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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 - 아포리아 시대의 인문학 - 그리스 ㅣ 군주의 거울
김상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군주의 거울-키루스의 교육>은 김상근 교수가 2014년 가을에 총 8회에 걸려 방영된 EBS 인문학 특강 <아포리아 시대의 인문학>을 단행본 형식으로 풀어 쓰고, 또 삼성 세리CEO에서 연속 강연한 내용과 2014년 상반기에 모 대기업 사보에 연재했던 <군주의 거울> 시리즈 기고문을 수정하고 보완해 쓴 책이다. 저자는 세상살이가 점점 더 힘들고, 젊은이들 사이에 희망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진정한 리더가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총체적인 리더십의 부재야말로 우리 시대의 질곡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틀이다. 리더의 자격이 없는 자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 국민의 고혈을 빨아먹고 자신의 배를 불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군주의 거울-키루스의 교육>은 리더가 부재한 이 땅에서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좌절과 분노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그리스 소전을 재해석한 내용을 남고 있다. 제1부에는 그리스 고전이 기록된 그리스 아포리아 시대의 실감나는 현실이, 제2부에는 아포리아 시대를 살아가는 리더가 성찰해야 할 가치들이 제시되어 있다.이 책에서 다룰 고전들의 목록은 헤로도토스 <역사> 투키디에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플라톤 <국가>, 크세노폰 <키루스의 교육>이다. 이 고전들은 모두 고대 그리스 시대를 풍미했던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 또한 우리처럼 가짜 리더에게 속아 고통당했고, 참된 리더를 고대하면서 참혹한 시대를 견디었다. 우리가 지금 느끼고 있는 실망과 분노를 그들도 똑깥이 느꼈다. 저자는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이 실망과 분노를 넘어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찾아 위의 책을 썼던 것처럼 우리도 이제 참된 리더에 대한 성찰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북극성이 어디 있는지, 내 인생의 좌표는 어느 곳인지, 인생의 방향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자신을 성찰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어느 곳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숙고하라는 요구입니다. 이런 성찰을 위해 고개를 들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이 아포리아(Aporia) 시대, 즉 ‘길 없음’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인문학의 과제입니다."
(/ p.5)
지금 대한민국은 아포리아 상태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 길 없음의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예상치못한 사고 후 상식적인 사회적 규범과 해결의 프로세스가 붕괴된 상태를 고스란히 드러낸 우리 사회는 다시 진영 논리로 양분되어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 이런 사회적 현상은 대한민국이 심각한 길 없음의 상태에 봉착했음을 보여준다.
"아포리아는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태(Lack of Resources)’, 즉 ‘길 없음(Impasse)의 상태’이자 ‘출구 없음(No Exit)의 상태’를 뜻한다. 이것은 위기(Crisis)보다 더 심각한 상태다. 위기 상황에서는 그래도 어떤 조치를 취해볼 수 있다. 그러나 아포리아는 더 이상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다. 아포리아 상태에서 우리는 망연자실한 채 자신의 무지와 무능을 비로소 절감 하게 된다."
(/ p.17)
우리는 반복되는 대형 참사와 총제적 리더십 부재를 경험하면서 아포리아 시대를 직감하고 있다. 개선되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전근대적인 참사들, 그에 따른 비합리적이며 무능한 처리 방식을 목격하면서 이제 이상적인 리더와 리더십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그리스에서 생겨난 이 말의 원래 뜻은 ‘막다른 곳에 다다름’이다. 그리스는 약 120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200개가 넘는 섬에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다. 그래서 도서(島嶼) 간 이동을 위한 항해술의 수준이 높았는데, 바람을 이용해 돛으로 파도를 타고 넘는 기술이 발달할수록 그만큼 해상 사고의 위험도 잦아졌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 섬과 섬 사이를 항해하다가 어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즉 위기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태에 직면했을 때를 아포리아라고 했다."
(/ pp.17~18)
저자는 이런 아포리아 시대에 우리가 함께 펼쳐보아야 할 책은 절망의 시대에 읽어야 할 인문학 장르의 도서들이라고 말한다. 아포리아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함께 읽어야 할 인문학 고전을 '군주의 거울'이라 한다. 군주의 거울은 기원후 8세기, 유럽이 본격적으로 중세로 접어들던 카롤링거 왕조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인문학의 리더십 교과 과정이다. 중세의 봉건 제후들은 자신의 봉토를 지키고 확장시키기 위해 인근 제후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탁월한 리더에 대한 갈망과 기대가 싹트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원후 8세기부터 중세 유럽 사회에서는 탁월한 리더를 양성하기 위한 특별한 인문학 교과 과정이 개발됐다. 장차 일국의 장래를 책임질 왕자들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 교육의 중대성이 대두되면서 이들을 위한 리더십 교과 과정이 제시된 것이다.
