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는 낯선 타인 - 나를 알기 위해 부모 공부를 시작합니다
양미영 지음 / 프롬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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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는 낯선 타인>은 서른을 훌쩍 넘겨서까지 내적 갈등과 삶의 곤란을 성장 과정과 부모의 양육방식 탓으로 톨리던 '나에 대한 공부'이자 '부모 공부'다. 이 책의 저자 양미영은 61년생 동갑내기 부모의 장녀로 태어나 부모와 집안 분위기에 온갖 불만을 내면 깊숙이 간직하며 30대 중반이 되기까지 결혼도 취직도 하지 않고 공부만 하고 있다. 자존감은 갈수록 떨어지고 매일 우울하기만 한데 이게 다 '엄마, 아빠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을 알고, 제대로 된 어른이 되려면 부모 공부를 해야겠다는 것, 부모를 알아야 자신을 알 것 같다고 생각하고 이 책을 써내려간다. <부모라는 낯선 타인>은 저자 개인, 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을 이 지난한 과정을 담담한 문체와 섬세한 내면 묘사로 전달하고 있다. 어쩌면 이 글은 껴안을 수도, 도망칠 수도 없었던 부모를, 최선을 다해 사랑한 저자의 내적 분투기이자 '어른 되기 셀프 솔루션'이라 할 수 있겠다.

"기억과 언어라는 형태를 부여하는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엄마, 아빠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누군가를 미워했던 마음을 오래도록 되새긴다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시도할 수 없는 일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부모는 나에게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심연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너는 너, 나는 나인 서로에게 타인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 책은 나의 오해이자 착각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라는 미완의 정의를 내린 것만으로도 어쩌면 충분한 것이 아닐까.

이건 명확히 분리할 수 없는 사랑과 마음의 경계를 오가는 가족이라는 기묘한 존재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은 '1장 어떤 날은 울고, 어떤 날은 웃으며, 2장 그렇게 지지고 볶으면서 35년째, 3장 우리는 이해와 원망 사이를 부단히 오간다, 4장 누구나 부모는 처음이라서'라는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엄마, 아빠의 과거를 알고자 노력했던 시간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그들을 사랑한 방식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모는 내가 아닌 타인이며,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영원한 과정일 뿐, 결코 완결되지 않는 작업이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어린 시절 성장 과정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것은 양육 환경과 부모의 과오를 탓하기 위함이 아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었다. 그러려면 부모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부모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그들을 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거리를 두고 그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들이 자라온 세계, 살아온 여정을 듣고 나서야 나는 그들의 말에 예전보다는 덜 상처받을 수 있었다."

저자는 현재 겪고 있는 문제가 실제로 모두 과거에서 기인한다고 증명된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고, 기억 속에 존재하는 엄마, 아빠는 원망스러웠다고 말한다. 그러던 중 저자는 심리상담 초반에 느꼈던 불편함과 저항감은 기억이 형태를 갖추고 의식으로 끌려 나오기까지 겪어야 했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과거를 말로 이야기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선생님이 지나가듯 말씀하신 융의 문장이 나를 붙들었다. "의식되지 않은 무의식은 운명이 된다." 무의식은 형태 없는 기억들의 저장고다. 기억은 아무런 형상을 지니지 않은 채로 마음 속에 머물러 있다. 특히 상처와 수치와 밀접하게 묶여 있는 기억들은 형태를 갖추려 하지 않는다. 더욱 거세게 반항한다. 고통스럽고 아픈 기억들은 그래서 말로 하기가 힘들다. 단어와 문장으로 형태를 부여하려는 기억의 주인의 시도를 거역한다. 그리고 그것은 운명이 되어 주인의 삶을 잠식하려고 든다."

"모든 인간에게는 그들을 탄생하게 한 어떤 남자와 여자가 있다. 아무리 독립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존재의 이유를 되짚을 때 따로 떼어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하지만 새삼스러운 사실이다. 엄마, 아빠도 어떤 부모의 자식이었다. 엄마, 아빠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의 어린 시절을 묻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엄마, 아빠는 나의 부모가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받았고, 그들의 사랑을 원했고, 그리워하고, 종종 그들로부터 상처받고, 그래서 그들을 원망도 했던 딸과 아들."

저자는 어린 시절 엄마, 아빠가 서로를 집어삼킬 듯 싸웠고, 집은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던 사실이 끊임없이 재상영되었지만 슬프고 무서워서 울음이 났을 뿐, 그것이 우울이고 고독이고 수치이고 외로움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엄마, 아빠가 싸웠다는 이야기는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고, 누구에게도 나눌 수 없는 일들을 혼자 곱씹으며, 외로움이 밀가루 반죽처럼 부풀어갔다고 말한다. 저자는 중학생이 되고 어릴 때보다 더 많은 언어를 가지게 되었고 혼자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엄마, 아빠의 다툼에 관해서는 쓰지 않았던 이유는 그런 일은 없는 일이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없는 일이기를, 잊히기를 바랐던 기억들, 그래서 누구에게 말하지 않고 글로도 쓰지 않았던 기억들은 내 바람과는 달리 어른이 된 지금까지 가장 강렬하게 오래도록 남아 있다. 거기 그대로 남아 더 진하게 각인된다. 그러나 여전히 그게 무엇이었는지, 왜 자꾸만 나타나 나를 괴롭게 하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무력한 자신을 마주한다. 말과 글이 없던 시절, 세상의 모든 언어를 배우기 이전, 언어가 부족했던 때, 해명되지 못한 사건들이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다."

