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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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서술자>는 2018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첫 에세이다. 이 책은 올가 토카르추크가 노벨상 수상 이후 처음 출간한 저서이며, 국내에서 첫선을 보이는 작가의 에세이집으로 인상적이다. 그동안 발표한 에세이와 칼럼, 강연록 중에서 열두 편을 작가가 직접 선별하여 묶었다. <다정한 서술자>에는 여섯 편의 에세이와 여섯 편의 강연록이 실렸는데, 각각의 텍스트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문학'과 '글쓰기'다. '읽기'에서 출발하여 '쓰기'에 이르기까지 토카르추크의 다채로운 문학적 여정을 따라가노라면 어느 순간 작가의 작업실에 초대되어 한 편의 소설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작가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 준 방대한 독서 이력과 예술적 취향뿐 아니라 현재 시도 중인 새로운 문학적 실험들과 놀랍도록 독창적인 상상력도 엿볼 수 있다.

토카르추크는 팬데믹이 초래하는 결과는 실로 다양하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내면에 이미 깊숙이 자리 잡은 내러티브, 즉 우리 인간이 세상을 통제하고 있으며 창조의 주인이라는 인식을 깨는 일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하나의 종으로서 인간이 이성이나 창의성을 내세워 자신이 보유한 힘을 과시하는 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인간은 자신과 자기 이익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하지만 다른 관점, 차별화된 시각으로 바라보면 다른 존재들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소중하다고 느끼게 된다. 뿐만 아니라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핵심 그물코로서, 에너지의 전달자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이라는 복잡한 유기체에 대해 책임감을 통감하는 존재로서 스스로가 꼭 필요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책임감은 오랜 세월에 걸쳐 구축된 호모 사피엔스의 패권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존엄성을 유지하게 해 주는 핵심 요인이다."

토카르추크는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우리의 DNA가 아니라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말한다. 마치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규범과 질서가 세워져 있는 것처럼, 우리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를 구원해 주는 선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에서 토카르추크의 번역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 눈길을 끈다. 토카르추크는 번역은 원예 기술과 같으며, 번역가와 함께 있는 순간 이해하기 힘든 어떤 새로운 영역이 열린다는 것이 놀랍다고 이야기한다. 번역가는 작가의 손을 잡고서 국가와 언어, 문화의 경계를 넘어 작가를 인도한다는 토카르추크의 말에 공감한다.

"번역은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또는 하나의 문화를 다른 문화로 옮기는 작업일 뿐 아니라 일종의 원예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식물에서 가지를 잘라 내어 다른 식물에 접목한 뒤 새싹을 움트게 하고, 생장 에너지를 모아 본격적인 가지들로 뻗어 나가게 만드는 작업이다."

"번역가는 우리 작가들이 내면의 대화와 비전, 생각이라는 우주에서 몇 시간, 며칠, 몇 달, 심지어 몇 년을 보내며 체험하는, 직업적으로 떠안고 있는 깊은 외로움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준다. 외부 세계로부터 번역가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한다. 나도 거기에 있었고, 당신의 발자취를 따라갔노라고. 하지만 이제부터는 우리가 함께 국경을 넘을 것이라고."

토카르추크는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잃고 집단의 언어가 사적인 언어를 모조리 집어삼키는 것보다 더 무서운 질병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토카르추크는 이럴 때 유일한 치료법은 문학이며, 창작자의 언어와 소통하고 교류하는 행위는 우리에게 백신과 같다고 강조한다. 문학은 집단의 언어가 한때 지금과는 다르게 기능했고 과거의 세계관이 현재와는 확연히 달랐음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 지금과는 다른 세계관을 인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실은 여러 가능한 모습 중 하나이며, 이 또한 우리에게 영구히 주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토카르추크는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욱 커다란 존재'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잠시나마 타자의 삶을 살아 보았기에 보다 폭넓은 인식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토카르추크는 우리는 우리 정신에서 너무도 중요하고 창의적인 것, 마치 수은처럼 생동감 넘치는 뭔가를 잃어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인간의 심오한 능력 중 하나로 우리가 대안의 세계를 창조하고 다른 이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또한 그것은 우리가 미래를 창조하고, 시험하고, 다른 사람들과 가장 원활한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나아가 우리에게 공감을 가르치고,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닮은 존재이며, 또 닮지 않은 존재인지를 알려 준다."

토카르추크는 작가의 세계에 입성한 젊은이들을 위한 강연에서 집필 동기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건낸다. 토카르추크는 글쓰기는 끊임없는 고문이 될 수도 있지만, 천국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글쓰기는 우리에게 힘을 느끼게 하고, 삶을 끊임없는 취미 활동으로 바꿔 주고, 현명하고 흥미로운 사안들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과 늘 함께 할 수 있게 해 주고, 다양한 문제들을 비정형화된 측면에서 생각하고 접근하게 만들며, 내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고, 공감력을 발달시켜 주며, 타자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문학에는 항상 일종의 이타심이 함께한다고 토카르추크의 글이 인상적이다.

