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제한선 - 1% 슈퍼 리치는 왜 우리 사회와 중산층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해로운가
잉그리드 로베인스 지음, 김승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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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부의 제한선>의 저자 잉그리드 로베인스는 불평등을 제어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 시스템이 공멸하기 직전임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저자는 불평등을 제어하려면 빈곤층을 보조할 뿐 아니라 극단적인 부도 제한해야 한다고 도발적으로 주장한다. 그것이 결국 부유층에도 이롭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잉그리드 로베인스는 부의 극단적 집중화에 천착해온 세계적 석학으로 개인이 부에 상한선을 긋는 '부의 제한주의'를 주장해 왔다. '정치적 제한선'으로 순자산 기준 1천만 달러를, '윤리적 제한선'으로 1백만 달러를 설정한다. 정치적 제한선은 개인이 더는 축적할 수 없게 제도가 제약해야 하는 기준이고 윤리적 제한선은 돈이 더 있다고 해도 후생을 크게 늘리지 못하는 기준이다.

이 책은 철학자이자 경제학자로서 탄탄한 연구 사례와 세계 각국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부의 불평등 문제를 전개하며, 흔히 제기되는 반대 의견을 소개하고 그에 대해 다시 반박한다. 부의 제한선을 자발적으로 실행하는 슈퍼 리치들의 사례도 포함되었다.

부의 제한선은 가난한 계층을 계속 빈곤에 묶어두고, 민주주의를 특권층의 의견으로 물들이는 지금의 세상을 더 나은 세계로 이끌 것이다. 태어난 지역이나 상속액의 차이로 인생 출발선부터 겨갗가 너무 벌어지거나, 부유층의 탐욕적 소비로 지구를 황폐화하는 폐해에도 해법으로 작동할 수 있도. 누구도 천만장자, 억만장자가 될 자격은 없으며, 거의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했을 그 엄청난 돈으로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책 <부의 제한선>은 '진짜' 슈퍼 리치들이 부를 어떻게 감추며 향유하는지 눈을 뜨게 한다.

저자는 만약 당신이 어느 누구도 빈곤에 계속 묶여 있지 않기를 원하고 불평등의 심화가 나쁜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개인이 얼마나 많이 가질 수 있느냐에 제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이라고 말한다. 숫자로 말하자면, 불평등은 바닥과 꼭대기 사이의 거리다. 저자는 불평등이 줄어야 한다면 꼭대기에 한계가 있어야 하고, 자연히 그 상한은 개인이 축적할 수 있는 부에 제한선을 설정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극도의 부는 비가시적이라고 말한다. 많은 나라에서 부자들과 슈퍼 부자들은 다른 이들의 시야에 드러나지 않으려 한다. 저자는 겉으로 보이는 곳에서 불평등은 극단적인 부의 모습으로보다는 빈곤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고 이야기한다.

"불평등은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져서도 생기고 부자들이 더 부유해져서도 생긴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거나 중산층이 쪼그라들어서 불평등이 생길 때는 우리 눈에 더 잘 보이고 많은 사람이 피부로 이를 경험한다. (...) 반면, 매우 부유한 사람들이 더 부유해지는 경우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별로 없고 우리 대부분의 일상도 적어도 곧바로는 달라지지 않는다."

저자는 소득과 부는 다르게 경험된다고 말한다. 대개 가난한 사람들은 소득만 있고 부자들은 부득과 부가 둘 다 있다. 그런데 소득만으로는 미래를 계획하기 어렵다. 소득은 우리의 시야를 단기적인 문제에 집중시킨다. 저자는 반면 부는 장기적인 사고를 촉진한다고 이야기한다. 부를 가진 사람은 미래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거의 모든 국가에게 소득 불평등보다 부의 불평등이 더 크다.

