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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 평범한 나날을 깨워줄 64가지 천재들의 몽상
김옥 글.그림 / arte(아르테) / 2016년 6월
평점 :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김옥 작가가 그림, 영화, 책에서 만난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이 책은 김옥 작가가 본 영화나 책, 그림 중에서 내가 관람했던 작품들을 어떻게 다르게 느꼈는지를 찾아볼 수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자비에 돌란 감독이 연출한 영화 <하트비트>에 관한 글은 이 책의 가장 맨 처음에 등장한다. '손에 닿지 않는 안타까움'이라는 글 제목이 이 영화를 바라보는 김옥 작가의 시선을 말해준다. 김옥 작가는 영화의 주인공인 마리와 프란시스보다 '니콜라'의 사랑 규칙을 더 흥미롭게 이야기하여 인상적이다.
"니콜라의 사랑 규칙이다.
가볍게, 결코 심각해지지 않을 것.
모두가 산뜻하게 거리를 둘 것.
달콤하고 예쁘지만 몸에는 딱히 좋을 것 없는 마시멜로처럼.
어렵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보기 좋게 차여버린 프란시스와 마리. 새하얀 마시멜로는 어느덧 프란시스의 가슴에 묵직하도록 검은 우박이 되어 쏟아진다.
( '손에 닿지 않는 안타까움-영화 [하트비트]' 중에서 / p.16)"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에 관한 글귀들이 인상적이다. "자식을 낳는 이유는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야. 어긋난 지점을 바로잡기 위해서지."라는 엄마 이블린과 "딸아, 너의 삶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길 원해"라는 여자 이블린의 말이 대비되는 장면들을 이야기하는 글이 눈길을 끌었다.
"엄마 이블린에게도 찰리는 기다리던 누군가의 존재다. 안정적이지만 단조로운 일상. 그녀는 남편과 함께 죽어버린 활력을 아름다운 찰리로부터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찰리와 공명할 수 없는 거리감을 느낀다. 진정한 공명의 대상이 자신이 아닌 딸 인디아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녀의 삶은 지옥이 된다.
엄마 이블린은 말한다.
“자식을 낳는 이유는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야. 어긋난 지점을 바로잡기 위해서지.”
여자 이블린은 말한다.
“딸아, 너의 삶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길 원해.”
( '기다림의 의미, 희망이거나 고통이거나-영화 [스토커]' 중에서 / p.144)"
요즘은 어른이 되어도 장난감을 포기하지 않는 키덜트족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시대 흐름에 따라 장난감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건담의 프라모델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건프라 마켓이 번화가에 생기고, 연예인들은 장난감 수집 취미를 공공연하게 밝힌다. 어른이 장난감을 갖고 논다는 건 과거에는 드러내기 거북하고 그리 자랑스럽지 못한 취미였다. 그러나 이제는 어엿한 하나의 취미로 인정되고 있다.
우리가 장난감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또 그 열광을 부끄러워하는 이유는 또 뭘까? 작가 릴케가 수필에서 말하듯, 장난감은 사랑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준다. 어린 시절 우리가 마음을 주었던 인형. 그러나 인형용 찻잔에 차를 담아 정성껏 대접해도 인형은 한 모금의 차도 마시지 못한다. 살아 있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 당연히 헛헛해진다. 이렇게 우리가 최초의 애정을 품은 대상은 좌절할 수밖에 없는 덧없는 존재인 것이다.
(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작지만 큰 친구-미미 인형' 중에서 / pp.314~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