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 뼘의 계절에서 배운 것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2년 10월
평점 :
<한 뼘의 계절에서 배운 것>은 작가 가랑비메이커가 사계절을 머물며 마음껏 산책하고 마주했던 사람과 장면들에 대한 깊은 사유의 산문집이다. 이 책은 사계절이 분명한 곳에서 나고 자라며 당연하게 마주했던 변덕스러운 계절이 가난한 예술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감이 되었다는 가랑비 작가가 낮에는 산책을 하고 밤에는 문장을 쓰는 단조로운 삶에 색과 향을 더해준 계절의 목소리와 환절이 앞에서 언제나 어리둥절한 독자에게 바치는 진하고 깊은 계절의 이야기를 담았다.
"가난한 애정도, 옅은 질투도 겨우 한 뼘의 계절에서 왔다. 못난 모습도 잘난 모습도, 가끔은 모두 계절의 몫으로 두어도 좋다. 조금 모자란 듯한 계절이 지나고 다시 새 계절이 오면 지금의 휘청이는 걸음은 단단한 지도가 될 것이다. 그제야 지난 계절을 돌아보며 헤아릴 수 있을 거다.
한 뼘의 계절에서 배운 것들을."
저자는 오랜 시간 바깥을 향해 머물렀던 기억들을 떠밀지 않아도 새 계절이 오면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이며, 이제서야 자신이 이 계절의 주인이 된 기분이라고 말한다. 무거운 눈꺼풀에 힘을 주고, 흐물거리던 다리를 곧게 펴고 이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걸어나갈 것이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이 책에서 두터운 믿음과 다정한 시선을 찾아서 지난 기억 속을 헤집는 일을 멈추고 내 안을 들여다보았다는 저자의 섬세한 글을 만나볼 수 있다.
"돌이켜 보면 너무 오랜 시간 바깥을 향해 서있었다. 글이 향하는 곳만이 아니라 목소리를 내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좀처럼 혼잣말을 하지 않는 내가 소리를 내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일 때문이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비명도 탄식도, 심지어 울음마저 늘 고요했다. 내가 나에게 아낀 것은 문장도 목소리도 아닌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게 아꼈던 마음을 낭비하기로 결심한다. 지나간 이름에 작은 미련을 보태며 셋방을 내어주는 일은 완전히 끝이 났다.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개미굴을 모두 허물기로 했다."
저자는 정체된 삶에 대한 불안을 털어놓는 자신에게 우연히 만난 S가 전하는 위안의 글을 전한다. "반드시 꽃이나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해도 그 가지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에요. 작가님은 이미 단단한 뿌리의 몸통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면 분명히 새로운 가지가 자랄 거예요. 잠든 것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꽃을 틔우려는 고요한 싸움을 하는 중일 수도 있고요."라는 S의 말은 저자에게 남겨진 젊음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 놓았다고 이야기한다.
"가늠할 수 없는 것이 프리랜서의 삶이라지만 괴롭고 고독한 게 예술이라고 하지만, 이토록 삶이 혹독한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녹록하지 않은 계절이 시작되고 있었다. 바깥은 온통 푸른 봄인데 홀로 사막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열등감과 질투로 뜨거운 한낮을 보내고 나면 모든 열정이 가신 차가운 밤이 시작됐다. 낮과 밤의 전환이 무의미한 긴 터널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매일 나서는 산책길 위의 들꽃은 오래 들여다 보면서 나는 늘 내게만 인내심이 부족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꽃도 열매도 아닌 보이지 않는 곳에 깊게 내려진 뿌리와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뻗어가고 있는 가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붙들고 살게 하는 것은 결국 한 철의 꽃과 열매가 아니라 묵묵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뿌리와 가지일 테니까."
