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직업실록 - 역사 속에 잊힌 조선시대 별난 직업들
정명섭 지음 / 북로드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직업실록>은 조선시대 역사 속의 직업들을 통해서 그 시대의 사회와 생활속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저자는 직업의 탄생과 소멸은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지고 싶거나 꼭 필요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만들 수 없고 번거로운 것이 곧 누군가의 직업이 되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직업들의 탄생과 소멸을 통해서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특이한 직업들을 통해서 그 시대를 이해하는 것은 출세와 성공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을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한번쯤 생각하게 해줄 수는 있다. 그것이 바로 '역사'의 진정한 얼굴이자 역할이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는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직업인 멸화군, 체탐인, 한증승과 매골승, 다모, 시파치, 오작인, 숙수와 스스로 벌어 먹고사는 직업인 기인, 외지부, 여리꾼, 전기수, 책쾌, 장빙업자, 재담꾼, 무엇이든 해서 먹고사는 직업인 곡비, 매품팔이, 내외술집, 조방꾼, 거벽과 사수 그리고 선접꾼, 추노객, 무뢰배를 소개한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흥미로운 직업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조선시대 죽은 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오작인의 역할을 막중했다. <신주무원록> 번역본을 보면 조선시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과학적이고 획기적이면서도 창의적인 방법들이 담겨 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는 오작인들을 근본이 없는 무리라고 혹평을 하면서 이들이 어떤 행패를 부리는지 종류별로 열거해놓기까지 했다고 한다. 저자는 신을 직접 살피고 사인을 밝혀내야 하는 오작인들에 대한 형편없는 대우를 보면 조선이라는 나라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를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던 오작인들은 다른 조선의 직업들처럼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사라져갔다.

"최근 들어 책이나 드라마를 통해 조선시대의 과학적 검시 방법들이 소개되면서 찬사를 자아내고 있다. 현대인의 눈으로 봐도 놀라운 방법들에 감탄을 하며, 그런 검시 방법으로 조선시대에 있었던 살인사건들이 많이 해결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오작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된 것과 그것이 잘 돌아가는 것은 별개 문제였다."

조선시대 내내 '조보'라는 이름의 관보가 발행되었고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백성들이 그걸 받아다가 자체적으로 인쇄해서 배포한 적도 있다. 조보는 왕명을 출납하는 승정원에 속한 기별청에서 발행하는 관보 형식의 신문이다. 오늘날의 신문처럼 정보 전달이 목적이지만 발행하는 쪽에서 필요하거나 혹은 들려주고 싶은 내용만 실었으며 독자층을 제한했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이다. 민간에서 조보를 발행한 사건을 언급한 <선조수정실록>에 발행 주체가 '기인들'이라고 수록되어 있다. 관보 형태의 조보는 관리들뿐 아니라 양반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과거에 합격해서 관리가 되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이자 운명이었던 양반들에게 과거시험이 언제 치러지고 누가 어떤 자리에 임명되었는지를 아는 것을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1894년. 관보가 발행된 이후에도 조보는 명맥을 이어가다가 1907년 11월, 승정원의 후신인 비서감이 폐지되면서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여러 종류의 신문들이 발행되고 있었다.

