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필요한 시간 - 전시 디자이너 에세이
이세영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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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필요한 시간>은 우리와 같은 모양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자, 눈을 사로잡는 전시 뒤에 감춰진 전시 디자이너의 기록이며, 인생의 대부분의 순간을 예술로 가득 채운 인물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인 전시 디자이너 이세영은 저드 재단,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서울시립미술관,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쾨니히 갤러리 등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며, 반복되는 일상 속 자신만의 길을 찾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술관 큐레이터이자 전시 디자이너로서 전문적으로 전시를 만들어온 지 이제 햇수로 10년이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인생의 많은 시간을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보냈다. 미술관은 항상 좋은 놀이터이자 배움을 주는 학교, 도서관이었으며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특별한 이벤트와 즐거움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가끔 힘들거나 지칠 때 혼자서 찾을 수 있는 위로와 휴식의 공간이기도 했다. 나는 늘 예술이 필요했다. 내가 전시를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것은 그저 예술에 대한 나의 흥미와 탐구를 바탕으로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예술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함이다. 누구나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자리에서 예술은 우리를 기다린다. 예술은 그 어떤 순간에도 멀리 있지 않다. 예술이 필요한 시간, 망설이지 않고 예술을 향해 다가갈 때 이미 예술은 당신의 삶을 의미 있는 행복으로 가득 채울 준비를 마쳤을 것이다."

이 책은 '1장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에, 2장 전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3장 일상의 행복과 즐거움을 찾아, 4장 오늘도 나는 예술과 함께'라는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좋은 전시를 위해서는 예술가 혼자서 전체를 조율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전시야말로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과의 작업은 전시란 모든 작품이 소외되지 않고 완벽한 환경에서 아티스트의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는, 너무 당연해서 모두가 쉽게 잊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고 이야기한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컬렉션 디렉터인 그라치아 콰로니는 당시 미술계를 향한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했던 나를 매 순간 토닥이며 예술과 예술가를 다시 바라보고 또 바라보라고 조언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일단 모든 작품 각각을 적절한 환경에서 효과적으로 선보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고 단순한 깨달음이지만 전시를 만드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지켜지기 어려운 기본이기도 하다. 특히 여러 작가가 함께하는 그룹전에서는 개별 작품에 대한 고려가 무시되기 쉬운데 어느 작가도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모든 작품을 특별하고 중요하게 대하는 태도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전시는 미술계 안의 여러 활동 중에서도 중심이 되며 규모에 따라서는 미술계 대부분의 구성원이 참여하는 복합적인 활동이다. 개최하는 목적과 방법에 맞춰 각각의 담당자와 그들이 맡은 역할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전시에 드러난다."

저자는 전시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은 단순히 칸막이나 벽으로 공간을 구획하고 보기 좋게 작품을 배치라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전시에는 늘 타깃과 목적이 존재하고 이는 전시에 개입하는 다수의 참여자만큼이나 입체적이며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저자는 디자이너는 관람객이 전시장에 오기 전, 여러 경로를 통해 공유되는 구체화되기 이전의 비물리적 전시 경험부터 실제 전시를 관람한 이들이 글이나 사진, 영상 등의 매체를 통해 재생산하는 결과물까지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국공립미술관으로, 체계적인 시스템과 프로세스로 운영된다. 또한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민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전시를 기획한다. 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하는 미술관의 이미지이기도 한, 사립문화재단이나 개인이 운영하는 미술관과는 다르게 국공립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전시는 비교적 엄격하게 관리되고 평가받는다. 그래서 늘 더 세심하게 프로젝트에 신경 쓰고 집중하게 된다. 전시를 관람하는 데 기본이 되는 효율적인 관람 동선과 전시 환경,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를 포함해 누구나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상태를 가장 우선으로 고려한다. 당연해서 쉽게 놓치게 되는 것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저자는 미술관은 가치를 매기기조차 힘든 예술품들이 우리를 기다리는 특별한 장소라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작품만을 감상하지 않으며 작품이 놓인 공간의 분위기까지 모두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전시실의 규모와 건축적 장식, 조도, 온도, 습도, 작품과의 거리, 그리고 함께 있는 사람들을 비롯해 문과 창 너머로 보이는 겹겹의 풍경 등 전시실을 메우는 수많은 요소가 만들어내는 인상을 기억에 남긴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나는 루브르에서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만드는 요소들, 오래된 궁전을 현대적인 미술관으로 탈바꿈해나가며 변화시킨 여러 전략을 카메라 뷰파인더 너머로 세밀하게 찾아내는 일을 반복했다. 세계 최고의 박물관에서 일어나는 아주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장면들을 3인칭 관찰자로 지켜보며 기록하는 과정 대부분은, 최고의 전문가들이 투입되어 세심하게 디자인된 압도적 규모의 공간과 그 안을 채우는 역동적인 에너지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공간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의도를 생각하고 실제 그 공간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동선과 움직임, 반응을 지켜보며 건축의 진정한 의미란 건물의 설계와 구축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분명 나는 사진을 배우기 위해 파리에 갔고, 전공인 건축과 공간을 주제로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배우고 느낀 것은 그 안을 채우는, 매 순간을 특별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예술적 콘텐츠의 의미와 경험이었다."