"군주의 거울은 기원후 8세기, 유럽이 본격적으로 중세로 접어들던 카롤링거 왕조(Carolingian Dynasty)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인문학의 리더십 교과 과정이다."
(/ p.20)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군주나 봉건 귀족의 자제가 탄생할 때마다 그에 적절한 군주의 거울이 그 나라의 학자나 사제들에 의해 집필됐다. 새로 탄생한 ‘왕자(Prince)’가 마땅히 본받아야 할 ‘거울(Mirror)’과도 같은 탁월한 리더의 모델을 제시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이런 책들을 ‘군주의 거울(Mirror for Princes)’이라 불렀다."
(/ pp.20~21)
연속된 그리스의 아포리아는 군주의 거울이 될 고전의 탁생을 촉발시켰다. 고난 속에서 되새기는 고뇌의 밤이 깊어가면 갈수록, 길없음의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현자들의 뼈를 깎는 성찰이 시작된 것이다.
"기원전 5세기에 접어들면서 그리스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노출된다. 그리스의 아포리아, 즉 길 없음의 상태가 시작된 것이다. 기원전 5세기 초, 즉 499~449년에 촉발된 페르시아 전쟁이 그리스가 직면한 첫 번째 아포리아다."
(/ pp.29~31)
"그리스에 밀어닥친 두 번째 아포리아는 기원전 431~404년 페르시아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발발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그리스에 기원전 5세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테네의 황금기(The Athenian Golden Age)’인 동시에 참혹한 전쟁이 두 번이나 발발했던 죽음과 폭력의 시기였다. 그리스인들에게 펠로폰네소스 내전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다. 함께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읊던 동족끼리, 같은 헬라어를 쓰는 피붙이끼리, 올림픽이 열리면 함께 뛰고 달리며 선의의 경쟁을 펼치던 친족끼리 서로 죽이고 죽는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 p.31)
"기원전 399년, 아테네의 현자 소크라테스Socrates(B.C. 469~399)가 독배를 들고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아테네라는 도시가 철학에게 첫 번째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었다. 세계 4대 성인 중 한 명이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서양 철학의 아버지’라 추앙받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사람들의 저주를 받으며 죽음으로 내몰렸다. 그리스의 세 번째 아포리아는 과거 두 번의 전쟁처럼 외부 요인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났다는 점이 무엇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 pp.33~34)
인류 최초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이 왜 발발했고, 이 전쟁의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한 장문의 역사 기록을 만겼다. 페르시아 전쟁의 당사자였던 여러 군주와 장군을 역사의 무대로 직접 소환해 그들에게서 무엇을 배우고, 또 무엇을 배우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 것이다. 헤로도토스에 이어 다음 세대의 그리스 역사가로 활동했던 투키디데스도 펜을 들었다. 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나자 이 전쟁의 시종과 전후를 객관적으로 기록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품었다. 비록 전쟁의 최종 국면까지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투키디데스는 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아테네를 몰락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게 한 리더의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분석했다. 소크라테스의 수제자인 플라톤과 애제자인 크세노폰은 이해할 수 없는 스승의 죽음 앞에서 분연히 펜을 들고 그리스의 아포리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후대 사람들에게 왜 기원전 5~4세기 그리스에서 아포리아가 연이어 발생했고, 이 아포리아를 극복하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위대한 통찰의 글을 남기고자 했다. 그들이 쓴 책이 바로 <국가>와 <키루스의 교육>이다.
위기는 기회를 만들지만 아포리아는 인간과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분별력을 낳는다. 저자는 우리가 군주의 거울로 일컬어지는 그리스의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기원전 5~4세기에 그리스인들이 경험했던 아포리아는 지금도 우리들의 척박한 땅에서 반복되고 있다. 비난의 손가락을 타인에게 겨누지 말고 먼저 거울이 비친 나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성찰하자. 그리고 함께 힘을 모다 어서 빨리 이 길없음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헤로도토스는 <역사>를 통해 그 시대를 살았던 세 명의 리더인 크로이소스, 크세르크세스 그리고 테미스토클레스를 주인공으로 제시했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자신이 누렸던 권력과 부를 행복의 기준으로 착각한 인물이었고,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는 어리석고 우유부단했으며 쓸데없는 과시욕에 사로잡혀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킨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는 타고난 정치적 감각으로 승리를 쟁취했으나 권력을 향한 의지가 지나쳤고 재물 욕심을 억제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헤로도토스는 나쁜 군주, 본받지 말아야 할 리더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군주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 리더의 위치에 오르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 그리고 아테네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의 공통점은 바로 오만이다. 군주는 스스로 이 오만을 경계해야 한다. 제국의 권력과 황금의 쾌락이 주는 오만의 유혹을 멀리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라는 군주의 거울을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의 핵심이다.
