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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의 기술 - 느낌을 표현하는 법
마크 도티 지음, 정해영 옮김 / 엑스북스(xbooks) / 2022년 5월
평점 :

<묘사의 기술>은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미국 시인이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마크 도티의 책이다. 그는 시 속의 구체적인 단어와 감각, 묘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탐구하며 언어의 아름다움이 발생하는 과정을 파헤친다. 감각적인 해설을 통해 시에 정신적으로 참여하고 이해함으로써, 독자는 묘사뿐 아니라 시를 읽는 법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시인 엘리자베스 비숍의 시 '물고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이 시에서 풍부한 디테일은 물고기가 하나의 상징이 되지 않고 생명을 가진 존재로 남아 있게 해 주고, 이 시가 우리에게 해석을 제공하려 할 때조차 물고기의 불가해성이 온전하게 유지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시는 독특하고 반복할 수 없는 순간을 구체화하고 언어를 이용하여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를 표현하기 위한 양식을 만들어 낸다고 이야기한다. 비숍의 시는 우리를 활기 있고 자유롭게 하는 불확실성에 대한 감각을 회복시켜 준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모든 출중한 시는 고유한 지각적인 특징을 세상에 새긴다. 보는 것을 표현하려는 비숍의 노력은 궁극적으로 보는 행위를 하는 자에 대한 정밀한 묘사를 제공한다. 여기에는 구체적인 특유의 감성이 있다. 시는 성문이다. 출중한 시에서는 특정한 누군가가 말을 하면 그의 존재가 분명해진다."
"물아적 집중은 정확히 예술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순간에 몰두하고 현재에 자신을 쏟아붓는 것. 디킨슨이 말하는 것처럼, "의식이나 불멸처럼 날짜가 따로 없는" 것이다. 그것이 예술 작품과 아이들 놀이의 공통점이다. 둘 다, 전력을 다해 완전히 몰입하여 현재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경험이다.
본질적으로 <물고기>에서 서사는 일곱 행 뿐이다. 시작할 때 처음 여섯 줄은 우리를 장면 속으로 데려간다.
나는 엄청난 물고기를 잡아서
배 옆에 매달아 두었다
물에 반쯤 담근 채로
낚싯바늘이 입 한쪽에 박힌 채로.
물고기는 싸우지 않았다."
저자는 세상에 대한 갈망, 즉 자신이 본 것을 음미하고 명명하고 주장하고 가져올 필요는 묘사의 연료가 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우리가 묘사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끔찍하거나 억압적이거나 가슴 아픈 경우도 흔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언어는 이에 대한 갈망이며, 모든 것을 먹어치우길 원한다고 이야기한다. 퇴색하고 무너지는 세계도, 심지어 비참까지도.
저자는 예술적 기질과 다른 기질을 구분 짓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산다는 것이 특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무언가라는 근본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지의 여부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 이것(이 몸, 이 사회, 이 인간의 법들과 사회적 기대들의 집합)은 마땅히 그래야 하며, 어떻게 다를 수 있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놀랍고 조금 부럽기도 하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세상이 기묘하거나 자신이 기묘하거나, 또는 둘 다 기묘하다는 믿는 것은 모든 창조적인 가능성을 낳는 의심의 창문이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이 시대의 미국에서 시인이라는 것, 포장해서 시장에 내다 팔 수 없는 것에 흥미를 갖는 것, 시가 주는 근본적으로 무용한 사색의 기쁨을 즐기는 것은 근본적으로 기묘하다. 기묘함이란 평소에 같은 일이나 단단한 땅에서 발견되는 견고한 정체성이 아닌, 문제의 세계를 뜻한다."
