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원의 발견
박영수 지음 / 사람in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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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말과 글에는 근원이 있다. 어원을 공부하는 일은 말의 근원은 물론 연관된 문화 지식과 역사까지 알게 되는 흥미로운 여정이다. <어원의 발견>은 우리가 평소 무심코 사용하는 말들의 뿌리를 찾아 나서는 책이다. 1부에서는 의외의 어원을 가진 낱말을, 2부에서는 자주 쓰는 한자어 중 어원을 알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단어를 선별하여 실었다.

낱말이나 관용어의 어원을 파악하면 글을 쓰거나 대화를 나눌 때 상황에 적확한 말을 골라 쓸 수 있다. 누군가의 성장 과정이나 속마음을 알면 그 사람을 한층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매일 조금씩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어휘의 폭과 깊이가 늘어 언어 사용에 대한 자신감도 높아진다.



저자는 '괴롭다'의 '괴'는 '쓰다', '쓴맛'을 뜻하는 한자 '苦(쓸 고)'에 어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고통스러운 상태'를 뜻하는 '고롭다'가 '괴롭다'로 음이 변했다. 쓴 것을 먹으며 얼굴을 찌푸리는 것처럼 '몸이나 마음이 불편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저자는 이 말은 조선 세조 때 문신 황수신 등이 왕명에 따라 <묘법연화경>을 변역한 <묘법연화경인해>(1463)에 처음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낙인(烙印)은 쇠붙이로 만들어 불에 달구어 찍는 도장을 이르는 말이라고 이야기한다. 예전에는 다양한 용도로 쓰였으며 가장 주요한 쓰임새는 나무 호패에 관인을 찍는 것이었다. 저자는 조선 시대에는 16세 이상의 남자는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호패를 지니고 다녀야 했는데, 호패를 만들 때 직사각형으로 앞면에는 성명, 나이, 태어난 해의 간지를 새기고 뒷면에는 해당 관아의 낙인을 찍었다고 말한다. 물건을 만드는 장인도 낙인을 찍었으니 예컨대 장롱 뒷면에 낙인을 찍어 만든 이를 밝혔고, 가축을 가진 사람은 황소 엉덩이에 낙인을 찍어 누구 소유인지 밝혔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형벌로 죄인의 몸에 낙인을 찍는 일도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죄인에 대한 낙인은 사람들에게 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했고, 한 번 찍힌 낙인은 지울 수 없는 까닭에, '낙인찍히다'라는 관용어는 '벗어나기 어려운 부정적 평가가 내려지다'라는 의미로 쓰이게 됐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나중에는 '찍히다'로 줄여서 사용했으며, 항상 주시하고 있거나 기억하고 있음을 강조할 때 썼다고 말한다.

저자는 '뒤풀이'는 뒷전풀이의 와전이라고 말한다. 뒷전풀이는 원래 무속 용어였다. 굿을 다 끝낸 무당이 평복으로 갈아입고 여러 신을 배웅하는 절차를 일컫는 말이었는데, 이것이 '마무리'를 의미하는 속어로 변했다. 저자는 농악이나 탈춤 따위 놀이 뒤에 구경꾼들과 함께 춤을 추거나 즐기는 일도 뒤풀이라고 말했으며, 근대에 이르러서는 행사 끝난 후 참여한 사람들이 친목을 다지기 위해 갖는 모임을 가리키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지나치게 아무 일에나 쓸데없이 참견하 때 '오지랖 넓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웃옷이나 웃도리에 입는 겉옷 앞자락을 가리키는 오지랖과 관련되어 생겼다고 말한다. 특히 활기차게 걸을 때 오지랖이 더욱 크게 펼쳐지며 그 넓이가 한껏 드러난다. 옷의 앞자락, 즉 오지랖이 넓으면 다른 옷도 덮을 수 있다. 저자는 이런 모양을 남의 일에 간섭하는 사람의 성격에 빗대어 '오지랖이 넓다'고 말하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상대의 오지랖은 당사자에게 번거로운 일이기에, '오지랖 넓다'라는 말은 '주제넙게 아무 일에나 쓸데 없이 참견하다'라는 뜻으로 통하게 됐다고 말한다.