"진정한 군주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 리더의 위치에 오르면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를 믿고 따르는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그 사회는 아포리아에 처하게 된다. 행복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가진 왕과 명예욕에 불타올라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킨 군주, 그리고 물질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장군이 나라를 이끌면 그 나라는 쇄락을 면치 못하게 되고 온 국민이 고통의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 p.81)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지금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의 본성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제시한다. 페르시아 전쟁을 마치고 그리스의 맹주 자리에 오른 아테네는 "제국을 현재 상태로 확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아테네의 지도자들이 이런 확장 정책으로 코린토스나 메가라를 압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첫째로 두려움이, 다음에는 체면이, 끝으로 우리 자신의 이익이 그렇게 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제국의 논리다. 인류 역사를 통해 간헐적으로 등장했던 모든 제국은 이 논리를 따라 확장을 계속하다가 결국 소멸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제국의 위치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패권을 장악한 국가의 체면, 그리고 그 나라의 끊임없는 이익 추구로 한 번 제국의 길로 들어선 국가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런 제국의 논리를 제일 먼저 인정하고 받아들인 나라가 바로 아테네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실체는 기원전 5세기 후반에 그리스에서 일어난 내전에 대한 기록이지만, 인간의 본성에 따라서 영원히 반복될 보편적 역사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투키디데스는 역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성찰하겠다는 의지와 자신감을 피력한 것이다. 반복되는 역사의 전후좌우를 살펴보는 것은 위기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밝힘으로써 후대 사람들에게 진정한 역사의 의미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의 지도를 그려 보여주겠다는 뜻이었다."
(/ p.92)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시민들 앞에서 아포리아 시대의 참된 지도자 상을 제시했다. 미래를 예측하는 식견을 갖추고, 그것을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공동체의 일원을 존중하고 재물의 유혹에서 초연할 수 있는 지도자 상을 제시하면서 본인 스스로 그런 인물임을 당당하게 밝혔다. 투키디데스는 이런 페리클레스의 통찰력과 자신감을 높이 평가했다.
"실제로 평화로울 때 그가 국가 업무를 주관하는 동안에는 그의 중도 정책이 줄곧 국가를 안전하게 지켰고, 아테나이는 그의 시대에 가장 위대해졌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그는 분명 아테나이의 능력을 정확히 예견했던 것 같다.(중략)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페리클레스는 명망과 판단력을 겸비한 실력자이자 청렴결백으로 유명했기에 대중을 마음대로 주물렀으며, 대중이 그를 인도한 것이 아니라 그가 그들을 인도했다. 그는 또 부적절한 수단으로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아첨할 필요가 없었다."
아테네가 중심이 된 델로스 동맹이 결성된 이후 아테네는 제국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이 팽창의 논리를 피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갑자기 막대한 부가 아테네로 집결되면서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테네 사람들은 경제적 여유와 문화적 자신감에 빠져 점점 더 속물화되어갔다. 황금이면 모든 일이 가능하다고 믿게 된 것이다. 물질적 풍요가 가치 선택의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함께 목격되는 것은 '몸의 숭배' 현상이다. 황금이 우선하는 사회에서는 이른바 '몸짱'과 '얼짱'이 각광을 받는다. 황금에 눈이 먼 시대를 살아가던 당시 청년들은 아테네의 걱국 왕인 테세우스를 열렬히 숭배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가장 '이상적인 사람'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외모 지상주의와 별반 다르지 않은 현상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 뒤에는 시대를 막론하고 늘 황금만능주의가 도사리고 있게 마련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연 동굴 속에서 가난한 농부와 사냥꾼들이 숭배하던 평범한 판신에게 기도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황금을 찾아 길을 떠날 때, 자신만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을 걷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이 이상적인 사람이 아니라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이 이상적인 사람임을 자신의 삶을 통해 증명하겠다는 것이다. 황금에 눈멀지 않겠다는 한 철학자의 간절한 기도였다. 말 잘하는 사람들의 시대에 주인공이었던 소피스트들은 유창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설득했고, 이를 위해 궤변과 장광설을 늘어놓곤 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연설이 아니라 서로 생각을 나누며 질문하는 삶을 선택했고, 이것이 바로 지혜에 이르는 숙고하는 삶의 방식이었다.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캐묻게 함으로써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런 대화를 통한 진리의 접근을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라고 한다. 아테네의 아포리아는 "부와 명예와 명성"을 얻기 위해 안달하면서도 정작 "지혜와 진리와 혼의 최선의 상태"에 대해서는 관심도 ㅇ벗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 대한민국의 아포리아가 초래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비정상적인 열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면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부도덕한 인간들이 득시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친애하느 판 신과 이곳의 모든 신들이시여! 나의 내면이 더 아름다워지게 해주시고, 내 외적인 재산은 내 내면의 상태와 일치하게 하소서. 나는 지혜로운 사람이 부자라고 믿고 싶으며, 내가 갖고 싶은 황금은 절도 있는 사람이 지니거나 가져갈 수 있을 만큼만 갖고 싶사옵니다."
