 감정은 그럴 수 없다. 감정은 형체가 없고 주관적이어서 종종 무시된다. 그러다 보니 복지정책이 수치심을 자극하는 엔진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은 신체와 정신이라는 두 가지 면에서 고통받는다. 의식주와 교통비 같은 기본적인 생활수단이 부족한 데다, 자신의 처지에 비참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수치심은 이들의 존재 자체를 위협한다. 하루하루 다급한 문제가 터지는 상황에서 다음 달이나 내년에 대한 계획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가난을 설명하는 문화적 요인이 뚜렷해도, 약자를 탓하는 주류 담론을 섬세한 시각으로 뒤집기는 힘들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 부유층은 일하는 사람만 도와야 한다는 조건을 계속 내건다. 그러고 패스트푸드점과 대형소매점에서 받는 치욕스러운 저임금을 얼마 안 되는 수당으로 보조한다. 이런 식으로 사회는 일하는 빈곤층을 다람쥐 쳇바퀴에서 계속 굴린다. 빈곤층은 자동차가 고장 나거나 아이가 아플 때 쓸 여윳돈도 없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쓴다. 우리 사회는 일하지 않는 빈곤층을 극빈한 상태로 몰아넣는다. 한마디로 실패한 사람이 대가를 치르고 현재의 불행을 받아들이게 한다.

이는 근시한적이고 동시에 비도덕적이다. 이를 바꾸는 핵심 방법은 남을 비난하려는 우리의 온갖 본능에 반하더라도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돕고 노동 여부와 상관없이 이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도 남들처럼 주거지와 의료서비스, 식료품을 얻고 아이를 돌볼 수 있으며, 양질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들에게 생필품을 준다는 이유로 공무원들 앞에서 굽실거리게 하거나 각종 요건을 먼저 갖추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건강관리 산없에서 가장 왜곡된 곳은 노화를 감추기 위해, 더 나아가 노화를 늦추거나 뒤집기 위해 방대한 제품과 서비스를 쏟아내는 분야라고 말한다. 이 산업은 노화가 심각한 불행이라고 강조한다. 나이가 들면 허약하고, 추하고,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감이 떨어지며, 측은하고, 산송장과 같다고 본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거대한 수치심 머신은 비만, 약물, 중독, 가난, 허약함을 이용하기 위해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을 비난하고, 그 과정에서 힘과 시장 지분을 얻는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저지르는 존엄성 침해를 자각하려고 애쓰는 것이 수치심 머신을 해체하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수치심은 각각의 사회적 실패에 작용하지만, 동시에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기능을 한다. 우리는 각종 사회 문제를 겪을 때, 다음과 같이 안이한 충고를 자주 듣는다. '그런 끔찍한 선택만 하지 않았어도 지금처럼 고통받지 않을 텐데. 그러니 그들 잘못이다.' 이렇게 수치심의 악순환이 시작된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보면 매번 시선을 돌리고, 다리 밑에서 노숙자를 만나면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면서 우리는 이들의 안전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을 뿐 아니라, 이들을 존중하고 포용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우세한 수치심 머신을 떠받드는 규범을 영구화함으로써 현재의 유감스러운 현실이 지속되도록 도와준다. 뚱뚱하고 가난하고 중독된 자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이 잘못된 선택 때문에 고통받는다고 인정해버리면, 우리 역시 그 문제의 일부가 된다."

저자는 바디튠으로 보정한 수영복 사진을 공유하는 것부터 트위터에 정의로운 척 소신 발언을 올리는 것까지, 이 모든 온라인 활동은 거짓과 망상을 부추긴다고 말한다. 이런 행동은 세상을 달리 규정하는 것, 그리고 나의 수치심을 다른 사람을 통해 해소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게다가 모든 온라인 커뮤니티마다 '좋아요', '공유하기', 이모티콘으로 공감을 표시하므로, 우리는 이런 반응에 현호되기 쉽다. 저자는 수치심 네트워크는 우리를 부지런히 끌어들여, 그 안에서 사회구조에 균열을 내고, 그때마다 잠깐씩 고양되는 기분을 느끼며 옹졸한 권력감이나 분노, 복수심 같은 감정에 중독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나한테 관심을 주는 듯한 소규모 커뮤니티에 상주하며 과도한 감정에 몰입하지만, 그 감정을 기계적으로 자극하는 허술한 시스템은 눈치채지 못한다. 그 시스템은 바로 영속적으로 굴러가는 수치심 머신이다.

