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명희 지음 / 북로드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 하명희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PC통신을 이용해 밤새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시작된다. 주인공 현수는 ‘제인’이라는 대화명을 쓰고 그녀의 절친 홍아는 ‘우체통’이라는 대화명을 쓴다. 어느 날 결혼을 앞둔 홍아가 PC통신 요리동호회에 들면서 현수를 끌어들인다. 그녀가 PC통신 요리동호회에서 홍아의 소개로 ‘착한스프’라는 대화명의 남자 온정선을 만난다. 그들은 그렇게 PC통신이라는 공간에서 서로 친해진다. 사랑하면서도 그것이 사랑인지 모르는 바람에 긴 시간을 돌아 운명처럼 만난다. 빗나간 운명이 어느 시점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 사랑은 더 지독하고 애절하다.

 

PC통신을 통해 만난 현수, 홍아, 정선은 각각 '제인', '우체국', '착한스프'라는 대화를 지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익명의 대화명 속에서 자신의 진짜 본질을 알지 못하는 인물들을 발견한다.

 

"그땐 우린 만나면 다 온라인상의 대화명을 썼다. 온라인상의 만남이란 우선 익명을 전제로 한다. 익명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활동하기 좋은 조건이다.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되고, 어쩜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이기 때문에 좀 더 동물적일 수 있다."

 

현수의 대화명인 제인은 '피아노', '내 책상 위의 천사', '여인의 초상'을 연출한 뉴질랜드의 여성 영화감독 제인 캠피온에서 따온 것이다. 스물여섯 현수는 '착한 스프'라는 대화명을 지닌 정선을 사랑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현수가 사랑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마음의 양을 재는 계량기는 없다. 언제나 내가 많이 주거나, 내가 많이 받는 것 같다. 양쪽 모두 만족하기 어려운 것이 사랑이다. 그것 때문에 우린 그토록 사랑을 원하면서도 사랑을 포기한다. 포기하면서 말한다. '사랑은 없다'. "

 

"누구나 어떤 사람을 처음 봤을 때, 그 사람의 생김새나 말투, 학력, 가정환경, 성격 등을 가늠하면서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그린다. 그리고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그 사람에게서 매력을 느낀다."

 

"사랑은 자기 자신이 심어 놓은 환상을 먹고 자란다. 내가 사랑했던 그는 내가 생각했던 그가 아니다. 내가 사랑했던 그는 내가 느꼈던 그가 아니다. 그저 내가 물 주고 햇빛에 내놓고 키운 꽃 같은 존재다. 꽃은 원래 그대로인데 이름 붙이고 의미 붙이고 애착한 건 나다. 꽃이 내게 이름을 붙이라고 하지도 않았고 의미를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순전히 내 뜻이었다."

 

"내게 대시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한번 사귀면 오래 만났다. 지금껏 두 명의 남자를 만났는데, 두 번 다 내가 이별을 고했다. 홍아는 지금껏 남자가 떨어진 적이 없다. 항상 주위에 남자들이 몰려 있다. 반면 그렇게 좋아한다고 매달리던 남자들이 막상 사귀기 시작하면 막 대하기도 하고, 먼저 홍아를 버린 적도 있다. 그런 면에서 인생이란 공평한 것 같다.

 

소설 속 인물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인물은 '착한 스프'라는 대화명의 정선이었다. 정선의 친엄마는 남자 없인 살 수 없는 여자였다. 정체성이 없는 불행한 정선의 친엄마는 아들에게 집착하며 아픔을 주었다. 정선은 처음으로 현수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현수의 절친인 홍아로 인해서 정선의 사랑은 뒤틀리게 된다.

 

“난 날 인정해 주는 여자가 좋아. 아무리 내가 좋아도 여자가 싫다면 대시하지 않아. 사랑은 쌍방통행이지, 일방통행이 아니잖아.”

 

"정선은 인생에 여자는 하나밖에 두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인간이 환경에 지배받느냐 받지 않느냐 하는 명제에서 정선은 지배받는 쪽의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정선에겐 모든 것이 절대와 상대로 나뉜다. 절대는 하나다. 둘 이상이 될 때부터는 상대적이 된다. 둘 이상이 될 때부터 비교라는 것이 들어온다. 정선은 단 한 명의 여자와 가정이란 걸 이루고 충실하고 싶었다. 그것이 자신의 부모가 자신에게 저지른 정신적 폭행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통해서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고 그 생명을 보호하고 든든한 지킴이가 되어 주는 것이 그가 삶에 대해 갖고 있는 희망이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라는 존재를 부모의 삶과 함께 엮으며 살아가려는 건 자신에 대한 모욕이고, 그 사람에 대한 올바른 잣대가 아니다. 정선에게 누군가가 부모를 내려놓고, 너는 니 인생을 살라고 했다면 그의 인생이 좀 더 자유로웠을까. 정선은 부모의 삶을 보면서 자신도 그런 삶을 살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그를 옭아맸다. 그를 옭아맸던 정신은 그에게 상처를 내고 귀중한 것을 잃게 했다."

