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 : 깨달음의 실천 편 - 세상에서 가장 쉬운 주역 공부 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
김승호 지음 / 다산북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 - 깨달음의 실천>은 주역 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책의 저자인 김승호는 지난 50년 동안 '과학으로서의 주역'을 연구해 '주역과학' '주역풍수'라는 새로운 개념과 체게를 정립한 인물이다. 이 책은 <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 - 기초 원리 편>에서 좀 더 단계를 높인 것으로, 저자의 50년 공부 내공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은 주역의 이면에 깔린 원리를 상세하게 추적하며 쉽게 이해하며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인생의 넓은 섭리와 만물의 변화 원리를 깨달을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한다.


"원래 사물의 이해란 생각하는 방법부터 합리적이어야 한다. 이 책은 비록 난해하다는 주역을 다루고 있지만 합리적 이해를 추구했기 때문에 무리 없이 주역의 핵심에 접근해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책은 주역의 군주괘(君主卦)를 소상히 다루고 있는데, 그 이유는 군주괘 안에 괘상을 이해하는 근원적 원리가 다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것부터 파헤친다면 주역을 단숨에 이해할 수 있다."
(/ p.6)


이 책은 1장 주역의 문을 열다, 2장 깊은 주역 공부를 위한 기초, 3장 64괘의 시작 군주괘, 4장 군주괘의 의미와 구조라는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인생도 시작점이 있다. 불교에서는 이를 태어나기 전에서 지금으로 초기화되었다고 설명한다. 즉 전생이다. 하지만 이런 것까지 여기서 논의할 필요는 없다. 단지 만물은 시작점이 있다는 것만 알면 된다. 끝나고 나면 또 다른 시작점이 발생한 다. 이를 두고 ‘태엽을 감았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우리 인생 역시 계속 늙어갈 뿐 태엽을 감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인생에서 각각의 사건은 얼마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그 무엇을 주역에서는 지천태로 표현하는 것이다."
/ p.43)


"물질이 음이다. 음은 무게가 있고, 만질 수 있고, 부피가 있고, 서로 잡아당기고, 딱딱하고, 땅을 이루고 있는 존재다. 우리의 몸은 어떤가? 이것도 물질, 즉 음이다.

우리의 영혼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물질이 아니다. 즉 음이 아니다. 음이 아니면 무엇일까? 양이다. 음이 아니고 양이고, 양이 아니면 음이다. 세상은 복잡하지 않다.(...)"


양이 깊숙이 있고 음이 높게 가 있으면 삶이고, 음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양이 위로 날아가고 잇으면 죽음이다. 삶과 죽음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물에 삶과 죽음이 있다.


저자는 영혼의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영혼의 힘을 계속 키워 나가다보면 마침내 하늘과 관통하게 되는데, 이때에 이르면 인새엥 있어 그 성취하는 바도 끝이 없을 것이다. 양의 기운을 아래쪽에 가둬놓는 것이 바로 양의 기운을 기르는 것이다. 양의 기운은 가둬놓으면 스스로 성장한다. 진득한 사람은 기운이 쌓여나가고 촐랑대는 사람은 기운이 소진되는 법이다. 저자는 인내심, 겸손, 침묵, 평화, 안정, 용서, 양보, 절제, 예의, 긍정 등은 양의 기운을 가워놓는 성질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양이란 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존재니 열심히 영혼의 기운을 길러나가야 할 뿐이다.

"문제는 영혼의 기운을 어떻게 키우느냐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2가지 방법이 있다. 두 방법은 상호 보완적 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모두 알아두어야 한다. 첫 번째는 양을 기르는 것이다. 하지만 양이란 저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일 뿐이지 다른 원인에 의해 발현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 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공자도 주역의 괘상을 설명하면서 자강(自强)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것, 이것은 유일하게 양을 기르는 방법이다. 그저 힘을 내라. 이유 없이 명랑해야 하며, 무서워도 용기를 내야 한다. 무서운 밤길도 혼자 걸어보고, 귀신 나오는 무덤가에 누워도 봐야 한다. 부끄러워도 나서봐야 하고, 쉬고 싶어도 일부러 일어나야 하며, 귀찮아도 앞장서야 하고, 미운 놈도 사랑해줘야 한다. 양이란 선행(先行)하는 것이지 이유를 기다리지 않는 법이다. 스스로 애써 행하다 보면 영혼이 활발해지며 급기야는 우주의 근원과 관통하게 된다. 좋아하는 것만 하는 사람은 점점 양의 기운이 약해질 것이다. 누가 방해하지도 않는데 어째서 스스로 못 일어나는가. 자기 자신이 원수일 뿐이다. 내 자신이 나를 막아서고 있으니 어찌 원수가 아니겠는가. 인생에서 재미있는 것만 재미있어 하면 마침내 재미는 사라질 것이다. 점점 우울해지며 영혼은 시들해진다. 이래서는 살아가는 보람도 없는 것이니 죽을힘을 다해 일어서라. 아니 그냥 일어서면 된다. 안 된다는 이유를 달지 말고 하면 다 되게 되어 있는 법이다."
(/ pp.61~62)


