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스 테일 1 스토리콜렉터 20
마크 헬프린 지음, 전행선 옮김 / 북로드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윈터스 테일 1>은 1983년에 발표된 작가 마크 헬프린의 뉴욕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서, 30년 넘게 미국 현대문학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일컬어진 작품이다.

 

지도에 없는 습지에서 자라 최고의 기계 기술자에서 갱단이 되었다가 마침내 도망자가 된 피터 레이크는 도시 속에서 여러 가지를 얻고 또 잃어가는 인간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는 돈의 몇가지 불가사의한 규칙 때문에 매번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우선 첫번째 규칙은 돈이라는 것을 벌기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일단 돈을 손에 넣더라고 그걸 계쏙 가지고 있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들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이러한 규칙은 오직 자기 자신, 즉 각 개인에게만 적용될 뿐 다른 사람과는 하등 관련도 없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서 돈이란 벌기도 힘들고 계속 가지고 있기도 힘들지만,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는 늘 넘쳐나며, 한번 들어가면 나오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네 번째 규칙은 돈은 섬세한 직물과 매혹적인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깨끗하고 반짝이며 화려한 장소에서 살아가기를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많은 돈이 공원 언저리에 있는 짙은 적갈색 돌로 지은 커다란 저택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은 그가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동전을 던져주고 있었다. 사실 어렵지도 않은 일이고, 돈을 주지 않아도 얼마든지 했을 그런 일인데도 말이다. 피터 레이크가 어두운 밤 짙은 녹색 광장에 있는 분수대 옆에서 춤을 추고, 춤을 춘 대가로 동전을 얻었을 때, 그는 도둑이 됐다. 물론 그 원칙을 그가 이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어쨌든 누군가에게 기쁨을 준 대가로 돈을 받는 것도 도둑질에 해당했다."

 

책을 읽으면서 피터 레이크의 이름이 왜 그렇게 불리우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 눈길을 끈다.

 

"그는 열두 살이 될 때까지 그들의 일원이었다. 습지 사람들은 그를 피터라고 불렀다. 그들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몇 명의 소년과는 달리 레이크라는 성을 골라 붙여주면서, 호수에서 그를 건져 올렸으니 딱 어울리는 성이라고 말했다."

 

도시를 지배하는 쇼트 테일 갱단과 그 우두머리인 펄리 솜즈. 그는 대도시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악과 범죄를 대변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전 우주를 통틀어 펄리 솜즈의 사진은 단 한 장밖에 없었다. 그것은 펄리가 다섯 명의 경찰과 함께 있는 모습을 담은 것으로, 네 명의 경찰이 각각 팔 다리를 하나씩 잡고 나머지 한 명은 머리를 붙들고 있었다. 그들은 펄리를 큰 대 자로 의자에 앉힌 후 가슴과 허리를 의자에 단단히 붙잡아 맸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얼굴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흑백사진인데도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의 목구멍에서 울려 나오는 고함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의 뒤에 서 있는 덩치가 산만 한 경찰은 사진의 대상이 되는 자의 얼굴을 카메라 쪽에 고정시키는 데 몹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분명했다. 펄리의 머리채와 턱수염을 움켜쥔 모양새가 마치 온몸을 뒤트는 독사라도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섬광분이 팬 속에서 번쩍일 때, 발버둥의 여파로 세워놓은 코트걸이가 왼쪽으로 쓰러지며 2시를 가리키는 화려하게 장식된 시곗바늘처럼 사진 속에 영원히 그 흔적을 남겼다. 물론 사진에 찍힌 다음에는 바닥에 쓰러져 부상을 입었다. 펄리 솜즈는 사진에 찍히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의 눈은 레이저 광선이나 흰색 다이아몬드처럼 보였다.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을 정도로 하얗고 투명하고 은빛이었다. 사람들은 “펄리 솜즈가 눈을 뜨면, 꼭 전등을 켠 것 같다니까”라고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입꼬리에서 귀까지 올라가는 흉터가 하나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마치 자신의 피부가 날카로운 칼로 깊고 예리하게 잘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펄리 솜즈의 흉터는 차가운 상아색 필라멘트로 덮인 하얀 홈통처럼 보였다. 이 흉터는 네 살 때부터 그와 함께했다. 아들의 목을 따려다가 실패한 그의 아버지에게서 받은 선물이었다."

 

"물론 범죄자가 된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것이 만고의 진리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범죄자들은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어놓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상이 정체되지 않도록 돕는 유동성의 가신들이기도 하다. 사실 선과 대조되는 악마의 군단이라 할 만한 범죄자들 없이는 뉴욕이 지금처럼 빛을 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불가해한 반대와 저항이 선의 밝은 면을 더욱 선명히 빛나게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범죄자들이란 세상이 균형 있게 돌아가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범죄야말로 그 강철 같은 등에 던져지는 모든 시간을 꾸준히 아름답게 다 소비해버리지 않는가. 범죄자들은 도시에 없어서는 안 될 당분이자 술이고, 무더운 여름밤 번쩍이며 내리치는 모자이크 속의 붉은 섬광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펄리도 마찬가지였다."

 

피터 레이크는 우연히 만난 신비한 백마 덕분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백마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죄를 짓기로 한 피터 레이크는 새 출발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백만장자 아이작 펜의 저택에 침입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상한 소녀 베버리를 만난다. 아이작 펜의 딸인 베버리는 늘 열 때문에 상기된 얼굴로 독특한 언행을 일삼는 특이한 소녀다. 밤이면 저택 지붕 위의 텐트 안에서 잠을 자고, 미친 듯이 피아노를 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지병 때문에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은 상태다. 베버리는 자기 집에 침입한 도둑인 피터 레이크를 보고도 전혀 무서워하거나 경계하지 않는다. 피터 레이크는 이 이상한 소녀에게 걷잡을 수 없이 끌리기 시작한다. 피터 레이크를 처음 보았을 때 베버리는 피터에게 "당신이 내게 주어진 전부라면, 그래요, 받아들일께요."라고 말한다.

 

아이작 펜이 피터 레이크에게 이야기한 말이 인상적이다.

 

"그들의 움직임, 열정, 감정 말이네. 고통에 사로잡힌 몸과 그 몸이 느끼는 감각들은 계절의 지극히 사소한 특징이나 도시의 거대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미세한 구성 요소만큼이나 확실하게 작용하지. 무작위로 보이는 그것들은 모두 커다란 계획의 일부라네."

 

이상하지만 순수한 소녀 베버리와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백마는 대도시의 혼란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사라지지 않는 순수함을 상징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뉴욕이라는 도시 그 자체의 삶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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