 

타인이 자신을 좋아해주기를 바라면서 거절하지 않고 살아온 홍아에게 현수는 유일한 친구였다. 홍아는 현수가 자신과 정반대인 것이 좋았다. 자신이 진행하면서 끊임없이 옆을 보는 타입이라면, 현수는 목표를 정하면 그곳을 향해 꾸준히 발걸음을 쉬지 않는 타입이였다. 홍아는 거리를 두고 보면 착한 여자지만, 일단 자신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자기 식대로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여자다. 남자들은 홍아의 겉모습에 빠져들어 사귀게 되었다가 홍아의 말과 집착 때문에 견디기 힘들어했다.

 

"착하다는 건 복잡하다. 홍아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착하다고 하는 것을 안다. 홍아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의견에 토를 달지 않고 속으로 무시해 버린다. 그리고 거절이란 걸 별로 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를 사람들은 착한 여자라고 한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알고 있다. 자신이 착하지 않다는 것을. 단지 그녀가 원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 주는 것이다. 어느 자리에서건 주목받고 싶은 것이다. 어딜 가든 홍아는 그런 행동거지 때문에 인기가 좋았다."

 

"그것이 그녀의 모순이였다.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으면서 성취하려는 것. 이제껏 그녀가 살면서 그것에 적합한 것을 찾은 건 섹스다. 섹스는 그녀에게 쉬운 것이었다. 노력이 필요없는, 손만 내밀면 이룰 수 있는, 한 번의 실수도 그녀를 막을 순 없었지만, 이것도 더 이상 그녀를 잡아 둘 수 없었다. 그래서 곁눈질 하면서도 이룰 수 있는 것을 찾아 아직도 헤매고 있다."

 

"인생은 긴 여정이다. 어린 시절 빛났던 사람이 자라면서 그 빛이 바랠 수도 있고, 어린 시절 주목받지 못했던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빛을 발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좋은 것이라고 단정 지어서 말할 순 없다. 어린 시절의 빛남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과 관계가 있고, 나이 들어서의 빛남은 후천적인 노력과 관계가 있다. 홍아는 많은 것을 갖고 태어났기에 잃는 것부터 배워야 했다. 가진 것 없이 시작한 사람은 획득을 먼저 배운다. 잃는 것을 먼저 배우는 사람은 피해의식을 가질 수 있고, 얻는 것부터 배우는 사람은 자만을 가질 수 있다,"

 

홍아의 거짓으로 인해서 정선과 현수는 사랑의 타이밍을 잃어버렸다. 홍아는 상처를 받든 안 받든 모든 사랑에 대해 말해 줘야 할 도리가 있다는 걸 간과했다. 상처는 사랑하고 있는 자들이라면 필수로 끼고 가야 하는 목록이다.

 

"5분 일찍 떠난 시침은 5분을 뒤로 돌리지 않는 한 정확한 시간을 낼 수 없다. 시계의 5분은 뒤로 돌리면 되지만, 인간에게 엇나간 타이밍은, 신이, 보이지 않는 강한 손이, 맞춰 주지 않으면 계속 엇나간다. 인간은 그걸 운명이라고 부른다."

 

"현수에게도 잘못은 있다. 자신에게 사랑이 왔는데, 알아보지 못했다. 사랑을 알아보려면 자신 안에 사랑이 있어야 하고, 자신과 대화를 잘 나눌 줄 알아야 한다. 홍아의 거짓이 아니라 현수가 한 박자 늦게 알아서 그들이 고통받는지도 모른다. 결과는 같은데, 원인은 여러가지일 수 있다."

 

"거짓말을 자꾸 하면 거짓말이 자신의 정신에 차츰차츰 자리를 차지하고 급기야는 정신세계를 지배하여 그 사람은 '거짓말' 그 차제가 된다. 시기와 질투, 분노도 예외일 수는 없다. 시기를 풀어내지 못하고 계속 정신이 좀먹에 방치해 두면 열등감과 우월감이 파행적으로 부딪치며 정신을 분열시킨다. 분열된 정신은 결국 자신을 파멸시킨다. 홍아는 지금 자신의 정신이 죽음에 이르는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시기와 질투가 그녀의 정신을 점점 갉아먹고 있기에."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라는 책의 제목을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왜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못했을까?'... 사랑의 오해와 상처로 인한 소설 속 인물들. 하지만 우리는 사랑하기에 상처받는 것이다. 착한 스프라는 닉네임의 정선이라는 인물이 이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소설을 읽고나니, 소설을 시작하기 전 저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작가는 '피상적인 소통'으로 인한 관계의 허약함이 이 시대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인간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사랑을 주고받는 과정에서는 상처 또한 주고받을 수 없다. 사랑을 주고받는 과정에서는 상처 또한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상처는 사랑에 따르는 필수사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사람은 피상적인 관계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네 사람의 서로의 세계관에 부딪히며 오해하고, 자신의 세계관에 상대를 편입하려 든다. 그 과정에서 균형 감각은 깨지고, 결국 그들은 홀로 남는다. 그리고 혼자가 되었을 때 그들은 비로소 상대를 사랑하고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터넷 시대에 관계의 키워드는 고독이다. 피상성에는 고독이 따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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