저자는 글을 쓰기 전의 나는 예민하고 변덕스러운 탓에, 틈만 나면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서 나만의 세계에 빠지고는 했고, 나를 알아가기에도 벅찰만큼 속과 시야가 좁은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하루에 몇 시간을 할애하며 다른 이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된, 드라마틱한 변화의 시작은 책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치열하게 읽고 읽히는 여름을 지나고 나면 더 자유롭게 인생의 그늘 속을 산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글이 흥미롭다.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혼자였지만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밖을 나서는 순간, 혼자의 문장들은 함께가 되었다. 그때부터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깊이 품고 있었을 저마다의 서사가 듣고 싶어 싶었다. 잘 짜인 근사한 글보다도 수더분하고 진실한, 세월의 그늘이 드리워진 이야기에 마음을 활짝 열고 싶었다. 그들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읽는 삶은."
"그래, 우리는 서로의 그늘을 읽는 중이었지. 쓰는 자리와 읽는 자리를 숨가쁘게 오가는 나에게 시간은 여전히 부족하고, 좁은 마음은 쉬이 넓어지지가 않는다. 잘 지내는 듯하다가도 이따금 괴롭고 외로운 밤이 방문한다. 그러나 아주 환한 새벽도 있다. 모든 것을 미루고 싶다가도 당장에 모든 걸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줄다리기를 하는 여름이다."
저자는 열일곱부터 이름보다 더 많이 쓰고 뱉었던 가명이 마침내 책과 함께 필명이 된 후로 자신의 삶은 애라의 것과 가랑비의 것으로 양분되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매일 쓰고 때마다 책을 펴내는 전업 작가로 사는 계절이 늘어날수록 가랑비의 삶은 종종 애라의 삶을 잊게 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무심과 외면 속에서 가라앉고 있는 외딴 섬 같은 이름, 자신의 오래된 세계가 그리웠다고 말한다. 애라에서 가랑비로, 가랑비에서 애라로 조금 더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왕래를 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자신의 본명을 좀 더 불러주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부단히 쓰고 읽히며 이십 대 절반 이상을 가랑비로 살아냈다는 대견함보다 오랜 시간 애라로 불리지 못했다는 서글픔이 크게 닿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닿은 적 없는 이들에게 어떻게 읽힐 수 있을지 골몰하느라 애라야, 하고 부르는 이들에게 달려 가는 일을 너무 오래 미뤘다는 자각, 환한 낮빛과 분명한 목소리의 가랑비로 살아내느라 이따금 그늘을 드리우고 서글퍼지는 애라를 덮어두고 숨기기만 했다는 죄책감, 쓰지 않는 삶을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여기는 바람에, 식빵 테두리처럼 무성의하게 잘려나간 사사로운 일상에 대한 미련 같은 게 아니었을까."
"서른이 되면 불안정한 마음이 갈피를 잡을 줄 알았다. 무얼 원하고 무얼 피해야 할 줄 아는 어른이 될 거라는 기대에도 아랑곳 없이 나는 여전히 몇 초 사이에 긴 생각에 잠기는 사람이다. 바삐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멈춰 있는 내가 때때로 불만스럽지만, 무엇이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하나하나 뜯어보고야 마는 애라이기에 매일 써도 종이가 부족한 가랑비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저자는 누군가에게는 무르익은 풍성한 계절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말라 부서지는 계절, 하나의 물음에도 수많은 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가을을 통해 배웠다고 말한다. 저자는 작업실에서는 사라져 보이지 않던 늦은 오후의 해가 건물 뒤편에서 여전히 아름다운 빛으로 무르익어가고 있었던 것처럼 다 끝난 것만 같은 순간에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가 있을 거라는 믿음은 많은 것을 떠나보내야 하는 자신에게 가을이 값없이 가르쳐 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늦여름에도 마중하는 마음으로 가을을 기다렸다. 조금씩 해가 짧아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창밖을 조금 더 유심히 바라봤다. 느리게만 느껴지는 계절의 변화는 언제나 무심한 인간들이 잠이 든 틈을 타, 속도를 낸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더 자주 밖을 나섰다. 소리 없이 무르익어가는 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눈에 담고 싶었다."
"머무름 없이 흘러가는 시간 가운데 어렵게 움켜쥔 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찾아온다. 모든 게 이대로 저물어버린 것만 같겠지만 어둠 뒤에 어둠만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