플라톤의 주저로 알려져 있는 <국가>는 관념론적인 철학책이 아니라 아포리아 시대에 직면한 한 철학자의 처절한 고뇌가 담긴 책인 동시에 후대 사람들에게 군주의 거울을 보여주기 위한 실천적인 시도이기도 하다. 저자는 플로톤의 <국가>를 이데아론과 정의론 그리고 교육 철학에 대한 책으로만 보지 말고, 우리 시대를 위한 군주의 거울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아포리아 시대의 지도자가 어떻게 나라를 운영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이상적인 국가를 재건할 수 있을지, 그리고 나라의 수호자를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플라톤은 이상적인 나라는 지혜와 용기를 가진 소수의 통치자가 절제를 추구하는 다수의 일반 시민을 통치하는 것에 대해 서로 합위한 뒤 그 통치권을 받아들여야 하고, 바로 그것이 이상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플라톤은 "교육이란 혼의 지적 기관을 어떤 방법을 써야 가장 쉽고 효과적으로 전향시킬 수 있는가 하는 기술이지, 그 기관에 시력을 넣어주는 기술이 아닐세"라고 말했다. 아포리아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교육은 달라져야 한다. 단순하게 눈앞에 펼쳐지는 환영의 순서를 그대로 암기시키는 기술이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쇠사슬을 끊고 몸을 돌려 사물의 본질을 보게 하는 것이 참된 교육이다. 아포리아를 극복하고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군주의 거울을 위한 참된 교육은 '방향의 전환'을 의미한다. 기계적으로 학습한 내용을 암기하고, 시험을 잘 쳐서 100점을 받고, 그 성적으로 명문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플라톤은 아포리아 시대를 헤쳐나갈 군주는 현실에 보이는 감각의 세계를 실재하는 것이라 믿지 말고 몸을 돌려 동굴 밖으로 나가 태양으로 상징된 본질을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거기에 더 나아가 동굴 밖으로 나와 태양을 본 뒤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즉 본질과 이데아를 본 후 그 상태로 머물로 있는 것은 절대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본질과 이데아의 세계를 발견한 그들이 취해야 할 두 번째 행동은 다시 한번 인생의 방향을 돌리는 것이다. 그들은 수감자들이 갇혀 있는 동굴 쪽으로 또 한번 인생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 다시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가 쇠사슬에 묶여 있는 동료들의 고통을 즉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묶고 있는 쇠사슬을 스스로 풀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것이 바로 플라톤이 말한 아포리아 시대를 위한 군주의 거울이었다.
"진정한 교육이란 눈앞에 펼쳐지는 환영의 세계를 거부하고, 스스로 자신을 묶고 있는 쇠사슬을 끊은 뒤 진정한 빛을 향해 몸의 방향을 돌리는 것이다. 그렇게 동굴 밖으로 나가 태양을 바라보는 것, 그래서 참된 진리의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 아포리아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교육의 목적이어야 한다."
소크라테스라는 같은 스승을 모신 플라톤과 크레노폰의 철학과 사상은 서로 완전히 달랐다. 소크라테스와 함께 서양 철학의 시조로 불리는 플라톤은 아테네 근교에 플라톤 아카데미를 개교하고, 제자들과 함께 심오한 토론과 깊은 사색에 빠져든다. 그러나 크세포논은 시대의 격동과 혼란에 직접 자신의 몸을 던진 인물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서, 그리고 그리스와 페르시아라는 두 제국 사이에서 그는 스스로 경계인임을 자처했다. 철학적인 플라톤의 <국가>와 달리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은 엄정하고 냉혹한 실상을 거칠게 다루는 현실적인 책이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을 그려냈다면, 또 다른 제자 크세노폰은 [키루스의 교육]에서 그리스 최고의 군주의 거울을 제시했다. 플라톤이 철학과 관념의 세계에 머물렀다면, 크세노폰은 만인대와 함께 페르시아 고지를 오르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친 인물이다. 플라톤이 동굴의 비유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데아의 세계를 강조했다면, 크세노폰은 동굴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왜 사람들이 쇠사슬에 묶여 있는지, 그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지도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가르침을 남겼다. 결국 플라톤과 크세노폰 두 사람은 아포리아의 시대에 대응하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방식을 제시한 셈이다."
