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엔 니체, 퇴근길엔 장자 - 회사 앞 카페에서 철학자들을 만난다면?
필로소피 미디엄 지음, 박주은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대만에서 독자들의 대중적 사랑을 받은 철학서인 <출근길엔 니체, 퇴근길엔 장자>는 직장인이 흔히 겪는 심리 상태인 걱정, 불안, 혐오, 부조리, 낙담, 소진, 짜증 등에 대해 샤르트르, 니체, 장자, 손자, 마르크스, 카뮈, 한비자, 하이데거, 공자 등 동서양 철학자들이 해석을 해주는 철학 교양서이자 심리 처방서다. 하나의 감정에 대해 한 명의 철학자가 자신의 사상을 중심으로 그 의미와 대안을 제시하는데, 위대한 철학자들의 관점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깊은 사유와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저자는 철학자 하이데거는 걱정에는 인간이 자아를 추구하고 뛰어넘을 수 있는 동력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인간이기에, 즉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기에 걱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주된 실존 형식은 걱정을 통해 세계를 찾고, 세계와 나 사이의 관계를 찾는 것이다. 저자는 하이데거의 철학은 쉽게 포착할 수 없을 만큼 생동하는, 주어진 한계를 넘어 뛰어넘어 솟구치는, 이해 가능할지 모르나 이해 너머에 존재하는 생명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죽음은 인간에게 최대의 한계지만, 하이데거의 눈에는 빤한 일상을 깨우는 찰나의 경종이었다. 죽음은 영원히 내밀하고 독특하며 중복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삶과 죽음의 무상함을 의식하고 나면 무리로부터 빠져나와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삶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이 말은 죽음 앞에서 자기 존재에 대해 물을 수만 있다면 빤한 일상으로부터 평생 벗어나 살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죽음을 대면하는 일은 우리가 기대어 있던 일상으로부터 우리를 잠시 떼어내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일순간의 분리가 누군가에게 사색을 지속하는 역량을 주고, 잠시나마 자아초월의 가능성을 엿보게 할 뿐이다. 찰나의 도약으로나마 초월의 가능성을 엿본 사람은 다시금 현실의 타성에 젖는다해도, 천천히 방향을 틀어 결국에는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카뮈는 우리가 부조리의 본질을 이해할 때 세상 만물에 특별한 존재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는 것을 전한다. 그 어떤 가치나 의의에 대해 절대성을 긍정할 수 없게 되면, 이 세계에 가치를 부여하고자 하는 시도 또한 그 중요성을 잃고 만다. 그리고 저자는 출근이 지긋지긋한 모든 직장인은 정장을 입은 현대의 시시포스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무의미한 일이라는 돌을 매일매일 밀어 올리는 고달픈 과정에서 오는 무력감은 그저 참고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 저자는 병이 났다는 것을 쉬어야 할 때라는 신호이듯, 부조리감은 삶을 돌아봐야 하 때라는 것을 일깨워준다고 이야기한다.

"무력하기 그지없는 우리에게 이 세계가 돌려주는 대답은 침묵뿐이다. 이미 일어난 일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 일은 그냥 그렇게 발생했을 뿐이고, 우리는 무력하게 하늘을 향해 "왜?"라고 외칠 뿐이다.

카뮈는 인간이 이렇게 세상의 침묵과 대면할 때, 모든 일은 순전히 우연에 지나지 않음을 의식할 때 모종의 향수를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이성적 존재인 인간은 이성으로 파악 가능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이성적 원칙이나 질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세상은 본래 혼돈으로 가득 차 있고 이성적 예측에 따라 돌아가지 않음을 발견하고 상실감과 부조리를 느끼게 된다.

카뮈는 부조리가 인간 혹은 세계 내에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은 이 세계를 이성으로 길들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만, 세계는 결코 인간의 이성적 요구를 만족시켜주지 않는다. 이렇게 인간과 세계 사이의 '밀당'에서 생겨나는 불협화음은 둘 사이의 관계를 잇는 유일한 끈이 된다. 즉 부조리 자체가 곧 인간과 세계 사이의 관계다."

"부조리를 이해한 인간은 이러한 사회적 지침을 투사해서 상상한 미래를 위해 살아가지 않는다. 그 미래가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죽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진실을 뛰어넘을 순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는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부터 해방된다. 누구도 죽음이라는 마지막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의식할 때, 모든 규범은 더 이상 절대적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이렇듯 외적으로 부여된 가치에 대해 무심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우리는 행동의 자유를 얻고, 자기 삶의 경험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

"모든 외재적 가치는 이성의 산물이다. 거기엔 아무런 절대적, 고정적 이유가 없다. 부조리는 똑바로 서서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인간의 공통된 운명은 죽음뿐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고, 사회적 기대라는 속박을 떨쳐낼 수 있게 된다. 시시포스와 마찬가지로 반항 자체가 우리를 삶의 부조리에서 벗어나게 하진 못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내면의 자유를 의식하고 삶에 우리가 소망하는 가치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한다. 바로 이것이 삶에 대한 열정, 뜨거운 애정의 표현이다."

저자는 순자는 우리가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이 외부 세계의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을 전한다. 외부 세계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과 행동을 '담아둔다'고 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도 지각 능력이 있기에 외부 세계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다음에는 기억하고 담아둔다. 그 정보는 마음속에 내화되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우리가 '먼저 접한 것'들로 인해 새롱누 정보를 받아들이기를 배척하거나, 먼저 접한 정보와 다르면 대뜸 들린 것으로 간주하고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면, 폐쇄된 자아회로 안에 갇혀 지적 오만이 생기고 인식의 편향만 굳어진다고 이야기한다. 순자는 다음과 같이 편견을 경계해야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음속의 아집과 폐해를 벗겨냄으로써 정서적 혼란과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돕는것이 중요하며 허, 즉 망ㅁ을 비우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의 마음은 욕망으로 가려지고, 악으로 가려지고, 시작으로 가려지고, 끝으로 가려지고, 멀어서 가려지고, 가까워서 가려지고, 넓어서 가려지고, 얕아서 가려지고, 오랜 것으로 가려지고, 지금이어서 가려진다. 만물의 다름은 이렇듯 상대를 가려 어둡게 한다. 이는 마음 다스리는 공부의 공통된 근심이다.

<출근길엔 니체, 퇴근길엔 장자>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번아웃 상태에 빠졌거나,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심리적 문제들을 철학적 관점을 통해 접근할 수 있도록 하여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사고의 전환을 일으킬 수 있는 책으로 흥미롭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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