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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우딴루 지음, 쩡수치우 옮김, 에드워드 양 시나리오 원작 / 북로그컴퍼니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1991년 대만에서 개봉된지 26년만에 국내 개봉한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소설로 출간되었다. 영화를 관람하고 소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읽고나니, 영화와 소설을 함께 비교하며 읽어보는 재미가 있었다.
14살 소년 샤오쓰는 국어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중학교 주간부에서 야간부로 반을 옮기게 되고 ‘소공원’파와 어울려 다닌다. 그러던 중 샤오쓰는 양호실에서 밍이라는 이름의 소녀를 만나게 된다. 소녀는 소공원파의 보스 허니의 여자로 허니는 샤오밍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 조직인 ‘217’파의 보스를 죽이고 은둔 중이다. 보스의 부재로 통제력을 상실한 소공원파는 보스 자리를 두고 혼란에 빠지는데 돌연 허니가 돌아오면서 소공원파 내부와 217파간의 대립이 격해진다. 그리고 밍을 사랑하게 된 샤오쓰도 이들의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이 소설의 제목에 등장하는 '고령가'는 타이베이의 유명한 고서점 거리를 뜻한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한 소년이 소녀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으로 1961년 대만 최초로 벌어진 미성년자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대만의 뉴 웨이브 영화감독 에드워드 양의 대표작이다.
샤오밍은 어머니와 단둘이 서로를 의지하며 타이베이에 살고 있었다. 남의 집을 전전하는 생활이었다. 어머니는 오래 전부터 심한 천식을 앓고 있었고 병이 깊어져 일반적인 약은 이미 효과가 없었지만 돈이 없으니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갈 수도 없었다.
샤오밍이 샤오쓰에게 허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허니와 함께한 날들은 샤오밍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간이었다. 허니가 난민촌 패거리인 217파의 우두머리와 결투를 벌인 것을 샤오밍을 위해서였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던 날 허니는 취해 있었지만, 밤에 목숨을 건 싸움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난 사실 내가 허니의 당당함과 멋을 좋아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날에야 비로소 깨달은 거야. 내가 그의 외로움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겠니? 허니는 언제든 나를 위해 죽으러 갈 수 있었던 거야."
샤오쓰는 허니가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는 것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샤오쓰는 허니와는 딱 두 번 만났을 뿐이지만 말로는 표현하기 묘한 친근감을 그에게 느끼고 있었다.
"샤오쓰는 허니의 죽음을 그들과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허니가 스스로 죽음을 찾아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샤오쓰는 허니의 야릇한 미소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왠지 모르게 그가 모든 사실을 다 간파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오쓰가 용기를 내어 샤오밍에게 고백하는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내가 있으니 용기를 내. 내가 평생 곁에 있을게. 평생 네 친구가 되어 줄게. 내가 지켜 줄게!"
"샤오쓰는 자신이 샤오밍을 보호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는 샤오밍이 얼마나 어렵게 사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샤오밍의 슬픔을 바라보는 샤오쓰의 시선에는 장막 같은 게 가로놓여 있었다. 샤오쓰는 결코 진실된 영상을 볼 수 없었다."
허니의 죽음 이후 217파에게 복수를 계획하던 소공원파와 함께 갔던 샤오쓰가 돌아온 뒤 마음 상태가 달라진 것을 보여주는 글이 인상적이다.
"샤오쓰는 물을 계속 퍼부으며 몸을 씻어 냈다. 지금까지 수없이 목욕을 했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구석구석 몸을 닦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리 깨끗이 닦아 내도 제 몸에 씻어 낼 수 없는 피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샤오쓰는 진정한 마음의 상처가 무엇인지, 그리고 죽음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는 없었지만 마음을 향해 조용히 다가오는게 있었다.
아까 태풍이 몰아치던 밤, 샤오쓰는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이 있다고 느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전과는 확실히 마음 상태가 달라졌다. 자신이 성장한 것인지, 아니면 냉혹해진 것인지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속 가장 깊이 숨어 있던 것들이 굴착 공사를 하다가 하수관이 터지듯, 외적인 힘에 의해 터져 나왔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태풍이 불면서 고목나무가 뽑히고 기왓장이 날아가는 것처럼 자신의 모든 것이 일시에 변해 버린 것이다."
가난한 탓에 친척들은 모두 샤오밍 모녀를 피하려 들었다. 샤오밍은 이미 세상의 가혹함과 친척들의 냉혹함을 철저히 맛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남들을 탓하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샤오밍에게는 청춘의 젊은 육체만 있을 뿐이었다. 샤오밍이 내세울 거라곤 그것 하나밖에 없었다. 아무 데도 의지할 곳이 없었으므로 자기 자신에게 의지해서 현실과 싸워 나가야만 했다.
샤오쓰는 허니의 죽음을 떠올리며 허니가 죽인 사람에 대해서도, 그들이 죽어 간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자명해졌다. 자기 눈앞에 서 있는 소녀 샤오밍, 보기에는 천진하고 순수한 외모를 지닌 이 자그마한 소녀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다 너를 위해 죽은 거야. 그렇지만 넌 아직도 게임을 끝내지 않았어. 넌 너무 잔인해."
샤오밍은 설교투의 말을 듣는 게 참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어렵고 힘들게 살아왔다. 자기가 도움이 필요할 때 샤오쓰는 손을 내밀어 주기는커녕 얼굴조차 비친 적이 없었다. 근본적으로 샤오쓰는 자신을 도울 능력이 없었다. 샤오밍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샤오쓰가 들고 있던 칼이 햐얀 제복을 입을 그녀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넌 노력하지 않았어. 나약할 뿐이야. 넌 항상 남들에게 거짓말만 했어. 나도 계속 속였어."
"열다섯 살이 되던 그해에 샤오쓰가 사람을 죽였다는 걸 아무도 믿지 않았다. 심지어 그 자신도 믿을 수 없었다."
소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끝부분에는 소설팬들과 영화팬들을 위해 정성일 평론가의 평론과 영화 속 스틸 사진과 명대사가 함께 실려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