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물었고 영화가 답했다 - 한 편의 영화가 나에게 일러준 것들
이안 지음 / 담앤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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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물었고 영화가 답했다>는 영화 평론가이자 영화에 대해 가르치는 강사 등 다양한 이력을 지닌 저자 이안이 수많은 영화에 깃든 다양한 화두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발견하고, 영화 곳곳에 스며든 불교의 교리들을 삶 속에서 겪는 고민과 갈등에 비추어 보고 또 대입하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한 일종의 ‘수행의 기록’이다. 매일의 삶이 질문을 던지는 날들, 매일의 삶이 화두 자체인 삶 속에서 저자는 이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대신 영화를 통해 치열하게 그 답을 찾는다.



저자는 <엉클 분미>는 불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환생"과 "변신"을 주제이자 스타일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영화에 그려진 영혼과 환생에 대해 감독은 계속 태어나고 환생한다는 개념은 신화나 환상, 전설이기도 하지만 그 바탕을 불교적 믿음이라고 설명한다고 이야기한다.

"분미 아저씨는 죽음이 가까위질수록 점점 더 전생의 기억이 또렷하게 되살아나면서 자신이 언젠가 다른 생에서 태어났던 동굴마저 기억하고 그곳을 찾아간다. 삶과 죽음, 혹은 이전의 삶 사이의 경계가 지워지는 경지에서 분미 아저씨는 죽음을 맞이하고 그 과정을 옆에서 본 조카는 영화 말미에 스님이 되어 분미 아저씨 못지않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경험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관객 각자의 불심과 깨달음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저자는 포르투갈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주세 사라마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눈먼 자들의 도시>는 초자연적 세계나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사건을 소재로 하는 "환상문학"을 바탕으로 한 만큼 현실 세계가 불가해한 현상 앞에서 무너져 내릴 때 겪게 되는 단절과 공포감 앞에서 이성이나 합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 자체를 들여다보게 하는 영화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병자에게 쉴 곳을 마련해 주고, 약과 보살핌으로 병을 함께 감당해 나가는 그런 사회가 되어 갈 때 우리는 인간의 생로병사 앞에서 눈을 뜨고 출가한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나누어 가지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병자에게 닿기만 하면 눈이 머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돌 때, 앞이 보이면서도 스스로 병자들 가운데로 걸어 들어간 의사 부인, 더 이상 전염병이 걷잡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눈먼 자들을 살 길로 이끌어 간 그 의사 부인의 자비심을 <눈 뜬 자들의 도시>에서는 불온한 정치 세력으로 몰아 암살하는 나쁜 세상.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 세상이 아니여야 한다."

저자는 <우리집에 왜 왔니>는 기적을 말하고, 기적을 믿는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영화에서 사회에서 밀쳐지고, 버림받고, 나가떨어진 존재들이 그대로 바깥에서 쓸쓸히 죽어 가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 믿음을 슬프고 처량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치유와 구원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는 그들끼리만 이루는 것이지 사회와의 화해나 사회 자체의 변화로부터 비롯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영화에서 누군가의 반려동물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담장 위에 위태롭게 앉아 있는 작은 길고양이의 모습은 수강이라는 인물의 애처로운 처지를 소소하지만 인상적으로 담아 낸다고 전한다.

"그러나 기적은 일회적이다. 모든 고양이, 모든 외로운 이들에게는 기적이 아니라 배려가 필요하다. 이 세상은 사람, 그것도 가진 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부디 손을 내밀지는 못하더라도 돌은 던지지 말자. 이 세상은 고양이가 있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이다."

저자는 '쿼바디스'는 네로 황제의 폭정이 극도에 다다르던 시절, 로마 총독 빌라도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한 후, 그 가르침을 전하러 제국의 심장인 로마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베드로가 겪은 일화에서 비롯된 물음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김재한 감독이 오늘날의 '쿼바디스'를 화두로 삼아 만든 영화 <쿼바디스>에서 다루는 것이 한국 교회인 건 실상을 잘 알고 안타까워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기독교의 정신을 돌아보고,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와 교회의 역할을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자정한 성탄의 의미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쿼바디스>는 이런 상황에서 묻는다. 교회를 다닌다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러 가는 것인지, 아니면 교회 건물에 경배하러 가는 것인지를. 믿음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있지 않고 목사의 권위와 교회 자산인 부동산 크기에 달려 있는 것인지를."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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