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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책 <애도하는 사람> 제140회 나오키 상 수상작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이처럼 동시에 완벽하게 표현하는 소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내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성찰,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대한 가치관까지 흔든 사건이라고 말하고 싶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사람
"누구에게 사랑받고, 또 누구를 사랑했는지, 어떤 일로 누가 그분에게 감사를 표했는지 아십니까?"
돌아가신 분을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로 기억하고 싶다는 시즈토의 말이 가슴에 새겨진다. 어릴적부터 죽음이라는 것을 일찍 목격한 시즈토는 소아과 병동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만나고 가장 친한 친구가 죽게되자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받아들인다. 죽은 이를 잊지않고 기억해야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것인지를 생각한다. 자신과 연고도 없는 이들을 애도하는 시즈토의 행위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 사랑의 의미가 무엇일까하는 물음이 던져졌다.
애도하는 사람으로 인해 인생의 가치관이 변화하다
모두가 싫어하는 인물로 불리는 기자 마키노, 시즈토와 함께 애도여정을 떠나는 유키오 등 애도하는 사람인 시즈토로 인해 인생의 가치관이 변화한다.
사랑하는 가족도,친구도 없는 마키노는 시즈토를 만나면서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가 깨닫는다.슬픔과 분노를 대변하는 기사를 써왔던 마키노가 죽을뻔한 사고를 겪으면서 자신의 죽음을 의미있게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겠구나라는 안도감은 그의 인생의 큰 가치관의 변화였다.
사랑하는 남편을 살해해야만 했던 유키오는 죽은 남편의 혼령과 함께 시즈토의 애도를 위한 여정에 따라다니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느낀다. 유키오의 죽은 남편 사쿠야와 대화를 통해서 죽은자와 살해한자 사이의 경계에 있는 시즈토의 모습이 강렬하게 기억된다. 시즈토와 사쿠야와의 대화를 통해서 유키오는 남편이 자신에게 태어나고 싶다고 말했던 의미를 깨닫는다. 그것은 자신을 사랑했던 남편이 자신의 존재안에서 새로운 사랑으로 잉태되고 싶어함을 의미한다. 혼령인 사쿠야가 드디어 유키오의 몸에서 떨어져나갈때의 여운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시즈야를 사랑하지만 집착하지 않고 그의 애도를 방해하지 않으며 그와 닮아가려는 유키토의 모습에서 진정으로 사람을 기억한다는 애도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것인가를 알 수 있었다.
시즈토의 어머니 준코는 시즈토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서 걱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그의 애도여행을 격려한다. 계속 애도를 하려는 뜻을 위해서라도 살아있어야한다고 말해야하는 준코의 심정은 어땠을까. 친오빠 대신 자신이 삶을 얻게됬다고 여기는 준코가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아들인 시즈토가 고인을 애도하는 것이 아들 자신이 현재를 살아가기 위한 행위임을 느끼게된다. 준코가 폐암에 걸려 죽어갈 때 딸 미시오는 아이를 잉태하는 모습에서 삶과 죽음의 양면성과 본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생의 본질은 어떻게 죽었나가 아니라, 사는 동안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에게 사랑받고 어떤 일로 사람들에게 감사를 받았는가에 있습니다"
"그는 사람을 애도하고 있어요. 죽는 순간, 그저 숫자가, 유령이 되어버리고 가까운 사람을 제외하면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았는지 잊어버리는데 이 남자는 죽은 자가 지나온 삶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습니다. 그 인물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소박하게나마 기리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바꿀 수 없는 두가지가 있다고 한다. 생명이 태어나는 것과 죽음이다.
시즈토가 애도하는 사람중에는 죄를 저지른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죽어서 마땅한 것일까?
아무리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해도 한때나마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은 기억이 있을것이다. 그로 인해서 감사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세가지를 잊지 않으면 그 사람을 기억하고 애도할 수 있다.
죽음이라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준다. 사람은 현재를 살아나가기 위해서 죽은자를 잊는다. 사고가 나서 수많은 사람이 죽고, 희생당하고, 사라져 가는데도 우리는 아무일이 없었다는 듯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책 <애도하는 사람>은 아직 죽음이라는 시간이 멀게만 느껴졌던 내게 정말 충격으로 다가왔던 작품이다. 죽음을 다룬 내용만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고귀한 것이며 사랑이라는 것이 삶의 가치를 빛나게 해준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 애도하는 사람인 시즈토를 만나고 싶어졌다. 자살하는 대신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게 된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시즈토의 영혼이 애도하는 사람이 되기까지는 고통으로 힘든 나날을 견디어왔을 것이다. 애도하는 의미가 개인의 병적인 것으로 치부하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의 수많은 죽은 사람을 잊지않고 기억하려는 시즈토의 정신은 숭고하다. 내게도 언젠가 죽음의 날이 온다면 누군가 나를 애도할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