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삐딱한 세계사 - 우리가 알지 못한 유럽의 속살
원종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책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는 내용의 대부분이 유럽사와 관련되어 있긴 하지만 역사의 나열이나 사건의 세부적인 사안이 아닌, 인류가 성취하고자 하는 근대성과 관련된 내용이 주된 테마이기 때문에 전형적인 역사서라 말할 수는 없다. 저자는 그것을 향해 나아가던 우리의 노력과 시행착오, 좌절, 성취,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집단과 개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많은 부분에서 주관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느낌과 해석을 중요시한다. 저자는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일은 이미 많은 사람이 하고 있거니와, 지적 흥미와 감성적인 공감, 인간에 대한 통찰을 끌어낼 수 잇는 내용들만 저자에게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역사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이야기들의 종합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유럽사와 유럽인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아는 것과 같은데, 그 이유는 유럽의 역사는 단지 유럽만의 역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그들이 창출한 물질적, 정신적 성과들은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 사회, 사상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만들어낸 기술과 사상, 종교, 철학, 그리고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들이 보편적 인간성의 이름 아래에 수렴되고 행사될 때, 그제야 비로소 우리의 근대는 완성될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이름이 아닌 모든 다른 것은 그저 환상이고 껍데기라는 사실, 우리가 얻어내야 할 역사의 교훈은 단지 그 하나뿐이고 이 책은 그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금지곡과 검열에서 드러나던 문화적 폐쇄성과 무지, 정치적 탄압과 독재에서 비롯된 자유의 제한, 새롭고 창조적인 것에 대한 방어적인 보수성, 개인의 주체성에 대한 불편함과 억압. 이것들이 통틀어 전근대성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이후 자연스럽게 이런사회의 전근대성 문제는 내 중요한 화두가 되었고, 20대 중반 문화평론가로 데뷔하고 서른 살 즈음부터 <딴지일보>에 글을 쓰면서 관심은 더 깊어져 갔다. 그리고 전근대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대정신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상적, 제도적 바탕이 만들어진 유럽과 서구 문명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던 가운데 캐나다에서 2년, 영국에서 4년의 뒤늦은 유학 생활을 하게 되고, 유럽인의 사고방식과 삶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문명에 대해 다시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모든 경험과 기존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합쳐져 딴지관광청(지금의 노매드21)에 70여 차례에 걸친 연재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 책은 5년간의 연재 내용을 추려내 대폭 정비하고 재집필한 결과다."

 

책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는 유럽 문명의 시발점인 로마, 기독교는 로마를 어떻게 무너뜨렸는가, 게르만족의 등장과 중세 문명의 후퇴, 타락과 광기의 중세인 십자군과 마녀사냥, 르네상스의 도래와 인본주의의 성립, 근대와 인류의 진화, 최초의 근대적인 혁명인 프랑스 혁명, 마지막 정복영웅 나폴레옹, 권력을 앞세운 제국주의와 인간정신을 앞세운 사회주의, 일본과 독일의 망상이라는 10장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었던 유럽 역사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책의 챕터가 끝날때마다 저자가 영국이나 캐나다 등의 외국에서 생활한 외국인들의 실제 모습 속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과 지양해야 할 것을 알려주는 점에서 유럽이라는 선진국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 문명의 두 뿌리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고 일컫는데, 전자는 그리스 문명, 후자는 유대 전통과 기독교를 뜻한다. 그리고 이 두 사상적 기둥을 내부에서 통합, 부흥시키고 유럽 대부분 지역에 퍼트리기 시작한 것이 바로 로마제국이다. 즉 로마가 없었다면 지금의 유럽 문명은 존재할 수 없었다. 로마에 의해 종교, 정치, 문화, 철학, 예술 등 자양분을 공급받은 유럽은 중세와 르네상스, 근대와 산업혁명,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유럽인의 장점 가운데 합리적, 관용적, 개방적, 실용적인 면은 로마인의 전통적인 장점이기도 하다.

