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 탐구 생활 - 완벽주의와 자기의심에 대하여
사월날씨 지음, 이지선 북디자이너 / 왼쪽주머니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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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 탐구 생활>은 <결혼 고발>, <서른에 얻은 말과 버린 말>로 여성의 삶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드러내 온 에세이스트 사월날씨 작가가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을 고통스럽게 들여다보며 쓴 책이다. 사월날씨 작가는 건전하고 생산적인 수치심이 아니라 오래 지속되고 과도하며 내면화된, 그리하여 성격처럼 고정되어 버린 수치심에 대해 탐구한다. 수치심은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한 깊은 불안이다. 자신이 세상과 타인과 묘하게 어긋나 있는 느낌이자 나라는 존재가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이다. 수치심은 어느 부분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에 두고, 그 완벽을 충족하지 못한 자신에게 불안과 자책을 안겨준다. 그렇기에 수치심의 탐구는 완벽주의와 자기의심에 대한 고찰이 된다. 자신의 수치심이라는 특정한 심리적 상태를 탐구해 나가는 이 과정은 심리학과 문학의 경계에 서서 에세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탁월히 활용하고 있다. 상처를 드러내고 살점을 베어낸 이 글을 읽는 독자 또한 마침내 용기 내어 자신의 수치심을 들춰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1장 완벽에의 환상, 2장 집에 두고 온 나, 3장 가치 증명 전쟁, 4장 여자라는 몸, 5장 완벽과 충분 사이'라는 5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수치심이 불러일으키는 왜곡된 자기애는 자꾸만 나 아닌 무언가가 되려 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내면의 불완전감이 타인의 인정에 목매달레 만들지만 바로 그 불완전감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드러내지 못하니 인정도 받을 수 없는 모순의 고리 안에서 끝내 나를 채워줄 것을 충분히 얻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주제에 맞지 않거나 틀리게 해석하는 말을 내뱉는 건 내가 할 만한 일이 아니다. 모두가 나를 좋아하지는 않아도 최소한 나를 미숙한 사람, 경솔한 사람, 생각이 짧은 사람으로 여기지는 않아야 한다. 사랑은 못 받아도 존경은 받아야 한다. 가장 뛰어나기까지는 못해도 적어도 가장 못나지는 않아야 한다. 나는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완벽하지 않은 모습에 수치심을 느끼고 그걸 들킨 사람들 앞에서 완전히 위축되어 버린다."

저자는 수치심은 나에 대한 평가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저자는 나를 바라보는 기준은 자신이 아닌 타인이며, 언제나 타인의 시선 앞에 노출되어 있다고 느끼고 타인의 눈을 통해 나를 바라본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수치심은 관계적인 감정이며, 대인 관계의 사건 없이 스스로 생겨나기도 하지만 대체로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여성이로서의 나라는 몸 하나에 서로 다른 기대와 모순되는 잣대가 들이대어질 때, 그리하여 나는 목표를 완전히 달성하는 완벽한 사람이 되지 못하겠다는 희미한 예상이 어렴풋이 밀려올 때, 내가 믿어왔던 나라는 사람이 더 이상 나의 무기가 되어주지 못할 때, 그때가 바로 수치심이 서식하기 몹시 좋은 환경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뭐든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여자다운 여자가 되어야 하는 과제를 받아 든다. 여자다운 여자란 무엇이든 되려고 나서고, 돌진하고, 주관을 갖고 밀어붙이고, 탐험하고 깨지고 주저앉았다가도 다시 성나게 일어나는 사람은 아무래도 아니다. 여자에게 좋은 직업이란 카테고리를 만들어놓고 그것은 제한이 아니라 너를 위해 좋은 것이라고 포장한다. 무엇이든 해보라고 말하면서, 실패했을 때는 더 가혹한 비난을, 성공했을 때는 덜 화려한 상찬을 내린다. 앞길을 닦아줄 생각은 없이 그저 뒷짐을 진 채 진정으로 원한다면 어떤 방해물로 헤치고 나아가야 하는 거라고 내게로 책임을 넘길 뿐이다. 모름지기 여자란 잘남을 현명하게 숨겨야 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되기를 진실로 격려받을까?"

