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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서울을 걷는다 - 제10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허남설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7월
평점 :
책 <못생긴 서울을 걷는다>는 현직 일간지 기자인 저자 허남설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못생긴 곳들을 직접 걷고 찍고 주민들을 만나서 깊숙이 들여다본 우리 시대 도시의 자화상을 담은 에세이다. 저자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중계동의 '백사마을' ,경사도가 60~70도에 이르는 가파른 골목길이 회오리치는 다산동 주택 밀집 지역, 정화조가 없는 집들이 많아 똥냄새가 진동하고, 불이 나도 골목이 좁아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는 창신동, 비행기 빼고는 다 만들어낸다는 기술 장인들이 몰려 있는 청계천 인근과 세운상가 등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못생긴' 서울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건넨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른바 '못생긴' 서울은 살기에 불편하고, 소음을 유발하며, 미관상 좋지 않은 삼박자를 갖춘 '재개발'의 이슈를 품고 있는 공간들이다. 말이 재개발이지 그것에 착수하는 순간 벽에 부딪히게 되고, 끝내 재개발 계획이 백지화되거나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도시는 '못생긴' 부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재개발이라는 경제논리로는 넘어설 수 없는 도시의 오래된 생태 논리를 저자는 직접 발품을 팔아 찾아다닌다.
저자는 백사마을 주거지보전사업은 오랜 승패의 역사를 한번 뒤집어보고자 했는데, 결국 패색이 완연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원주민 세입자의 재정착, 이웃 공동체를 담아냈던 공간의 재현 따위는 정책에서 우선적인 지위를 얻어내지 못했다. 저자는 앞서는 건 오로지 토지주의 비용을 더 절감하기 위한 분양주택 확대, 그리고 자산 가치를 더 높여줄 대단지 아파트로의 전환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아파트가 양적 논리뿐만 아니라 질적 논리까지 점유한 주거 유형으로, 모든 재개발이 대단지 아파트로 귀결되는 게 논리적으로 마땅해 보이지만 잘 살펴보면 서울 곳곳에서 이 논리적 귀결의 맹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곳에서는 동네를 완전히 허물고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이 세입자는 말할 것도 없고 토지주가 치러야 할 비용까지 막대하게 물린다. 그런 곳에서는 모두가 패자가 되고 만다. 또한 저자는 재개발하는 곳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사회와 이 사회를 지탱하는 제도 전반에도 패배의 그림자를 드리운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재개발은 '덩치'를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그 결과가 지금 1만 세대까지 불어난 대단지 아파트라고 말한다. 재개발의 진화를 이러한 방향으로 이끈 유전자는 '비용'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재개발의 아이러니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알려준다고 이야기한다. 당장 재개발해야 할 것 같은 허름하고 조그만 집들에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복작복작 모여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대부분 소유주가 아니라 세입자이다.
저자는 우리는 도시에서 산동네, 달동네가 흉물스럽다며 파괴한 결과, 도시 구석구석으로 침투한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을 걱정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산동네를 모두 밀어서 아파트로 만든다고 해도 3~4인 가족이 저렴한 가격에 집을 구할 수 없다. 저자는 재개발이라는 이유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살 만한 집을 자꾸 도시에서 내몬 것은 아닌지, 그래서 사람이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그들을 내몬 것은 아닌지, 한번 되짚어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낡고 불편한 동네는 낡고 불편하다는 바로 그 이유로 저렴하고, 그런 곳을 무분별하게 개발하는 건 어떤 사람들이 간절하게 찾는 집을 없애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과 이들의 노동력이 필요한 도시와의 거리가 멀어지고, 한 동네에 모여 사는 사람들끼지 자원을 주고받으며 이뤘던 공동체 역시 무너진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현대에도 '최소한의 공동체'는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제도가 아무리 잘 갖춰져 있더라도 사람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그리고 잘 만든 제도에도 항상 빈틈은 있기 마련이다. 저자는 누군가에게는 불필요해보이는 '간섭'이 어느 순간에는 어느 누군가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한 '관심'이 될 수 있으며, 그 관심이 체계적으로 잘 조직되면 공동체를 지키는 '사회안전망'으로 발전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은 개발의 덩치를 한껏 키우면서도 속도는 재촉해 내재한 문제를 단기간에 폭발시켰다고 말한다. 저자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같은 큰 땅덩어리를 단기간에 개조할 수 있다는 환상,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는 실물경제를 구성하는 산업과 종사자들이 있습니다. 8000개의 사업체와 여기에 엮인 협력업체들, 2만 명의 종사자와 이들에게 의존하는 가족들을 고려하면 그 산업은 결코 작은 규모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서로 일감과 자원을 주고받는 산업 생태계의 특성을 고려하면, 10만 평 땅에 집적된 산업체를 다른 어딘가로 고스란히 옮기는 일도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산업을 불과 몇 년 만에 일소하는 개발 계획은 애초 성립할 수 없다고 보는 게 현실적인 판단입니다. 또 세운재정비촉진지구는 축구장 40개만 한 공간인데,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은 개발 속도전을 지향했고, 결과적으로 스스로 스텝이 꼬여 무참히 실패했습니다."
저자는 누군가 보기에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못생긴 구도심과 산동네의 풍경, 거기에는 그 나름의 복잡한 맥락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공공의 책무는 그 맥락을 최대한 존중하며 문제를 풀어가는 법을 설계하는 것이지, 앞장서 무시하고 파괴하라고 선동하는 것이 아니며, 도지는 백지가 아니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책 <못생긴 서울을 걷는다>의 저자는 이제는 거리에 서야 하며, 거리에서 조감도가 아닌 투시도의 시선으로 도시를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보기에 썩 만족스럽지 않은 못생긴 도시가 다양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모든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저자는 보존할 대상은 천막이나 지붕 같은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삶이며, 그 삶을 보존하는 일이 슬레이트 지붕이나 타이어 올린 천막을 지키는 일이라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공공의 책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어떤 때는 못생긴 도시가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집이 되어주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누구나 빛나고 아름다운 도시를 꿈꾸겠지만, 도시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그 안에는 아름답지 않은, 못생긴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낡고, 긁히고, 부서지고, 심지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곳이 서울에는 아직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그 못생김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고민할 때,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조감도의 시선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구경꾼밖에 될 수가 없습니다. 구경꾼은 이미 기울어진 쪽에 서서 기울기를 한층 더 가파르게 만드는 데 일조할 뿐입니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