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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으로 그린 그림
김홍신 지음 / 해냄 / 2017년 8월
평점 :
<바람으로 그린 그림>은 김홍신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이 책은 사랑의 상처 때문에 더 이상의 사랑을 두려워하는 여인과 그 여인으로 인해 가톨릭 신부가 되려던 삶의 진로를 바꾼 남자의 운명적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은 제 1부 청조망 또는 성벽, 제2부 소리 내어 울 수 있는 자유, 제3부 새끼손가락의 약속, 제4부 깊은 용서라는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충청남도 논산에서 손이 귀한 집안의 종손이자 외아들이면서도 가톨릭 사제가 되기를 꿈꾸었던 고등학생 리노는 성당에서 성가대 반주를 하는 모니카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집안 어른들의 성화에 무릅쓰고 아들을 큰집 양자로 보내지 않은 어머니는 아들이 의대에 진학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소문난 모범생이었던 모니카에게 공부 도움을 청하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7살의 나이차가 무색하게 연인처럼 가까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모니카는 리노가 친구들과 어울리다 큰 싸움에 휘말리자 그를 공부에 전념시키기 위해 방학 동안 그녀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목장에서 지낼 것을 제안하고, 이로 인해 더 가까이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된 리노와 모니카의 사랑은 커져만 간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모니카의 옛 약혼자가 목장에 나타나 모니카의 신변을 위협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아픈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을 보고 결혼까지 결심한다. 모니카의 갑작스러운 결혼 선언으로 인해 두 사람은 이제 상대의 행복을 기원하기로 결심하지만, 마음만큼은 서로에게 여전히 속해 있음을 확인한다.
<바람으로 그린 그림>은 리노와 모니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차례대로 이어가면서 각자의 입장에서 고백하듯 말한다. 이 책에서 고등학생인 리노와 7살 연상의 여인 모니카가 서로를 위해 사랑하는 감정을 숨죽이며 상대의 행복을 바라는 모습이 그려져 흥미롭다.
"내가 리노에게 마음과 생각이 닿아 있는 것이 세상 윤리에 어긋난다면, 사랑은 어떤 면에서 부도덕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 27
"기도할 게 많거나 바라는 게 많으면 그 인생은 무겁다고 했는데, 지금 내 마음은 그냥 무거운 게 아니라 천근이나 되는 바위를 얹어놓은 것 같았다." - 35
"세상에서 최고의 가치가 뭔지 알아? 최고의 가치는 내 곁에 잇는 사람들을 나를 인정해 주는, 내 사람으로 만드는 거야. 손을 내밀어 상대를 내 사람으로 만들면 그걸 인연이라고 하고 그 인연을 잘 갈무리하여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걷다 보면 비로소 진실한 인생의 동지가 되는 거지. 나 혼자로는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내 인연과 함께하면 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최고의 가치를 갖게 되는 거야." - 68
"사랑이란 그 사람의 모든 것, 병들었거나 말 못 할 사연이 있거나 큰 죄를 지었거나 처절하게 몰락했거나 가진 게 하나도 없거나 배운 게 없거나 성격에 결함이 있더라도 덮어주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 202
모니카와 리노는 다른 인연을 만나지만 그들의 아이들은 서로의 연으로 묶이게 되며, 깊은 용서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다. '사랑과 용서로 짠 그물에는 바람도 걸린다'를 글을 책상 앞에 써붙였다는 김홍신 작가의 말처럼 뜨거운 사랑 뒤에 순수한 인간애가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함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