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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프랑스식, 연애 -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인류 프랑스인들의 성과 사랑
곽미성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그녀들의, 프랑스식, 연애>는 프랑스라는 가치관이 아주 다른 사회를 통해 돌아보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고찰을 쓴 에세이이다. 이 책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위해 누구보다 고군분투해왔던 한 집단, 엄마에서 딸로 이어지는 프랑스 여성들의 작은 역사이며, 고유의 여성성으로 세계를 매혹한 그녀들의 속내는 들춰보는 은밀한 이야기이다.
"우리에게 막장으로 보이는 딱 그만큼이 프랑스 연애관과 우리 연애관의 거리일 것이다. 이것이 평범한 파리지엔들의 연애 라이프라면 도대체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한 걸까? 겉보기엔 막장 드라마 같은 이들의 삶 속에는 어떤 철학이 있는 것일까? 그 자유로움을 유지하기 위한 나름의 원칙이 있기는 한 걸까?"
(/ p.23)
"왠지 프랑스인들은 모두 아주 오래전부터 개방적인 연애 생활을 즐기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타인의 시선보다 개인의 즐거움이 우선시되는 자유연애는 상류 귀족층에 국한되었고, 일반 서민들의 성 관념은 최근까지도 아주 보수적인 규범에 묶여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프랑스는 하루아침에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간 것이다. 그야말로 혁명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을, 급격한 속도의 변화다."
(/ pp.30~31)
저자는 68혁명으로 프랑스 사회는 곳곳에서 다양한 자유를 맛보게 되었으나, 그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변화는 여권의 상승일 것이라고 말한다. 마음의 표현보다 몸의 표현이 더 어려운 것이 한국 사회 연애 풍속도라고 본다면, 프랑스 사회는 문화적으로 그만큼 먼 거리에 위치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마음의 문제에서는 남녀노소 상관없이 더 진지하고, 그래서 더욱 로맨틱하기도 하다.
"파리의 모두는 그렇게, 로맨스를 꿈꾸며 살아간다. 우리나라 TV 드라마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정작 팬시한 로맨스는 인위적이라 비웃는 사회에서 사랑을 더 많이 꿈꾸고 살아간다니 재미있지 않은가. 실제의 로맨스가 가능한 도시에서 가상의 동화는 설 자리가 없다."
(/ p.35)
"파리를 구성하는 두 가지 세계, 부르주아적 질서와 보헤미안 스타일. 파리가 지닌 다양성과 다채로움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파리를 안다는 것은 파리의 그와 그녀들을 안다는 것이다."
(/ p.76)
저자는 건축 스타일만으로 파리의 각 동네들을 단정적으로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세계 안에서 파리만의 매력이 창조된 칼럼니스트 애덤 고프닉의 분석은 탁월해 보인다고 말한다.
"[뉴요커]의 칼럼니스트 애덤 고프닉(Adam Gopnik)은 파리의 성격을 둘로 나누어 구분했다. 그는 파리가 "부르주아적 질서와 그 편리함에 초점을 맞춘 오스만 스타일과 보헤미안적인 아방가르드 스타일"이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가치로 19세기에 재구성되었고, "이 두 세계는 얼핏 대립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서로 아주 깊이 의존하고 있다"고 썼다."
(/ p.78)
저자는 프랑스에서 요리 자체에 대한 이들의 애정은 그만큼 음식문화가 발달한 덕분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많은 부분 사회구조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우선 프랑스는 인건비가 비싸서 식당의 음식값이 물가에 비해 아주 비싼 편이다. 또한 법적으로 모두에게 보장된 한 해 5주의 휴가와 주당 35시간의 노동법, 야근과 회식 없는 문화가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먹는 즐거움'은 '만드는 즐거움'과 함께 발전한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1960년대까지는 요리가 여자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점점 맞벌이가 늘어나고 가사 분담이 일상화되면서 요리하는 남자들이 자연스럽게 많아졌다. 요리 자체에 대해 인식도 ‘삶을 다채롭고 즐겁게 해주는 일상 예술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 p.133)
저자는 프랑스인들에게는 '조건과 스펙'이 상대를 유혹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프랑스인들에게는 상대의 집안과 경제력보다는 어느 분야에 있는 사람인지, 본인과 얼마나 많은 공통분모를 갖는지, 대화가 통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이 통할지가 훨씬 더 중요한 요소라는 거다. 프랑스에서는 결혼은 그리 공고한 제도가 아니다. 사람들은 연애의 끝이 결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결혼 이후에도 기나긴 시간이 있음을 안다. 경제력이 좋은 상대와 가정을 꾸리는 일은 물론 내 인생에도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거기까지 가는 일도 쉽지는 않고 그 이후로도 관계는 안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또한 성인이 되고 가정을 이룬 자식들의 삶에 부모가 크게 간접하거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는, 진지한 연애를 위해 상대의 집안을 따져볼 이유가 없다. 게다가 프랑스에서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결혼 후까지 직업을 가지고 평생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독립적으로 커리어를 키워간다. 저자는 이런 환경이라면 비슷한 관심사화 세계관을 가진 사람, 오랫동안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하며 함께 걸을 수 있는 누군가를 찾는 일에 비로소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결혼 제도는 오랫동안 서민 남녀에게 신분 상승을 가능케 해주는 부르주아의 문화였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이런 결혼관은 19세기의 것으로, 아주 낡은 사고가 된 듯 보인다. 아직 이 결혼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프랑스인과의 연애는 ‘19세기와 21세기의 만남’처럼 숱한 오해를 빚어낼 것이다."
