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현자
김상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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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마키아벨리>의 저자 김상근은 우리가 알고 있었던 마키아벨리라는 인물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진짜 마키아벨리를 소개하는 것이 이 책의 원래 목적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마키아벨리를 권모술수의 대가로, 그의 역작인 <군주론>을 독재자를 위한 지침서로 평가한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사실 본인 스스로가 철저한 약자였다. 그는 강자들이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니라 지배자들에 의해 억울하게 당하는 약자들에게 “더 이상 당하고 살지 말라”고 조언했다. 당시 강자들은 마키아벨리의 놀라운 통찰력을 독점하기 위해 그를 사악함의 대명사로 몰고 간 것이다. 책 <마키아벨리>에는 저자가 연구를 위해 마키아벨리가 500년전에 걸어갔을 그 길을 다시 걸었으며 이탈리아 반도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마키아벨리가 남긴 역사희 흔적을 찾았다는 점에서 노고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책 <마키아벨리는> 저자가 몬테출치아노, 오르바에토, 우르비노, 페루자, 이몰라, 루카, 포를리, 볼로냐 등 수많은 도시와 그곳에 남아있는 마키아벨리의 그림자를 관찰하고 마키아벨리와 연관된 다양한 사진들이 책 속에 수록되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마키아벨리는 지금 지하에서 슬피 울고 있을 것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사람이다. 그의 진심을 몰라주는 세상 사람들이 그를 '악의 교사'라 몰아붙였고, 힘과 권력을 가진 강자에게 권모술수를 가르친 음흉한 참모라는 누명을 씌우고 있다. 또 처세에 대한 책이 인기를 끌면서, 마키아벨리와 그의 책 <군주론>을 그 본래의 깊은 의미와는 완전히 다른 얄팍한 처세술로 둔갑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진짜 마키아벨리를 소개하는 것이 이 책의 원래 목적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마키아벨리는 진짜가 아니다. 마키아벨리의 정수를 이해하지 못하던 신과학자들, 사회과학자들, 처세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그를 해석해왔고, 그의 심오한 사상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해 온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는 착한 심성을 가진 선량한 사람이었고, 르네상스 정신의 근간을 제공했던 인문학의 정수에 도달한 탁월한 인문학자였으며, 무엇보다 이 세상 모든 약자들을 품에 안으며 '울지 마라, 인생은 울보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위로하고 격려하던 약자들의 진정한 수호성자였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 <로마사 논고>, <전쟁과 기술> 등의 명저를 통해서 동시대와 후대의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은 마키아벨리의 가슴 아픈 개인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마키아벨리는 강자의 횡포에 맞서는 길을 고전으로 돌아가서 지혜를 얻는 것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철저한 약자로 살았다. 공직에서 쫓겨나 15년을 실업자로 살면서, 산골에서 가난한 농부들과 함께 곤고했던 시대를 견뎌내야만 했던 인물이다. 마키아벨리의 여러 저작들은 권모술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일차적인 목적은 현실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고전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마키아벨리는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는 이유,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갈등과 분쟁을 피할 수 없는 우리들의 현실이다. 왜냐하면 언제가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욕구하는 것이 더 크기 떄문이며, 또한 서로 다투는 이해 당사자들은 각각 다른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힘보다 욕구하는 힘이 언제나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불만을 느끼기 떄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것 외에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어떤 사람들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잃고 싶어 하지 않기 떄문에 서로 반목하여 싸움이 일어난다."

 

마키아벨리의 지혜에서 우리는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당신이 갈등 국면에 처해 있는 약자라면 시간을 끌어야 한다. 만약 반대로 당신이 판세를 쥐고 있는 강자라면 번개와 같은 단호함과 과감한 실행력으로 그 갈등을 종결시켜야 한다. 가장 나쁜 지도자는 어떤 지도자일까? 마키아벨리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지도자는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탁월한 지도자는 시간 끌기와 우유부단을 혼동하지 않는다. 어정쩡한 조치란 친구를 만드는 것도, 적을 섬멸하는 것도 아니다.

 

포르투나는 흔히 운명으로 번역되고 있지만 행운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포르투나는 예측할 수 없는 행운과 같다. 우리들의 운명도 이와 같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포르투나의 힘에 노출되어 잇는 것이 우리들의 운명이다. 마키아벨리는 어차피 포르투나의 힘에 의해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면, 탁월함과 용기, 즉 비르투스를 발휘하여 한번 붙어보라고 이야기한다. 운명에 우리 자신의 미래를 무조건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 운명의 여신을 정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싸우라는 것이다. 주저하지 말고 운명과 맞서라는 것이다. 거칠고 대담하게 운명에 도전하라는 것이다. 과단성 있는 결단을 내리고, 절대로 뒤로 물러서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그 과단성 있는 행동은 비르투스(탁월함)를 동반해야 한다. 탁월함의 추구 없는 과단성 있는 행동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일 뿐이다. 