(/ p.178)
"조직을 이끄는 사람, 한 나라의 운영을 책임진 군주의 첫 번째 임무는 선한 사람을 악한 인간의 횡포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공동체 안에서 중상모략이 판을 치지 못하도록 선한 자를 보호해야 한다. 그래야만 살맛 나는 세상, 살아갈 만한 이유가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정의로운 군주는 권리의 평등이 참된 정의라고 확신하며 무지와 의심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법이 엄중히 정한 바에 따라 판단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불확실성의 여신 포르투나를 제압하는 길은 뱀, 족제비, 거북이라는 세 가지 동물적 본능을 제거해나가는 것이다. 뱀과 같은 욕심을 버려야 하고, 족제비처럼 요령을 부려 직면한 문제를 피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또한 거북이의 게으름을 경계해야 한다.
"불확실성에 의존한다는 것은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에게 자신 의 운명을 맡기겠다는 것과 같다. 탁월한 장수는 자신의 운명을 불확실한 행운에 의지하지 않는다. 특히 나라와 같은 큰 집단을 책임지고 백성들을 이끌고 가야 하는 키루스와 같은 군주에게 불확실성에 의존하는 태도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불확실성과 행운에 의존한다는 것은 군주의 책임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 pp.217~218)
"그리스 수사학자들과 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가장 감동적인 연설을 파토스적인 것이다. 파토스적이란 '고난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백성들이 느끼는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며, 그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런 파토스적 공감은 단순히 감정적인 교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제로 연설자는 대중의 아픔과 고통을 직접 경험해보아야 하고, 이런 경험의 공유를 통해 사람들은 연설자의 메시지와 자신의 뜻을 동일시하게 된다."
탁월한 군주의 덕목은 파토스적인 삶을 인내로 살아가는 것이며,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대신해 먼저 고난을 감내하는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탁월한 군주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보다 더욱더 인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키루스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군주의 거울에 속한 책 가운에 최고로 치는 <키루스의 교육>은 지식보다 지혜의 추구를 강조하며, 인내하면서 백성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는 동행의 리더십을 최고의 덕목으로 제시한다.
"너는 그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그들과 함께 기뻐하고, 나쁜 일이 생기면 그들과 함께 슬퍼하라. 그들이 고통받고 있으면 도우려고 노력하고, 그들에게 안 좋은 일이 닥치지는 않을지 항상 염려하며, 실제로 닥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너는 그들과 동행해야 한다. 군사 작전도 마찬가지다. 장군은 여름에는 더위를, 겨울에는 추위를 부하들보다 더 잘 견뎌야 한다. 어려운 상황을 지나고 있다면, 그는 난관을 부하들보다 더 잘 견뎌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부하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탁월한 군주의 거울이었던 키루스 대왕은 전쟁의 네 가지 원칙을 보여주었다. 키루스 대왕의 첫 번째 원칙은 적의 아군부터 먼저 무력화시키는 것이었다. 키루스 대왕의 두 번째 원칙은 수비가 아니라 공세를 선택하는 것이다. 키루스의 세 번째 전쟁 원칙은 적에게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키루스의 네 번째 전쟁 원칙은 병사들의 사기를 최대로 고취시켜 전진하게 만드는 것이다.
키루스의 인재 등용 첫 번째 원칙은,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인재를 찾는 것이다. 키루스가 인재를 고르는 두 번째 기준은 '자제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키루스의 인재 등용 방식의 마지막 기준은 '탁월함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위대한 제국은 대리석이나 권력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만들어진다. 제국은 영토가 아니라 사람이다. 제국은 돌이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 p.319)
"키루스가 꿈꾸던 페르시아제국은 건물의 총합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이었고, 인재였으며, 그런 인재를 모으는 방식은 본인 스스로 그런 모범적인 삶을 사는 것이었다. 키루스가 남긴 마지막 ‘군주의 거울’은 그의 삶, 그 자체였다."
(/ p.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