저자는 노동자 계급인 빈곤층과 극빈곤층, 중산층, 부유층, 그리고 슈퍼 부자 계층으로 계급을 나누어 이야기하지 않고는 극단적인 부에 반대하는 논의를 시작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계급이 우리 사회와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계급이라는 용어가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많은 사회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겨지는 정치 원칙과 충돌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헌법에서는 모든 이가 평등하다고 선언했을지 모르지만, 삶에서 가질 수 있는 기회는 매우 불평등하고 얻게 되는 결과고 매우 불평등하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우리가 단지 계급에 대해 말하지 말도록 독려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계급이라는 관점으로 이야기하는 법 자체를 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달성할 성공을 우리 개인이 내린 선택의 결과이리라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발달이라든가 상이한 집단 간 이해관계 충돌이나 권력의 차이, 또는 우리가 일하는 회사를 소유한 사람들과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같은 외부 요인들은 잘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가정 외부의 영역에서 인간의 행동은 이기심으로 추동되며 이를 전제로 해서 사회를 조직하면 모두가 더 부유해질 것이라는 믿음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신자유주의 시대는 우리 사회에 충격적인 영향을 미쳤고 특히 부의 분대가 대대적으로 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신자유주의는 슈퍼 부자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한층 더 밀어붙이기에 완벽한 환경을 제공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매커니즘이 국내적으로도 글로벌 규모에서도 극단적인 부의 집중을 가능하게 했을 뿐 아니라 빈곤을 영구적인 덫이 되게 만들기도 했다고 강조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 규제 완화, 기업과 부자에 대한 감세, 해외에서 공격적인 지정학적 개입 등을 위해 로비를 벌였다. 이 모두가 가장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득이 되었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해가 되었다."

저자는 불평등을 해결하지 않고도 빈곤을 해결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빈곤을 다루려면 불평등을 다루어야 한다. 미국에서 부자들과 슈퍼 부자들에게는 다양한 세금 우대와 보조금을 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훨씬 덜 너그러운 정책을 운영하면서 정부 정책이 빈곤을 심화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자본 이득에 세율을 올리지 않는 것, 최고소득세율을 내리는 것, 막대한 조세 회피를 용인하는 것도 빈곤의 해소를 어렵게 만들고 불평등을 악화하는 정부 정책이다. 저자는 이러한 결정을 내리고 나면 정부는 보편 의료, 공공 교육, 사회적 주거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정책에 쓸 돈을 충분히 갖지 못하게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슈퍼 부자들이 가질 자격이 없는 부의 가장 명백한 형태는 상속 재산이라고 말한다. 상속은 극단적인 부의 중요한 원천이고, 때로는 누군가를 정말 엄청난 부자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거액의 상속은 다른 사람들에게, 또한 사회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기회의 평등을 훼손한다. 사회의 계층 이동성도 훼손한다. 또한 역인텐티브를 발생한다. 저자는 게다가 상속은 경제를 효율적으로 굴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회사를 자손에게 물려주면 그 회사를 가장 잘 경영할 사람이 경영을 맡는 것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상속이 막대하게 불평등하다는 점이지 상속 자체가 아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대규모 상속이 문제다."

저자는 우리 모두는 사회 계약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극도로 많은 부는 늘 다른 이들이 만든 토대 의해서 지어진다. 저자는 예를 들어 구글과 애플 같은 억만장자를 배출한 테크 기업들을 보면 가장 유명하게는 인터넷처럼 국가의 지원으로 기원이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테크놀로지들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많은 국가에서 정부가 공공재의 제공을 염두해 두고 연구개발에 투자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테크 억만장자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부의 제한주의가 실현된 세계에서 최상층은 금전적인 기회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 막대한 기회를 열어주고 우리 사회가 더 정의로워지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다. 저자는 소수가 과도하게 부를 쌓을 기회를 제약하면 대부분의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구 온난화의 피해가 큰 지역과 그 때문에 앞으로 삶의 기회가 빠르게 사라지게 될 사람들도 슈퍼 부자들이 과거에 일으킨 오염과 기후에 재앙을 일으키는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야기한 피해에서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을 것이다. 중산층도 더 많은 기회를 누리게 될 것이다. 조세 수입이 늘어나서 사회 안정망을 강화하는 데 쓰이면, 모든 사람이 돈 걱정을 해야 할 필요가 줄어들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가장 좋은 것들을 창조적으로 생각할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다."

저자는 부자들은 기부를 생각하기 전에 애초에 그 돈을 도덕적으로 건전한 방식으로 벌었어야 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자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려는 사람들이 물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가 정부를 왜 필요로 하는가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선가들이 정부가 못 채우고 있는 부분을 메운다면 정부는 자신의 의무를 계속해서 다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편리한 변명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의 필요가 누군가의 자선으로 충족되는 사람들은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대부분의 보수주의자와 자유지상주의자들은 '큰 정부'를 반대한다고 말한다. 정부가 우리 삶에 너무 많이 간섭하고 있으며 우리 돈을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부당하게 가져가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평화롭고 효과적으로 돈을 벌게 해주는 시장은 정부 덕분에 구성될 수 있고 기능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우리가 갖게 되는 부는 현시대의 타인들, 그리고 과거의 사람들이 전해준 지식과 공동의 인프라에 의존한다. 저자는 많은 사람이 지금의 우리 사회보다 집합적 후생이 더 크고 불평등은 더 작은 사회에서 살고 싶어 하는데, 정부는 이것을 달성할 수 있는 최고의 매커니즘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모든 부유한 자선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과 부를 쌓는 과정에서 과거에 저질렀을지 모르는 피해를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유한 자선가들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내가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산 과정이 지역공동체나 고객이나 지구의 건강에 해를 끼치거나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지는 않는가? 내야 할 세금을 최소화하기 위해 법을 주무르고 있지는 않은가?