 

로마를 이어받은 게르만게 왕조들이 로마에 이어 기독교 세계를 이끌면서 중세의 사회와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중요한 점은 전반적으로 이 시기의 유럽 문명 전체가 이전의 그리스, 로마시대보다 오히려 야만적인 상태로 회귀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문명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저절로 발전한다고 은연중에 생각한다. 이때의 문명이라는 말 속에는 철학이나 신학 등 인간의 사고와 관련된 부분은 물론, 정치체계, 법률과 제도, 과학기술 등 전반적인 모든 것이 포함된다. 저자는 역사는 발전해온 시기보다 정체된 시기가 더 많았던 것이 아닌지 의문을 갖게 되고, 상황에 따라서는 급속한 단절과 퇴보를 경험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한다. 문명 차원에서 '발전'이라는 말을 쓰려면 인간의 존재 양식이 총체적인 의미에서 향상되어야 한다. 전구의 발명은 기술을 통해 어둠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문명적 차원의 개가지만, 이어진 형광등의 발명은 기술적 발전의 의미는 있어도 같은 무게로 평가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적 부의 획득 같은 비기술적인 사항의 경우도 그것이 일부 계급에만 편중될 떄는 오히려 더 큰 사회적 갈등과 불안의 요인이 되며 해당 문명의 붕괴를 촉진할 수도 있다. 인간의 삶이 행복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을 계속 넓혀주는 물질과 정신적 풍요의 원활하고도 균형 있는 공급은 문명 발전의 중요한 척도다. 로마에서 중세 유럽으로의 전이는 서로마제국의 멸망과 더불어 오랜 세월 쌓아올린 그레코로만의 인본주의적 가치도 함께 사라졌다. 중세는 그리스와 로마의 1,000년에 걸친 관용과 다원주의 전통을 일신교의 도그마로 무너뜨린 억압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하에 출발하는 중세의 특징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독교의 문화적 정치적 힘 강화, 둘째 게르만족의 발흥과 문명 중심의 북상, 셋째 사회 문화 예술에서의 폐쇄성과 정체, 넷째 그리스 자연 철학과 기독교 신학의 결합, 다섯째 봉건제도의 시행이 그것이다.

 

십자군과 마녀사냥의 배경에는 선과 악의 이분법이라는 유럽, 서양, 백인 문명 특유의 사고방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극단적으로 나누어진 '선악의 대립물로서의 세상'의 관념은 중세 유럽의 주요한 정신적인 특징인데 이 관념이야말로 동서양의 전통적 정신세게를 구분하는 핵심적인 차이점이기도하다.

 

