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벌거벗은 세계사 : 잔혹사편 - 벗겼다, 세상이 감춰온 비극의 순간들 ㅣ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5월
평점 :
<벌거벗은 세계사 : 잔혹사편>은 tvN 최고 화재 교양 프로그램인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다뤘던 내용 중 오랜 시간 세상이 감춰온 비극적인 사건들을 모아 만든 것이다. 마녀사냥, 미국의 인디언 학살, 유대인 홀로코스트, 체르노빌 원전 폭발, 이란의 히잡 혁명, 기후 위기 등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순간은 물론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던 의외의 사실들까지 더해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프레임 밖의 잔혹사를 보여준다. 이 책은 그동안 세상이 지우고 싶어 했던 비극의 순간들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역사의 참혹한 파편들을 새롭게 해석한다. 국내를 대표하는 각 분야의 지식인들과 함께 세계사의 흐름을 뒤바꾼 충격적인 비극의 역사를 속속들이 살펴보면 우리가 왜 과거를 뒤돌아봐야 하는지, 이를 거울삼아 어떻게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책은 마녀사냥은 단순히 미신에서 비롯된 미극이 아니라고 말한다. 교회, 영주, 왕,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스스로를 정당하다고 말하기 위해,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불행을 탓하기 위해 마녀라는 절대악을 만들고 이용한 것이다. 그 결과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마녀사냥의 광기가 전 유럽을 지배했다. 이 책은 오늘날 우리는 합리적인 세상을 살고 있으며 이성의 빛이 세상을 비추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성의 빛은 의외로 쉽게 사라지며 그 자리는 맹목적인 믿음과 집단적인 광기가 차지하기도 한다고 이야기한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마녀사냥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는 이 책의 글귀에 공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녀사냥을 어떻게 경계해야 할까요? 사람들이 게을러지는 순간, 깨어 있지 않은 순가느 그래서 '쉬운 답'을 찾으려 하는 순간 마녀 사냥은 일어납니다. 불행이 찾아왔을 때 문제를 똑바로 들여다보지 않고 쉽게 답을 찾으려고 한다면 손쉬운 희생양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 희생양은 제거해야 할 악, 즉 현대판 마녀가 되는 것이죠. 게다가 오늘날의 사회는 수백 년 전보다 훨씬 복잡해졌고, 진실 파악은 그만큼 어려워졌습니다. 마녀사냥이 일어나기 쉬운 조건에 당면한 것입니다. 우리가 수백 년 전에 일어난 마녀 사냥의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무지 속에서 폭력을 일삼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깨어 있기 위함입니다."
이 책은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독일이 과거를 극복하려는 노력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과거 극복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구현하려는 노력이라는 점이다. 반빈주적 체제에서 과거 청산이나 과거 극복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과거를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려면 먼저 스스로를 가해자로 인정하는 해야 하며, 과거에 묶은 매듭을 제대로 풀지 못하면 미래를 제대로 설계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과거 극복'을 향한 독일의 의지를 보여주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1970년 12월, 서독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의 바르샤바를 방문했습니다. 전쟁 후 독일 정상으로는 첫 방문이었죠. 당시 분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의 상처가 어낙 깊은 데다 나치 침략과 만행에 대한 증오가 남아 있어 냉랭함이 감돌았죠. 그런데 브란트 총리가 바르샤바 게토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탑 앞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는 희생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런 행동은 나치가 벌인 전쟁과 잔혹 행위에 대한 독일인의 진정성 있는 반성과 사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책은 인간, 동물, 생태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원헬스(one health) 개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점은 인수 공통 감염병은 오로지 인간의 편의와 이득을 위해 동물의 생명을 위협하고 생태계를 훼손하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바이러스 저장고로 불리며 인간을 위협하는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박쥐도 무분별한 개발로 서식지를 잃은 까닭에 오명을 쓰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유발한 기후 변화 역시 인수 공통 감염병에 큰 영향을 끼친다. 결국 인수 공통 감염병의 모든 원인에는 인간이 존재하며, 우리는 동물의 서식지를 지켜주고 환경을 지키기 위한 실천에 나서야 한다는 이 책의 이야기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박쥐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바이러스를 몸속에 지닌 일종의 바이러스 저장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박쥐 몸속에 있을 때는 위험도가 낮은 편입니다. 비행 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박쥐는 체온이 40℃까지 상승하는데 이런 체온 상승이 면역 반응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박쥐의 경우 염증 반응을 최소화하는 특별한 면역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수많은 바이러스를 몸에 지니고 있어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야간에 최대 350km 이상을 비행할 수 있는 박쥐는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를 여기저기 퍼트리는 역할도 합니다. 이때 박쥐가 가진 바이러스는 중간 숙주를 거치며 변이되어 새로운 숙주에서 독성이 강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상태로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면 치명적인 감염병이 되는 것이죠.
박쥐의 바이러스가 많이 전파되는 또 다른 이유는 최대 50년이나 되는 박쥐의 수명에 있습니다. 그만큼 바이러스도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죠. 게다가 박쥐는 수백만 마리가 한 곳에 무리 지어 살거나 먹이를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가축이나 야생동물과 접촉할 확률도 높아 쉽게 바이러스를 퍼트립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박쥐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박쥐는 그 자체로는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생태계에서 이로운 역할을 하죠. 그런데 인간이 생태계를 파괴하자 살 곳을 잃은 박쥐가 점차 인간이 사는 마을에 접근하게 된 것입니다. 동시에 박쥐가 가진 바이러스 역시 우리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책은 과거에는 단순한 전통 의상이었던 히잡은 종교와 세속, 근대와 전통, 강요와 자유를 가르는 상징이 되었다고 말한다. 히잡을 두고 여성을 향한 억압이라고 하거나, 종교적 문화일 뿐이라도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중요한 것은 히잡이 무엇을 상징하느냐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강압에 따라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유롭게 히잡을 쓰거나 벗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라는 비극을 공산주의 체제 탓으로만 돌리면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일어난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일본에서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핵의 위험은 특정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사회 전반의 문제이다. 과학자들은 원전이 안전하다고 자신하지만 이를 관리하는 것은 결국 잘못을 저지르기 마련인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이 책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소련이 진실을 감춘 대가는 무엇일까요? 최악의 사고? 수많은 생명의 상실? 거짓은 더 큰 거짓을 만들고 그사이 사고의 상처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체르노빌은 색을 잃어버린 도시가 되었고 시간이 멈춰선 땅으로 남았습니다.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체르노빌 사고는 전 세계가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핵은 발견된 지 한 세기밖에 안된 에너지로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안전 매뉴얼이 갱신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새로운 위험이 터지지 않는 한 경제성을 우선시해 안전을 희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인류가 핵을 이용하는 한 사고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를 꼭 기억해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