저자는 부의 제한주의는 어떤 부유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삶의 질을 위해 필요한 것 이상의 부는 사회의 구조적 불의를 타파하고 집합 행동의 문제를 다루며 충족되지 않고 있는 필요들을 충족하는 방식으로 분배되야 한다고 말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우리는 안전성 있고 좋은 삶을 누리는 데 필요한 것 이상으로 가지고자 해서는 안 되며 우리가 가진 것을 불운한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도덕적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부자들은 수퍼 부자들이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부를 제한해야 할 건설적인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더 많은 돈이 있을수록 사회적 교류를 점점 더 나와 비슷한 사람들로만 한정하게 되고, 이는 다시 당신의 인간성을 변화시켜 현실 세계와의 접점을 잃게 된다. 또한 매일 부유한 사람으로서 날마다 내려야 하는 선택 각각은 다른 누군가의 삶을 달라지게 할 수 있는 선택이 된다. 이러한 계산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은 당신의 인간성을 변화시킨다. 특히 저자는 더 우려스러운 점은 극단적인 부가 그 슈퍼 부자의 자녀들 심리를 부식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슈퍼 부자의 아이들은 물질적인 것은 많이 받으며 자라지만 관심은 거의 받지 못하면서 자란다. 저자는 아이에게 물질적 재화를 잔뜩 뿌려주면 '지연된 만족'의 가치를 알지 못하게 되고, 이는 아이들이 화나고 좌절했을 때 인내하는 참을성을 배우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호화로움 속에서 자라면, 특히 또 다른 부유한 사람들로 둘러싸인 버블 속에서 자라면, 화려하고 낭비적인 소비 패턴이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저자는 우리는 불평등이 어느 범위 이상으로 커지지 않게 하고 부자들의 잉여 재산을 사회의 긴박한 필요를 해소하고 집합 행동의 문제를 다루는 데 사용하는 경제 체제를 지어야 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부의 제한주의 프로젝트에는 개인의 윤리에 대한 요소도 포함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부의 제한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는 방식, 사회를 보는 방식, 어떤 규범과 가치가 중요한지에 대한 우리의 생각, 우리가 투표로 선출하는 정치인, 우리 경제에서 기업이 운영되는 방식, 우리의 기본적인 사회 제도의 구조를 바꿔놓았다. 저자는 부의 제한주의와 신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상충한다고 이야기한다. 신자유주의가 계속해서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남아 있는 한 그것이 일으킨 영향과 싸우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우리는 근원을 공격해야 하고 신자유주의를 더 인간적인 무언가로 대체해야 한다.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개념에만 협소하게 초점을 맞추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을 타협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공정성을 중심에 놓는 이데올로기로 말이다."

"인간 본성에 대해서도 신자유주의는 우리가 스스로를 '인적 자본'에 투자하는 존재, 또는 소비자, 또는 노동 시장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로만 보게 할 뿐 이웃으로서나 정치 독서 모임 등의 회원으로서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활동가, 조직가, 토론가로 보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을, 지각을 가진 비인간 생물을, 지구를, 그리고 우리가 참여하는 모든 활동을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는 우리가 '정치적 동물로서' 민주적 과정을 구상해가는 공동체적 실천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정치를 다시 찾아와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다시 찾아와야 한다."

이 밖에도 저자는 부의 제한주의가 필요로 하는 일로 계급 간의 분리를 줄이는 것, 경제 권력에 균형을 잡는 것, 조세 재정 당국의 역량 회복, 부정한 돈을 회수해 과거의 피해를 회복하는 데 쓰는 것, 국제 경제 구조를 더 공정하게 만드는 것, 경영자의 보수를 제한하는 것, 세대 간 부의 전승을 막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우리의 경제와 사회가 부의 제한주의가 실현된 세상 쪽으로 가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제안들을 제시한 저자의 글을 읽으며 빈곤에만 주목하기보다는 부의 제한선에 대한 논의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부의 제한선>은 극단적 부의 문제를 해부한 책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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