저자는 여자를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하는 시선이 부족한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존중하기 위하여, 몸을 수치스럽지 않은 존재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중하기 위하여, 내 몸이 외부에 의해 마음대로 점령되거나 가르고 나뉘고 재단되는 게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담긴 나 자체임을 선언하기 위하여, 우리는 여자의 몸에 가득 덮인 기호와 상징을 비판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내면화되어 버린 세상의 시건을 걷어내기 위하여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저 존재하는 것이라고, 정신과 영혼을 담고 있으며 나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물리적 실체라고, 너에게 보이기 위해 있지도 너를 홀리기 위해 있지도 않으며, 너에게 쉬이 모욕당하지 않으며, 나의 몸에 가한 너의 행동은 나의 모욕이 아니라 너의 모욕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내 몸은 기쁨과 슬픔과 고통과 환희를 느끼는 몸이며 자유로이 표현하는 몸이고 너의 존재에서 몸이 차지하는 의미와 다르지 않은 몸이라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타인의 존엄성과 결정권을 침범하는 너라고. 이것이 여자의 몸에 관해 알아야 할 전부이다."

저자는 우리가 억지로라도 자만을 만들어온 이유는 지금껏 약점을 드러내지 말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약점을 공개하는 건 남들에게 공격할 수단과 빌미를 제공할 뿐이며, 취약한 건 약한 거고 약한 건 나쁘고 부끄러운 거라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존하려면 다름 아닌 바로 그것들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취약함을 말하고 감정을 나누고 깨져 있는 나를 드러내야 한다. 꼿꼿하게 무장한 채로는 기댈 수 없다. 하지만 무장해야만 세상이라는 전장에 나갈 수 있다고 믿는 우리에게 건강한 의존과 도움 요청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 놓고 취약함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굳건한 조건이 필요하다. 흔들리지 않는 애정에 대한 믿음,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나의 약함을 무기로 삼아 나를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게 있어야 비로소 우리는 취약해질 수 있다."

저자는 나름의 확고하고 타당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서 상정하는 일반 노동자가 아닌 조금 어긋난, 조금 부족한 노동자가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왠지 모르게 나를 숨겨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프리랜서 수치심이란 능력주의와 실용주의로 인한 수치심의 연장이고, 존재에 대한 수치심이 옆에서 이를 살짝 거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수치심에 대해 탐구해오면서 발견한 것은 지금처럼 성취를 존재의 목표이자 가치로 삼는 경우, 나는 영영 지는 입장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저자는 성취의 개념을 작고 눈에 보이지 않고 나에게 의미 있는 것들로 넓게 확장시킨다면 나는 좀 더 자주 기분이 좋고 좀 더 스스로를 믿어주고 좀 더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후 세 시쯤 집을 나서서 병원에 가거나 은행 업무를 처리하거나 마트에 가서 장을 보거나 허리 통증을 줄이기 위한 산책을 하거나 택시를 잡아타고 운동 스튜디오로 향하는 일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부끄럽다. 남들이 한창 일하고 있을 시간인 오전 아홉 시에서 오후 여섯 시 사이에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신경 쓰인다. 병원과 은행과 마트의 직원에게, 택시 기사에게, 그저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는 것이다. 스스로 밥법이를 하지 못하고 어딘가에 기대어 지내는 존재처럼, 잉여의 존재처럼 여겨지지는 않을까? 오후 세 시의 집 밖의 나는 어딘지 당당하지 못하다."

"무엇보다 되새기고 싶은 건 프리랜서로서 일하는 내용을 떠올려보면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물론 에세이를 쓴다는 건 주류에서 멀어지는 기분을 느끼는 일이기도 하다. 창작 지원 프로그램이나 작가 지원 사업, 책 발간 사업, 도서 선정 사업 등등에서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낄 자리가 있는지를 살피는 일이니까. 공고문 안에 '산문', '수필'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말이다. '등단'이라는 말이 주는 권위와 소속과 허라과 인정을 받을 기회조차 없는 에세이란 분야는 문학의 범주에 당연하게 끼어 있지는 않은, 애매하게 걸쳐있는 분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세이가 당당히 문학의 범주에 들어가고, 에세이로 상을 받고 에세이로 축제가 열리고 에세이로 전시가 열리는 문화 풍토가 생겨나기를 바라며, 나는 에세이 쓰기를 계속해나갈 것이다."

<수치심 탐구 생활>의 저자가 수치심에 대한 글을 쓰면서 새롭게 깨달을 건 수치심을 가져도 괜찮다는 글이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다고, 수치힘을 느끼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정말 믿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이 여운을 남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고통스러웠다.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것의 구덩이를 손을 들어 파헤쳐야 했다. 힘들어도 이 파헤침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고 되뇌었다. 손톱을 바짝 세우고 손을 높이 쳐들자, 충분히 파헤치고 나면 나는 잔인하게 꺼내놓은 것을 다른 땅에 옮겨 묻고 떠날 것이다. 다른 땅이라고 해봤자 여전히 내 마음 안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것을 새로운 땅에 넓게 펴 바르고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것이다. 그 땅에서 천천히 걸어 나올 것이다. 이것이 나의 쓰기의 주문이었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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