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리처드 파워스 지음, 이수현 옮김, 해도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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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의 작가 리처드 파워스에게 퓰리처상을 안긴 소설 '오버스토리'가 얼마 남지 않은 원시림을 구하기 위해 모여든 아홉 명의 삶을 뿌리부터 가지 끝까지 펼쳐내며 인간 본성과 자연의 세계를 탐구한 대서사시였다면 이 책은 '힘 없는 개인을 통해서 아득한 우주로까지 확장되는 이야기'다. 책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은 은 독자가 쉽게 이입할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여정을 따라 이야가 전개되어 지구 생태계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작가 리처드 파워스의 메시지를 한층 호소력 있게 전한다.

외계 생명체를 찾는 우주생물학자 시오는 아내 얼리사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아홉 살 아들을 혼자 키우게 된 싱글대디다.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를 가진 아들 로빈은 사랑했던 엄마와 반려견을 차례로 잃은 후 그 증세가 더 심해졌다. 가족의 추억이 깃든 스모키산맥으로 야영을 다녀온 직후, 로빈은 학교에서 친구의 얼굴을 보온병으로 때려 다치게 한 일로 정학을 당한다. 엄마의 죽음이 단순 사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친구의 말에 격분한 것이다. 시오는 도로 위로 뛰어든 주머니쥐를 피하다 생긴 사고였다고 아들에게 설명해 주지만, 당시 아내가 로빈의 여동생을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은 숨긴다. 그러던 어느 날, 조류학자가 꿈인 로빈은 동물권활동가였던 엄마가 생전에 하고자 했던 일을 돕겠다며 파머스 마켓에 나가 판매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지구상에서 멸종된 생명체들이 아이의 손끝에서 마법처럼 정교하게 되살아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로빈은 점점 그림에 몰두하며 학업에 관심을 잃어간다.

학교에서는 로빈에게 향정신성 약물치료를 권하지만 시오는 거부한다. 아홉 살 어린아이에게 약물이 어떤 효과를 미칠지 두렵고, 그게 해결책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으며, 아들의 별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시오는 아내의 친구였던 신경과학자 ‘마틴 커리어’에게 조언을 구하고, 그는 로빈에게 실험 단계에 있는 ‘디코디드 뉴로피드백’ 치료를 받아보길 권한다. AI를 이용해 타인의 감정 지문을 그대로 경험하도록 훈련하는 이 기술은 실제로 나와 있지만, 소설은 한 발자국을 더 나아가 상상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이 기술이 사람을 고통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질문으로. 로빈은 이 훈련을 통해 어머니의 생전 두뇌 활동 패턴과 자신을 일치시키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차츰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해진다.



이 책의 첫 장면에서 시오가 아홉 살인 아들 로빈과 함께 미합중국 동부에 마지막으로 남은 어둠의 땅 중 한 곳의 가장자리에서 덱 위에 망원경을 설치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또한 우주 생물학자 시오의 아들인 로빈의 두 번째 소아과 의사는 로빈을 자페 '스펙트럼'에 넣고 싶어했지만, 시오는 인생 자체가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진 무질서이고, 우리 모두가 연속적인 무지개 속 특정 주파수로 진동할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시오는 아내였다면 그 의사들에게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너무나 아름다운 방식으로 부족하죠.'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토록 훌륭한 어둠은 흔치 않았다. 한 곳에 이렇게 많은 어둠이 모이면 도리어 하늘이 환하게 켜졌다. 우리는 빌린 오두막집 위에 이리저리 뻩은 나무 틈 사이로 망원경을 댔다. 로빈이 접안렌즈에서 눈을 뗐다. 나의 슬프고 특별하며 갓 아홉 살이 된, 이 세상과 잘 맞지 않는 아들이."