"유심히 살펴보면 모든 좋은 책이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킨다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덕분에 세상에는 지금껏 존재하지 않던 인물들과 질문들, 새로운 발견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토카르추크는 트위터와 블로그, 미디어마다 다양한 일인칭 서술자가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질러 대는 다중 음성의 세계, 이 파편화된 세상에서 우리에게는 총체적이면서 통합적인 사인칭 서술자, 다인칭이면서 동시에 무인칭인 서술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제삼의 눈과 육감, 파놉티콘의 시점을 가진 서술자, 노스트로모호의 다음번 승객으로서 충분한 자격 요건을 갖춘 서술자.

"서술자는 이야기의 혼이고, 말하는 목소리이며, 이야기의 숨겨진 태생적 결함인 동시에 이야기의 본질입니다. 나머지 다른 모든 요소를 배제하고 정돈하는 추가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끝으로 우리는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인간에게는 영혼과 육체, 그리고 서술자가 있습니다."

토카르추크는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즐겨 사용하는 근본적인 개념은 기벽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면서 취하게 되는 특별한 입장에 대한 이야기다. 즉 중심과 주류를 넘어서는 것, 대중적이고 조화로우며 다수에 의해 널리 통용되는 일반적인 현실 경험을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기벽은 지금껏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각에 대한 의식적인 탐색이다. 그래서 자신만의 참신함과 새로움으로 무장한 채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것과 간과된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따라서 토카르추크는 중심 또는 주류에 머무르려는 성향은 작가의 입장에서 볼 때 편리하고 안전한 선택이긴 하지만 창의성의 측면에서는 치명적이라 할 수 있기에 현재 또는 미래의 작가들은 그 주류의 흐름에서 탈피하기 위해 자신을 제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괴팍하고 기이한 성향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좋은 작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벽은 장려되고 소중히 다뤄져야 합니다. 중심에서 멀어지려는 이 원심적 경향만이 기존의 사회적 지평 너머에서 존재하고 벌어지는 일들을 포착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토카르추크는 신화적 관점에서 볼 때 세계는 의인화되어 살아 움직이며, 생명의 맥박으로 가득 차 있고, 그래서 의미를 갖게 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기계적이고 무작위적인 세계가 아니라 우리의 열정과 헌신을 요구하는 세계, 다양한 존재들로 가득한 세계이다. 또한 토카르추크는 쪼개거나 분리할 수 없는 한 덩어리의 현실이기에 주체와 대상, 신과 인간,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은 미묘한 대응 관계와 의미심장한 유대의 끈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토카르추크는 어릴 때 할머니가 저녁 식사를 차리면서 암탉의 내장을 빼내는 것을 본 경험을 기억하며, 그 암탉이 품고 있던 모든 가능성, 존재로 탈바꿈 할 수 있었던 생명의 씨앗들이 애틋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토카르추크는 이 잔인한 해부 장면으로부터 얻은 교훈은 우리 또한 내면에 다수의 인격, 즉 다양한 정체성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작가들은 문학적 인물을 창조하면서 자신의 다양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주인공에게 투여하기 때문이다. 토카르추크는 작가의 내면에는 수많은 인격이 존재하는데, 각각의 인격은 잠재적인 성향으로 일상의 작용에 방해되지 않도록 오직 이야기 속에서만 자신을 드러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토카르추크는 작가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혼돈과 혼란, 이것이야말로 작가 자신에게 가장 큰 보물이라고 전한다.

"모든 생명체의 내면에는 시간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상 행위를 저지르면 이 내면의 시간을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미완성으로 만들고,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고, 모든 잠재력을 훼손하고, 놀라운 다양성과 무한한 가능성의 고리를 끊어 버리게 됩니다."

토카르추크는 문학적 인물들이 가진 고유한 관점은 종종 자신을 놀라게 했고, 평범한 일상 속의 '자신'을 초월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고 말한다. 토카르추크는 문학적 인물들을 일종의 '존재 보관소'에 해당하는 뭔가 특별한 차원에서 머무는 존재들이라고 시적으로 가정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소설이 출간되고 나면 그들은 그 보관소로 이동하게 되는데, 그 대신 그들의 이야기와 드라마, 비극이 독자들의 정신세계에서 펼쳐진다.

"문학적 인물이란 우리의 꿈이면서 우리의 경험과 상상이 빚어낸 보다 고차원적인 형태의 존재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식하고 있지만 자신의 탄생에 관여한 우리 작가의 존재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더 큰 계층 구조의 일부는 아닐까요? 그 거대한 구조 속에서 우리는 자연에 의해 쓰인 문학이고, 세상이 꿈꾸는 식물적인, 아니 나아가 무기체적인 상상력의 일부일지도 모릅니다."

토카르추크는 메탁시의 영토는 은유와 비유를 추구하며, 있는 그대로의 직해주의에 맞서는 평형추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거기서는 "무엇이?"라는 문자 그대로의 질문 대신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서 복잡한 대답을 유도한다.