 

"나는 용의주도하기보다는 오히려 과단성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운명의 신은 여신이기 때문에 그 신을 정복하려면 난폭하게 다루어야 한다. 운명은 냉정한 생활 태도를 지닌 자에게보다도, 이런 과단성 있는 사람에게 고분고분한 것 같다. 요컨대 운명은 여신이므로 이 여신은 언제나 젊은이에게 이끌린다. 젊은이는 신중함보다는 거칠고 대담하게 여자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바르젤로 감옥에 투옥된 마키아벨리는 고전을 통한 리더십의 통찰력을 얻게 된다. 탁월한 리더가 없다는 것은 그 리더의 품격이 문제가 아니라, 그 조직에 탁월한 팔로워가 없기 떄문이다.

 

"탁월한 리더가 부재한 우리 시대의 불행은 우리 모두가 탁월한 팔로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로 '어떤 황제에게든 거침없는 갈채와 무의미한 열정으로 아첨하던' 로마의 평민들이었다. 우리가 바로 개인적인 동기에 자극될 뿐, 공적인 영예를 생각하지 않았던 나쁜 팔로워였다. 우리들의 노예근성이 문제였던 것이다. 리더가 우리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것이라는 그 잘못된 오예근성이 우리를 나쁜 팔로워로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그들을 나쁜 리더로 만들게 된 것이다. 다음 세상을 이끌겠노라고 너도 나도 나서는 그들을 우리는 '애정도 없이, 그리고 분노도 없이' 냉정하게 지켜보아야 한다. 탁월한 리더를 만드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마키아벨리는 희망을 가지고 끝까지 시련을 견디다 보면 새로운 희망의 기회가 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절망과 희망의 가느다란 경계선 위에서 <군주론>을 썼다. 그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은 해직당한 자신을 메디치 가문이 다시 불러주는 것이었다.

 

"여기서 모든 역사적 사실을 비추어 단언하고 싶은 것은, 인간이 운명의 파도를 타기는 쉽지만 거역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즉, 밑그림대로 일을 도모할 수는 있지만, 그 밑그림을 찢어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결코 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속뜻은 전혀 알 수 없고, 아무도 모르게 샛길로 빠져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제나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 희망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의 운명이 어떤 것이든, 닥쳐 오는 재난에 이리저리 시달리더라도 결코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사회과학서로 쓴 것이 아니다. 권력을 잡은 정치가들에게 권모술수를 가르치기 위해 쓴 책도 아니다. 자기계발서는 더더욱 아니다. <군주론>은 실직을 당한 전직 관료가 재취업을 바라면서 권력자에게 일자리를 호소하며 쓴 글이다. 그래서 위대한 책이 됐다. 살아남기 위해 쓴 책보다 더 위대한 책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한 글이나,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쥐어 주는 인세에 눈이 멀어 알량한 글로 혹세무민하는 잡스러운 글이나, 권력을 잡기 위해 국민의 마음을 떠보는 파렴치한 정치가들의 글과는 차원이 다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기만의 방책이나 권모술수릐 비법이 아니라, 눈물을 쏟으며 <군주론>을 써 내려갔던 마키아벨리의 애절함이다. 저자는 마키아벨리가 역사적 실체였던 체사레 보르자의 실패를 아쉬워하면서, 상상 속의 존재들을 군주의 이상적 모델로 추천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군주론>의 이상적인 모델이 될 수 있는 영웅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군주란 실현 불가능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책 <로마사 논고>를 통해 약자가 강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길은 참된 교육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스로 사고하는 습관을 길러 주는 대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잘 요약하고 정리하는 것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겉치레식 공부가 우리는 이렇게 나약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를 영원한 약자로, 우리 사회의 '을'로 만든 것은 강자의 힘이 아니라 우리가 공부를 잘못 해 왔기 때문이다. <군주론>이 갑자기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된 로렌초 데 메디치에서 바쳐진 책이었다면 <로마사 논고>는 군주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정한 군주가 될 만한 덕망이 높은 미래의 젊은이들에게 바쳐진 것이다.

 

"운세가 좋으면 거만해지고, 나쁘면 기가 죽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여러분의 생활이나 여러분이 받았던 교육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 방법이 연약하고 겉치레가 되면 여러분은 그러한 인간이 될 것이고, 이와는 다른 교율을 받으면 여러분 또한 다른 종류의 인간이 되어 세상사에 대해서 좀 더 풍부한 지식을 얻게 되고, 행운에 취하고 역경에 실망하는 일도 그다지 없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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