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사는 게 힘들까? -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사람들의 관계 심리학
오카다 다카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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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멀쩡하고 사회생활도 무난하게 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 그런데 병원에 가면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면서 주변 사람들과 스몰토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어려워하는 사람, 언어적,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 취약해서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소외감과 불안감 같은 불안장애를 느끼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회피형 인간'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일본의 정신과 의사 오카다 다카시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그레이존' 인간 유형이라고 설명한다. '그레이존(gray zone)'은 말 그대로 경계 영역에 해당된다는 뜻으로 자폐증이나 ADHD, 아스퍼거, HSP 등 발달장애와 비슷한 증세가 있지만 장애라고 진단 내리기는 힘든 사람들을 말한다. 그레이존의 유형은 매우 폭넓다. 성인 ADHA 증세를 겪거나, 항상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성공했으면서도 마음이 뻥 뚫린 것처럼 공허함이 강하거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거나, 조그마한 소리에도 움찔움찔 놀라거나, 운동신경이 너무 둔해서 사선으로 걷는다거나 하는 등 다양한 증세가 있다. 책 <나는 왜 사는게 힘들까?>는 바로 이런 사람들, 딱히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너무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들, 나이가 들수록 적응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사람들의 속마음과 인간관계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은 '1장 겉은 멀쩡한데 속은 너무 힘든 사람, 2장 같은 행동을 고집하는 사람, 3장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사람, 4장 상상력이 없는 사람, 5장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 6장 남들보다 몇 배 더 예민한 사람, 7장 주위가 산만하고 정리를 못하는 사람, 8장 몸의 움직임이 어색한 사람, 9장 공부를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는 9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장애 수준을 산에 비유해서 이야기한다면 그레이존은 산 중턱부터 밑부분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팔부 능선 이상을 '장애 수준'이라고 하면 육부 능선이나 질부 능선인 경우에도 그레이존이라 진단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렇게 보면 그레이존에 해당하는 비율은 장애라고 진단받는 경우보다 훨씬 더 넓다고 말한다.

저자는 강박증에서 '고착'이라는 현상은 뇌가 민감한 특별한 시기에 뭔가 강한 흥분이나 인상을 받으면서 생겨나는 집착 현상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고착 현상은 쾌감이나 기분 좋은 경험에서 생기기도 하지만, 공포나 욕구불만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면 각인되기도 한다고 이야기한다. 비교적 가벼운 사건이 계속 일어나면서 생기는 복잡성 트라우마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저자는 이중에서도 피하려고 해도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다거나 하는 플래시백으로 고통받는 경우와 트라우마 상태가 지속되어 정신적 에너지가 쇠약해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전자가 일반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인데 애착 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은 후자의 패턴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이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애착 트라우마를 품고 있는데 이것이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고착 현상이 발달 단계에 깊게 관여하게 되면 '고착 유형'이 생겨난다. 이것은 어린 시절 충족되지 못했던 욕구에서 나온 결핌감이 평생을 따라다니는 현상이다. 저자는 이들의 특징은 지나친 인정 욕구, 자기 과시, 아무리 뭔가를 성취해도 채울 수 없는 결핍감, 다른 뭔가에 대한 동경 등이라고 말한다.

"트라우마에서 생겨난 고착이든,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결핍감에서 생겨난 고착이든 둘 다 과거에 일어난 일에 집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의 안 좋은 경험이 자기 발목을 잡아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게 방해한다."

저자는 발달장애의 증상 중 하나인 고집증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데, 사춘기와 청년기 이후에 이것이 심각한 형태로 나타나면 강박성 장애(강박증)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증세는 할 필요가 없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못 견뎌하거나 터무니없는 생각에 계속 사로잡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증세가 심해서 뭔가를 처리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생활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강박성 완만'이라고 부른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반복적으로 손을 씻거나 열쇠가 있는지, 가스 밸브를 잠갔는지 몇 번이고 확인하는 사람, 혹은 정해진 순서대로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사람,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 등등이 대표 케이스이다. 결벽증, 청결에 대한 강박증도 상당히 많다. 또 매사에 불안해하는 것도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다.

갓난아기나 반려동물을 실수로 죽이지나 않을까, 차로 사람을 치지나 않을까 걱정하거나 잘못된 주소로 이메일을 보낸 게 아닐까 하고 전전긍긍하면서 다시 확인하는 사람, 중요한 서류를 실수로 버린 게 아닐까 싶어 몇 번이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도 있다. 불결 공포증과 함께 남에게 해를 끼쳤을지 모른다는 공포증도 심하다. 이 모든 것이 뿌리에는 불안, 공포가 있기 때문인데 확인 절차를 반복하면서 안정감을 느끼려 하는 것이다."

