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숄 ㅣ 문지 스펙트럼
신시아 오직 지음, 오숙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1월
평점 :
<숄>은 <안네의 일기><이것이 인간인가><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등의 작품들과 더불어 홀로코스트 문학의 필독서이자 중요한 이정표로 자리매김한 신시아 오직의 대표작이다. 이 책은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전쟁의 광기를 직접 겪지 않았던 유대계 미국인 신시아 오직이라는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에 닥쳐 인간의 존재 의미, 인간 조건의 무게를 새삼 돌아보게 하여 눈길을 끈다.
단편 '숄'에 이어서 뒤이어 이어지는 작품 '로사'는 '숄'의 배경이 된 시대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후를 다루는 일종의 후일담이다. 폴란드 출신 유대인 로사 루블린은 강제수용소 경비병이 어린 딸을 살해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30여 년 후 그녀는 플로리다 마이애미의 한 호텔에서 "미친 여자이자 과거의 쓰레기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 두 작품에는 '숄'이 있다. 그것은 굶주린 어린아이의 생명을 지탱해주는 숄, 뜻하지 않게 그 아이를 파멸시키는 숄, 나아가 마법처럼 그 아이를 되살리는 숄이다.
"마그다의 눈은 언제나 맑았고 눈물이 없었다. 마그다는 호랑이처럼 지켜보았다. 숄을 지키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숄을 건드릴 수 없었다. 오직 로사만이 건드릴 수 있었다. 스텔라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숄은 마그다의 아기였고, 반려동물이었고, 여동생이었다. 마그다는 숄을 덮고 숄과 뒤엉켰고, 아주 가만히 있고 싶을 때는 숄의 모서리를 빨아댔다. 그러던 중 스텔라가 숄을 가져가서 마그다를 죽게 했다.
나중에 스텔라가 말했다. "추웠어요.""
<숄>은 전쟁이라는 비극을 담은 홀로코스트 문학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작품으로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생존자라는 단어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삶에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어두운 감정들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전쟁이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빼앗고 고통 안에 머무르게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생존자. 무언가 참신하다. 그들이 인간을 말할 필요가 없다면 말이다. 과거엔 난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존재는 없다. 더 이상 난민은 없고 생존자만 있다. 번호와 다름없는 이름 - 평범한 무리와는 따로 셈해지는 존재. 팔에 찍힌 파란 숫자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들은 어쨌거나 당신을 가리켜 여자라고 하지 않는다. 생존자라 한다. 심지어 당신의 뼈가 흙먼지 속으로 녹아들 때도 여전히, 그들은 인간을 잊고 있을 것이다. 생존자와 생존자 그리고 생존자. 언제나, 언제까지나 생존자. 누가 그런 단어를 지어냈을까, 고통의 목구멍에 붙은 기생충 같은 단어다."
"마그다, 사랑하는 아가, 부끄러워 마라! 나비야, 나는 네 존재가 부끄럽지 않단다. 나에게로 오렴, 다시 나에게 와주렴. 지금 더 머물 수 없다면, 그렇다면 나중에라도, 언제든지 오렴. 이런 것들이 로사의 마음속에 있는 말이었지만, 그녀는 욕구를 억누르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 말을 소리 내어 마그다에게 하지 않았다. 순수한 마그다, 등불처럼 밝은 머리의 마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