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작가 줄리언 반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이다. 이 책에서는 ​예순이라는 나이를 넘긴 작가 줄리언 반스가 말하는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줄리언 반스는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국 작가들의 죽음을 파헤치며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그것은 낯선 호텔 방에서 이전에 묵었던 투숙객이 맞춰놓은 자명종이 울리는 바람에 야심하기 그지없는 시간에 느닷없이 잠에서 깨어나 암흑과 공포 속으로 내던져진 채, 현세가 잠시 세 들어 사는 세계임을 통렬히 자각하게 되는 것과 같다. 최근에 친구 R이 내게 얼마나 자주, 어떤 상황에서 죽음을 생각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잠에서 깨어 있는 하루 동안 적어도 한 번은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런 후 간간이 일어나는 야간 침입들이 있다고도 했다. 외부 세계가 뚜렷한 평행선을 그릴 때, 저녁으로 접어드는 시간, 낮이 짧아질 때, 혹은 긴 하루 동안의 하이킹이 끝나갈 때, 자주 죽음의 필연성이 불청객처럼 내 의식을 비집고 들어온다."
(/ pp.45~46)


"몽테뉴는 죽음을 물리칠 수 없는 우리가 '죽음에 반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시도 놓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다. 너의 말이 넘어지거나 지붕에서 타일 한 장이 떨어질 때마다 죽음을 생각하라. 네 입안에선 언제나 죽음의 맛이, 네 혀끝에선 언제나 죽음의 이름이 감돌아야만 한다. 이런 식으로 죽음을 예견할 때 죽음의 예속에서 스스로 해방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다른 이에게 죽는 법을 가르쳐준다면, 기실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과 같다. 이렇게 죽음을 늘 의식하는 것이 몽테뉴를 울적하게 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그는 보다 자주 기발한 꿈을 꾸고 몽상에 젖어든다. 몽테뉴는 자신의 동지이자 친구인 죽음이, 그가 일상적인 일을 하는 중에 마지막 방문을 해주길 바란다."


"나로선 우리의 명석함이나 자기 인식이 왜 상황을 악화시키기보다 개선시켜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국말 없이 우리를 품어 떠받드는 저 유전자들의 우리의 공포마저 없애줘야 할까? 유전자가 공포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음 자체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 두려움이 우리에게 유용하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 사실은 우리의 이기적인 유전자에게 유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우리가 죽음을 필요한 만큼 두려워하지 ㅇ낳는다면, 우리도 이전의 다른 사람들처럼 위장한 호랑이싀 속임수에 홀린다면, 혹은 우리의 혀가 먹으면 안 된다고 가르쳤던 그 쓴 풀을 먹는다면, 그 이기적인 유전자들이 전해질 리 없을 테니까. 우리가 임종 때 위안을 받아봤자 이 새로운 주인인 유전자에게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으며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당신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쪽을 택하겠는가, 아니면 두려워하지 않는 쪽을 택하겠는가? 언뜻 쉬운 문제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떨까? 당신은 죽음 같은 건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고,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여담이지만 내일 같은 건 없다) 살고, 도락을 좇고, 소임을 다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그런 후 마침내 죽음이 임박했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때를 맞았다. 그런데 바로 앞 문장의 마침표를 찍으며, 지금까지 이어져온 당신 인생사가 다 헛소리였음을 새로이 자각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애초에 언젠가 죽을 거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실이 지닌 의미는 무엇인지를 깨달았다면 전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까?"
(/ pp.185~186)

"1882년 3월 6일 월요일, 도데, 투르게네프, 에드몽 드 공쿠르와 함께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졸라는 ‘르 레베일 모르텔’의 이러한 영향들에 관해 털어놓았고, 공쿠르가 그의 이야기를 낱낱이 받아 적었다. 그날 저녁, 그들 중 넷은 죽음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 투르게네프는 이렇게 (살짝 손짓으로 시범을 보이면서) 그 생각을 떨쳐버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인들은 골칫거리를 ‘슬라브의 안개’ 속으로 사라지게 할 줄 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인들은 논리적이지만 성가실 정도로 끈질기게 떠오르는 상념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이 안개를 불러 모은다고 했다. 가령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 폭풍에 갇히게 되면 추위에 대해선 의도적으로 생각을 말아야지 안 그러면 얼어 죽고 말 것이다. 더 큰 사안에도 이와 똑같은 방법을 적용해 이겨낼 수 있었다. ‘이렇게’ 떨쳐버리면 되었다."
(/ pp.287~288)


줄리언 반스는 아버지를 떠올리면, 손톱이 손가락 끝 위로 둥글게 말려 있었던 아버지의 손이 생각나는 때가 많다고 말한다. 줄리언 반스가 천운을 타고나지 않은한, 우리의 몸은 우리의 진행 중인 죽음의 역사를 들어낼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우리는 살고, 우리는 죽고, 우리는 기억되고, 우리는 잊힌다. 즉시 잊히는 것이 아니라, 한 켜 한 켜씩 잊힌다. 우리가 기억하는 우리의 부모는 대개 그들의 성인기를 통해서다. 우리가 기억하는 우리의 조부모는 그들 인생의 마지막 3분의 1이라 할 수 있는 노년기를 통해서다. 그 외에 기억나는 다른 존재가 있다면 아마도 따끔거리는 턱수염에 지독한 냄새, 아마도 생선 냄새 같은 걸 풍기는 증조부 정도가 있지 않을까. 그다음엔? 사진들, 그리고 얼마간 우연히 발견하는 기록들일 것이다. 미래에는 내가 하는 일처럼 바닥이 얕은 서랍에 기록을 보관하는 일이 아니라 뭔가 기술상의 갱신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수 세대에 달하는 조상들이 영화와 테이프와 디스크를 통해서 살아남아 움직이고 말하고 미소 짓고, 그들도 여기 있었음을 증명할 것이다."
(/ pp.35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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