저자는 묘사의 도덕성이 있다면, 그것은 묘사를 거부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작가가 말을 보태려고 시도함으로써 자칫 그 심각성을 절하하게 될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나는 몇 가지를 설명한다>에서 스페인 내전 중에 파시스트에 의한 스페인 사회의 파괴를 목격하지만 묘사하기를 주저한다고 이야기한다. 다음과 같이 네루다의 <나는 몇 가지를 설명한다>의 시의 가장 잘 알려진 부분은 참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비유적인 표현을 하는 것이 죄스럽고 그 심각성을 절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자는 직유를 거부하는 네루다의 시는 아무것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래서 아무것도 아이들의 잃어버린 목숨의 등가물로서 유사성의 공간에 집어넣을 수 없다고 암시하는 듯 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거리 전체에 아이들의 피가
그저 아이들의 피처럼 달린다."
이 책에서 저자가 "힘들을 서로 반대로 당기는 양극성은 글쓰기를 생생하게 만든다. 그것이 어느 하나의 초점보다 우리에게 더 실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현실은 항상 하나 이상의 끌림, 하나 이상의 강한 당김이 작용하는 장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최고의 묘사는 세상의 이중적 본성, 이를테면 모든 밝음의 언저리에 존재하는 그림자, 도덕성의 어둑한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는 유머를 인정한다."고 말하는 글에 깊이 공감한다.
저자는 자연의 존재와 인공의 존재를 병치하는 직유로 시인 휘트먼이 풀잎을 묘사하는 글을 소개한다. 저자는 이 시는 풀잎은 유혹의 의식을 위해 일부러 만들어서 일부러 떨어뜨린 뭔가와 연결 짓는다는 점에서 기억할 만한 묘사라고 말한다. 저자는 휘트먼의 풀잎은 의도적으로 직조한 천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우리를 유혹하려고 이용하는 수단이기도 하고, 창조주를 말하다가 갑자기 잃어버린 손수건 귀퉁이에 수놓아진 작은 모노그램으로 넘어가는 규모의 변화 때문에, 그 이미지는 더욱 놀랍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단일한 비유적 표현 내에서 식물과 인공물, 딱딱한 것과 부드러운 것, 작고 거대한 것을 연결하는 방식은 사고가 형성되는 구역인 정신에서나 만날 듯한 요소들의 의외의 부딪힘을 통해 언어에 활력을 주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아니면 주님의 손수건인지도 모른다.
일부러 떨어뜨린 향기로운 선물이자 기념물.
귀퉁이에 주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서 우리가 보고
누구의 것인가를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든."
저자는 묘사는 필연적으로 불완전하고, 그 사실을 인정할 때 묘사는 더 감동적이고 더 정확해진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시의 과제는 언어의 모든 측면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그 속에서 우리가 그러지 않으면 들을 수 없을 미묘한 차이와 힘들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비유적 표현을 탁월하게 다루는 사람, 같은 것과 다른 것을 연결하는 언어의 경향을 최대한 풍부한 효과를 내는 방향으로 활용하는 사람일 필요가 있다. 비유는 시에서 가장 정교한 경지에 이른다. 간결하게 압축하고 의미로 인해 생기가 넘치고 동시에 여러 방향을 가리킨다. 그리고 직유와 은유는 의미라는 케이크 위에 입혀진 당의처럼 단순히 장식적인 장치가 아니다. 비유적 표현은 그저 의미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기 위한 방식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비유는 경험의 질감을 전달하고 경험을 탐구하며 의미를 찾기 위한 시의 주요 도구 중 하나다."
저자는 묘사에서 진실성이란 지각의 진실에 대한 충실함, 다시 말해 앎의 과정에 대한 관심과 헌신일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감각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재평가이며 세상을 판단하고 다시 판단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묘사의 작업이 앎의 과정을 면밀하게 표현하는 것이라면, 특이한 표현도 익숙한 방식의 표현과 마찬가지로 진실할 것이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따지고 보면 시는 의외의 것들에서 즐거움을 찾고 우리의 눈과 귀를 새롭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러시아의 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가 주장한 것처럼, 현실을 낯설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술 작품이다. 낯설게 하기는 무시하거나 대체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슈플로프스키의 설명에 따르면, 예술 작품은 우리를 지각의 과정으로 되돌려 놓고 우리에게 눈앞에 있는 것들의 끊임없이 변화하고 도전하는 본성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