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영국이 낳은 가장 지성적이고 재치 있는 작가로 불리는 줄리언 반스의 작품이다. 줄리언 반스는 2011년 이 소설로 영어권 최고의 문학상으로 불리우는 맨부커상을 수상하였다. 이 소설의 원제는 'Sense Of An Ending'으로 예감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책은 1960년대, 고등학교에서 만난 네 소년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1인칭 화자인 주인공 토니 웹스터와 그의 패거리 친구 앨릭스, 콜린, 그리고 총명하며 지적인 전학생 에이드리언 핀. 세 소년은 그를 선망하고, 학교의 모든 교사들은 낭중지추와도 같은 에이드리언의 탁월한 지적 능력과 독특한 시각을 눈여겨보고 그를 아낀다. 이후 대학에 들어간 토니는 베로니카라는 여자를 사귀게 된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토니와 헤어진 후에 에이드리언과 사귀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이드리언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후 40여년의 시간이 흐르고, 토니는 베로니카의 어머니인 사라가 보낸 편지 한 통과 함께 자신에게 남기는 500파운드의 유산과 에이드리언의 일기에 관한 소식을 듣는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듯 토니는 베로니카를 찾아간다. 

 

작가는 토니라는 인물을 통해서 '바로 우리 코 앞에서 벌어지는 역사가 가장 분명해야 함에도 그와 동시에 가장 가변적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는 에이드리언이 말한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작가는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있고, 그것은 우리를 제한하고 규정하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측량하게 돼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역사를 파악할 수 없다. 우리 자신의 소소하고 사적이고 기록되지 않은 것이 태반인 단편들을." 

  

이 소설에 등장하는 토니라는 인물을 통해서 기억에 대한 해석이 불러오는 오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토니는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기억의 파편을 헤집고 들어가게 된다. 결국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는 지금 당시에 일어난 일을 내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당시에 일어난 일을 내 입장에서 해석한 것을 기억에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꾸며내는 것." 

  

"우리는 살면서 좌충우돌하고, 대책없이 삶과 맞닥뜨리면서 서서히 기억의 창고를 지어간다. 축적의 문제가 있지만, 에이드리언이 의미한 것과는 무관하게 다만 인생의 토대에 더하고 또 더할 뿐이다. 그리고 한 시인이 지적했듯, 더하는 것과 늘어나는 것은 다른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란...... 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란......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은 갈피를 못 잡게 되고,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모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젊을 때는 산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하는 게 가능하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 것처럼 돼버린다."    

 

소설 끝부분의 반전이 놀랍다. 우리의 기억이 헤매는 동안, 그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인생을 살아간다. <예감이 틀리지 않는다>는 기억이라는 모퉁이를 돌아 책장의 앞부분을 다시 펼쳐서 읽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소설이다. 과연 우리가 살아온 역사의 단편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거기엔 축적이 있다.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너머에, 혼란이 있다. 거대한 혼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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