저자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엄마, 아빠가 자신의 세계의 전부였고,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다고 말한다. 인정받아야 하는 대상도 부모이고, 과오와 실책을 떠넘길 곳도 부모였다. 저자는 변화하려는 의지는 전혀 없고 부모 탓만 하는 성장하지 못한 자신, 과거를 원망하면서도, 벙서나려 하지 않는 무력한 자신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저자는 일이 잘못될 때마다 남을 탓하고 핑계만 즐어놓았던 것은 노력하는 대신 '가장 쉬운 선택'을 고집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 축적되어온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제껏 살아온 만큼의 근간을 뒤흔들 만큼 획기적인 동기와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하며, 그럴 자신이 없어서, 간단한 해결책을 찾으며 잠시 한시름 놓았다가 오랜 시간을 괴로워했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어린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 글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엄마, 아빠와 자신은 거의 하나의 묶음처럼 엮어 있어, 의지할 곳이라고는 두 사람뿐이여서 그들의 갈등은 자신의 갈등이었고, 그들의 블화는 자신의 불화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부모에게 아이들의 생명과 안위가 달려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부모가 서로를 미워한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과 슬픔을 불러오고, 자신조차 온전하지 못한 기분에, 작은 세계는 더욱 작아진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아이들에게 무조건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라고만 하지 말고, 친구와 다투었을 때 어떻게 화해하면 좋을지를 가르쳐주는 선생님들이 많았으면 좋겠고, 자신이 만약 그걸 초등학교 때 배웠다면 다투는 엄마, 아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부모님도 가끔은 힘이 들 때가 있고 그러다 보면 화가 난다고, 때론 내가 친구들과 다투고 화해하는 것처럼, 어른들도 똑같은 과정을 거치는 거라고. 그리고 그건 단지 우리 엄마, 아빠의 일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의 엄마, 아빠도 비슷할 거라고.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대개 비슷하다고. 그러니 네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고, 너에게 모든 불행이 쏟아지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어른이 된 내가 너를 누구보다 애틋하게 사랑하고 있으니, 외로워하지 말라고. 어린 나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늘 집안 분위기에 지나치게 예민했던 자신은, 엄마, 아빠의 기분을 살피느라 자신의 감정을 파악하는 방법을 아예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릴 때도, 단체생활을 할 때도, 회사에서 일할 때도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분위기와 조화 상태를 먼저 살폈고 자신의 마음과 기분은 오랫동안 홀로 방치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조금씩 자신의 감정을 먼저 돌보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나의 기분을 먼저 돌보고 어떤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는 방식으로 잘 말하는 것. 나는 엄마를 향해 쉽지 않았던 그것을 연습한 셈이다. 속으로 감내하며 불만을 쌓아가는 것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동시에, 자신을 극한의 상황에 내던져버리는 행위다. 그렇게 참다가 분노를 억누르기 힘든 순간에, 파괴적인 방식으로 상대방을 상처 주고 만다. 감정의 불편함을 꾹 눌러 참지 않는다. 감정의 불편함을 먼저 돌보고, 상대방에게 부드러운 말로 이해를 구한다. 나를 지키고, 상대방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말하기 방식이다. 이런 말하기 방식이야말로 성숙한 사람이 가진 증표가 아닐까."

저자는 자신의 집에는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 대신 무언의 갈등만 있었고, 조금 더 자랐을 때 자신 역시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표정과 행동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옳지 않은 방식이었지만 익숙한 방식을 택하면서 무시해온 것들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것은 자신의 감정에 대한 학대이자 방치의 결과였고, 나는 어떻게 되든 신경쓰지 귀찮다는 태도였다고 고백한다.

"말하지 않는다. 침묵으로 호소한다. 관심을 갈구한다. 표정과 행동으로 서운함과 분노를 내비친다. 무언의 시위다. 뒤틀린 감정 처리 방식이다. 지금 나는 슬퍼, 화가 나, 서운해, 걱정이 돼, 미안해, 이 모든 감정을 말로 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공중에 떠다니도록 방관한다. 감정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기운으로 느껴진다. 그 사람 전체를 둘러싼 지속적인 에너지를 주변 사람들은 기민하게 감지해내야 한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그는 그런 걸 기대하는 듯하다. 그러나 서로는 기대하는 바를 쉽게 충족시켜주려 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원망하고 분노한다. '내가 대체 무엇을 잘못했다고? 왜 심술이 나 있는 거지?' 아무런 대화도 오간 적 없이 서로는 서로를 더 미워한다."