이 책에서 아버지 시오는 아들 로빈에게 불교의 사무량심에서 온 말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생명을 깊이 사랑하고 연민을 느끼는 마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 자비로우라. 침착하고 흔들림 없이 있으라. 어디에서든 어떤 존재든 행복을 함께 기뻐하라. 그리고 어떤 고통이든 나의 고통이기도 하다는 점을 기억하라."

천문학과 유년기에 관한 공통점을 이야기하는 아버지 시오의 모습에 공감을 느낀다. 이 책에서 우주 생물학자라는 직업이 자신을 어린아이라고 느끼게 한다는 시오의 말이 인상적이다.

"천문학과 유년기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어마어마한 거리를 가로지르는 항해다. 둘 다 자신의 이해를 넘어서는 사실들을 찾으려 한다. 둘 다 엉뚱한 이론을 만들고 가능성이 무한히 증식하도록 놓아둔다. 둘 다 몇 주마다 초라해진다. 둘 다 모르기 때문에 움직인다. 둘 다 시간 때문에 혼란해진다. 둘 다 언제까지나 시작점이다."

시오의 아들 로빈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자기만의 진실에 더 만족하는 방법을 배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로빈은 조류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학교는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지구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산수를 하고 과학을 따라 갈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자기만의 진실에 더 만족하는 사람. 하지만 어떤 학교를 다니든 매일매일의 교육에서 우리 모두는 마치 내일이 오늘과 똑같이 반복될 것처럼 살았다."

세상을 떠난 로빈의 엄마 얼리사는 "우리가 다른 것들을 원하게 될 거라고. 저 밖에서 우리가 있는 의미를 찾게 될 거라고." 말했었다. 로빈은 실험 단계에 있는 ‘디코디드 뉴로피드백’ 치료를 받으며 엄마가 꿈꾸던 사명들과 연결되는 경험을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별들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볼 수 있는 별과, 볼 수 없는 별들의 절반을.

'아빠. 난 깨어나는 기분이야. 모든 것의 안에 내가 있는 것 같아.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좀 봐! 저 나무. 이 풀!"

"'엄마가 이 나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기억해?' 지난 이 년 동안 얼리사가 뭘 좋아했는지 묻던 아들이, 이제는 되려 나에게 일깨워 주고 있었다. '이 나무를 하숙집이라고 불렀어. 이 나무에 사는 온갖 생물들을 다 헤아려 본 사람이 없다고 했어.'

정말 그랬느냐고 물으여 아이의 엄마를 돌아보았지만, 얼리사는 사라지고 없었다. 1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그해의 마지막 반딧불이들이 불을 밝혔고 로빈은 숨을 들이켰다. 우리는 가만히 누워서 반딧불이들이 깜박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반딧불이가 줄을 지어 여름밤의 한가운데를 천천히 떠다니는 모습이 마치 우리가 본 모든 행성에서 찾아온 성간 우주선들이 우리 집 뒷마달을 침공하며 내는 불빛 같았다."

시오의 아들 로빈이 배너 중간에 채운 말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고통에서 해방되기를."이라는 두 줄이었다. 우리들이 해친 생명들을 치유해야 한다는 로빈의 글은 생명에 대한 강력한 존엄을 이야기한다.

이 책의 마지막 글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아들 로빈의 죽음 이후 아버지 시오는 우주는 살아 있고, 자신의 아들은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자신이 얼른 우주를 돌아보기를 원한다고 이야기한다. 아들 로빈은 그저 저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함께 방문했던 행성 궤도로 높이 솟아오른다. 로빈도 나도 같은 생각을 떠올린다. '우리가 방금까지 어디 있었는지 믿을 수 있어?'

아, 이 행성은 훌륭한 곳이었다. 그리고 우리도 훌륭했다. 뜨거운 태양과 쏘는 듯한 비와 살아 있는 흙냄새, 어떤 계산으로도 결코 가질 수 없는, 변화하는 세상의 공기 곳곳을 수놓는 끝없는 생명들의 노랫소리만큼이나 훌륭했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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