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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 - 수업론 : 난관을 돌파하는 몸과 마음의 자세 ㅣ 아우름 5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재현 옮김 / 샘터사 / 2015년 4월
평점 :
<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의 원제목은 '수업론'이다. 이 책의 1장 무도와 수업은 합기도 전문지 <합기도 탐구>에 약 2년에 걸쳐 연재했던 내용이다. 저자는 자신이 합기도인으로서 타인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에 대한 자기반성 결과, 약함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고 말한다. 2장 명상과 수업은 <산가 제팬>이라는 불교계 잡지의 명상특집에 기고한 글이다. 저자는 수많은 프랑스 철학자 중에서 한 치의 주저함 없이 레비나스를 스승으로 선택한 것은 그가 20세기 철학자 중에서 지극히 '신체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의 3장은 각기 다른 독자를 상정하여 썼기에 꽤 문체도 다른 수업론을 이 한 권에 담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수업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를 그것을 '해낸 뒤'라야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설명할 수 없는 것을 타인에게 설명할 수는 없지요. 남에게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남과 우열을 비교하고 강약이나 잘하고 못함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수업은 상업적인 거래와는 다릅니다. '노력'을 대가로 내놓으면 사용 가치가 명시된 '상품'을 건네받는 단순한 과정이 아닙니다."
저자는 수업의 초기 조건이 '신체적인 허약'이었기 때문에 나 자신의 약함에 대하여 연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강해지기 위해 나아가는 방향과 자신의 약함이 초래하는 재앙을 최소화하기 위해 나아가는 방향은 상당히 다르다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나는 강해지기 위해 합기도에 입문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 자신의 '약함이 초래하는 재앙'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입문했습니다. 이 같은 동기는 그 이후 40여 년에 걸친 수업 과정 전체에 변함없는 모습으로 늘 밑바닥에 흘렀고, 소소하지만 특수한 이 입문 동기가 결과적으로 나의 합기도에 대한, 넓게는 무도 일반에 대한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되었습니다."
어느 철학자에 의하면, 무지란 지식의 결핍이 아니라 지식으로 머리가 빼곡하게 채워져 새로운 지식을 더 이상 받아들일 여지가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한다. 저자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대학 교육이란, 무언가 유용한 지식이나 기술을 '덧셈'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이 아니라 '배움'에 대한 충동의 자연스러운 발로를 방해하는, 학생들 자신의 '무지에 대한 안주'를 해제하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학생들의 무지를 두고 지식 부족 때문이라고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가르치는 입장디 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학생들은 지식이나 정보, 기술이 부족한 게 아닙니다. 인간은 내버려 둬도 놀랄 만큼 엄청난 기세로 지식을 익히고 정보를 받아들이고 기술을 습득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배움'에 대한 근원적인 충동이 분명 존재합니다.
무지란, 그것을 방해하는 힘이지요. 배움을 저지하고 억제하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대학 교육이란, 무언가 유용한 지식이나 기술을 '덧셈'으로 보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배움'에 대한 충동의 자연스러운 발로를 방해하는, 학생들 자신의 '무지에 대한 안주'를, 해제하는 것이지요."
저자는 시합의 본질적인 함정을 말한다. 승패에 있어 '내가 강하다'는 것과 '상대가 약하다'는 것은 실천적으로 동일한 의미이기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를 강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보다도 상대를 약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효과적이다. 따라서 상대적 우열,강약,승패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사람은 무의식중에 같은 길을 나아가는 수련자들의 성장을 방해하게 된다.
"논리는 간단하지요.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은 어렵고 노고와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무언가를 '부수는' 것은 용이할 뿐 아니라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