(/ p.158)
저자는 파리지엔의 특성을 아우르는 성향은 자존감과 내밀함이라고 말한다. 남들이 어떻게 본들 내게 편하고 알맞은 옷차림을 선택하는 고지식함은 무채색의 클래식이 여전히 파리에 가장 적합한 스타일로 남는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똑바로 앞을 보고 걷는다. 주변 시선에 개의치 않고 내가 편안한 스타일로, 스스로 가장 매력적이라고 느껴지는 차림으로 자신 있게 나아간다. 내가 어떻게 보일지를 고민하기보다 상대가 어떤지 당당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소통하는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이 내밀하게 집중한다. 어떤 명품 가방 없이도 빛나고 매혹적인, 그녀들이 파리에 있다."
(/ p.174)
"여성들에게 란제리란 꼭 보여져야만 의미를 갖는 시각적인 관능의 아이템이 아니다. 몸에 잘 맞는, 좋은 소재의 매혹적인 란제리는 보기에도 아름답지만, 입고 있으면 더욱 색다른 기분을 준다. 게다가 몸의 실루엣을 정리해주어 입고 있는 내내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란제리는 이렇게 여성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커다란 역할을 한다. 동시에, 소통의 은밀함을 함의한다는 점에서 더할 나위 없는 파리지엔식 관능의 아이템이다."
(/ p.218)
"꼭 해야 할 이유도 없고, 안 하기를 고집할 이유도 없다. 결혼이라는 것은 ‘지킬 것이 많은’ 부르주아 문화. 관계를 지탱하는 힘은,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니라 둘만의 내밀함이다."
(/ p.235)
저자는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은 개인의 연애 관계와 성생활은 철저히 개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올랑드가 결혼을 했든 안 했든, 동거인이 있으면서 다른 여자를 만났든 안 만났든, 이는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능력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그와 대중과의 관계는 업무적인 관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심각한 탈세를 한 전적이 있다거나 성범죄자였다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결국 이는, 범죄나 폭력의 범주에 들지 않는 개인의 성생활이 어디까지 도덕적 잣대로 평가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견해 차이다.
"우리는 흔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에는 "모든 사람에겐 비밀의 정원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자르뎅 스크레(Jardin secret)’, 즉 비밀의 정원은 사전적으로는 마음속 깊이 숨겨진 마음, 열정, 꿈 같은 것을 의미하는데, 요즘엔 숨겨둔 혼외 관계나 성적 환타지 등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로맨스와 불륜으로 나뉘는 관계의 논리로 이야기하자면, 이들에겐 나의 로맨스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남의 관계도 로맨스로 봐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 pp.249~250)
"남편은 어떤 제도도 개인을 구속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에게 결혼은 큰 의미 없는 허울일 뿐이다. 서로를 구속하지 말고 같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것, 그러니 나의 질문에 저런 여유로운 대답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면 그가 생각하는 이혼 사유는 무엇일까? "함께 있는 것을 견딜 수 없고 서로를 좀먹고 있다면 그게 이혼 사유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 것은 내게 헤어짐의 이유가 될 수 없는데."
(/ p.265)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은 여전히 부부 중 한 명이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면 남자가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여성들 스스로의 경제적 자립에 대한 의지도 보편적이다.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이 아이의 유무와 관계없이 자유롭다 보니, 결혼을 했다고 해서 혹은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여성들이 마음 놓고 경제적 독립을 포기하지 않을 수도 있다."
(/ p.280)
저자는 프랑스에서는 연애와 결혼을 사생활로 본다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연애와 결혼의 거리가 멀수록, 결혼이 중요하지 ㅇ낳을수록 연애는 사적인 영역이 된다. 연애가 결혼가 긴밀한 관계를 가질수록 연애 또한 공적인 영역이 되고 일종의 커리어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프랑스에서 연애와 동거는 가깝고 결혼과의 거리는 멀다. 여기에서는 결혼이 그야말로 선택이다. 연애 관계가 진지해지고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동거한다. 그 뒤 꼭 결혼하지 않더라도 구청에 가서 팍스에 등록하면 법적 보호를 받는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도 결혼한 부모의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적법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부모님이 걱정하시니까 결혼은 꼭 했으면 좋겠다든지, 네가 나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어떻게 결혼을 생각 안 할 수 있느냐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 p.292)
"프랑스 부부들의 경우 대부분 이혼은 이렇게 둘 중 한 사람이 외도를 하고 이혼을 요구할 때 이뤄진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의 반응으로 우리와 좀 다른 점이라면, 이들은 "셀라비!", 즉 "그게 인생이지!" 하는 체념의 자세가 일반적이라는 거다. 특히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더 그렇다. "고통스럽지만 어쩌겠니, 그게 삶인걸" 하는 식의 말로 사건을 일반화시키고 보다 가볍게 여겨주며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