저자는 수치심 네트워크를 끝없이 최적화한 한 가지 결과가, 이른바 캔슬 문화의 급증이라고 말한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를 발판으로 한 이 흐름은 거대한 마을 의해가 동네 주민에게 말이든 행동이든 온갖 훈수를 두는 상황과 비슷한다. 사람들은 이런 공격이 사회적 순기능을 한다며 쉽게 정당화하고, 공개적 망신은 사회를 더 건전한 길로 이끌 수 있다고 여긴다. 저자는 동시에 개인에게 퍼붓는 온라인 조롱은 범죄와 처벌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을 제시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공정성을 논하는 핵심적인 질문이면서 동시에 수치심 전략에 대한 질문이다. 온라인에서의 맹비난처럼 무기화된 수치심은 분노에 찬 저항운동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충동적 비난을 자제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도덕성을 과시하는 트윗이 정작 근본 분제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현대적 의미에서 관계 끊기는 종교적 배척과 비슷하다. 즉 신앙을 떠났다는 이유로 친구 혹은 이웃이었던 사람과 말도 안 하고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다. 이런 태도에 선의를 내세우기도 한다. 사회에서 인종주의를 추방하고, 여성을 존중하며, 성 정체성을 밝힌 사람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고 말이다. 그 과정은 여러모로 네티즌 수사대의 활동과 닮았다. 아마추어 탐정들은 SNS에 올라온 게시물을 샅샅이 살핀다. 소프트웨어로도 이 작업을 수행한다. 그러다 말이든 행동이든 허물이 될만한 증거를 찾으면 팔로워를 총동원해 실수한 사람을 공격한다. 결국 그 사람이 해고되거나 사임하게 하고, 평생 낙인을 찍는다."

저자는 비만, 가난, 약물 중독, 인종차별 등 어떤 문제를 겪고 있든, 아니면 뭔가를 이루려고 안감힘을 쓰고 있든, 우리는 각기 다른 수치심의 차원에서 저마다 선택과 마주한다고 말한다. 많은 이들이 어느 한 영역에서는 확고한 자세를 보이며 이를 지키려고 애쓰는 반면, 다른 영역에서는 매우 풀어진 태도를 보인다. 저자는 어느 날 오후, 인종 차별 반대 시위에서 곤봉을 휘두르는 경찰과 대치하며 용감히 싸우던 사람이, 잠시 짬을 내 접속한 트위터에서는 독설을 마구 내뱉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한쪽에서는 낙인찍기에 반대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낙인찍기에 몰두하는 등 우리는 수치심에 관한 한 점잖으면서 동시에 무자비할 수 있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저자는 오늘날 수치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세력은 기업 가치가 수조 달러에 달하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그중에서도 구글과 페이스북이 가장 주목받는다고 말한다. 이 기업들은 인터넷 이용 기록을 추적해 표적 광고를 하고, 우리에게 디지털 주홍 글씨를 붙이며, 진실이든 허구든 가장 수익성 있는 단편적 정보를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저자는 수치심은 억눌린 생각과 무언의 두려움에 숨어 있다고 말한다. 비밀은 수치심의 서식지이자 온상지다. 저자는 수치심에 맞서려면 진실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수치심 머신을 정면으로 응시해야만 이를 해체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에게는 대대적인 청산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상황을 다른 시각에서 이해하려면 우리는 냉정하게 초당파적 진실을 수용하면서 나름의 화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미투 운동이 이러한 흐름을 보여준다. 여성들은 수치심과 피해자 의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증언에 나서기도 했다."

"수치심 머신과 치르는 전쟁의 다음 단계는 혈세가 들어가는 공공서비스 부문을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다. 공공서비스가 가난하고 불우하며 중독에 시달리는 자들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매 순간 이들에게 수치심을 주지는 않는지, 현실에서 이러한 존엄성 침해가 어느 정도이고 신뢰에 바탕을 둔 제도는 없는지 살피는 것이다.

거의 모든 사회 문제는 수치심을 주지 않고도 해결할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저렴한 공공주택으로 수백만 서민에게 거주 공간을 마련해 주면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다. 또 마약에 중독된 이들을 향한 경찰의 무작위 몸수색을 없애고 중독자 쉼터에 들어가게 하면 이들의 존엄성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는 개인 차원에서 우리는 떼로 몰려가 약자를 비하하는 부적절한 행동을 삼가고, 친구나 이웃 나아가 인류가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수치심에 대한 자각력을 길러 이를 세심하게 사용한다면, 그리고 공유 규범을 강제하는 목적으로만 이를 활용한다면, 사랑하는 가족을 비롯해 우리가 아는 사람들의 인생이 밝아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더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수치심 렌즈를 끼고 일상을 구석구석 살피는 것이라고 말한다. 언제 수치심이 생기는지, 어떤 소통방식이 수치심을 낳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난민을 무시하는 이민국 직원의 태도, 열두 살 난 딸에게 뚱뚱하다고 무안 주는 엄마의 행동이 여기에 해당한다. 저자는 다음 과제는 수치심을 낳는 행동을 포착한 다음 이를 분석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신앙심을 비웃는 행동이 사회에서 자주 본 모습을 따라 한 것인지, 개인의 상처나 불만에서 나온 행동인지, 아니면 일종의 개종 전략인지 살펴본다. 또 이들이 사제에게 학대당한 피해자를 비난하는지 아니면 교회를 향해 비판하는 것인지, 또 그런 비난으로 누가 이득을 보는지, 그 이득이 돈인지 지위인이 관계의 우위인지를 따져본다. 답은 명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런 질문을 머릿속에 인지해야 우리의 행동도 달라진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저자는 머릿속에 수치심 항목을 만들어 놓아야 무례한 댓글, 추잡한 비교행위, 남을 폄하하려는 리트윗, 불가능한 기대치 등 자존감을 꺽는 행동을 자제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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