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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7년 8월
평점 :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예술평론과 문화비평을 비롯한 다양한 저술로 주목받는 작가이자 역사가이며, 1980년대부터 환경, 반핵, 인권운동에 열렬히 동참한 현장운동가 리베카 솔닛이 쓴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레비카 솔닛'은 특유의 재치 있는 글쓰기로 일부 남성들의 '맨스플레인' 현상을 통렬하게 비판해 전세계적인 공감과 화제를 몰고 왔다. '레비카 솔닛'의 책으로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어둠 속의 희망> <멀고도 가까운> <이 폐허를 응시하라> <걷기의 인문학> 등이 있다.
책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1부 '침묵이 깨어지다', 2부 '이야기를 깨뜨리다'라는 2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에서는 침묵의 짧은 역사, 봉기의 해, 남자들 페니니즘에 합류하다, 일곱명의 죽음 그후 일년, 최근 강간 농담의 짧고 흐뭇한 역사, 2부에서는 500만년 된 교외에서 탈출하기, 비둘기들이 다 날아가버린 비둘기집, 여자가 읽지 말아야 할 책 80권, 남자들은 자꾸 내게 '롤리타'를 가르치려 든다, 사라진 범인, 거대한 여자라는 작은 소제목의 목차로 이어진다.
"이 책은 페미니즘 책이다. 하지만 여성의 경험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 모두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책이다-남자들, 여자들, 아이들, 그리고 젠더의 이분법과 한계에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의 경험을."
여자에게 적합한 삶의 방식은 하나뿐이라는 질문들에 대해 리베카 솔닛은 '여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정답은 없다. 우리가 습득해야 할 기술은 오히려 어떻게 그 질문을 거부할 것인가인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질문들은 여성이 자기자신에게도 잘못된 질문을 던지도록 배워온 것이 한 가지 원인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세상에는 답이 여러개일 수 있는 열린 질문이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닫힌 질문도 있다. 정답이 하나뿐인 질문, 최소한 질문자의 입장에서는 하나뿐인 질문이다. 우리를 무리 속으로 몰아넣고 우리가 무리로부터 벗어날라치면 물어뜯는 질문, 질문 속에 이미 답이 포함되어 있으며 실은 우리를 강제하고 처벌하는 것이 목적인 질문이다. 내 인생의 목표 중 하나는 진실로 랍비처럼 문답할 줄 아는 자가 되는 것, 닫힌 질문에 열린 질문으로 답할 줄 아는 것, 내 내면에 대한 권한을 스스로 가짐으로써 다가오는 침입자에 맞서서 훌륭한 문지기가 되는 것, 최소한 "왜 그런 걸 묻죠?"라고 재깍 되물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좋은 삶의 기준은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를테면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혹은 만족, 명예, 의미, 깊이, 몰입, 희망을 얻는 것.
내가 그동안 작가로서 추구한 목표 중 하나는 어렴풋하게 간과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의미의 섬세한 뉘앙스와 색조를 묘사하는 것, 공적인 삶과 고독한 삶을 칭송하는 것, 그리고-존 버거의 문구를 빌리자면-"다른 방식으로 말하기"를 해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오래된 방식의 똑같은 말하기에 언제까지나 이렇게 얻어맞는게 더욱더 실망스럽다."
"그 순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탄 처지라는 사실을, 자신의 괴로움을 말하되 그것으로 남들을 괴롭히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도 우리가 하려는 일의 일부라는 사실을. 사랑도 그렇다. 사랑도 더없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더없이 많은 것들에게 행해질 수 있다. 삶에는 물어볼 가치가 있는 질문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현명하다면, 모든 질문에 꼭 답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사실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레비카 솔닛은 침묵의 역사는 여성의 역사에서 핵심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인간다움에서 목소리가 중요한 특징이라면, 목소리 없는 자가 되는 것은 인간다움을 상실하거나 자신의 인간다움으로부터 차단되는 것이다. 레비카 솔닛은 이 책의 주제는 바로 여성에게 고유하게 나타나는 침묵과 침묵시키기의 여러 종류라고 이야기한다.
"목소리라고 할 때 나는 말 그대로 목소리만을-성대가 낸 소리가 타인의 귀에 들리는 현상만을-뜻하는 게 아니다. 입을 여는 능력, 참여하는 능력, 자신의 권리를 지닌 자유로운 인간으로 여기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인식될 능력까지 다 뜻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말하지 않을 권리도 포함된다."
"사랑은 끊임없는 타협, 끊임없는 대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거절당하고 버려질 위험에 자신을 여는 것이다. 사랑은 얻을 순 있지만 강탈당할 순 없다. 사랑은 내가 모조리 통제할 수는 없는 영역이다. 상대에게도 권리와 결정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협동하는 과정이고, 최선의 경우에 그 타협들이 즐거운 놀이가 되는 과정이다. 성폭력은 그런 나약함을 거부하는 행위인 경우가 많고, 남성을 가르치는 이런저런 지침들은 남자들로 하여금 선의로 흔쾌히 타협하는 기술을 잃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런 무능력과 권리의식이 악화되면, 상대를 통제하려는 분노, 쌍방의 대화를 일방적인 독백으로 바꾸려는 분노, 사랑이라는 협동행위를 상대를 폭행하여 자신의 통제력을 확인하는 행위로 바꾸려는 분노가 된다. 강간은 두 육체 사이에 사랑 대신 혐오와 분노가 자리하는 일이다. 남성의 육체를 무기로, (이성애적 강간의 경우) 여성의 육체를 적으로 여기는 시각이다."
