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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평점 :
자연이라는 아름다운 세계가 무너져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생명의 순환을 경시하고 문명의 발전을 이룩하는 것에 몰두함으로써 살아 숨쉬는 것들의 절망과 고통의 응어리진 비명들을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더 나은 세계를 발견하여 한 걸음씩 걸어가려는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인류의 역사는 어둠 속의 빛을 잃지 않고 있다. 그리고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는 자연과 생명이 존재하는 세상을 탐험하며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소중한 가치들을 깨닫게 하는 작가 배리 로페즈의 아름다운 글을 만나볼 수 있는 마지막 에세이로 인상적이다.
특히, 이 책은 어린 시절 끔찍한 성폭력의 고통이라는 내밀한 개인의 역사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고백하는 동시에 경이로운 숲과 평원, 사막 등을 탐구하고 땅과 인간의 관계, 자연 안에서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의미를 찾아다니는 여정을 통해 치유의 시간을 기록한 한 인간의 숭고한 모습을 담아내어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작가 배리 로페즈는 성적 학대의 트라우마, 부모의 폭력적인 결혼과 이혼, 부재하는 아버지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라는 결핍이라는 그림자에서 머물지 않고 인간 너머에 존재하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희망의 빛을 향해 걸어갔다.
"유칼립투스 나뭇잎과 어도비 벽돌집의 옅은 벽면과 출렁이는 수면까지, 주위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적시는 빛이 내 빛을 지탱했다. 그 빛, 그리고 나를 하늘로, 나 자신의 바깥으로 끄집어내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던 새들이 내 삶에 희망이라 부를 만한 것을 가져다주었다."
"밸리의 초월적인 정수, 이곳이 표출하는 생명의 기운에 인종보다 깊고 돈보다 깊고 교리보다 깊은 영속성이 있다는 감각은 한번 발견하면 놓치려야 놓쳐지지 않는다. 한번 발견된 이 감각은 겁에 질린 사람도 보호해줄 수 있다. 일상적인 악의 침입으로부터, 도착자로 인해 덮쳐오는 반복적인 공포로부터, 우리로 하여금 몰랐던 일이라고 한사코 우기게 만드는 그 공포로부터."
여기에 더해 배리 로페즈는 인간이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실존의 난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각각의 세대마다 삶의 불확실성 앞에서 허물어지지 않을 땅, 선조들의 끝을 지속시킬 땅을 다시 찾아내고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생명을 지켜준 치유의 구원자인 땅과 자연에 대해서 향수가 아니라 공경을 느끼며 이끌렸고, 대지의 경제적 가치를 따지기보다는 근본적인 문화적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복잡성을 잃어버릴 때 인간에게는 진보가 아니라 멸종이라는 퇴보와 파괴의 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리 로페즈는 다채로운 세계를 떠나고 다양한 사람들과 자연의 신비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비열한 위협이든 야생의 아름다움이든 피하지 않고 적응해가는 인간의 강인한 생명력과 절망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발견한다.
이 밖에도 배리 로페즈는 다양성은 생명의 특징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말한다. 특히 이 책에서 "우리의 발걸음이 닿는 곳이 어디든 거기서 마주치는 차이가 적어질수록 죽음이 세력을 확장한 것이"라는 배리 로페즈의 글은 멸종 위기의 지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경고를 전한다. 한계를 더 잘 인식하고 탐욕 대신 연민이 풍부하고 편견 대신 포용에 강하고 더 착취를 삼가는 문명을 고안해내야 한다는 배리 로페즈의 글은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를 직시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지켜내야 하는가에 대한 다짐을 담아낸다.
"여행을 다닌 세월 동안 다양성에 대한 나의 이해는 진화했다. 처음에는 내가 듣고 믿었던 것보다 이 세계의 장소와 장소가, 문화와 문화가 서로 훨씬 다르다는 직관으로 출발했다. 그러다 차츰 이런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 무감각한 행위일뿐더러 부당하고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이를 무시하면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다. 소외와 고통과 분노와 절망을 낳을 뿐이다. 거기서 나는 더 깊은 통찰을 얻었다. 모든 사회적 생명체들의 사회조직이 건강하게 장기적으로 유지되느냐 아니냐는 공동체를 온전히 유지하는 동시에 개체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구나 하는 통찰 말이다. 한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자율성과 존중의 결합이고 그것이 갈등을 최소화해왔으니 말이다."
책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는 성폭력이라는 내면의 고통을 자연과 생명이 태동하는 장소를 여행하면서 존엄성을 기록해나간 작가 배리 로페즈의 아름다운 탐구를 만나볼 수 있어 독자에게 감동과 공감을 선사한다. 또한 이 책은 어떤 장소를 알아가려는 인간의 의지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여 교감하고 인식을 확장하며 치유의 믿음을 탄생시키는 과정을 독자에게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