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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가루 백년 식당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쓰가루 백년 식당>은 <무지개 곶의 찻집>, <당신에게>의 일본작가 모리사와 아키오의 신작소설이다. 이 책은 따스한 위로와 온기를 전해주는 모리사와 아키오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대되었다.
이 책은 1800년 중반 메이지 시대 쓰가루에서 시작된 오모리 식당 창업주인 1대 겐지와 그의 부인 도요의 애틋하고 정겨운 사랑 이야기, 4대째 후손인 요이치와 요이치의 여자친구 나나미의 아기자기하고도 위태로운 사랑 이야기로 구성된다. 주인공 요이치의 아버지이자 현재 오모리 식당의 주인인 데쓰오가 프롤로그에 등장하고, 요이치의 어머니인 아키코가 에필로그에 등장해 소설의 문을 닫는 독특한 구조이다.
오모리 데쓰오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요이치의 아버지이며, 올해 창업 100주년을 맞은 오모리 식당의 3대 주이자 현 주인이다. 오모리 식당 2대 주인이자 방탕한 주정뱅이였던 아버지의 뒤를 잇느라 여섯 살 때부터 가게 일을 도와야 했다. 아들 요이치에게는 고생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자기 대에서 오모리 식당을 그만 접으려는 생각이다. 데쓰오는 요이치가 결혼을 하면 며느리에게도 고생을 시키게 될까봐 식당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선대로부터 가게를 이어받고 아이들을 독립시키기까지 많은 일을 경험했다. 딸 모모코가 폐렴으로 죽을 뻔했고, 태풍으로 가게 지붕이 부서졌고, 아버지가 술에 취해 차에 치여 사망했고, 오일 쇼크가 있었고, 아내가 자궁근종으로 입원했다.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하루하루를 담담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고마운 일인지. 그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 데쓰오는 줄곧 같은 기도를 올리고 있다."
요이치는 아버지를 '요즘 세상에 보기 힘들 만큼 우직하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우리 주변에도 요이치의 아버지인 데쓰오와 같은 인물이 많지 않을까?
"무슨 문제가 생겨도 타인의 도움 없이 묵묵히 혼자 짊어지고 일하는 사람. 몸 상태가 좋지 않아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어떠한 불평불만도 입에 담지 않는 사람. 나쁘게 말하는 건 정치가에 대해서뿐이고, 어쩌다 선의의 거짓말을 해도 금방 들통이 나고, 본인은 들통 났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묵묵히 일만 하는 사람. 돈이 드는 취미에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지만 동네 주민과의 자리에는 빠짐없이 참석하는 사람. 그게 우리 아버지였다. 요즘 세상에 보기 힘들 만큼 우직하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오모리 요이치는 '오모리 식당'의 4대손으로 달리기를 잘하고 수줍음 많은 순수한 청년이다. 도쿄에서 광고 회사에 취직했다가 그만둔 뒤, 피에로 복장으로 풍성 아트 쇼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28세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요이치는 도쿄의 싸구려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는 소심한 성격의 남성이다.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며 나아가는 여자친구 나나미를 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그는 지켜야 할 사랑, 뒤를 이어야 할 백년 식당 사이에서 고민하는 남자이다.
요이치는 나나미를 알게 된 후 '혼자'가 아닌 '둘'이 되었다. 요이치와 나나미는 이제 도쿄를 험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자극적인 도시에서 모험하는 마음으로 함께 즐기는 입장이 되었다.
"거꾸로 생각하면, 그건 히로사키를 떠나 외톨이로 생활하는 우리가 늘 품어왔던 고독감과 불안한 미래를 공통된 문제로서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눈을 반쯤 감고 대화를 즐겼다. 위로하며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었다. 조금 과장인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가슴은 늘 도쿄의 까슬까슬한 바람에 쓸려왔고, 긁혀서 조금 피도 났는데, 그 옥신거리는 아픔을 이해하는사람만이 다정하게 약을 발라줬으면 싶은 것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우리의 대화는 한없이 즐거웠지만 그만큼의 쓸쓸함도 가슴 깊은 곳에 서서히 달라붙기 시작했다."
요이치의 여자친구인 쓰쓰이 나나미는 엉뚱하고 아이처럼 순수하면서도 저돌적이고 씩씩한 면이 있다. 요이치와 같은 하나모리 지방의 과수원집 딸이다. 사진작가라는 꿈을 좇아 도쿄에 와 고생하면서 배우며 일하던 중 우연히 요이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책을 읽으면서 '피에로' 분장을 하고 일을 하는 요이치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나나미가 사진가로서 인정을 받아가자 요이치는 질투라는 감정에 휩싸인다. 아니, 그것은 질투보다는 열등감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꿈을 향해 한걸음씩 전진하는 나나미에 비해 요이치는 여전히 피에로인 자신이 싫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평소처럼 피에로가 되어 웃는 얼굴을 만들고, 눈앞에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하고...... 피에로 안에 있는 진짜 나 자신을 새하얀 화장으로 감추고, 나는...... 나는 언제까지 피에로일까?"
어린시절 멋진 존재였던 요이치의 아버지는 요이치가 도쿄에 오자 시골 촌구석의 그저 그런 식당 아저씨일 뿐이었다. 요이치는 아버지가 소개해준 중화요리점을 그만두고 누나의 지인이 근무하는 광고회사를 다니다 2년을 채우고 그만두었다. 하지만 2년째가 되어 매일매일 눈이 팽팽 돌 정도로 일만 해야 하니 생활 리듬을 찾기 힘들었다. 요이치는 권태감이 오래 지속되는 것 같아 병원을 찾아가니 의사는 불안신경증이라는 마음의 병이라고 말했다. 요이치는 회사를 그만두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풍선 아트 쇼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요이치의 아버지인 데쓰오는 요이치에게 자신은 어린시절 생계를 꾸리기 위해 식당을 했지만 손님이 기뻐하면 자신도 기뻐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5년동안 얼굴을 보지 않았던 요이치와 아버지가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장면이 따스하게 그려진다. '모든 일의 끝에는 반드시 감사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데쓰오의 말이 뭉클해진다.
"손님이 맛있다고 기뻐하면 나도 그냥 기쁜 거야. 그래서 네가 피에로 일을 한다고 했을 때도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그것도 좋지 않겠나 생각한 거지. 돈도 잘 못 버는 시골 식당 주인보다 더 멋진 인생은 얼마든지 있지 않겠지?"
"이건, 내가 어릴 때, 이 식당을 처음 만든 할아버지한테 몇 번이나 들은 이야긴데.
모든 일의 끝에는 반드시 감사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배웠단다.
어떤 일이든 마지막엔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만 한다면 모두가 좋은 기분을 간직할 수 있다고 초대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단다."
요이치가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어떤 선택을 할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을 짐작케한다. 책 <쓰가루 백년 식당>은 따뜻한 마음과 감사를 잃지 않는 기쁨을 배울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