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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라디오 키드 -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유쾌한 빈혈토크
김훈종 외 지음, 이크종 그림 / 더난출판사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책 <20세기 라디오 키드>는 마흔을 앞둔 SBS 라디오 피디인 김훈종, 이승훈, 이재익이 쓴 에세이이다. 요즘은 추억을 담은 영화나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책은 30대 후반인 내 나이 또래의 라디오 피디들이 쓴 책이여서 더욱 공감가는 내용들이 많았다. SBS 세 라디오 PD들이 들려주는 재미와 욕망, 그리고 추억의 수다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유쾌하면서도 때로는 철학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라디오 피디들의 추억과 삶을 여행할 수 있었다.
김훈종이 쓴 호기심 꼬마의 3대 미스터리라는 제목의 글이 흥미롭다. 어린 시절의 김훈종에게는 아파트 전세, 아마트 분양가, 은행이자라는 미스테리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전세 제도가 점차 사라져간다고 한다. 미분양 아파트도 수두룩한 세상이다. 은행 이자도 거의 제로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내 의문은 모두 풀렸다. 지금 당장은 이 변화에 어려운 사람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경제가 점ㅈ머 정상궤도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안도의 마음이 든다."
이재익의 사랑에 관한 추억담도 읽을 수 있었다. 나도 이제는 스무살 때 서른은 너무 먼 숫자였다라고 말하는 그의 글귀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20대에 사랑했던 여자에게 30대에 서로 각자 결혼도 한 상태에서 우연히 만나서 "그때 왜 나를 떠났어?"라고 물었던 그에게 여자가 말한 대답이 눈길을 끌었다.
"마음이 급했어. 그 시절에 나는 스물일곱 살의 여자는 결혼할 남자와 만나고 있어야 한다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 스물아홉 살 전에 꼭 결혼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거든. 그런데 너는 결혼이나 가정 같은 것들과는 아예 담쌓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았으니까. 너도 알잖아. 그 시절의 너는 마치 파티를 하다가 죽을 로커처럼..... 남자가 있다고 너한테 거짓말을 했지. 나도 좀 놀랐다. 난 네가 그렇게 쌩하고 돌아설지는 몰랐어. 적어도 한 두 번은 나를 붙잡을 줄 알았지."
'영화 속 대사가 내 삶을 꿰뚫다'라는 이재익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영화를 보면섯 꼭 기억하고 싶은 영화 속 대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올드보이 속 대사는 특히 나에게도 와닿는 명대사이다.
"사람은 말이야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지는 거래. 그러니까 상상을 하지 말아봐. 용감해질 수 있어"
이 책에는 PD, 시나리오 작가, 팟 캐스트 진행자 외에도 소설가 이재익의 이야기에 관한 글도 읽을 수 있었다. 소설가 이재익과 그의 작품에 대해 아는 계기가 되었다.
이재익은 색이 지닌 개념이나 상징의 차원에서 보자면 회색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우리사회는 OO다운 사람이 되기를 부추긴다. 색에 비유하자면 검은색인지 흰색인지, 아니면 원색인지,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사회라는 말이다. 이재익은 꼭 그래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는다. 회색은 흰색과 검은색이 섞여 만들어진다. 회색은 애매모호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경계에 구애받지 않는다. 때가 묻어도 자신의 색으로 흡수해 버린다.
"나는 회색의 가치를 믿는다. 누가 나에게 제일 좋아하는 색을 묻는다면 여전히 파란색이라고 답하겠지만, 나라는 사람은 회색 인간이고 싶다. PD답지 않은 PD, 소설가답지 않은 소설가, 영화인답지 않은 영화인, 남편 같지 않은 남편, 아빠 같지 않은 아빠. 그렇게 살고 싶다."
요즘은 인문학을 기피하는 청춘들이 많다. 하지만 모든 산업이 결국 지향하는 바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인문학은 모든 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이재익은 인문학이 필요한 또 한가지 이유는 인문학이 사회를 더 부드럽고 여유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너무 경직된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이 인문학이 아닐까...
" '인문학'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 영역. 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데 반해 인문학은 인간의 가치 탐구와 표현 활동을 대상으로 한다. 뭐 이런 식이다. 쉽게 말하자면 인문학이란 사람에 대한 학문이다. 문학, 역사, 철학 등등 인문학의 카테고리에 담겨 있는 여러 가지 이름의 학문들은 모두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사람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많이 가질수록 이 사회는 유연해지고 젊어질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나에게 유리한 것들이 남에게 불리할 수있다. 내가 정의라고 생각하는 신념이 남에겐 불의일 수도 있다. 내가 옳다고 철석 같이 만드는 것들이 틀릴 수도 있다. 이러한 깨달음을 역사와 철학과 문학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아니, 배워야 한다. 인문학은 머리와 가슴을 말랑말랑하게 해주고 유머와 포용력을 덤으로 선물해준다. 마지막으로 인문학 찬양을 하자면, 인문학은 행복에 이르는 학문이다.우리는 인간이다. 사람 인, 사리간. 사람 속에서만 살 수 있고 사람을 통해서만 행복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하는 인문학은 복잡다단한 기술과 네트워크의 간섭을 헤치고 근원적인 행복을 찾는 가이드가 될 수 있다."
이승훈이 이야기하는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것이 행복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이야기가 공감갔다. 행복을 바란다면 행복이란 게 무엇인지를 알고, 어떻게 해야 행복한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욕망을 주입당하는 경우도 많다. 나도 그처럼 운전면허가 없고 2G 핸드폰을 사용한다. 남들이 다 사용한다고 해서 내가 욕망하지 않는 것을 따라갈 필요가 있을까...
"운전면허가 있느냐 없느냐, 스마트폰을 쓰느냐 안 쓰느냐를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것들이 자신이 진짜로 원하고 필요로 해서 하는가 아닌가를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다. 자신의 욕망을 이해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 자신의 욕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에 대해 알아야 한다."
김종훈은 지독한 '라디오 키드'였던 자신이 라디오를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으니,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또한,라디오 방송을 제작하다 보면 만나는 라디오 키드들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라디오 피디라는 직업에 행복을 느끼는 세명의 저자들의 유쾌한 추억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