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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 정진홍의 900킬로미터
정진홍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평점 :
책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한다>는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정진홍의 사람공부>, <사람이 기적이 되는 순간> 등의 깊이와 통찰이 있는 글로 감동을 주는 저자 정진홍의 에세이이다. 그는 2012년 봄 산티아고 가는 길 900킬로미터 걷기를 결행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안의 진짜 나를 찾으려는 지독한 절실함이 없다면 감히 시도조차 하지 못한 길이 아닐까... 저자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50일간의 산티아고 여정을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어제와 다른 나, 오늘과 다른 내일의 나를 발견하고 싶은 뜨거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의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살아 있는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 바로 산티에고 순례길이다.
저자가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겠다고 나선 것은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 정면으로 서는 일이었다. 삶의 과정만큼 내게 소중한 이들은 나를 기억할 것이다. 내가 살아온 만큼 기억되는 것이기에, 삶을 진정으로 제대로 사는 일은 중요하다.
산티아고를 순례하다 보면 죽은 이들의 무덤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순례자들의 무덤을 보면서 삶과 죽음은 나란히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저자는 순례자에게는 이 길을 걷다 죽었다고 기억되는 것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이란 생각이 들지 모른다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우린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자기 인생길을 걷다 죽는다. 우리는 죽음과 친해질 필요가 있다. 인간에게 공평한 두 가지가 있다면 바로 태어남과 죽음일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건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간 인간은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한다. 저자는 죽음은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선생이라고 이야기한다. 책 속의 등장하는 산티에고 순례길에서의 무덤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떠오르게 한다.
저자는 삶의 기로에서 어디로 갈 지 모를 때는 먼저 나쁜 자석들을 치우라고 말한다. 내 안의 나쁜 자석이란 곧 내 안의 오만, 교만, 불평, 불만 그리도 괜한 거두름과 거들먹거리는 게으름 같은 것들이다. 인생의 방향을 잃어버렸을때 나쁜 자석들을 치우고 제대로 된 나침반을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라고 말했던 돈키호테처럼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산티아고를 순례하는 일도 진정한 자신을 찾고 싶은 용기와 희망, 꿈에 미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싶은 꿈을 위해 무조건 달려나갔던 돈키호테의 호기를 배우고 싶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꿈을 찾아 떠나고 싶다.
저자는 스스로를 용서한다는 것은 지나온 나날 속의 모든 회한과 후회로부터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래 묵은 자책에서 스스로를 사면하고 해방시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고 싶었던 것도 나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서른 후반의 삶을 살아오면서 이루지 못한 꿈들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소중한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질까라는 고민을 한다. 내가 꿈꾸었던 작가라는 꿈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며 살아왔던가? 사람들과 얼마나 소통하며 지내려고 했던가?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내 안의 나를 가두어놓기만 하고 나를 자책했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나를 만나고 나를 진심으로 용서하고 싶다.
저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한 시간을 만난다. 자신을 가장 사랑한 시간, 생각만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지금 이 길을 걷는 나는 내 인생에서 나 자신을 가장 사랑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언제 한 번 자기 자신을 돌아본 적이 있었던가. 언제 한 번 자기 속이 우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언제 한번 자기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지 자기 자신을 돌봐줘본 적이 있었던가. 산티아고로 가는 이 길 위에서 난 그래서 나를 가장 사랑한 시간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저자는 산티아고 가는 길은 그저 걷기를 위한 길, 극기훈련의 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길은 진정으로 나 되기 위해 걷는 길이다. 그러니 빨리 걷는 길이기보다 느리게 걷는 길이고 여럿이 더불어 걷는 길이기보다 홀로 고독하게 걷는 길이다. 물론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고독하지만 쓸쓸하지 않게 말이다. 그래서 걸을수록 비워지고 걸을수록 채워지는 묘한 길이다.
인생의 정지통인 사투기를 겪는 이들이라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기분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삶이란 어차피 홀로 가는 외로운 길이라고 말한다. 그것을 외롭다, 슬프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이 인생이니깐. 이것을 알면 정지통으로서의 사추기도 사라진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누구와 경쟁하며 가는 길이 아니다. 여럿이 함게 가든 혼자 가든 결국에는 자아를 찾아가는 고독한 길이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기 마음의 가장 밑바닥이 드러난다. 저자는 그런 가운에 가족의 소중함과 기본의 절실함을 그 어느때보다 절감했다고 말한다. 진짜 소중한 것은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이라고... 산티아고 가는 길은 높고 높은 교회의 첨탑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낮고 낮은 바닥으로, 그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길이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 가장 소중한 것이 있음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삶을 끝까지 나아가야한다. 끝이라 시작한 곳에 새로운 길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눈물을 흘릴 수 있을만큼 절실함이 찾아올 때 떠날 수 있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