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파산 - 장수의 악몽
NHK 스페셜 제작팀 지음, 김정환 옮김 / 다산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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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인 '노후파산'은 고령자의 생활을 지탱하는 '돈'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NHK의 이타가키 프로듀서가 생각해낸 조어다. 홀로 사는 고령자가 600만 명에 육박하는 가운데 연수입이 생활 보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대략 절반에 이른다. 약 200만 명이 넘는 홀로 사는 고령자가 생활보호를 받지 못한 채 연금만으로 근근이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데, 만약 병에 걸리거나 돌봄 서비스가 필요해지기라도 하면 생활은 파탄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바로 '노후파산'이라 할 수 있다. 책 <노후파산>은 2014년 9월 28일에 방송된 NHK 스페셜 <노인표류사회-'노후파산'의 현실>을 바탕으로 방송 시간상 소개하지 못한 고령자의 현실까지 포함해 새로 쓴 르포르타주다.


이 책은 1장 무엇이 도시 노인들을 파산으로 내모는가?, 2장 희망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이 시대의 노후, 3장 왜 노후파산에 처하는가?, 4장 지방의 노후는 생존을 건 싸움이다, 5장 당신도 노후파산의 예외는 아니다라는 5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초고령 사회를 맞이한 일본에서는 지금 '노후파산'이라고 할 수 있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연금으로 생활하던 고령자가 병이나 부상 등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상생활의 작은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수입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게되어 파산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거의 20년에 걸쳐 계속되고 있는 세대당 수입 감소 현상이 자리하고 있다. 일하는 세대의 수입이 계속 줄어들고 있음은 물론이고, 고령자의 1인당 연금 수입고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게다가 독신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홀로 사는 고령자가 600만 명을 넘을 기세로 급증하고 있다.


"연금으로 100여만 원을 받고 자신의 집도 가지고 있으며 어느 정도 예금까지 있었던 사람조차 조금씩 궁지에 몰리다 노후파산에 처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이런 노후가 찾아오리라고는 예상도 못했지."
우리가 취재한 많은 고령자는 자신이 노후파산에 처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이다. 회사원, 농가, 자영업자 등 저마다 나름대로 노후를 준비해왔던 사람들이 "설마 내가 노후파산의 대상이 되리라고는......"이라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들어가며' 중에서 / pp.16~17)

"우리는 절약을 위해 전기도 쓰지 않고 식비도 최대한 아껴 보지만 그럼에도 파산 직전의 상황에 몰린 고령자들이 지원의 손길이 닿지 않는 가운데 꾹 참고 살아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노후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하루 벼랑 끝으로 쫓기는 생활' 중에서 / p.34)


저자는 노후파산의 확대를 멈추지 못한다면 사회의 윤리성조차 붕괴될지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일해서 수입을 얻기가 어려운 고령자에게 예금은 최후의 보루다. 그 예금을 전부 다 써버리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그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를 수없이 들어왔다.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며 사회의 토대를 지탱해온 고령자에게 얼마 안 되는 예금을 포기하라고 압박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몰아붙이는 현실......."       
('독거 고령자의 실태를 파악하다' 중에서 / p.50)


이 책에서 다시로씨는 돈이 없는 것, 병원에 가지 못하는 것보다 괴로운 일은 친구와 지인을 잃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난이 괴로운 이유는 주위에서 친구들이 전부 없어진다는 것이다. 돈이 없으니까 친구와의 만남을 거절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 괴로운 일은 사람 또는 사회와의 유대를 잃고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노후파산이라는 현실이 도화선이 되어 유대가 끊기고 삶의 보람이나 마음의 안식처를 잃어버리면 고령자들은 살아갈 기력조차 잃어간다.

" "솔직히 말하면, 빨리 죽고 싶습니다. 죽어버리면 돈 걱정을 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것도 누굴 위해서 살고 있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이제 정말 지쳤습니다. 그러니까 미련 따윈 없습니다. 그저 빨리 죽고 싶을 뿐입니다."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죽고 싶다"는 말이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다시로 씨의 말을 듣고 노후파산의 무서움을 새삼 깨달았다."                          
('가난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 중에서 / p.70)


일본이 고도 경제 성장을 계속하던 당시는 성실하게 일하면 보답을 받는 사회였다. 그렇기에 지금의 고령자들은 성실하게 일하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노후를 손에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초고령 사회가 도래하고 핵가족화가 진행되자 일본 사회는 격변기에 돌입했다. 독거 고령자가 수백만 명 단위로 급증하자 가족이 버팀목이 되어줄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사회 보장 제도는 기능 부전을 일으켰다. 그런 가운데 노후파산이라고 할 수 있는 현실이 확산되었다.

