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된 우연 - 명리학이 건네는 위로
화탁지 지음 / 다반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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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된 우연>의 저자 화탁지는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전공과 무관한 직업을 갖게 되었지만, 자신을 잊고 빠져들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한 결핍이 늘 있었다. 타성에 떠밀리고 관성에 이끌려 가는 시간 속을 방황하다 마주친 칼 융의 저서를 읽은 후, '내 안에서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저자가 마침 그 시기를 스쳐가던 공교로운 우연 속에서 명리학이 있었다. 처음엔 그저 자신에 대해 알고 싶었던 순수한 의도였다. 보다 오래된 기억을 헤집어 보니 그 안에 자리한 '상처'가 계기였다. 저자는 상담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자신보다 더 세찬 비바람을 맞고 있는 사연들 중엔 오히려 자신의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에게 명리는 그런 성장을 가능케 해준 관계의 인문학이기도 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 했던 날들로 돌아보는 시간에 대한 명리학의 위로는 당신도 어찌할 수 없었던 운명의 조합이 당신을 스쳐갔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학창시절부터 틈틈이 글쓰기를 해왔고, 문학에 대한 동경도 있었다는 저자의 명리학은, 합리적이고 심리학적인 관점에서의 설명이면서 한편으로 삶과 사람과 사랑에 대한 이해를 담은 문학이기도 하다.



저자는 명리적 관점에서 보면, 한 인간이 스스로의 이성만으로 행동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만일 그것이 가능했다면 이 지구상에 예술과 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을 한 사람들을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우주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을 인간의 일부인 이성이라는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란 사실을 알리고 싶을 따름이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저자는 명리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자신과 삶을 돌아볼 수 있어서였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 속에서 인간이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되니 겸손해지기도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너무 많은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해를 하려고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이 책에서 저자는 낭비가 심한 여자친구를 상담하러 온 남성의 사연을 소개하여 흥미롭다. 저자는 자본주의 시대에 돈은 사랑이라는 무형의 성질을 유형의 것으로 구체화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임에는 틀림없고 가장 짧은 순간 최소한의 행위로 상대의 마음을 내 곁으로 당겨 올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수단이지만 휘발성이 가장 강한 애성과시 행위라고 말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사람의 마음은 옥죄던 고통이 상대의 작은 몸짓으로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맛본 이후에는 또 다른 고통도 그렇게 가볍게 날려주기를 기대하는 몸쓸 기대심리를 갖는다. 그 기대심리에 응해 주지 못하 경우에는 최초의 감사함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빛이 바래게 된다. 돈으로 사람의 마음을 산다는 것은 그렇기에 가장 신속하지만 휘발성이 가장 강한 애정과시 행위 중 하나이다."

저자는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유일하게 풀 수 있는 것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어찌 보면 시간이 곧 신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안 좋은 상황에서도 더 나쁜 때와 덜 나쁜 때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시간이 해결해 주는 동안 인간도 분명히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그 시간을 버티는 일이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겉보기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는 여성이 상담을 하면서 자신의 사생활을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스승과 제자의 사이가 된 이야기를 소개한다.

"남들에게도 어려운 일이 자신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사람들은 크게 좌절하지 않는다. 하지만 타인이 어렵지 않게 행하는 일에 있어서 자신은 예외시 된다는 사실이 그녀를 힘들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여태껏 이런 얘기를 해준 사람이 없었다면 나에게 명리학뿐 아니라 인문학 공부까지 배우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나는 상담자와 손님의 관계에서 스승과 제자의 사이가 되었다."

저자는 경계를 허무는 측은지심과 동정을 받는 것보다 더 싫었던 것은 그런 경계가 허물어진 뒤에도 결코 상대의 아픔을 자기 아픔처럼 온전히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작은 아픔일 경우에는 상대의 위로에 힘을 얻기도 하지만 온전히 혼자서 짊어지고 가야 할 아픔의 경우는 어떠한 말도 위로가가 되지 않음을 알뿐더러 그들의 눈에 차라리 내가 아픔이 없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이 낫다는 생각까지 들 지경인, 일종의 감정 결벽증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몇 년 간 상담을 하면서 만난 시기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정의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세상 모든 것에는 음과 양이 있으므로 관계에서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겉으로 보이기에는 일방적으로 주어야만 하는 사람과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사람도 존재하는 듯 하다고 이야기한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에요. 그렇게 흘러가느냐 아니냐의 문제죠. 운기의 흐름은 인간의 이성적 판단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도덕적 기준하고도 상관없고요. 자연에는 선과 악이 없습니다.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는 걸 윤리적으로 탓할 문제는 아니거든요. 인간도 자연의 일부란 걸 생각해 보면 인간이 만든 도덕과 법칙은 그저 사회를 잘 운영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건기예요."