"속임수와 가짜 뉴스, 음모론이 판치는 작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세상이 그 윤곽을 잃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생기를 북돋는 수액이 흘러 넘치는 거대한 숲과 같은 메탁시의 영토를 소중히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애당초 떠나온 곳,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방식으로 우리가 여전히 서로를 만나고 있는 곳, 국경도 여권도 언어오 필요없는 곳, 그곳이 바로 메탁시의 영토입니다."

토카르추크는 작가의 정신이란 결국 모든 파편과 조각들을 집요하게 끌어 모아서 그것들을 붙여 보편적인 전체를 창조하는 일종의 '종합적인 사고'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토카르추크는 개별적인 조각이야말로 더 많은 이야기를, 더욱 복잡한 방식으로, 그리고 다차원적으로 기술하게 하는 별자리를 구성하는 핵심이기 때문에 조각이나 파편들을 신뢰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독자가 자신의 정신에서 통합적인 감각을 활성화시키고, 개별적인 조각들을 단일한 모형으로 결합시키며, 사건의 작은 실마리에서 거대한 별자리를 발견하도록 진솔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야 합니다. 또한 시간의 경과에 대한 두려움이나 머나먼 공간에 대한 이질감을 무시한 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야기는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이 공통된 상상의 바닷속에 함께 빠져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 행성이 회전할 때마다 우리가 저마다 마음속에서 공들여 만들어 내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상상 말입니다."

토카르추크는 문학이란 우리와 다른 모든 개별적 존재에 대한 다정함에 근거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소설의 기본적인 심리학적 매커니즘이다. 토카르추크는 다정함이라는 이 놀라운 도구, 인간의 가장 정교한 소통 방식 덕분에 우리의 다양한 체험들이 시간을 여행하여 아직 태어나지 않은 누군가에게까지 다다르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픽션을 쓰지만 그것은 절대 새빨간 조작은 아닙니다. 글을 쓸 때 나는 내 안에서 모든 것을 생생히 느껴야 합니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생명체와 사물, 인간의 영역에 속한 것과 인간이 아닌 존재에 관한 것, 살아 있는 것과 생명이 주어지지 않은 것, 이 모든 것이 반드시 나를 통과해야 합니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가까이에서 하나하나 주의 깊게 살펴보고, 내 안에서 그것을 의인화하고 인격화해야 합니다.

이럴 때 내게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다정함'입니다. 다정함이란 대상을 의인화해서 바라보고, 감정을 공유하고, 끊임없이 나와 닮은 점을 찾아낼 줄 아는 기술입니다.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대상에 끊임없이 생명력을 불어넣고, 인간의 경험들, 그들이 겪었언 상황들과 기억들로 대표되는 이 세상의 모든 작은 조각과 파편들에 존재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정함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것을 인격화하며 그것에 목소리를 투여하고, 존재하고 표현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선사합니다. 바로 이 다정함이 찾주전자에게 말을 하게끔 만듭니다.

다정함이란 가장 겸손한 사상의 유형입니다. 성서나 복음에도 언급되지 않고, 이것을 걸고 맹세하는 사람도 없으며, 인용하는 사람도 딱히 없는 그런 종류의 사랑입니다. 특별한 로고나 상징물도 없고, 범죄나 질투를 유발하지도 않습니다.

다정함은 우리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면밀하고 주의 깊게 바라볼 때 구현됩니다.

다정함은 자발적이면서 사심이 없습니다. 연민에 기반한 동질감을 초월하는 감정으로서 다소 멜랑콜리한 듯하지만 의식적으로 운명을 공유합니다. 다정함이란 다른 존재, 그들의 연약함과 고유한 특성, 그리고 고통이나 시간의 흐름에 대한 그 존재들의 나약한 본질에 대해 정서적으로 깊은 관심을 표명하는 것입니다.

다정함은 우리를 서로 연결해 주는 유대의 끈을 인식하고 상대와의 유사성 및 동질성을 개닫게 해 줍니다. 이 세상이 살아 움직이고 있고, 서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더불어 협력하고 상호 의존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합니다."

토카르추크는 우리가 지금 해결책을 찾으려 발버둥 치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맞서 싸우고 있는 기후 비상 사태나 정치적 위기는 난데없이 발생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결과가 단지 정해진 숙명이나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뒤틀려 버린 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산물임을 종종 잊곤 한다.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이 세상이 우리 눈앞에서 끊임없이 형성되고 있는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단일체이며, 동시에 우리 인간은 그 세상의 작지만 강력한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믿는다는 토카르추크의 강력한 울림이 인상적이다.

"탐욕, 자연을 존중할 줄 모르는 오만, 이기주의, 상상력 결핍, 끝없는 분쟁, 책임 의식의 부재가 세상을 분열시켰고, 함부로 남용했고, 파괴될 수 있는 상태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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