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나 - 잔혹한 여신의 속임수
마이클 에니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책 <포르투나>의 저자 마이클 에니스는 버클리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텍사스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가르쳤으며, 큐레이터와 컨설턴트로 일하며 잡지와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마이클 에니스는 역사와 문화, 정치, 철학 전반에 걸쳐 방대한 지식을 쌓은 전문가다. 책 <포르투나>는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매력적인 사람들이 공존하며 학문과 예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시대,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두 거물, 다 빈치와 마키아벨리가 한 팀이 되어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내용을 다룬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모델인 체사레 보르자가 비밀에 쌓인 인물로 그리고 매혹적인 여성 다미아타가 사건의 열쇠를 쥔 인물로 등장하여 극의 긴장을 높인다.  

 

책의 처음에 등장하는 윌리엄 해리슨 애딩톤이 1903년에 쓴 저서 <체사레 보르자:르네상스 연구>에서 발췌한 글은 다음과 같다.

 

"16세기 초 이탈리아보다 더 심하게 역설적인 상황은 역사에 다시없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탁월하고도 혁신적인 면이 극에 달했을 때 이탈리아는, 정치적인 배신과 혼돈의 늪 속으로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대혼란 가운데에 놓인 이탈리아인들은 신과 교회에서 치유책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대신 자신들을 운명의 여신(고대 로마 문화에 존재했던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이 지배하는 백성이라고 여겼다. 그녀는 문학 작품은 물론 일상생활의 대화 가운데에서 변덕스럽고 악의에 가득 차 있으며 인간의 만사를 주관하는 지배자로 의인화되었다. 당시 가장 계몽적인 지식인들조차도 운명의 여신이 폭정을 휘두르고 있다는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편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런 무정부상태적인 상황을 거부하고, 수학과 일반적 원리들에 의해 질서가 잡힌 자연계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비슷한 목적으로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고대사와 현대사를 분석하고 인간 행동의 근본적인 원리를 추론해 내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는 이같이 새로운 과학을 통하여 이탈리아의 불운한 지도자들이 위기를 미리 예견하고 운명의 여신이 가할 맹공격에 대비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책 <포르투나>는 교황이 아들 후안의 살인사건을 추적하기 위해 아들의 연인이었던 고급 매춘부 다미아타를 바티칸으로 호출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두 거물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이 긴장감있게 그려진다. 책 <포르투나>는 초반에는 매혹적인 여성 다미아타가 화자가 되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을, 후반에는 마키아벨리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책 <포르투나>에서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그날 난 명인에게 답을 하지 않았네. 대신 내 대답은 일생에 걸친 노동의 산물로 나타났다네. 내 저서인 <로마사논고>와 소논문인 <군주론>에 주로 담겨 있지. 여기에 대해선 할 말이 많지만, 내가 이 연구를 시작한 건 어떻게 악이 승리하는지 보여 주려고 했던 게 아니야. 선한 사람이 교훈을 받아 배우려고 애쓰지 않을 경우 왜 악이 이길 수밖에 없는지를 논증하려고 했던 것일세. 내 일생의 저서를 쓰면서 나는 미지의 바다를 건너 안전하고 평안한 가운데 살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길을 그려냈던 거라네."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하던 마키아벨리는 발렌티노 공작이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범하게 설득력 있고 속임수를 쓰는 성격으로 극도의 정서적 차가움을 갖춘 것이라던가, 감정 이입이나 후회를 하지 않는 점, 자기애, 그리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을 감수하는 면, 당당한 자만심과 남을 모방하는 능력, 또한 어린 시절 무시를 당했다는 지각, 그리고 다른 모든 이를 탓하는 경향 등이다.

 

"우리의 공포, 고통, 그리고 우리가 영혼을 포기하게 되는 순간까지 끝까지 놓지 못하는 절망어린 희망, 이런 것들이 죽음과 직면하게 될 때 우리 얼굴에 나타난다는 걸 당신은 보셨고, 그 모든것들로부터 당신은 삶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육체 빼고는 전부 죽어버린 채로 태어난 당신은 우리가 죽는 그 순간에만 살 수 있는 겁니다. 당신이 만든 수수께끼와 당신이 그린 기하학적 도형들, 당신이 묻은 해골의 성소.... 이런 여흥거리들은 그저 당신이 살아 있고, 또 다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 때 역시 잠깐 동안 살게 될 거라는 사실을 떠올려 줄 뿐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새로운 도안을 갖게 될 겁니다. 사람의 육체로 이루어진 새로운 글자 맞추기, 새로운 학살들이 되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아무리 높이 해골을 쌓아올린다 해도 결코 당신 내면의 공허함을 채울 수는 없을 겁니다."

 

책 <포르투나>를 읽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고싶어졌다. 발렌티노의 치명적인 결함 때문에 그를 본보기로 한 <군주론>에서 마케아벨리가 의도했던 뜻은 오랜 기간 퇴색되어 왔다. <군주론>은 그저 마키아벨리의 차선책에 불과했고 그것은 정치적인 신중함이 오랫동안 경시되고 혼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효율적인 독재와 비효율적인 독재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지침이었다. 책 <포르투나>는 마키아벨리와 다 빈치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를 통찰력있게 이해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다.

 

"<군주론>에 담은 내 목적은 패배한 이탈리아에 구원자의 모델을 제시하려는 것이었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위대한 조각상인 <다비드>가 인간의 모습과 신성한 정신을 완벽하게 묘사해 놓은 것처럼, 나 역시 담대하게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완벽한 인간을 서술한 게지. 미켈란젤로가 다비드를 살인과 간통을 저지른 인물로 표현하지 않았듯, 나 역시 내가 모델로 삼은 이 인물의 모든 면을 다 책에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네. 대신 발렌티노가 우리 모두에게 제시한 빈 페이지 위에, 나는 나만의 드문자를 불러들인 거지. 비범한 재능을 지니고 그릇되지 않은 결정을 내리며, 두려움 없는 야심에 차서 인간의 앞길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을 지닌 지도자 말일세. 이 발렌티노 공작은 이제 선한 목적을 위해 내가 만들어낸 예술적이고 정교한 속임수인 것이네. 바로 이탈이아의 구원을 위해.

내가 군주론에 선한 의도를 담고 있다 해도 그 책이 다른 이들이 저지를 악행의 뿌리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예견하지 못했다 말한다면 나는 위선자가 되겠지. 하지만 악마의 집으로 가는 길은 선한 자에게나 악한 자에게나 모두 같은 법이고, 그 둘에게 모두 필요한 길이 된다는 게 내가 내세우고 싶은 이유라네. 시대는 변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 법이지. 발렌티노 같은 자들은 다가올 새 시대를 무한히 긍정할 테고, 자신들이 저지른 악행은 앞으로의 시대에 꼭 필요한 거였다고 말하겠지. 하지만 그들은 악마의 집에 머무르며 자신들의 유리한 위치를 음미하고 거기에 맛을 들이게 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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