저자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아니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 지녀 온 고유한 습성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살아오면서 습득한 관성으로 눈치껏 삶을 영유한다고 말한다. 거기엔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도전을 흔쾌히 허용하지 않겠다는 고집스러움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변화가 오는 시기를 감사하며 맞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대부분의 변화는 고통과 아픔을 수반하기 때문에 달갑지 않은 손님이며, 손님 대접에 소홀하면 결코 손님이 주고 간 새로운 인생을 향유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랑=헌신'이라는 공식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남자에게 헌신하는 동안 자신에 대해서는 살피지 못했던 여성에 대해 상담했던 이야기를 소개한다. 저자는 사랑하는 관계에서 자로 재듯 50대 50으로 사랑할 수는 없지만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유지되는 관계는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딸이 엄마의 인생을 닮는다는 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식은 엄연희 부모와는 별개의 인생이며, 어쩌다 유사한 점이 몇 가지 발견된다 해도 생판 모르는 타인과도 공통점이 있는 것이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세상에는 아직도 혈액형을 믿고 딸은 엄마의 팔자를 닮는다는 걸 불변의 진리인 양 믿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어쩜 그리도 사람을 단순하게 볼까. 그러니 여러 가지를 놓치는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섬세한 수천 수백의 날실과 씨실처럼 얽힌 존재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저자는 과거의 상처를 안도고 자신보다 상황이 안 좋은 남자에게 끌리며 자신의 행보를 반복하는 여성을 상담하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상담하러 온 여성에게 그 남자에게 할애할 시간에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 보길 바란다고 말해 주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현대인은 한 가지 이상의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신병원의 약을 먹는지 아닌지로 구별하는 문제는 아니란 소리다. 차라리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솔직히 인정하는 사람이 더 정상처럼 보였다. 최소한 자신이 이상하다는 것은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이 정상범위에 들어간다는 것도 알고 있다는 이야기이니까 말이다."

"사랑은 자기 가슴에 뚫린 빈 공간을 타인의 관심이나 애정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다. 그 공간에 타인을 들여 놓는 대신, 자신에 대한 자존감과 애정이 서서히 차올라 그 공간을 메우고 차고 넘쳐흘러 타인에게 항해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성립되는 것이다. 타인에게 메워진 공간은 그 사람이 떠나 버리면 다시 텅 비어 버리지만 자신으로 채운 공간은 평생을 자신과 함께 한다. 그건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진짜 자기 것이다. 그러니 사랑을 하더라도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하고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 안에 이미 사랑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 인간의 성숙도를 보는 자신만의 잣대가 있다고 말한다. 힘든 상황에 봉착했을 때 과연 누구 탓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저자는 타인의 탓부터 하는 사람들은 영혼이 아이 같은 자들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다 자신의 탓으로 돌리면 어느 정도 성숙했다고 보며, 가장 성숙한 인간의 모습은 누구의 탓도 아닌 인생의 흐름에서 맞이한 장애물로 그것을 보는 자들이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그 장애물이 자신을 성장시키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만,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은 상태로 죽을 때까지 유지하기란 불가능하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이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너무 미화시키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물론 자기 희생적인 사랑은 별개지만, 우리가 흔히 쓰는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것을 '이런 것이 사랑이다'라고 정의하는 행위야말로 인간의 감정을 하찮게 여기는 언어적 폭력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사랑은 미움과 질투라는 어두운 얼굴의 또 다른 이름일 수 있기 때문에 감정의 간극이 클수록 더 사랑한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결국 서로 끌리는 감정으로 만나더라도 서로의 모습을 비출 수 없는 거울이 되어 주지 못하는 남녀는 사랑이 주는 교훈을 얻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폭풍 같은 사랑을 하기 위해 만난 것이 아니라 그런 만남을 통해 서로를 그리고 스스로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지를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사랑의 의미나 가치라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렇게 저자는 관계의 완성을 꿈꾸는 사랑 말고 나를 변화시키는 사랑을 꿈꿔보라고 말한다.

"인간의 대부분은 감정에 끌려 행위를 유발하는 자들이다. 그러기에 감정을 이용해 사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그것이 틀린 길이라도 감정은 가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감정이 이끄는 길을 다 겪고 나서 깨닫는 길이다. 사실 그것만큼 확실한 공부도 없다. 그러니 전생의 인연들이 대부분 감정적인 엮임으로 오는 것이다. 계산기 두들겨서 빚을 갚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겪을 것을 다 겪고 아플 거 다 아프면서 그렇게 빚을 갚으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 감정을 조절하고 이성을 쓰도록 해라라는 뻔한 소리는 안 하는 편이 낫겠다."

<계획된 우연>은 억겁의 세월 동안 나와 인연이 되었던 사람들의 영혼을 연결시켜 주어 그들로 하여금 내가 가는 길에 작은 불빛을 비추어 주게끔 한 소통의 도구였던 명리학의 위로를 받았던 저자가 전하는 글을 만나볼 수 있어 인상적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다양한 사람들을 상담하며 우리는 모두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일깨우는 글들이 여운을 남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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