저자는 모든 것은 양과 음의 개념을 잘 활용하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삶이란 양이고 죽음은 음이다. 높은 것은 양이고 낮은 것은 음이다. 과거는 음이고 미래는 양이다. 양의 대표적인 성질은 활력이다. 무한히 살아서 움직이는 것, 이것이 활력이다. 음은 활력을 가급적 억제하려는 힘이다. 음은 어째서 양을 방해하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양이 있으니 음이 있을 뿐이다. 그래야 평등하기 때문이다. 중용이란 바로 음양의 상호보완, 즉 조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세상에 음양이 없다면 우주 대자연 자체가 없어을 것이다. 양이 없으면 우주가 창조되지 못했을 것이고 음이 없으면 창조된 우주는 정착되지 못했을 것이다. 창조와 정착, 이는 음양의 중요한 예에 해당된다.


"음약은 서로 반대이면서도 서로 약점을 보완해준다. 남녀도 바로 그렇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민과 정부는 적당히 대립하면서 서로 보완해주고 있다. 사회도 한 가지 의견이 지나치면 파탄이 온다. 경제도 성장만 좋아해서는 안 된다. 안정도 필요하다. 지나친 성장은 위험한 것이다. 사람도 지나치게 흥분하면 안되지만 지나치게 침체되어 있어도 안 된다. 세상은 음양이 대립하고 또한 보완하면서 발전해왓던 것이다."


"무의 성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없음마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새롭다고 볼 수 있다. 없음에 또 없음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무라는 것은 있음의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을 만들어내는 힘, 이것은 바로 양이다. 화가들은 종이의 여백에 그림이란 것을 만들어낸다. 작곡가들은 소리 없음에서 음악을 만들어낸다. 우리의 우주도 애당초 없었던것이 생겼다. 즉 무에서 온 것이다.

없음이란 것은 있음이란 것을 창조하기 위해 계속 기다린다. 양의 속성이 바로 이것이다. 없는 상태에서 있는 상태로 가려는 것. 이것은 모든 있는 것의 원동력이다. 사물은 있고 나면 변해가는데 이것도 변화 없음에서 변화 있음으로 가는 것이다. 무가 유를 낳은 것이고, 또한 양이 음을 낳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음은 수동적인데, 유라는 것이 원래 수동적인 사물이다. 양이 존재하면 음이 변해간다. 세상은 변하게 하는 것과 변해가는 것이 있는 셈이다. 변하게 하는 것은 양인데, 그것은 무의 속성과 완전히 맞아 떨어진다. 없는 것은 없는 것마저 없애고자 하기 때문에 결국 유를 만들어낸다.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하이데거는 무의 생동력을 실존이라 불렀는데, 이는 양에 다름 아니다. 양이란 가만 있지 못하는 존재다. 반면 음이란 가만있는 존재다. 둘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변화! 이것이 바로 자연의 모습이다. 원인은 양이고 결과는 음이 받아들인다. 양이란 항상 여기에서 저기로 가고자 한다. 저기에 가서도 또 다른 곳으로 가기를 원한다. 양이란 도달점이 없고 오로지 출발점만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시간으로, 시간은 가만있지 못하는 양의 성질 때문에 생긴다. 그 성질에 의해 변해가는 것이 바로 공간인데, 어떤 공간의 시간이고 어떤 시간의 공간인 것이다. 소위 시공이다. 사물은 시공의 일부로, 그 속에는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양이란 변화의 원인으로 사물을 이끌어간다. 음은 뒤에 처져 이끌리는 존재다. 음은 가급적 머물고자 하고 양은 가급적 다른 곳으로 가고자 하는데 이 둘이 절충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그러나 현재는 계속 변화게 되어 잇다. 양과 음은 서로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조화도 깨지는 법이다.