"먼저 나는 나의 취약함을 무시한다. 자신이 상처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무시한다. 힘들고 괴로운 매 순간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자신을 스스로 나무라고 꾸짖는다. 스스로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약한 존재라는 것, 누구나 쉽게 상처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타인의 약함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약함을 무시하는 사람은 '완벽'을 추구한다. 실수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자신을 상정한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한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시도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고 모험하지 않는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큰 타격이 없는 쉬운 과제에만 몰두한다.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차단한다. 그런 자신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다. 약한 자신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사실은, 자기가 너무 거대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강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환상에 빠져 있는 사람만이 자신이 나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빗나간 자기애는 자신이 정해놓은 지나치게 높은 기준에 미달할 때마다 자신에게 모질게 군다.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스스로에게까지 미움받는다. 우리는 모두 약한 존재하는 것, 그래서 내가 더욱 사랑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산다. 그러니 완벽주의는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주범이기도 하다. 훌륭하게 제대로 잘하고 싶다는 마음, 정말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앞설 때, 우리는 종종 그냥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 제대로 잘해낼 자신이 없다면 아예 포기하는 쪽이 편하다. 마음만큼 완벽히 되지 않았을 때 감내해야 할 상처를 미리 차단한다."

저자는 엄마, 아빠의 과거에 무지했고, 자신이 살지 않았던 시간이라서, 자신과는 무관한 것인 양 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비록 자신이 살지 않았지만 엄마, 아빠가 살았던 과거는 보이지 않는 끊으로 자신과 묶여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를 구성했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떠오르면 괴로워서 잊고자 했던 일들은 오히려 밖으로 꺼내볼수록,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수록, 별것 아닌 것이 되다는 것을, 자신과 엄마, 아빠는 그간 기괴하게 각진 바위를 하나씩 마음에 얹고 있다가 힘겹게 그걸 꺼내고, 밖으로 굴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엄마, 아빠의 옛날이야기가 궁금해진 것은 심리상담 이후 치열하게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이후다. 내가 심리상담을 시작한 이유는 이렇다 할 목적 없이 나부끼는 생활에 무언가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였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중국어를 배우겠다고 중국에 갔다가, 어영부영 30대 초반을 지나던 때였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멍하니 부유하던 때다. 매거진, 온라인 뉴스 회사를 전전했지만 타의로, 자의로 한 곳에 진득하게 붙어 있지 못했다. 이렇다 할 경력도 없이 시간은 흘러, 진로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싶었다. 한마디로 나는 '미래'를 향해 서 있었다. 그런데 상담시간 내내 엉뚱하게 자꾸만 어릴 때의 기억들이 끌려 나왔다. 자주 다투던 엄마, 아빠와 거기에서 느꼈던 불안과 공포 그리고 홀로 남은 듯한 쓸쓸함과 외로움. 서른이 넘은 젊은 어른이 느끼는 서러움은 여전히 어린 시절에서 비롯되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끝은 엄마, 아빠로 귀결되었다."

"엄마, 아빠가 나에게 상처 주는 것은, 어쩌면 엄마, 아빠도 비슷하게 상처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어린 시절 이해받지 못한 것, 거절당하고, 보호받지 못한 기억들,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사실들이 여전히 두 사람의 마음속에 남아서 스스로를 미워하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누구인지 잘 모르고, 그래서 불안정하고, 그런 젊은 날들을 지나면서 난생처음 부모가 되었고, 그래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게 아닐까. 나의 생애는 둘의 과거를 제쳐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로 넘쳤다. 내가 돋아나는 새삭이라면, 엄마, 아빠는 싹을 틔우기 위한 단단한 나뭇가지였을 것이고, 내가 밑둥이라면 엄마, 아빠는 땅 속 깊숙이 흙을 그러쥔 뿌리인 셈이다."

저자는 우리는 타인들 만큼이나,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한다. 그래서 저자는 "나는 누구인가? 이것이 우리가 사는 동안 평생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 질문이 아닐까? 나를 구원하거나, 혹은 나를 가로막는 것들, 그것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그래서 각자의 기억 속에 각인된 것들이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 탐구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지질학자, 고고학자, 역사학자, 건축가,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과거의 기억은 내가 발굴을 마음먹기 전까지 고대 유물처럼 깊숙한 장소에 묻혀 있다. 내면 깊은 어딘가에 묵혀온 것이어서 누군가 먼저 삽을 들고 와서 발굴을 제안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모르는 사이에 두텁게 층층히 쌓인 감정들이 있다. 퇴적되고 굳어져서 눌러봐도 딱딱하게 메말라 있다. 메마른 유적지에 다시 물을 주고 작은 삽이라도 갖다 대지 않는다면 감정들은 돌덩이처럼 굳어져 아마 나중에는 두드려볼 엄두조차 낼 수 없게 될 것이다."

"언제 새겨졌는지 모를 우리 마음속의 각인을 관찰하고 그것이 새겨진 때와 장소를 판별한다. 기억을 모두 끄렁와 가지런히 정리하고 글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는 훨씬 가벼워졌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나의 과거의 기억을 처리하는 책임자가 된다. 우리는 비록 어느 집, 어느 부모 아래 태어날지 선택할 수 없었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릴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각자가 지닌 기억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어린아이들은 죄가 없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를 성찰하지 않는 어른들에게는 잘못이 있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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