"많은 가정폭력 살인은 떠나겠다고 선언한, 떠나려고 시도한, 실제로 떠난 여자에게 가하는 처벌이거나 그런 여자를 계속 통제하려는 시도다. 여자를 죽이는 것은 여자의자유, 자율성, 힘, 목소리를 죽이는 짓이다. 자신에게 폭력을 써서든 다른 수단을 써서든 여자를 통제할 권리와 필요가 있다고 믿는 남자가 많다는 사실은 남자들이 믿는 신념 체계와 우리가 몸담은 문화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감정이입이란 우리가 타인을 진실되게 느끼기 위해서, 타인을 위해서 느끼거나 타인과 더불어 느끼기 위해서, 그럼으로써 자신을 넓히고 확장하고 개방하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와 같다. 감정이입을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인간성의 일부를 닫아두었거나 제거해버렸다는 것, 자신을 어떤 종류의 취약함으로부터 막아두었다는 것이다. 남을 침묵시키는 것, 혹은 남의 말을 듣기를 거부하는 것은 타인에게도 인간성이 있으며 우리는 모두 이어져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회적 계약을 깨뜨리는 것이다."
레비카 솔닛은 '수치심을 안기는 것은 훌륭한 침묵시키기 수단이며 공손함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공손함이라고 부르는 것은 종종 자신보다 남들의 안락을 더 중시하는 태도다. 어떤 상황에서도 남들의 안락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면 잘못이라는 것이다. 몇십년 전 라디오에서 들었던 짧은 이야기 하나가 여태 기억에 남아 있다. 자신의 경험을 직접 들려주었던 이야기의 주인공은 뉴욕 지하철에서 누군가 자신을 더듬는 걸 느꼈지만 자신은 추행범에게 면박을 주거나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고서 몸을 떼낼 방도를 궁리했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항상 공손해야 하고, 위로해주어야 하고, 상냥해야 하고, 위협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지침이 여자들에게 얼마나 깊이 새겨져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생존을 방해하는지 보여주는 씁쓸한 일화였다."
"침묵과 수치심은 전염된다. 그러나 용기와 발언도 전염된다. 요즘도 한 여자가 자신의 경험을 말하기 시작하면, 다른 여자들이 뒤따라 나서서 앞선 발언자의 말을 보강하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다. 벽돌 한장이 느슨해지고, 또 한장이 느슨해진다. 그러다 댐이 터지고, 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세상에는 늘 말해지지 않았지만 말해져야 할 것들이 있을 테고,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언어와 의지를 찾으려고 애쓰는 여자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매일 세상을 발명하고, 그 세상을 만나는 자아를 발명하고, 그 세상 속에서 타인을 위한 공간을 열어주거나 닫아버린다. 침묵은 늘 깨지고 있고, 찰랑찰랑 밀려온 파도가 발자국과 모래성과 물에 씻긴 조개껍데기와 해초를 덮는 것처럼 다시 차오르기도 한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따로 또 함께 씀으로써 자신의 일부를 만든다. 그동안 젠더에 대한 생각을 고쳐 쓰고 침묵을 깰 권리에 도전함으로써 세상을 다시 써온 페미니즘의 위대한 경험을 놀랍도록 성공적이었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수천년 된 사회적 틀을 바로잡는 일은 한 세대나 몇 십년의 작업으로 될 일이 아니다. 그것은 기나긴 시간을 들여야 하고 종종 전투에도 휘말려야 하는 창조와 파괴의 과정이다. 그것은 참으로 사소한 일상의 몸짓과 대화뿐 아니라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규모에서 법, 신념, 정치, 문화를 바꾸는 일까지 포함하는 작업이고, 가끔은 전자가 누적되어 후자가 이루어진다.
세상의 모든 것을 그 진정한 이름으로 부르는 일, 힘 닿는 데까지 진실을 말하는 일, 어떻게 우리가 여기까지 왔는지를 아는 일, 특히 과거에 침묵당했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일, 수많은 이야기가 서로 들어맞거나 갈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 혹시 우리가 가진 특권이 있다면 그것을 사용해서 특권을 없애거나 그 범위를 넓히는 일. 이 모든 일이 우리가 각자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만든다."
레비카 솔닛은 '페미니즘은 법과 일상의 삶에서 모두가 평등하도록 만들려는 혁명, 모두에게 권리와 존중을 보장하려는 혁명의 한 부분으로 중요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이야기한다. 대학 캠퍼스의, 소셜미디어의, 거리의 젊은이들로 인한 두드러진 변화는 합의, 힘, 권리, 젠더, 목소리, 표현에 대한 우리의 생각까지 바꾸고 있다. 책 <여자들은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학살의 아수라장을 통과하여 나아가는 여행이고, 해방과 연대, 통찰과 공감을 칭송하는 노래이며, 우리가 그런 것을 탐구할 때 써야 하 용어들과 도구들을 살펴보는 점검'이라는 레비카 솔닛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