"동양사상에는 선과 악이 극단적이고 이원적인 개념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순자의 철학적 배경으로 일컬어지는 성악설에서의 악도 '성나는 대로 행동하고 예의를 어기는 것'으로 서양의 악과는 거리가 멀다. 중세는 물론 현재까지도 서양의 악 개념 속에는 그 바탕에 신과 대립하는 초자연적인 존재인 사탄이나 악마가 상정된다는 점에서 행동윤리에 가까운 동양철학의 선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아직 백인 문명에서는 십자군이 정의와 진리를 수호하는 군대의 이미지로 남아 있고, 그 이미지가 기독교의 전파와 함께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퍼져 있다는 점은 놀랍다. 이런 십자군에 대한 환상은 사실관계로도 잘못된 것이지만 기독교 유럽 외에는 아무런 전통적 은원관계도 없는 이슬람 세계를 마치 악의 화신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십자군 원정 이전의 이슬람은 학문과 종교적 관용의 측면에서 중세 유럽과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 이슬람을 자극해 배타적인 태도로 바꾸어간 것은 타협과 관용을 모르던 중세 유럽의 잔인함과 무지였다. 지금의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등 이슬람 세계의 일부에서 드러나는 공격 성향의 상당 부분은 오만과 광기로 일관했던 유럽의 백인 문명에 원인이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이것이 단지 900년 전 비극적인 역사의 한 장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십자군으로 상징되는, 타 문명에 대한 서구인의 뿌리 깊은 몰이해, 특히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백인 사회의 중세적 무지와 편견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세계의 평화와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9.11 테러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는 탈레반과 빈 라덴에 대한 보복을 언급하며 성전, 십자군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가 이슬람 국가들의 ㅎ아의를 받고 철회하는 촌극을 빚었다. 미국의 보복상대가 전체 이슬람 세계와 그 국민이 아닐진대 이런 표현은 통탄할 정도로 몰상식한 것이었다. 이 발언이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였다면 최강국 미국을 통치하는 인물의 암담한 지적 수준을 보여주는 증거고, 미국인과 기독교 사회를 흥분시키기 위해 계산된 것이었다면 900년 전 교황에 의해 자행된 술책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르네상스를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문예 부흥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편적인 관점이다. 르네상스는 문학과 미술을 포함한 다양한 예술 영역은 물론 사회 전체에 걸쳐 벌어졌던 현상이다. 이런 변화는 결국 중세와 근대의 디딤돌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르네상스의 주요 주제 가운에 하나는 바로 고대로의 복귀였다. 우리는 은연중에 역사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균등하게 발전해간다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수시로 일어나는 역사의 정체나 퇴보가 가진 세계사에서의 의미는 의외로 쉽게 간과되곤 한다. 그리스,로마와 중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전자가 인간 중심주의임에 반해 후자는 신 중심주의라는 점이다. 르네상스가 근대를 향한 기지개라고 봤는 때, 근대성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근대의 핵심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다양한 어휘로 설명, 정의할 수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기독교 도그마의 붕괴와 인본주의의 성립'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산업혁명과 계몽주의 및 초기 사회과학자, 프랑스 혁명 등을 통해 발전, 전파된 근대사상은 사회를 억압적으로 지배하던 기독교의 독단적 가치관을 비판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고, 이어 이를 인본주의, 자유, 평등, 박애 등의 개념으로 치환하는 데 핵심이 있었다. 어떤 종교적인 가치도 인간의 가치를 넘어설 수는 없으며 개인의 기본권은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근대는 시간적인 개념이기도 하지만 또한 사상적,문명적인 개념이며 이에 대한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시간적인 개념으로서의 근대조차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자유와 평등과 박애가 넘쳐흐르는 세상에 살고 있는가? 제3세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이른바 선진국에서들에서조차도 이 원칙의 구현은 요원하기만 하다. 침략과 살육, 증오와 범죄, 몰이해와 폭력이 곳곳에서 난무하고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뉴스는 우리 자신의 피로 얼룩져 있다. 수많은 사람이 아직도 기본적인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평등의 구현은 그저 꿈같은 소리일 뿐이다. 박애나 사랑은 직계가족의 울타리만 넘어서도 효력이 없다. 비록 프랑스 혁명 이후 지금까지 많은 성취를 해왔지만 이 몇백 년 묵은 강력들이 현실적인 수준에서 달성되지 않는 한 근대는 결코 지나간 옜날이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근대는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끝내버린 숙제 같은 것인데, 이 숙제는 근대를 통해 최초로 생겨난 모종의 자각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근대는 생물학적인 인간이 출현한 지 수백만 년 만에 처음으로,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서고자 한 시대였다. 근대의 출현을 통한 인류 문명의 변화는 실로 극적이고도 근본적인 것이어서 진보 같은 단어로도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문명적 진화'라는 느슨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자신감과 거대한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자신을 통해 전 유럽이 갈등과 반목을 딛고 통합되어 혁명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근대제국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신념, 그리고 당면한 현실에서 열악한 하층민의 삶을 해결하고 유럽을 시민사회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독재가 필연적이라고 믿은 것, 이것이야말로 나폴레옹이 직면했던 내적 모순에 대처하는, 아니 오히려 최대한 활용하는 극단의 이상주의자이자 철저한 현실주의자인 나폴레옹의 사고구조였다. 그러나 이런 개인의 비전과 능력을 통해 세계를 변혁시킨다는 발상은 스스로에게 초인의 지위를 부여하는 위험한 것이다. 나폴레옹은 이상과 현실 양쪽의 의미에서 최대의 영웅을 꿈꾸는 슈퍼맨과 같은 초인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책에서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한 배경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20년 만에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지만, 적어도 이후 70년 가까이 인류는 세계대전 규모의 전쟁을 다시 겪지 않고 있다. 그것이 초래할 결과를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세상이 이전보다 살기 좋은 곳이 되었는가'하는 질문에는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렵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미국와 영국 등에 의해 건국된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은 피해자였던 자신의 처지를 잊고 그 지역의 원주민인 팔레스타인을 박해하며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오래전 십자군 원정 때부터 쌓아온 유럽계 백인에 대한 이슬람 세계의 분노는 이스라엘을 적극 비호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이란 등 무슬림 국가를 압박하는 미국을 향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불타는 중이다. 광신에 의한 테러가 자행되고 보복이라는 명문하에 더 큰 테러가 이어지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많은 사람이 질병과 배고픔에 고통받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노력은 미약하기만 하다. 인종주의와 증오의 참상을 겪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유럽에서마저 다문화주의, 관용주의 정책이 힘을 잃으면서 극우세력이 다시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고, 미국의 금융가들은 범죄에 가까운 금융기법을 동원해 막대한 부를 끌어모으다가 국제경제에 큰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인류는 여전히 탐욕과 증오, 광신의 포로로 살고 있다. 새로운 맹신이 과거의 맹신을 대체하고 새로운 미음이 예전의 미움을 대신하며, 소유에 대한 욕망은 무한대로 확장되어 타인의 땀과 피를 요구하고 있다. 중세는 아직 종결되지 않았고 근대의 이상도 달성되지 않았다.

