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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프레드릭 배크만의 장편소설 <오베라는 남자>는 '오베'라는 이름을 지닌 59세 남자의 이야기이다. 까칠하기만 한 오베는 아내 소냐의 죽음 후에 자살을 결심한다. 하지만 그의 결심과는 달리 죽음을 향한 그의 계획은 쉽지 않다. 어느 날 오베에게 나타난 고양이와 그의 이웃들과 함께 좌충우돌하는 오베. 자살을 행하려는 순간마다 그는 의도치 않게 타인의 생명을 구하고, 사람들을 도와주는 인물이 된다.
정확한 이분법만이 존재하는 세계를 살아가던 오베는 숫자들을 좋아했다.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까지 잃은 오베는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오베는 사랑하는 아내 소냐를 만났다. 하지만 그녀가 암에 걸려 죽은 것이다.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가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인 아내를 잃었을때, 그는 삶의 의미가 사라진 것이다.
"오베는 자기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들만 이해했다. 시멘트와 콘크리트, 유리와 강철, 공구들, 가늠할 수 있는 물건들. 그는 올바른 각도와 분명한 사용 설명서를 이해했다. 조립 모델과 도면, 종이에 그릴 수 있는 것들.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이 책에서 소냐가 오베에 대해 묘사하는 장면과 '사랑'에 대해 정의하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까칠하고 사회성이 없어 특이하게 여겨지는 오베라는 남자가 소냐라는 여자를 만나서 '사랑'이라는 꽃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암으로 힘든 순간에도 소냐는 '우린 사느라 바쁠 수도 있고 죽느라 바쁠 수도 있어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라며 오베를 위로하는 말이 감동적이다.
"하지만 소냐에게 오베는 결코 뚱하지도 거북하지도 까칠하지도 않았다. 그녀에게 그는 첫 저녁 식사 테이블에 올라 있던 살짝 부스스한 분홍색 꽃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입던 갈색 정장이 살짝 꽉 끼는 널찍하고 슬픈 어깨였다. 그는 정의와, 페어플레이와, 근면한 노동과, 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 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남자였다. 훈장이나 학위나 칭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래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남자들은 이제 더 이상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소냐는 알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따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대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
이 책은 오베라는 남자를 통해서 죽음과 삶을 생각하게 한다. 오베의 아내 소냐가 사랑했던 고양이 어니스트가 죽고, 소냐도 세상을 떠났을때, 오베에게 나타난 고양이와 그의 이웃들과 함께하는 사건들이 오베에게 삶을 이어나가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자연스런 죽음을 맞이한 오베의 곁에는 고양이가 있었다.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만, 대부분은 죽음이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데려갈지 모른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언제나 자신을 비껴가리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홀로 남겨놓으리라는 사실이다."
"시간은 묘한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바로 눈앞에 닥친 시간을 살아갈 뿐이다. 며칠, 몇 주, 몇 년.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중 하나는, 아마도 바라볼 시간보다 돌아볼 시간이 더 많다는 나이에 도달했다는 깨달음과 함께 찾아올 것이다. 더 이상 앞에 남아 있는 시간이 없을 때는 다른 것을 위해 살게 될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건 추억일 것이다. 누군가의 손을 꼭 쥐고 있던 화창한 오후. 이제 막 꽃들이 만개한 정원의 향기. 카페에서 보내는 일요일. 어쩌면 손자들. 사람은 다른 이의 미래를 위해 사는 법을 발견하게 된다. 그건 소냐가 곁을 떠났을 때 오베 또한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그는 그저 살아가는 걸 멈췄을 뿐이었다. 슬픔이란 이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