저자는 사람들과 친해질 수 없는 이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비사회성 타입이고 다른 하나는 회피성 타입이라고 말한다. 비사회성 타입은 인간관계보다 고독을 더 좋아하는데, 이는 타인과 교류하면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 크다. 대표적인 유형이 바로 스키조이드(분열성 인격 장애)로, 이들은 원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또 하나 회피형 인간 유형은 속으로는 친밀한 관계를 원하면서도 조롱당하거나 거절당할 게 두려워서 먼저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타입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스키조이드와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회피형 애착 스타일은 양육 환경 때문에 고착된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회피형 애착 스타일은 점점 더 냉정하게 변해하는 자본주의 세계에 순응하기 위한 결과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스키조이드는 감정이 메마른 경우가 많아 타인에게 무관심하거나 차가운 사람들이지만, 회피형 애착 스타일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막상 타인과 있을 때는 사교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사귀기 시작하면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고,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는다고 해도 단숨에 친해지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이들은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는 일에도 소극적이다.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자기만의 생활 방식을 좋아한다."/

"회피형 애착 스타일은 어린 시절 양육자의 적절한 관심만 있어도 예방할 수 있다. 가능한 한 아이의 요구에 적극저긍로 반응해주기만 해도 안정형 애착 스타일을 가질 수 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완전히 다른 유형으로 탈바꿈하기는 힘들지만 개선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말에 공감해주고 응답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많이 달라질 수 있다. 묻는 말에 답해주고, 관심 가져주는 경험을 풍부하게 하는 과정에서 애착 스타일은 서서히 변할 수 있다."

저자는 공포회피형 애착 스타일은 자신이 어차피 미움받고 거절당할 거라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대인관계에 소극적이고 어색하다고 말한다. 또한 이들은 인간관계뿐 아니라 도전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새로운 일이나 환경은 반드시 새로운 인간관계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또 자신을 드러내야 하고 타인의 간섭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그런데 이렇게 일과 인간관계를 피하며 살다 보면 일정인 능력이나 사회성도 점점 퇴화한다는 게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도전을 피하다 보면 단조로운 생활이 반복되기 십상이다.

저자는 감각 과민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스트레스 지수도 높고 불안감이나 긴장감도 강하다고 말한다. 이와 더불어 어깨 뭉침이나 두통, 현기증, 복통과 설사 같은 증상도 자주 나타난다. 저자는 이런 특징은 자폐증, HSP, 공포회피형 애착스타일 모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심리적인 과민함은 트라우마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질적인 원인은 타인을 과도하게 의식하기 때문으로, 스스로를 타인의 시선에 묶어둠으로써 모든 것에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민증인 경우에는 오히려 일이나 가사 활동, 취미 생활 등으로 적당히 바쁜 것이 낫다.

"철학자 니체는 극히 과민하고 매사에 서툰, 자폐 성향의 인물이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두통을 비롯해 온갖 몸의 질환으로 고통받았다. 나쓰메 소세키는 위궤양으로 고통받다가 결국 그 때문에 사망했다. 자폐 성향은 아토피나 천식 같은 알레르기 질환도 많이 앓는다. 이런 것들은 마음의 문제가 몸으로 드러나는 심신증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불안 장애, 수면 장애 역시 발생률이 높다. 공포회피형은 만성적인 우울증이 지속되는 경향이 있고, 불안형 애착 스타일도 가벼운 우울증이 계속되면서 기분변조증을 동반하기 쉽다."

"감각 과민은 일종의 통증이다. 이 증상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통증을 느낀다. 실제 몸이 아파서 느끼는 통증도 심리적 요인에서 비롯되는 통증도 그것을 느끼는 뇌의 부위는 동일하다. 그러므로 감각 과민이 완화되면 몸의 통증까지 완화되는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이밖에도 저자는 장애도 아닌데 심리적으로 살기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애착 장애를 품고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말한다. 저자는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하는 기업가인 제프 베이조스나 일론 머스크를 포함해서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까지 공통적으로 복잡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애착 장애를 안고 있었다는 사실은 굉장히 상징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애착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기 대문에 고통을 삶의 에너지로 바꿔서 살아간 이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라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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