 

책 속에 등장하는 현대 유럽이야기 중에서 인종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인종주의에 대한 사고방식이 개인을 그가 속한 사회나 집단이 아닌 개인의 자질과 특성으로 이해하려는 현대의 인간관에 비추어보았을 때 공정하지 못한 것이 큰 문제다. 민족 집단마다 공통된 성격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부정적인 의미에서 일반화하여 각 개인을 그 범주 내에 일괄적으로 포함시키는 것은 분명한 전근대적 오류이다. 따라서 우리도 착취당하는 이주 노동자들을 그저 불쌍하고 처량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외국에 대해 우리의 인권을 주장하듯 그들의 생존권도 떳떳한 기본 권리로 인식하고 같이 지켜 나간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저자는 우리가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돕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문명화된 사회의 구성원이 가져야 할 자세라고 강조한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알고 지내는 외국인이 뒤에서 나를 욕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진 않지만 이것은 단지 개인적인 차원, 사람 사이의 문제일 분이다. 하지만 이때 "한국 놈들은"이라고 나온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유는 이제 개인을 향한 비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욕하는 '한국 놈'의 범주 속에는 우리의 부모와 조상을 포함한 가족 전부, 친구 대부분이 속해 있다. 그리고 지금껏 일구어온 힘든 삶의 역사와 문화 모두가 포함되기에 우리 문명 전체에 대한 모독이 된다. 또 다는 문제는 그런 말이 나오는 순간 이것은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다는 사실이다. 개인에 대한 타당한 비판이라면 반성과 노력을 통해 개선할 수도 있지만, "한국 놈들은"이라면 우리의 단점은 이미 핏속에 고정되어 있고 고칠 수도 개선할 수고 없는 숙명적인 문제가 된다. 특성한 개인의 특수한 사계라 그가 속하는 인종,민족 전체로 확대되어 일반화하고 그에 따른 편견이 고착되어버리는 것이다."

 

유럽은 현대 문명의 발상지이며, 많은 내외의 경험을 가진 오래된 문명이고 포용력이 있는 문명이자 이상과 현실이 차분하게 공존하는 문명이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유럽이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도 많이 존재한다. 유럽은 오래된 세계이지만 현대 문명의 발상지답게 새로운 면모로 다시 한번 인류 문명을 이끌어나가려 한다면 본질적인 차원에서의 개선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통합을 바탕으로 한 경제 및 정치력의 회복, 국제적 세력 판도의 재편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풍부한 문화와 전통, 경험을 토대로 한 새로운 정신적 가치체계의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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