양은 음을 살리고 음은 양을 죽인다. 그로써 조화를 이루고 작용은 끝없이 전개된다.(...) 양이 있으면 음이 있다. 또한 음이 있으면 양이 있다. 둘은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이런 까닭에 세상은 영원한 것이다."


저자는 인간은 태어나서 어딘가 순환할 축을 찾아 헤매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든 저 우주든 순환으로 가득차 있다. 사물이 순환하는 것은 존재 방식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사물은 안정을 취할 수 있다.

"순환을 놓친 사물은 쉽게 사라진다는 것, 이것이 주역이 보여주는 자연의 모습이다. 삶이란 순환을 유지해야만 지탱할 수 있는 법이다. 삶의 리듬은 바로 순환을 일컫는 것이다. 인생이 발전하려면 더욱 좋은 순환의 고리를 발견해야 한다. 순환 속에서 모든 것은 발전한다. 순환하고 있어야 더 좋은 순환으로 갈아탈 수 있다. 물론 좋은 순환이라고 해도 그 성질은 사상의 틀을 벗어날 수는 없다. 지금 주의해 봐야 할 것은 사상의 섭리 그 자체다. 이것을 응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잊지 말자. 그래도 우리 자신이 현재 어떤 순환의 고리에 속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 될 것이다."
(/ p.124)


저자는 괘상을 볼 때는 2가지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괘상이 다른 어떤 괘상들과 비교되는지이고, 둘째는 괘상 자체가 갖는 뜻이다. 이는 괘상 자체의 뜻보다 비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역의 괘사을 이해하는 데는 그 자체의 뜻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다. 비료를 통해 점차적으로 이해하면 자신의 의미가 흔들릴 수가 없다.


사자는 기운을 감추고 있건만 숨어 지내기를 좋아한다. 무술의 고수도 바로 이런 자세를 취한다. 고수는 무서울 것이 없는 존재다. 그런데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피한다.

"실력이 있는 사람의 모습이 원래 이렇다. 아는 것이 적은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몹시 부산스럽다. 시끄러운 사람은 실은 내면 세계가 부실한 사람이다. 사자나 무술의 고수, 그리고 학문이 깊은 사람은 자신을 감추기를 좋아한다.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도사린다는 말은 때가 아닐 경우 자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힘이 있다고 아무 때나 불쑥 나서면 흉한 일을 당할 수가 있다. 세상이 얼마나 다양하고 무서운 곳인지를 알아야 한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마찬가지다. 사자는 동물의 왕으로서 그에 걸맞은 성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택림 괘상은 도인들이 수행을 할 때 가장 기본으로 삼는 자세다. 힘이 있으되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낭비되지 않고 그 힘은 점점 더 쌓이는 법이다. 사람이 집에서 쉬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직 힘이 남아 있건만 집 속에서 휴식함으로써 그 힘을 더욱 키우고자 함이다. 이것이 바로 지택림의 가르침인 것이다."
(/ p.163)


지나간 것을 역사라고 말하듯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운명이라고 말해야 한다. 과거가 있듯이 미래가 있다. 미래가 있으면 바로 운명이 있는 것이다. 미래가 전개되는 방식은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또 다른 이유인 '뜻에 의해서'이다. 뜻을 안다는 것은 그것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니 바로 미래를 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주역이란 만물의 뜻을 규명하고 그것의 변화를 통해 미래를 살피는 학문이다. 저자는 미래란 궁금함의 대상은 되지만 믿음의 대상은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래가 오면 그냥 그대로 '그렇구나'로 끝나야 하며, 다른 유감을 가지면 안 된다. 미래란 '아니면 말고'라는 식이 되어야 한다. 저자는 운명이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대해야 하는 것으로 감정을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의미다. 순응이란 굴복이 아니며, 오히려 힘을 비축하는 행위다. 순응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세다.


"미래란 오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실망의 대상이 아니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미래를 미리 정해놓고 살면 안 된다는 뜻이다. 미래가 내 생각대로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우리의 몸이나 정신을 비롯해 우리 주변의 모든 현상들은 주역의 섭리 안에 있다.

다만 우리의 지성은 너무 급히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자연을 바라보는 눈이 지나치게 분석적으로 변했다. 그 결과 나무는 봐도 숲을 보지 못하고 숲을 봐도 산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주역은 우리 인간이 잃어버린 지혜의 원천이다. 이른바 '원시지혜'라고 하는 이것은 발달된 지혜보다 훨씬 강력한 힘이다. 미래의 징조는 분명히 있고 우리 주변에 흔히 널려 있다. 인간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주역은 그것을 밝혀내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징조다."