"노후파산의 무서움은 아주 서서히 다가온다는 데 있다. 우리가 취재한 많은 고령자는 단번에 파산 상태에 처한 것이 아니었다. 생활고에 빠져 집을 팔거나 예금을 조금씩 헐어서 쓴 끝에 최종적으로 노후파산에 처하고 말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압박을 받기 때문에 불안감이나 공포가 장기간 계속된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정말 재산이 다 떨어지면 생활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생활보호를 받으면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자리하고 있다."       
('서서히 다가오는 노후파산의 공포' 중에서 / p.153)


도움을 청하려 하지 않는 고령자 본인의 책임으로 치부하지 말로 지원하는 쪽지 먼저 그런 고령자를 찾아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가 고령자가 되었을 때 우리 자신을 지켜줄 제도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연금 수입이 어느 정도 있는 경우는 병 등이 계기가 되어 서서히 노후파산에 몰리고 있음에도 주위 사람들이 지원의 필요성을 깨닫기가 어렵다. 이것이야말로 사회보장 제도의 틈새에서 간과되고 있는 문제점이 아닐까? 홀로 사는 고령자의 경우 특히 '조기 발견.조기 지원'의 필요성이 지적되고 있다. 치매나 병 등이 악화되기 전에 지원하면 고독사 같은 최악의 사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 서비스로 '연결'시킬 수 있다면, 이를 계기로 지역 사회 등에서 유대를 재구축하면서 활기찬 독거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절약이 초래하는 모순' 중에서 / pp.181~182)

"정부도 연금 수입이 충분하지 않은 저소득 독거 고령자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에 입각해 특별 양호 노인 복지 시설을 증설하고 있다. 그러나 시설 증설이 독거 고령자 증가세를 따라잡지 못해 대기 희망자가 50만 명이 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시설을 수용할 공간이 심각하게 부족한 도시부의 자치 단체에서는 비교적 저렴한 돌봄 시설(저비용 노인 복지 시설, 케어 하우스 등)을 늘리고 있지만, 그래도 대기 희망자가 넘쳐나는 것이 현실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살라는 말인가' 중에서 / pp.190~191)


오늘날은 병이나 부상 등을 계기로 노후파산에 처하면 내일 머물 곳을 찾아서 표류해야 하는 시대다.

"풍요로워진 오늘날에도 뉴스 등을 통해 사람이 굶어 죽었다는 슬픈 소식을 듣는다. 다케다 씨도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목숨을 건진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뉴스에서나 보고 들을 수 있는 남의 일이 아니다. 다케다 씨는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이었으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노후파산의 위기에 몰려 있다."
('병원에서 시설로 이어지는 노인표류' 중에서 / pp.218~219)


흔히 노후파산을 도시 지역의 독거 고령자들 사이에서만 확산되고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지방에서도 도시와 마찬가지로 독거 고령자가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지방은 1인당 연금 수입액이 도시보다 크게 적다는 점을 고려하면 도시 못지않게 노후파산의 확산이 심각하다.

" 농가의 대부분은 밭이나 집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언뜻 어렵게 살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청취 조사에서는 "미래가 없다"며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식량난을 극복하고 "온 국민을 배불리 먹이고 싶다"며 자부심을 갖고 쌀농사를 계속해온 농가 사람들. 그 농촌에서 어떻게든 자력으로 살아가려 하는 농가 사람들이 노후에 불안을 느끼고 "미래가 없다"라고 호소하는 시대. 노후파산의 현실은 도시 지역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확산되고 있었다."
('풍요로운 농촌생활은 존재하는가' 중에서 / p.228)

"노후파산이 확산되는 가운데, 재택 돌봄 서비스나 재택 의료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최전선에서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노후파산 직전에 몰린 고령자들을 도우려 할 때 특히 어려운 문제는 친족이 서비스를 거부하는 경우라고 한다. 언뜻 친족이 있으면 안심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오히려 친족이 있기 때문에 노후파산을 발견하기 어려운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는 것이다."
('발견하기 어려운 사각지대의 고령자들' 중에서 / p.255)


고령자를 지탱해야 할 일하는 세대에서도 장래에 노후파산으로 이어질이 모르는 심각한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노후파산 예비군이다. 일하는 세대에 확산되고 있는 고용 문제와 저소득 문제를 방치하면 노후파산은 연쇄 반응을 일으켜 한층 더 확산될 우려가 있다.

"현재 '일하는 세대'가 40~50대가 되어 수입이 줄거나 일자리를 잃어버리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생활보호를 제외했을 때 부모의 연금밖에 없다. 물론 의지할 수 있는 부모가 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모의 연금에 기대어 살다가 부모가 큰 병에 걸리거나 하면 그 순간 생활이 막막해진다. 게다가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수입은 뚝 끊긴다.
이렇게 해서 노후파산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일하는 세대'가 자립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도 노후파산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 아닐까?"
('도미노처럼 연쇄 파급되는 노후파산' 중에서 / p.278)


일하는 세대의 생활력의 기반이 약해진 지금, 부모의 연금에 기대어 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 부모도 홀로 살아 생활력의 기반이 약할 경우는 공멸할 우려가 있다. 게다가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살 경우 노후파산데 처해도 금방은 생활보호를 받기 어려울 때가 있다. 다만 함께 사는 부모 자식의 생활고가 심각하고 직업이 없는 자녀가 은둔하거나 스트레스로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부모와 자식을 별거시켜 각각 생활보호 등을 지원하는 '세대 분리'라는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부모와 자식이 공멸하는 새로운 노후파산이 잇따르는 이유 중 하나는 '고용'이라는 사회를 지탱하는 토대가 흔들리면서 미래에 대비할 여력이 없는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구조적인 요인이다. 또한 가족의 형태가 변하면서 서로를 지탱하는 힘(유대)이 약해지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사회 보장 제도가 이런 초고령 사회의 실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이런 현상을 가속시키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고령자를 뒷받침해야 할 일하는 세대가 취약해진 것도 노후파산을 심각하게 만드는 요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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