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도를 사랑한다 - 경주 걸어본다 2
강석경 지음, 김성호 그림 / 난다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고도를 사랑한다>는 소설가 강석경이 경주에 관해 쓴 에세이이다. ​저자는 경주가 주는 환상은 작가인 자신에게 영감의 원천이고 흑백 같은 유적지들은 본질을 돌아보게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신라라는 찬란한 이름을 만나기 전 나는 디아스포라였다. 경주는 모태와 같으니, 이 책은 유목민의 금빛 꿈이 묻혀 있는 고도에서 발길 닿는 곳마다 길어올린 사색의 우물이다. 나와 우리들의 뿌리에 대한 소박한 찬미이다."​

저자는 자신에게 고향이란 육신이 태어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영혼이 안주할 수 있는 장소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들의 뿌리인 자연이야말로 편안함을 주는 고향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경주에 터를 잡은 저자가 뿌리로의 귀환​을 한 이유에 공감했다.

"그렇듯 존재의 불확실성에 방황하면서 성년의 세월을 보내고, 세계도 돌아보고 뒤늦게​ 경주에 터를 잡은 것은 그야말로 뿌리로의 귀환이 아닐까. 내 근원의 고향인 자연으로. 이십오 년간 살았지만 뿌리내리지 못한 서울이 연옥처럼 떠오르는 것은, 자연과 분리된 삶 때문이리라. 도시의 삶은 늘 나를 허기지게 했다."

수백 기의 고분이 밀집된 경주에는 발굴된 고분도 수십 기여서 부장품들이 박물관의 고대실을 채우고 있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부장품들을 이야기하면서 소중한 것을 생각해보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그릇에 대한 애착이 있다고 말한다. 비어 있음에 대한 삶의 철학을 배울 수 있는 글귀였다.

"내가 그릇을 좋아하는 이유는 비어 있기 때문이다. 차라도 담겨야 제구실을 하겠지만 나는 바라보는 것이 더 좋다. 무엇이든 담을 용의를 지니고 겸손하게 비어 있는 모양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다."​

"비어 있음은 빈곤이 아니라 풍요이며 근원에 다가가는 계단이다. 가득찬 것은 혼란스럽다. 영혼을 탁하게 한다. 집에 가득찬 물질에선 부패의 냄새가 나고 가슴에 가득한 욕망에선 폐수의 냄새가 난다. 그릇을 보면서 그릇처럼 비워라. 집착도 분노도 비우고 새로 태​어나듯 공으로 돌아가라. 인연도 비우고 겸허하게 기다려라. 잎을 떨구고 늦가을 숲처럼 나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기 위해."

저자는 황금빛 배반들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구원이라는 철학적인 주제를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가을 배반들에 서서 존재에 대해 상각하는 저자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전에 누가 내게 구원이 무엇인가 물은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자연, 예술, 사회 세 가지이다. 예술은 늘 나를 ​감동시키고 자연은 나의 근원이며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도 자기정체성을 갖게 하는 결정적인 조건이다. 예술과 자연은 혼자서 추구하고 접하며 순간순간 구원을 받지만 경직된 사회는 오히려 좌절을 안겨준다. 그것이 누적될수록 절망감을 벗어나고자 이상향을 그리며 지구를 헤매다녔다."

 

 

저자는 12월 겨울의 거리에서 ​'영혼의  DNA가 동일하다'는 것에 대해 사색한다. 영혼의 DNA가 동일한 사람은 우리 삶의 언저리에 계속 남아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저자 자신이 경주로 돌아온 것도 그와 같은 이유라는 점에 공감한다.

"친구며 연인을 추구하는 것도 닮은꼴인 영혼의 유전인자를 찾기 위해서이고, 위대한 작가의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것도 예술을 통해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서이다. 어느 때는 길을 잘못 들어 고통을 받기도 하지만 경험은 어리석은 자도 깨우쳐주어 결국은 제 길을 찾아가도록 해준다. 정신만 치열하다면 말이다."​

"거대 고분의 주인공들인 신라인의 기상, 자유로움과 미에 대한 찬사, 대의를 위해 몸을 던지는 올곧은 충정과 바위마다 부처를 새긴 종교심은 늘 나를 고양시킨다. 내가 경주에 이토록 친화력을 느끼는 것은 내 영혼의 유전인자인 신라 혼의 DNA와 같이 때문이고, 내가 경주로 돌아온 것도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온 회귀인 것만 같다."​

 

 

저자는 경주라는 도시에서의 삶이란 곧 자연을 자신의 근처에 두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나라와 지역에 따라 자연이라는 것이 주는 감동은 특별하고, 그러한 지역이 저자에게는 경주였다. 경주를 걸으면서 사색하고 쓴 이 책은 내가 경주를 걷고 있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이 고도를 사랑한다>는 수학여행으로만 알고 있었던 경주의 매력을 알게 된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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