저자는 전시 디자인을 하면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주드폼 국립미술관에서 전시를 감상한 기억을 떠올린다고 말한다. 저자는 디자이너가 아닌 관람객으로서 전시장을 걸음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그 완벽한 느낌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적절한 균형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되새긴다고 이야기한다. 디자이너로서의 나의 역할은 나만의 디자인 언어를 전시에 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복잡한 구성 요소들을 조화롭게 엮어내는 일임을 재확인하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주드폼 국립미술관은 어떤 콘텐츠와 주제를 다루더라도 변함없이 높은 수준의 전시를 선보이고, 전시를 구헝하는 전체 요소도 실험적인 동시에 아름답다. 특히 내게 이곳은 '전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끝없는 질문에 늘 정확한 답을 주는 공간 중 하나다. 전시 자체를 관통하면서 의도와 맥락이 훌륭한 방식으로 드러나게 만드는 전시 디자인은 그 존재 이유에 대해 품었던 의문을 사라지게 한다. 과감한 구조와 색을 사용하면서도 작품과 완전하게 어우러지며 세련되게 마감된 디테일은 전시 구성에서 디자인이 하는 역할과 책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그 어떤 것도 과하지 않게 작품은 작품의 자리를, 디자인은 디자인의 자리를 지키면서 관람객을 자연스럽게 예술의 세계로 이끈다. 동선은 한 순간의 얽힘도 없고 사진과 영상의 계획된 배치는 전시의 맥락을 강화시키며 디자인은 필요한 곳에서 완벽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전시 관람의 과정에 어떤 부자연스러운 끊김이나 머뭇거림 없이 관람객은 전시의 흐름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

저자는 최근에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전시를 다시 이미지화해 공유하는 일이 일반화되면서 전시 디자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전시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는 작품이 주인공이 되는 전시, 즉 전시장 내에서 작품이 가장 돋보이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너무 당연하지만, 이제는 관람객들이 만들고 공유할 이미지에 담길 추가적인 공간의 디자인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전시 경험이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문화 활동으로 진화하면서 작품이 직접 노출되는 전시장은 물론, 로비와 더불어 관객이 경험하게 되는 전시와 연계된 서비스 공간에도 전시 디자이너의 손길이 필요해졌다고 말한다.

저자는 국내에서 열리는 많은 기획 전시가 작품 외에 과도한 컬러와 장식을 사용해 관람객에게 추가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비싼 관람료를 내고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을 위해 좀 더 풍부하고 환상적인 기억을 선물하고자 한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휘트니 미술관의 전시들과 호퍼의 그림들, 그가 평생을 지낸 뉴욕과 작품 속에 등장하는 거리의 장면들을 함께 떠올리며, 한국의 서울에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을 준비하는 동안 지금 우리 현실 속에서 관람객들을 만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했다고 이야기한다. 관람객이 전시장에서 단순히 벽에 걸린 작품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맥락과 의미를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기를 바라고, 전시장의 어떤 유혹적인 요소들보다 그 안에 걸린 호퍼의 그림 속 판타지에 빠져들길 바란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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