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 : 세 번의 봄 안전가옥 쇼-트 20
강화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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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쇼-트 시리즈 스무 번째 책 <안진: 세 번의 봄>은 <다른 사람>, <화이트 호스>, <대불호텔의 유령> 작가 강화실의 신작 단편집이다. 앤솔로지와 문예지에 발표했던 기수록 단편 '산책', '비망', '깊은 밤들'이 실린 이번 단편집은, 안진이란 도시에서 펼쳐지는 세 모녀의 이야기를 다룬 '작은 안진 3부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 강화길은 세 번의 봄을 배경으로 안진이란 도시에서 펼쳐지는 세 편의 가족 이야기, 그중에서도 사랑과 미움이 범벅된 모녀의 이야기를, 죽음과 삶을 양손에 그러쥐고 치밀하게 그려낸다. 세 개의 단편은 울툴불퉁하고 서늘하게, 그리고 긴장감 있게 우리를 안진이라는 도시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곳에 길을 헤매고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찾아 나서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사라졌지만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여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세 번의 봄을 지나, 네 번째 봄을 기다리면서.



이 책에서 강화길 작가의 첫 번째 단편 소설 '깊은 밤들'은 엄마와 나 그리고 손녀로 이어지는 모녀 3대의 이야기를 그려내어 눈길을 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엄마에게 인정받지 못한 주인공이 자신이 싫어했던 엄마와 닮아가는 모습을 발견하는 동시에 어린 딸 '정민'을 통해서 시작되는 용서와 사랑의 찬란한 아름다움과 희망을 보여준다. 이 책은 모녀라는 복잡한 가족의 관계를 담아내며, 엄마로부터 받은 분노와 증오를 상처로 되갚는 것이 아니라 먼저 손을 잡아 위로를 건네는 딸의 순수한 사랑을 통해 할머니, 나, 손녀로 이어지는 여성의 이야기를 전하여 깊은 여운을 전한다.

"돌이켜 보면, 정민의 마음은 언제나 크리스마스였던 것 같다. 내 딸은 뭐랄까. 그래.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배신을 당해도 전혀 상처받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게 상대를 용서하고 그 일을 잊어버릴 것 같았다. 그랬다. 정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건 사람이 착하다거나 순진하다거나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뭐랄까... 그래, 정민은 씩씩했다. 무언가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은밀히 감추는 법이 없었다. 그랬다. 내 딸은 그렇게 살 것 같았다. 캄캄한 밤이든, 한낮이든, 개의치 않고 앞으로 계속 걸어가며,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책에서 강화길 작가의 두 번째 단편 소설 '비망'은 이혼 후 딸을 혼자 키워야 했고, 위자료 때문에 전남편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으며, 직장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부모의 이른 죽음과 40대 초반에 찾아온 갑상샘암이라는 느닷없는 폭발들을 겪어야 했던 여성이 지난 1년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지나오다가 집 밖으로 나와 살아생전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그렸다. '비망'은 딸로 인해서 공허한 마음을 가득 채워버린 새롭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경험하며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담아내어 인상적이며, 엄마와 딸, 그리고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가로지르는 강화길 작가의 섬세하고 묵직한 글을 통해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다.

"한껏 들뜬 기분으로 사는 것. 상처를 모른 척하며 사는 것. 새것 위에 새것을 덧붙이는 것. 솔직히 그건... 힘이 들었다. 그래. 꽤 힘이 드는 일이었다. 의지와 체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게 좋았으니까. 그렇게 사는 그녀 자신을 아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그 순간들이 모두 꿈처럼 느껴진다. 그래. 꿈. 내가 그런 사람이었던가. 그렇게 무엇이든 잘 견디는 사람이었던가. 헷갈렸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의사는 이런 상태가 자연스러운 것이라 했었지.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했었지. 이제야 그녀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앞으로는 그녀가 계속 이렇게 살아가야 하고, 그래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은 강화길 작가의 단편 소설 '산책'이다. '산책'의 화자는 영애 씨의 죽은 '나'로 시작되어 신비스럽고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모녀라는 관계를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산책'에서 다슬기를 잡기엔 아직은 추운 4월, 종숙 언니는 영애 씨에게 다슬기를 잡으러 가자고 말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삶과 죽음의 시간을 통해 모녀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그려내어 인상적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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