저자는 자연현상이든 사회현상이든 잠복한 기운이 발생했을 때 우리 인간이 어떤 태도를 갖추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주역에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괘상이다. 우리는 괘상을 통해 현상을 유추해내거나 혹은 현상에서 괘상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사물의 뜻은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해진다. 사물의 뜻을 분명히 깨달은 후에는 그것을 처세에 적용하든 인격수양에 사용하든 전쟁에 사용하든 질병 치료에 사용하든 그 사용처가 자유롭게 열려 있다. 이른바 ‘알고 행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함으로써 삶의 작용은 더욱 위대해지는 것이다."
(/ p.206)


저자는 경험도 못 해보고 생각도 못 해본 세계가 무수히 많은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말한다. 단지 다른 일을 할 방법을 모르고 또한 불안하기 때문에 현재를 선택했을 뿐이다. 무작정 새로운 일에 뛰어들라는 것이 아니고 가능성을 열어두고 연구를 쉬지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인생은 언제나 못해본 그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 선택해보지 못한 세계는 무한히 다양하여 그곳은 우리의 영원한 꿈으로 남아 있다. 우리의 꿈이 항상 남아 있는 곳, 못 다한 곳, 그곳을 주역의 괘상으로 천지부라고 말한다. 이 괘상은 무한히 넓고 자유롭다는 뜻이다."
(/ p.221)


저자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부정하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없으며, 그저 음과 양이 싸우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음은 양을 끌어내리려고 할 뿐이다. 사람을 계몽한다는 것은 인내가 필요하고 세월이 필요하다. 저자는 땅 위에 굳건히 서 있는 산, 이것이 리더의 모습이라고 이야기한다.


"모르는 사람이 아는 사람을 깍아내리는 것,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흉보는 것, 사춘기 아이들이 부모를 원망하는 것, 제자가 스승을 비웃는 것, 직원이 사장에게 대항하는 것, 벌레가 멀쩡한 나무를 갉아먹는 것 등은 온 세상의 일반적 현상이다.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는 자연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주역은 만물의 뜻을 규명하는 학문인데, 뜻을 알기 위해서는 괘상을 살피고 사물을 살피고 세심히 연구해야 한다. 관찰력이 강해질수록 아는 것도 급격히 늘어난다. 저자는 주역을 깨닫기 위해 괘상 그 자체를 계속 관찰하라고 권한다. 괘상은 눈으로 살펴볼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고, 그것을 한없이 바라보면 깨달음은 저절로 얻어지게 되어 있다. 주역도 처음엔 뜻을 알려고 하지 말고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관찰은 괘상으로 풍지관(風地觀)이다. 이 괘상은 바람이 땅 위로 스쳐가는 모양인데, 땅은 감추어진 사물이고 바람은 그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공자는 이 괘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땅 위에 바람이 불어가는 것이 관으로, 군자는 이 괘상을 보고 멀리 순행하여 살피고 백성들에게 가르침을 베푼다(風行地上,觀;先王以省方,觀民設敎).” 이는 관찰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관찰한 것을 백성도 알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집 앞을 몇 년, 몇십 년 다니면서 계단의 개수도 모른 채 살아간다. 그런데 어떻게 만물의 뜻을 알겠는가? 매일 관찰하는 데 애써야 할 것이다."
(/ pp.233~234)


주역 공부는 머리로만 쉽게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수도하는 자세로 필사적으로 달려들어야 한다. 이 책을 통해서 괘상 공부를 통해 더 깊은 경지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겠다.


"여기서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주역을 공부함에 있어 괘상을 이해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역의 괘상은 알고 나서 실행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실행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지택림 괘상을 보고 땅 속에 깊게 자리 잡은 연못처럼 밖으로 넘치지 않고 고요히 안정하는 법을 실행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괘상을 더욱 깊게 깨닫게 될 뿐 아니라 인격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주역 공부란 원래 괘상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괘상을 실행하고 또한 괘상의 교훈을 처세에 활용해야 한다. 공자가 그렇게 했다. 괘상을 외우고 단순히 이해만 한다면 깊이가 없어 주역을 크게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 주역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다. 그리고 또한 지혜를 넘어서 실행해야 할 적극적인 교훈이다."
(/ pp.277~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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