조선에서는 소송이 일어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사람들 간의 다툼이 소송으로 번지는 것이 망국의 징조라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순시대나 유토피아가 아닌 이상 사람들 간의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마련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대언이 도관에 나가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을 지부라고 부른 것에서 외지부가 탄생되었다. 바깥에 있는 지부라는 뜻으로 관청 밖에서 지부 행세를 했던 이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외지부라고 불렸던 사람들은 돈이 되는 형조의 도관 앞에 어슬렁거리면서 손님들을 물색했다. 저자는 외지부는 변호사인 동시에 법무사나 세무사의 영역까지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이야기한다. 소송을 제기하긴 했어도 어떻게 할지 몰랐던 이들에게는 고마운 존재였지만 조정 대신들에게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로 비춰졌다. 조선은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막지는 않았지만 많이 발생하는 것을 꺼려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외지부는 소송을 부추기고 부채질하는 존재였다. 조선 후기 들어서도 묘자리를 둘어싼 산송부터 상업이 발달하면서 늘어난 매매를 둘러싼 분쟁까지 다양화되며 소송은 줄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분쟁의 한복판에 외지부가 있었다. 위정자들은 외지부 때문에 소송이 지체되고 늘어났다고 보았지만 저자는을 필요로 하고 기대고자 했던 사람들은 주로 힘없고 가난한 자였음을 기억하라고 강조한다. 조선시대 내내 죄인 취급을 받던 외지부가 합법화된 계기는 근대화와 개항이었다. 1895년에 외부인이 재판을 대신해주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사실상 변호인이 도입되었다. 이후 대한제국 시기인 1905년에 변호사법이 통과되면서 공식적인 변호인 시대가 열렸다. 광복 이후에 변호인들은 고소득층이자 사회지도층의 자리를 차지했다. 조선시대 무뢰배로 손가락질 받았던 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위치에 오른 셈이다. 하지만 최근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면서 변호사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저자는 재미있는 것은 변호사의 숫자가 늘어나면 불필요한 소송이 증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논리다. 저자가 수백 년 전에도 외지부를 탄압할 때, 아니 외지부의 도움이 필요했던 이들을 억누를 때 위정자들이 내세웠던 논리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셈이라고 말하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조선은 소송이 제기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송 자체를 막지는 않았다. 평민이나 천민도 자유롭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으며, 이들이 양반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막지 않았다. 아울러 세 번까지 소송하는 것을 허용했으며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을 제한하는 일종의 공소시표를 두는 등 현대의 법률체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체계적인 장치들을 마련했다. 공정한 판결을 위한 여러 제도들을 시행한 것은 조선이 결코 소송을 일방적으로 막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법은 약자가 강자에게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몇 가지 안되는 보호 장치 중에 하나다. 한 국가가 선진국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 가운데 하나는 바로 법의 공평함과 공정성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조선보다 공정하고 법치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조선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유형의 서점이 없었기 때문에 원하는 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극히 한정적이었다. 책쾌의 등장은 이런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 것이다. 다시 말해 책에 대한 욕구가 광범위하게 커져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업과 화계경제가 발달한 17세기 후반 이후로 이른바 중산층이 생겨나면서부터 변화의 계기를 맞이한다. 이들은 정치적으로는 신분차별에 반대하는 통청운동을 벌였고, 문화적으로는 여향문학이라는 것을 일궈냈다. 지식 욕구가 늘어나면서 책에 대한 수요도 급증했다. 따라서 이전에는 양반만을 상대했던 책쾌들은 다른 고객들을 상대하게 되면서 변신을 꾀하게 되었다. 정약용이 쓴 <조신선전>에는 책을 사고팔던 책쾌 조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인상적이다. 언젠가는 누가 그에게 왜 그렇게 고생스럽게 책을 사고파는 일을 하는지 물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저자는 나이도, 그리고 사는 곳과 이름도 종잡을 수 없었던 책쾌 조생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이 있다고 말한다. 책쾌는 단순한 중개인이 아니라 마케터와 편집자, 그리고 기획자의 역할까지 모두 했다고 볼 수 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신물문인 인쇄기가 들어오고 출판사가 생겨나면서 서점이 탄생하고 이들이 신문 등을 통해서 독자들을 직접 유치하면서 발로 뛰는 책쾌들을 점차 밀어냈다. 설 자리를 점점 잃게 된 책쾌들은 서점을 차리든지 아니면 이동식 서점을 운영하는 쪽으로 변신을 꾀했다.

"​비록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은 없지만 머릿속에는 그 책이 누구 손에 몇 년 동안 있었는지 잘 알고 있다오. 그리고 누가 그 책을 지었는지, 그리고 어느 판본이고 누가 주석을 달았는지도 꿰고 있으니까 말이오. 그러니까 그런 책들은 모두 내 책이란 말이오. 세상에 책이 없다면 나는 더 이상 뛰거나 술을 마실 수 없었을 거이외다. 그리고 나에게 책을 사서 읽어서 출세한 집안이 손자대에 와서 몰락해서 책을 도로 파는 일을 종종 보게 되오.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끼리 모이고, 현명한 자들은 자기들끼리 모이는 법이지요. 책을 사고 팔면서 세상이 어찌 흘러가는지 어떤 이치로 움직이는지 알았다오.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책을 사고파는 일을 할 것이오."

저자는 조선 백성들의 참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매품팔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현대판 매품팔이라고 하는 바지사장에 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과거의 역사적 과오가 현재에도 똑같이 되풀이되는 과정은 안타깝다.

"현대판 매품팔이라고 할 수 있는 바지사장을 소개한다. 경영 실권은 가지지 않고 명목상 사장 자리에 앉아 있다가 문제가 생길 경우 대신 처벌을 받는 사람을 뜻한다. 포털사이트에는 버젓이 바지사장을 구한다는 광고가 올라오고 거기에 시세를 묻는 질문들이 붙는다. 돈만 있으면 빨간 줄이 그어지는 것쯤은 각오한다는 사람들과 법의 처벌쯤은 얼마든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교차되면서 생겨난 현대판 매품팔이라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모 그룹 회장의 조카가 말 안 듣는 회사 직원을 폭행하고 매값이라면서 2,000만원을 준 사건이 있었다. 법원은 항소심에서 사회의 지탄을 받은 점을 고려해서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고, 사건을 수사한 담당 검사는 퇴임 후 그 그룹의 임원으로 입사했다. 예외가 많은 법일수록 원칙과는 거리가 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는 수수의 가진 자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지옥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이 책에는 '가볼만한 곳'으로 탑골공원이 소개되는데, 사실 이곳은 한때 수백, 수천 명의 기생들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원래 탑골공원 자리에는 고려시대 때 흥복사라는 절이 있었다. 조선시대 들어와서는 세조 때 원각사라는 저링 다시 세워졌다가 연산군때 없어졌다. 정확하게는 연산군이 모은 기생들인 흥청들의 거처인 연방원으로 삼은 것이다. 여자를 멀리하는 사찰에 기생들의 거처를 정한 걸 보면 연산군의 삐뚤어진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연산군이 폐위된 이후 흥청들은 사라졌고 사찰도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 공원으로 바뀌었으며 3·1 운동의 발상지로 유명해졌다."

조선시대 다양한 직업 등을 통해서 역사를 배울 수 있었고, 인간들의 탐욕과 부패는 쉽게 사그라드는 것이 아님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현재를 되돌아보며 미래를 발전적으로 완성해가야한다. 조선시대 직업들은 우리 조상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이며, 우리의 현재를 만들어낸 디딤돌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