저자는 메인 데도 없고 의지할 데도 없는 홀몸을 흔히 '외톨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비늘줄기나 송이 안에 마늘, 밤알 따위가 한 톨만 들어 있는 모양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여러 알이 들어 있어야 할 곳에 달랑 한 알만 든 모습이 외롭고 처량해 보이기에 다른 짝이 없이 홀로만 있는 사람에게도 빗대어 쓰게 됐다. '외돌토리' 또는 '외톨박이'라고도 한다. 저자는 2002년 무렵, 우리나가에도 은둔형 외톨리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는 조사 결과가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는데, '은둔형 외톨이'는 일체의 사회 활동을 거부한 채 집 안에만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해 나눠지는 한계를 '경계(境界)'라고 한다고 말한다. 경계는 감각기관 및 의식을 주관하는 마음의 대상을 이르는 불교 용어에서 유래된 말이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인과응보 이치에 따라 자기가 놓이게 되는 처지도 경계라고 한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처지는 다른 세계와 구별되므로, '경계'는 사물이 나뉘거나 분간되는 한계를 뜻하는 말로 쓰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물질적, 공간적 현실 뿐만 아니라 추상적 관념에서도 경계라는 말을 쓴다.

저자는 '기특(奇特)하다'는 본래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온 일을 가리키는 말로 '매우 드물로 특이한 일'을 뜻했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는 주로 어린이를 칭찬할 때 쓰인다. 저자는 어린아이 생각으로 쉽지 않은 일을 했을 때 보기 드문 일이기에 '기특'이라는 말로 놀랍고도 대견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일반적으로 말이나 행동이 특별하여 귀엽게 보일 때 '기특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심심풀이로 아무 데나 함부로 쓴 글씨나 그림을 가리키는 '낙서(落書)'라는 단어는 일본 에도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무사의 지배에 신음하던 힘없는 백성이 불만을 배출하는 수단으로 쪽지를 이용한 일이 시초였다. 즉 무사 계급의 억압, 지배계급의 수탈과 부조리함을 적은 쪽지를 길거리에 슬쩍 떨어뜨린 '오토시 부미'가 낙서의 원조라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오토시 부미는 뒷날 특정인의 집에 던져 넣은 협박 쪽지나 투서를 의미하는 말로도 쓰였다. 하지만 떨어뜨린 쪽지와 투서의 구분이 필요해짐에 따라, 사람들이 집어 가기 쉽도록 눈에 잘 띄는 길에 떨어뜨린 쪽지는 '낙서', 라쿠쇼'라고 구분하여 말했다. 이후 아무 곳에나 즉흥적으로 쓴 글이나 짧게 쓴 단상도 낙서라고 말하게 됐다.

낙서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우리식 한자 발음으로 전해지면서, '아무 데나 멋대로 쓴 글'이라는 의미로 통용됐다. 학생이 칠판에 적은 장난스러운 글이나 그림도, 연습장에 아무렇게나 끄적거린 글도, 화장실 벽에 적어 놓은 의미 없는 농담도 모두 낙서라고 한다."

저자는 '찰나(刹那)'는 산스크리트어 '크샤나'를 음역한 불교 용어로, 한 생각을 일으키는 짧은 순간을 뜻하는 말이라고 전한다. 불교에서 손가락 한 번 튕기는 동안의 아주 짧은 시간 단위를 탄지경이라고 하는데, 탄지경보다 65분의 1이나 짧은 시간이 '찰나'다. 이는 인체가 느낄 수 없을 만큼 짧게 지나가는 순간인 셈이며, 한 사람의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시간은 광대한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한갓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어원의 발견>은 우리가 잘 몰랐던 우리말의 어원을 들여다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단어나 관용구의 의미를 배울 수 있는 책으로 흥미롭다. 이 책은 단어 하나 하나를 사용할 때 어원을 정확하게 이해하면, 정확하고 풍성한 어휘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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